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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꼰벤뚜알 프란치스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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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13 ㅣ No.43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꼰벤뚜알 프란치스꼬회 (상)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회원들.

 

 

역사와 영성

 

1209년 프란치스코 성인은 세상 곳곳에 그리스도의 믿음을 전파하기 위해 수도회를 설립했다. 「작음」 「형제애」 「공동체정신」이라는 가난과 나눔의 영성을 실천했던 이 수도회는 당시 이탈리아와 유럽뿐 아니라 이슬람, 아프리카와 동방까지 빠른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수도회는 1517년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에 대한 다양한 이해에 따라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와 작은형제회로 갈라지고, 작은형제회에서 다시 카푸친 수도회가 갈라져나와 현재 세 개의 프란치스코 수도회로 존재한다. 

 

이같은 분리 속에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는 또 다른 형식으로 프란스치스칸의 영성을 실천해나가는 수도회로 장구한 역사를 이어가며 오늘날 교회 안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동, 집합이라는 라틴어로 함께 모여사는 공동체를 뜻하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명성과 수도회원들의 삶에 이끌린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날로 번창했다. 수도회 부흥과 쇄신의 시기였던 17, 8세기에는 콘스탄티노플, 아드리아노플, 로도스토 등 동유럽지역과 러시아, 리투아니아, 몰다비아, 왈라키아에 선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수도회의 번영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쇠퇴했고 다른 수도회와 마찬가지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도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시대, 그리고 19세기 종교억압정책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시대의 필요에 따라 수도회원들은 늘어났고 현재 전세계로 퍼져 36개 관구 5000여명의 회원들이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의 영성의 근본은 창설자인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가르침에서 시작된다. 즉 「제2의 그리스도」라 불릴 정도로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고자 했던 그의 영성은 한없이 「작아짐」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은 한없이 빛나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형제들을 일컬을 때 세상에서 「가장 작은 형제들」이라고 불렀다. 또한 「작음」이란 말은 영성적인 겸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지위를 얻으려는 인간적 욕망을 끊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현대의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도회 형제들에게는 사회에서 「소외받은」 모든 이와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커다란 영성적 힘으로서 가난하고 힘없는 하느님의 백성들, 곧 성서에서 말하는 「야훼의 가난한 자」처럼 되기를 바랬다. 이같은 가난의 영성과 모든 피조물까지 사랑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우주적인 사랑은 오늘날 물질주의와 권력, 자연파괴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데 커다란 정신적인 지표가 되고 있다.

 

「꼰벤뚜알 정신」(공동체정신)과 「형제애」의 영성 또한 평화를 위협받고 있는 현 시대에 중요한 표지가 되고 있다. 이 영성은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서 형제이며 우리는 한 공동체이고 따라서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나누어야할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삶으로서 알리고 보여주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고 형제적 삶의 태도는 자기 중심적인 것이 아닌, 자기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말하며 꼰벤뚜알 수도회원들은 이같은 정신을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로 실천하고 있다.

 

형제애에서 흘러나온 「꼰벤뚜알 정신」은 사람에게 봉사하도록 이끌며, 교회와 함께 걷고자하는 자세, 역사와 함께 하면서 현대에 열린 태도, 자신의 신분을 똑똑히 알면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정신, 문화와 대화하며 정의평화를 위해 선구자적인 열린 자세를 갖게 한다. 이처럼 프란치스코 성인의 「작음의 영성」에서 흘러나온 가난, 형제애, 공동체정신, 피조물에 대한 사랑, 평화를 위한 노력 등의 영성적인 가치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꼰벤뚜알 프란스치스코 수도자들의 소명과 삶을 지탱해주는 고유한 영성이 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2년 5월 5일, 이진아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하)

 

 

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수사가 소외된 노인을 돌보고 있다.

 

 

한국진출과 사도직 활동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의 한국진출은 1958년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이탈리아 빠도바관구 프란치스코 팔다니 수사와 로마에서 거주하던 한국인 허안드레아 신부가 만나면서 시작됐다. 중국공산화로 선교활동이 불가피하게됐던 팔다니 수사와 허신부는 한국선교에 대해 논의했고 결국 빠도바 관구에서 두 사람을 파견하게 됐다. 

 

이에 따라 58년 10월 6일 부산 범일동에서의 선교활동을 시작으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는 한국에서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후 1960년대 이탈리아 출신 수사들이 로마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부산을 비롯 대구, 서울, 인천, 수원으로 본당사목 및 봉사활동을 넓혀나갔다.

 

본당사목과 사회복지활동, 피정의 집, 재속회 영성지도, 성모기사회 등의 활발한 활동을 통한 계속적인 성장에 힘입은 수도회의 한국지부는 1975년 12월 1일 막시밀리아노 콜베 준관구로 승격됐다. 이어 내실있는 공동체로 성장을 거듭해온 수도회는 지난해 2월 관구로 승격됐다. 수도회는 세계 곳곳에서 본당사목, 선교활동, 사회복지사업, 피정지도, 영성지도, 교육 등을 통해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에서는 매우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펼치고 있다.

 

58년 본당사목으로 활동을 시작한 수도회는 당시 어려운 시대에 놓여있던 한국에서 신자든 비신자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부산을 시작으로 이듬해 대구 범어동본당, 64년 부산 대연동본당이 꼰벤뚜알 수도회 본당으로 인가돼 본당사목을 이어갔고, 72년에는 서울 외국인본당과 77년 인천 갈산동본당을 지으면서 전국의 외진 곳으로 본당사목활동을 넓혀갔다. 96년 대구대교구의 요청으로 범어동본당을 교구로 돌려주고 월배본당에서 사목을 하고 있는 수도회는 현재 부산 기장본당을 비롯해 5개 본당과 일광의 1개의 준본당에서 프란치스코 영성에 따른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소외된 지역의 본당사목뿐 아니라 작은자가 돼 장애인 및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해온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는 62년 2월 나환우들의 자녀 27명을 부산 대연동 난민주택에서 키우기 시작하면서 보육원을 시작했다. 68년 3월에 부산 시청에 「프란치스코의 집」으로 허가를 받아 지금껏 많은 미감아 학생들을 사회에 진출시켰다. 그러나 오늘에는 사회적으로 미감아들의 수효가 줄어들자 수도회는 보육원 대신 장애인 재활원으로 운영하기로 했고 정부의 허락을 받아 지체장애아뿐 아니라 중복장애 등의 장애아동을 돌보며 생활하고 있다.

 

김포에서도 장애인들을 위한 「프란치스코 집」을 운영하고 있는 수도회는 87년 무의탁 노인 30여명이 함께 생활하는 양로원 「요셉의 집」도 함께 꾸려가고 있다.

 

가난하고 병약한 이들을 위한 봉사와 아울러 현대인들의 영성지도를 위해 수도회는 피정의 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콜베신부에 의해 시작된 성모기사회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경기도 양평 정하상 바오로 수도원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성모기사회는 강의 및 피정지도, 출판사업 등을 통해 성모신심을 고양시키고 있다.

 

이외에도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에 따라 복음을 실천하고자 하는 신자들의 모임인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을 위해 영적보조활동을 하고 있으며, 개인 영적지도 및 상담활동에 봉사하고 있고, 미국 LA에서 한인들을 위한 본당사목과 이탈리아,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본당사목, 교육, 출판, 사회복지, 선교활동 등 다양한 사도직활동을 펼치고 있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는 현재 9개 수도원에서 69명의 회원들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정신을 살아가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2년 5월 19일, 이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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