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15-1126.....연중 제3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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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11-25 ㅣ No.1921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 홀수 해

다니엘 6,12-28         루카 21,20-28

2015. 11. 26.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일을 질투함(?)

세상에서 사람의 행동을 표현하는 것의 하나로, 질투(嫉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을 사전은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깎아내리려고 함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한자를 보면, 두 글자에 각각 여성을 상징하는 표현이 들어있습니다. 그 글자를 억지로 풀이하면, ‘여자가 던지는 돌멩이로 병이 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글자대로, 질투는 여자만 드러내는 것일까요? 이 자리에 오신 여성분들이라면 당연히 싫어할 법하고, 그 일이 왜 여자에게만 해당하느냐고 하겠지만, 요즘 세상에서는 남자도 질투한다고 해도 글자가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장 오늘 독서에는 질투를 부리는 자로 남자들이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질투는 하는 사람에게나 당하는 사람에게나 좋은 결과를 맺지 않습니다. 그것을 당연히 안다고 해도 그 일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인간이기는 합니다만, 사람은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추문(!)’이라는 표현을 들어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어제 우리가 독서에서 만났던, 벨사차르임금의 국가는 그렇게 멸망하고 들어선 나라가 메디아이고, 임금의 이름은 다리우스로 바뀝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임금은 다리우스입니다.

 

지난날의 명성에 이어, 다니엘은 재상이 되었지만, 그를 질투하는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고 세상의 임금을 동원하여 죽음직전까지 몰고 갔고, 그 사건으로 등장하는 것이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예언자의 얘기입니다. 다니엘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오늘 독서도 그러합니다. 그에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우리가 독서로 들었습니다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과연 신앙인으로서 얼마나 올바른 자세를 지니고 사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남을 시작이라고 한다면, 죽음은 끝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시작과 끝은 우리의 삶에서 수시로 반복되는 일입니다만, 우리가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를 뿐입니다. 오늘 독서는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랐던 다니엘은 죽음의 경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도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는 보장만 있다면, 언제나 충실한 신앙인으로 살겠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또 어떤 사람이 그런 확신을 우리에게 주겠습니까?

 

오늘 복음의 말씀은 무섭고 힘들고 두려운 때를 말하는 예고입니다. 이런 현실이 우리의 삶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사실 그 확신을 우리가 어디에서 얻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의 삶이 불안하고 의미가 없으니 대충 살거나 그만 살아도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살아있는 내가 당장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옳은 표현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그때가 구원될 때라고 여기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얼마나 믿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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