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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도움이신 마리아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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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27 ㅣ No.75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도움이신 마리아 수녀회 (상)

 

 

창립자 말 데레즈 드 수비랑의 영성 연수를 위해 내한한 프랑스 총원 주느비에브 마리 페레 수녀와 함께 한 한국지부 회원들.

 

 

창립과 영성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1854년 마리 데레즈 드 수비랑에 의해 프랑스에서 창립된 도움이신 마리아 수녀회는 성모마리아가 이같이 주님께 「당신의 종」임을 고백하며 구원사업에 협력했듯 그의 모습을 따라 인류성화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어느 곳에서든지 봉사한다는 정신을 지니고 있다. 

 

1834년 남프랑스 옛 귀족 가문의 신앙심 깊은 집안에서 출생한 창설자 마리 데레즈 드 수비랑은 성직자였던 삼촌의 영향으로 어린시절부터 수도생활에 관심을 갖고 관상수도회에 마음을 두었으나 산업혁명에 의해 젊은 노동자들이 방황하고 기아 빈곤 질병으로 고통받는 극빈자 층이 급속하게 증가하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이들을 위한 자선사업 등 사도적 봉사에 주력하게 됐다. 

 

19세 되던 해인 1854년 평신도 봉헌단체인 베긴(Beguinage)회의 책임자로 일하게 된 그는 기도와 노동, 그리고 버려진 아이를 돌보는 일들을 시작으로 위한 본격적인 어려운 이 돕기에 착수했다.

 

이어서 1861년에는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에서 「가족의 집」이라는 이름의 기숙사를 개소, 노동자들과 빈곤에 허덕이는 과부 · 미혼 · 여성 · 소녀 · 병자들을 돌보았고 또한 유럽 최초의 결핵요양소 설립, 공제조합과 보험제도 개설 등 선구자적 활동을 시도했다. 그같은 활동에 있어 마리 데레즈 드 수비랑이 동료 및 후배들에게 강조한 것은 시대의 추세를 판별, 그 방법을 찾고 완성하고 또한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활동을 변화시켜 간다는 것이었다.

 

이같이 마리 데제르 드 수비랑이 강조한, 시대적 요청에 따른 활동 수행은 현재까지 수도회 전 회원들이 언제든지 시대와 장소에 적응하면서 필요에 응답하고자 노력하는 삶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도움이신 마리아 수녀회의 영성적 특징은 「성체 중심의 삶」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영성」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하는 삶」 등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세가지 영성은 「그리스도 중심」이라는 점에서 서로 깊이 일치한다고 볼 수 있으며 수도회의 요점이기도 하다. 즉 성 이냐시오 영성으로 활동생활에 관상생활을 결합시키면서 어느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았던 성모 마리아를 따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고, 또한 도움이신 마리아의 명칭에도 나타나듯 주님의 종이시고, 구속사업의 협조자이신 마리아를 본받아 그와 더불어 협조자가 되도록 초대받고 있다는 것이다. 

 

창립자 정신은 「열린 마음.가난함 그리고 신뢰심」등 세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즉 사도로써 하느님의 부르심에 부단히 응답하려는 자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분과 함께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하며 가난함은 구원사업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 이 가난함이야말로 모든 것을 완성해 주시고 당신 종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도와주시고 채워주시는 분에게 신뢰하고 나아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4년 1월 4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도움이신 마리아 수녀회 (하)

 

 

도움이신 마리아회는 신앙인들의 영적인 성장과 신앙육성을 통한 하느님 나라 건설에 앞장서고 있다. 사진은 회원 수녀들이 본당에서 신자들에게 강의하고 있는 모습.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

 

도움이신 마리아 수녀회 창립자 마리 데레즈 드 수비랑은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영신수련에서 제기된 이 질문에 '가난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가난하게 되기를 원한다'는 내용으로 응답했었다.

 

여기서의 가난이란 물질적인 가난뿐 아니라 영적인 가난, 곧 하느님 이외에는 그 어떤 세상적인 것들에 대해 마음을 뺏기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느님 이외에는 그 무엇도 내면적인 평화와 위로를 줄 수 없다는 깨달음의 결과였다. 격변하는 프랑스 사회 속에서 노동자 특히 젊은 여성 근로자들을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에 앞장서는 등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일들을 식별하고 앞서서 그에 응답하려는 노력을 보였던 마리 데레즈 드 수비랑의 지향은 이후 영국과 이탈리아 일본 다시 아일랜드·아프리카로 퍼져 나갔으며, 일본에서 다시 미크로네시아의 폰페이에, 그리고 1985년에는 한국에도 전해지게 됐다 .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시작 수도회를 설립하고 온 세상에 복음화를 심는 작업의 씨앗이 되었던 마리 데레즈 드 수비랑은 자신의 전 생애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일이었음을 깨닫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또 자신의 삶은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 안에 손수 쓰시는 사랑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즉 과거 미래 성공 실패도 하느님을 향해 달려가는데 장애가 될 수 없음을 체험한 것이었다. 그는 1946년 10월 20일 시복됐다. 

 

도움이신 마리아 수녀회의 사도직 활동은 학교교육 빈민선교 장애자사목 신앙교육 기숙사 운영을 통한 젊은이 선교 영적지도 피정지도등 다양하지만 선교에 있어서 근본 방침은 복음선교, 즉 사람들의 영적인 성장 그리고 신앙의 싹트임과 그 육성에 도움이 되는 일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성장시키는 일이다. 

 

1984년 김수환 추기경과 1985년 인천교구 나길모 주교의 초청을 받았던 수녀회는 특별히 일본지구로부터 한국으로 회원을 파견하게 된다. 

 

그 이유는 일본과 한국의 지리적 문화적 근접성이라는 특성과 함께 가장 가깝지만 한편 가장 먼 나라로 인식돼 있는 양국이 그리스도교의 형제애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설립자 선종 100주년을 맞았던 1989년 경기도 부천에 수녀원을 신축했던 수녀회는 1990년 노동인구가 많은 부천에 본원을 마련하고 본당사목과 기도의 집 운영 등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수도회들의 영성적 봉사에 대한 요청이 커지는 있는 상황 안에서 이냐시오 영신수련 지도, 영적 지도등 현대 한국 사회와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적 영적 성장을 돕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04년 현재 도움이신 마리아 수녀회가 현대 사회와 교회 안에서 지향하고 있는 관심사는 비정의 폭력등 억압을 가져오는 모든 종류의 세상 악들에 대항하여 그 실재 안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통해 평화와 화해를 가져오는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4년 1월 11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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