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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교육으로 읽는 이 시대의 교육: 청소년기라는 개념의 확장과 디지털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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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24 ㅣ No.133

[예방교육으로 읽는 이 시대의 교육] ‘청소년기’라는 개념의 확장과 디지털 원주민

 

 

미국의 스포츠 방송 ESPN의 e스포츠 전문 기자인 타일러 에르츠베르거(Tyler Erzberger)는 ‘한국의 4대 엘리트’로 봉준호 감독과 함께 페이커, 손흥민, BTS를 꼽았다.1)

 

이 내용을 들으면서 청소년들과 함께 사는 삶을 꿈꾼다는 살레시안은 무슨 생각을 할까? 봉준호 감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살레시오회가 함께 살아가기를 꿈꾼다는 소위 ‘젊은이(확장된 의미에서 청소년)’라는 사실에 동의할까? 대한민국의 국보급 존재로 거명된 네 사람의 나이를 보면 50대 초반의 봉준호 감독 외에 나머지 사람은 모두 20대의 젊은 사람들이다. 손흥민(29세) 씨와 일곱 명의 BTS 멤버들은 가장 나이가 많은 김석진(29세) 씨부터 가장 나이가 적은 정국(24세) 씨로 구성되어 있다. 나이라는 것이 숫자에 불과하지만, 일반적으로 보아 이들은 오늘날 모두 살레시오회가 그렇게도 함께 살기를 꿈꾸는 젊은이들이고 넓은 의미에서 청소년의 영역에 속한다.

 

 

청소년의 나이에 관한 돈 보스코의 탄력적 생각

 

돈 보스코께서 나이의 구분과 함께 청소년들을 어떤 교육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돈 보스코를 사부(師父)로 모시고 살려는 살레시오회의 교육적 삶에서 살레시안들의 신원을 규명하는 대전제(大前提) 중 하나가 된다.

 

돈 보스코가 1854/55학년도에 소년 견습공을 위해 작성한 규칙서엔 (오라토리오에) 입사할 수 있는 소년 노동자는 나이가 12~18세로 다음의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부모 또는 한쪽이 없는 고아나 몹시 가난하고 돌봐 주는 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만일 교육을 해줄 형제나 삼촌 등 친척이 있다면, 이 집의 대상으로는 맞지 않는다.”2)에 따를 때 돈 보스코는 일반적으로 보아 전형적인 사춘기의 ‘청소년(12~18세)’들과 함께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돈 보스코께서 이렇게 나이의 제한을 생각한 데에는 사목적 체험의 배경이 있다. 물론 살레시오회 한편에서는 큰 아이들과 사는 것이 버겁거나 두렵다는 것을 숨긴 채 ‘어린 나이의 교육이야말로 진정 중요하다.’라는 등의 명제를 내세워 ‘더욱’ 어린 나이의 아동들과 함께 살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돈 보스코께서는 실제로 초창기 오라토리오의 아이들 연령을 일정 부분 낮추었다.

 

“초창기 오라토리오의 시작기(1843~1849년)에서 돈 보스코는 주로 14~20세의 젊은 근로 청소년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일요일과 축일에만 애들을 만난다. 이렇게 7년 정도의 사목 활동을 지내고, 또한 여러 소년원을 방문하면서 돈 보스코는 11~15세 나이의 청소년들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가 만나는 청소년의 연령이 낮아진 이유는 조금 더 어린 나이의 애들이 변화에 훨씬 더 열려 있고 자신의 의도와 가르침을 잘 받아들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돈 보스코는 좀 더 어린 나이에 애들이 하느님을 알고 그분과 관계 맺기를 바랐고, 이에 대한 그의 확신은 점점 더 굳어져 갔다. 또한, 돈 보스코는 그렇게 어린 나이에 애들의 인생이 감옥에서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3) 오늘을 사는 살레시오회는 시대와 사목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돈 보스코처럼 유연하게 위아래로 교육 현장과 사목 영역의 확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18세 이전의 중·고등 학령기의 아이들만이 청소년이라는 생각을 탈피하여 10~30세 정도로 확장하고 넓혀야 한다.

 

 

청소년 분류

 

우리나라는 청소년기본법 제3조 1항에 따라 ‘9세 이상 24세 이하’를 청소년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은 개념적으로 중·고등학생을 연상하면서 13~18세를 청소년으로 생각한다. 법의 규정이 어떻든 세계적으로 현대의 청소년기는 점점 더 늘어 연장되어 가는 추세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청소년기는 청년기를 포함하여 무려 30세, 혹은 35세까지 연장되는 것으로 본다. 이는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불확실성의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는 어려움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는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 더욱 심각하다. 한국 사회에서 불확실성은 젊은이들의 취업난이라는 현실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현대의 젊은이들은 자기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를 모를 뿐만 아니라 선택할 수도 없이 살아간다. 그렇게 어른이 아닌 어른이 되어 가면서 청소년기의 영역에 남고 만다. 이는 기술적으로 너무나 숨 가쁘게 변화해 가는 세상 탓이며,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서 불확실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역대의 교황님들께서 ‘쓰고 버리는 문화(throw-away culture)’를 버려야만 한다고 표현한 대로 자연 자원을 극도로 소모하고, 환경과 생태가 망가지며, 미래 세대를 신음하게 한다. 젊은이들은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새것을 가져야만 한다는 강박을 갖고, 결국은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는 세대로 남는다. 교회는 이를 두고 “현대의 젊은이들은 개인적인 인생 항로에 들어서기를 주저한다. 만일 이것이 ‘오늘은 이것을 선택하지만, 글쎄 내일은 두고 봐야 알지.’ 하는 식의 미래에 닥칠 다른 국면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라면…?”4)이라고 걱정하고, 이 사회는 젊은이들을 ‘Z세대’5)라고 이름 짓는다. 교육자의 일원인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젊은이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그들이 누구인가를 묻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Z세대는 누구일까?

