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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원 산책: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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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4-24 ㅣ No.396

김선자 기자의 수도원 산책 ④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무소유의 삶을 사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했고 그렇게 살았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현대에서도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회원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수도회 설립 초창기부터 ‘공동의, 수도원의’ 뜻을 가진 ‘꼰벤뚜알’을 사용해왔고 수도회 회원들은 ‘꼰벤뚜알 작은 형제들’이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순종 안에 소유없이, 정결하게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세상에서 실행하고 있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역사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1209년 성 프란치스코와 동료들이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복음적 생활양식을 구도로 인준받음으로써 공식적으로 교회 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회개하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형제애를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작은 형제들’의 수도회로 뚜렷이 발전하게 된다. 1223년 11월 29일 교황 호노리오 3세가 성 프란치스코가 작성한 회칙을 최종적으로 승인한다. 이 회칙이 바로 ‘인준받은 회칙’이다.

성 프란치스코에 의해 수도회가 설립될 당시는 세속화 되어가는 교회를 비판하는 청빈운동이 성행했다. 이때 청빈운동에 참여하던 이들은 대부분 이단적이고 반교회적인 사상과 결부되어 이단으로 파문되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들과 달리 교회 안에서 교회 쇄신을 위해 청빈운동을 전개하여 많은 열매를 맺었다.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작은 형제들의 삶에 감화되면서 회원이 증가했고 세상 안에서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따라 살고자 하는 평신도들의 단체인 재속 프란치스코회도 생겨났다.

이러한 성장 속에서 7대 총장이었던 성 보나벤투라가 세상을 떠나자 수도회는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도시 안에 공동체를 세우고 살아가는 ‘꼰벤뚜알(Conventuali)’ 형제들과 엄격한 가난과 프란치스칸 영성 가운데 은수자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영성파(Spirituali)’로 불리는 형제들(나중에는 ‘엄수파, Osservanti’)로 나누어졌다. 수도회의 내적분열은 이후 여러 교황들이 노력했지만 해소되지 못했다. 결국 1517년 교황 레오 10세는 ‘꼰벤뚜알’과 개혁 그룹들이 단일한 조직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법적으로 완전히 분리시켜 모든 개혁 그룹을 ‘옵세르반티 작은 형제회’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했다. 이후 ‘옵세르반티’에서 개혁된 ‘카푸친’이 다시 분리되어 나왔다.

지금의 세 수도회로 확정된 것은 1897년 교황 레오 13세 때로 당시 ‘옵세르반티’는 리포르마티, 알칸타리니, 레골레티 등 많은 분파로 구성되어 있었고 교황 레오 13세는 이들을 ‘작은 형제회(O.F.M)’라는 이름으로 통합했다. 이렇게 해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창설자로 모시는 수도회는 꼰벤뚜알 작은 형제회, 작은 형제회, 카푸친 작은 형제회로 분리, 정착됐다.

검은색 수도복을 입고 살아가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사들은 몇몇 선교지에서는 프란치스칸 본연의 잿빛 수도복을 입기도 하며 프란치스칸 영성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한국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시작 그리고 대구대교구 내의 활동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창설자로 모시는 수도회 중 한국에 최초로 진출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꼰벤뚜알 작은 형제회)’는 로마에 총본부를 둔 국제수도회로 1958년 이탈리아 파도바관구의 프란치스코 팔다니(한국명 : 범덕례) 수사가 부산에 도착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함으로 이루어졌다. 본당 사목과 사회복지 사업, 피정의 집, 재속 프란치스코회 영적보조, 성모기사회 등 활발하게 활동하며 성장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1975년 준관구로 승격됐고, 2001년 관구로 승격되어 사랑의 순교자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을 주보로 모시고 있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대구진출은 1959년 대구교구로부터 범어동성당 사목을 위탁받아 성당 부지에 최초의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2008년에 한국진출 50주년을 지낸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현재 서울 한남동에 본원을 두고 있고, 대구에는 월배성당 내 부지에 대구분원이 자리하여 수련소를 운영하면서 본당사목, 성모기사회, 재속 프란치스코회 영적보조, 상설고해소(매주 금요일 2시~4시) 등의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대구분원장 정진철(마르코) 수사 신부는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수도회의 성소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우리 수도회 또한 예외가 아니다.”라며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잊지말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말했다.


삶과 영성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들은 프란치스칸 영성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프란치스칸 영성이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함으로써 복음의 진리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수도회가 지닌 역사와 영성을 통해 실현하고 발전시킨 정신이다.

프란치스칸 영성의 특징은 복음과 그리스도 중심의 영성, 작음과 형제애, 사도적 영성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 복음과 그리스도 중심의 영성이란 프란치스칸 영성이 변함없이 추구하는 복음 속의 예수 그리스도와 철저히 일치하는 것으로써 지극히 겸손하고 가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다. 두 번째, 작음과 형제애는 수도회 공식 명칭이기도 한 ‘작은 형제회’ 안에 프란치스칸 영성의 가치가 담겨 있다. 작음은 한없이 자기를 비우는 여정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성찰함으로써 나오며 자기 이탈과 겸손, 섬김의 자세로 살아가도록 이끌어준다. 또 형제애는 우리가 모두 성령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도록 불러주신 하느님 아버지를 흠숭하고 인간을 사랑하도록 도와준다. 세 번째 사도적 영성은 성 프란치스코가 자기 자신과 형제들의 소명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여 회칙에 선교 조항을 최초로 명시하여 이 정신에 따라 프란치스칸들이 사도적 소명을 통해 세상과 교회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봉사에 자신을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영성으로 ‘인준받은 회칙’ 1장에 잘 드러나 있다. “작은 형제들의 회칙과 생활은 순종 안에 소유없이 정결하게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성인 중 한 명인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들의 삶을 통해 물질과 경쟁의 삶을 쫓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돌아보며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기도해보자. 그러면 어느 순간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을 것이다.

*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대구분원 성소 문의 : 053) 636-7427

[월간빛, 2012년 4월호, 취재 김선자(수산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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