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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우리는 모두 하나18-19: 자해, 내 몸에 푸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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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5-09 ㅣ No.1933

[가톨릭신문 -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18) 자해, 내 몸에 푸는 화 ①


분노 잊으려 자신을 해치는 청소년들

 

 

청소년들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내비칠 수 없는 순간에 자기 안의 분노를 삭이는 방법으로, 또 심한 불안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순간에 취할 수 있는 해소 도구로 자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략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해서 중학교 때 가장 많이 하고 중·고교시기의 청소년 중 15~18%가 자해를 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자해 방법은 신체조직을 손상하는 베기, 심각한 긁기, 태우기(화상) 등이 대표적이며 머리를 벽이나 바닥에 쿵쿵 찧는 예도 있습니다. 행위자 측면에서 봤을 때, 자살이 죽음을 통해 자신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표현하고 세상의 관심과 인정을 요청하는 것(인정투쟁)이라면, 자해는 삶을 유지한 상태에서 인정투쟁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났던 K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부정적 감정이 폭발직전까지 올라오면 눈썹 미는 칼로 수시로 손목을 그었습니다. K는 자신이 죽음보다는 새로운 자극, 새로운 출발을 하는 계기로 자해를 하였습니다. 역설적이지만 K의 입장에서는 자해가 오히려 자신을 버티게 하는 행위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술에 취해 다 깨부수고 엄마와 우리를 때리는 아빠가 싫었어요.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치고….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어요. 그 눈썹 미는 칼로 수시로 그었어요. 정말 제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사실 그렇게 못하니까 자해를 하는 거 같아요…. 순간적인 기분 해소가 되기 때문에, ‘아, 짜증 나’ 그러고 확 그으면 풀리잖아요. 그럼 이제 새롭게 시작하자. 오히려 그런 자극이 되는 거예요, 저한테. ‘새롭게 시작하자’ 이런 계기가. 뭔가 제 안의 저를 죽인다는 느낌….”

 

K는 자해 전 상황이, 내면의 나쁜 감정들을 다 배출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지만 그러한 충동을 해소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K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고 또 누군가에게 화를 표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감정을 풀 대상이 자신밖에 남아 있지 않을 때 자해를 실행할 여건이 조성된다고 하였습니다.

 

더욱이 아무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고, 스스로도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끼게 되면 한순간 화가 치밀고 공격적인 마음이 강해지면서 자해를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K는 자신에 대한 관찰을 통해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으로 자해를 설명하였습니다.

 

“가끔 그냥 구역질을 하면서 토하고 싶어요. 정말. 제 안에 있는 나쁜 감정이 이렇게 쏟아져 나와서 분출이 됐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폭력을 피해 밤마다 이불 속으로 숨고 벌벌 떨었던 생각을 하니깐 더 화가 나는 거예요. ‘왜 나만 다 참아야 하고, 왜 나만 다른 애들같이 못 살고, 왜 나만 이렇지?’ 어디에서도 인정받고 있지 못한다고 느낄 때, 내가 남한테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랬을 때, 또 제가 저를 한심하게 느꼈을 때, 그 순간에는 화나서 열 받았는데 폭발할 데가 없을 때, 우울해하다가 되게 초조해해요. 그러다가 한순간에 이렇게 쌓이거든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분노를 이렇게 푸는 거예요.”

 

자해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자해 행동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 해소되는 것(신체적 고통으로 심리적 고통을 상쇄)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자해를 반복하게 됩니다. K 역시 절정 상태의 부정적인 감정이 자해를 통해 해소되는 것을 체험하면서 자해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으면 해소가 돼요. 그게 관심 받고 싶어서 일수도 있고, 피를 보면…, ‘아…’ 이렇게 한숨이 나온다고 그래야 되나…. 해소가 돼요. 돌파구였다고 생각해요.” [가톨릭신문, 2023년 5월 7일,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가톨릭신문 -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19) 자해, 내 몸에 푸는 화 ②


충고는 그만! 공감과 지지가 필요

 

 

자해하는 청소년의 입장에서 보면, 해서는 안 될 자해 행동이 맥락상 불가피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금지하려는 행동을 강화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이 현실 세계에서는 자해 사실을 감추고 온갖 폐해에도 SNS상에서만 자신의 감정과 자해 사실을 밝히고 모르는 사람들의 공감과 위로에 매달리는 것은 주위 사람들이 청소년의 상황을 잘 모를뿐더러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관심과 이해를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해 청소년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요?

 

우선 청소년에게 충고나 훈육이 아닌, 청소년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공감하고 수용하는 어른들의 태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한 인간으로서 누군가로부터 공감 받는 경험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게 합니다. 또 고립감에서 벗어나 자신이 존엄성을 가진 존재라는 확신을 얻게 합니다.

 

공감이 가진 무조건적이고 수용적인 특성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게 부과했던 부정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자기 내면을 표현하고 자유로움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내면의 상처로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지속적으로 공감을 체험하게 되면 자신을 공감해준 사람과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노는 억압하거나 폭발적으로 발산하는 방법이 아니라 오직 타인의 공감을 통해서만 해체되고 조절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공감의 원리는 청소년에게 더 잘 적용될 수 있습니다. 청소년은 온전히 이해받고 수용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왜곡된 태도를 버리고 점점 더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해 행동을 막는 방법 역시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부모, 친구, 교사와의 관계에서 돌봄, 지지, 공감을 받는다면 청소년은 생기를 얻고 놀라운 적응력을 보일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초래하는 일들 앞에서도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심지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주변의 관심과 지지는 청소년의 왜곡된 생각이 극단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공감을 통해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청소년의 현실수용과 새로운 전환을 위해 크게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버려야 할 것들로 부정적 자아상과 비판적 완벽주의에서 나와야 합니다. 고착된 부정적 기억, 심한 자기비하와 자기혐오, 좌절감과 열패감, 외모 불만족 등 부정적 자아상을 가진 상태에서 실체가 없는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검열하고 배척하면서 판타지에 가까운 완벽한 상태를 갈망하는 청소년이 많습니다. 자기 괴롭힘을 중단하고 현실의 자신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지지적인 환경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긍정적 상호작용의 기회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취해야 할 것들로 대응 탄력성, 자기개방, 몸 중심의 활동을 수용해야 합니다. 자신이 수치스러워 타인에게 개방하지 못하고 경직된 자기만의 틀에 갇혀 있는 청소년이 많습니다.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엄습하는 부정적 생각을 평정하는 데는 몸을 활용한 다양한 활동이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의외로 몸이, 생각을 치유하는 데 더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23년 5월 14일,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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