 

주로 영어권의 문화를 중심으로 오늘날 청소년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할 때 ‘Z세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이다. X세대의 자녀들로서 ‘Z세대’로 불리는 오늘날의 소년들은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s)’을 넘고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을 넘어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6)으로 불리는 세대이고 2005년 출범한 유튜브 때문에, 그리고 엄마 아빠가 낳았으나 유튜브가 길렀다는 뜻을 담아 ‘유튜브 세대’로도 불린다. 이들은 대개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출생한 세대이고7), 기술 중독 이로 불릴 만큼 IT 의존성이 강한 세대로서 손이나 몸에 IT 기기를 착용하거나 몸 일부처럼 활용하는 커뮤니케이션 기기(웨어러블)와 3D프린터, 무인 자동차를 사용하는 세대이고 과거 세대와는 연속성이 없다는 점에서 일종의 변종 세대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기성세대가 이들을 바라볼 땐 엄청난 놀라움의 연속이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에게 부모가 ‘오늘 학교에 잘 다녀왔니?’라고 물으면 ‘내 SNS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야!’라고 대답하고, 컴퓨터게임, 이메일, 인터넷, 휴대폰 등 즉각적인 메시지 교환들이 이들의 주된 삶을 이룬다.

 

이들을 ‘N(net) 세대’라 하기도 하고 ‘D(digital)세대’라 하기도 하지만 ‘디지털 원주민’이라 하는 것이 교육자나 기성세대에게는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부른다면, 그 맞은편에 있을 기성세대는 ‘디지털 이주민’이다. 다른 나라에 이민을 와서 자식들을 키웠더니 자식들은 현지 원주민의 말을 하는데, 부모는 자식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디지털 이주민이 아무리 잘 배워도 그들의 일상 안에는 디지털 이주민의 억양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은 ‘멀티태스킹(Multitasking)’과 ‘병렬처리(Parallel Processing)’라는 말처럼 엄청난 양의 정보 속에서도 다양한 일을 동시에 처리해 낸다. 이 아이들은 컴퓨터나 비디오게임, 혹은 인터넷의 디지털 언어를 모국어로 삼는 아이들이다.

 

주로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본 불과 몇 줄의 묘사에 불과하지만, 오늘날 교육자들은 교육 현장에서 눈높이 교육과 ‘친구 같은 선생님’을 말하면서, 디지털 이주민으로서의 억양을 숨긴 채, 짐짓 혼자서만 유창하게 디지털 원주민을 만나고 있다. 그 와중에 살레시안들은 교육 현장에서 젊은이들에게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내심 그들에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면 얼마 안 가서 ‘아니, 이미’ 세상이 그들에게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고 말 것이라는 조바심을 낸다.

 

디지털 원주민으로 살고 있는 18세 이후의 청소년들도 영적 · 교육적 동반이 필요하다. 특별히 청소년에서는 벗어나고 기성세대에게는 외면받는, 그래서 사회적으로 ‘잃어버린 영역’이 되면서 모호하게 ‘청년’으로 포장되어 교회에서든 사회에서든 배려받지 못하는 19~30세의 젊은이들도 사목적 배려를 받을 권리가 있다. 살레시안은 중·고등 학령기의 청소년만을 고집하거나 청소년도 아니고 청년도 아닌 ‘젊은이’라는 표현으로 두리뭉실 넘어가려는 사목적 동반 영역을 아주 어린 청소년 초기의 10세 어린이로부터 초기 어른인 30세까지로 재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폭넓은 나이 범주로 살레시오회의 청소년 개념을 확장하면, 교육 현장은 프로그램이 다양해져야 함을 알게 되고, 이는 교육자들이나 살레시오 회원들의 양성 분야에서 통합적인 재고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살레시오회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어정쩡하게 성인도 아닌, 그러나 성인의 영역을 살 수밖에 없는 ‘청년’을 부담스러워한다. 살레시오회마저도 이들이 청소년이 아니므로 우리의 직접적인 고유 사목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살레시오회가 이들과의 만남을 사목 영역이 아닌 성소의 영역일 뿐이라고 여기는 강박은 없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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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hnLab, Security Letter, No. 809 * ‘페이커’는 대한민국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게이머 이상혁의 게임 닉네임이다.

 

2) 테레시오 보스코, 「돈 보스코」, 418쪽(돈보스코미디어 간).

 

3) Louis Grech, Accompanying Youth in a Quest for Meaning, Don Bosco Publications, UK, 2019, 135쪽.

 

4)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 총회 예비 문서, 2017.1.13.,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6호(2017), 233면 참조.

 

5) 이 말은 아마도 2000년 Ad Age라는 잡지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6) 이 말은 마크 프랜스키(Marc Prensky)가 2001년에 쓴 Digital Natives, Digital Immigrants라는 글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7) 참조. 통계청, 대한민국 세대 구분 및 「한겨레」, 김미향 기자, 2019.5.4., 자료: 「주간경향」, 김태훈 기자, 2019.2.11., 131호.

 

8) 이 말은 돈 탭스콧(Don Tapscott)이 1999년에 쓴 Growing Up Digital: The Rise of the Net Generation(우리말 번역: 「N세대의 무서운 아이들」)에서 처음 사용된 말로 알려진다.

 

[살레시오 가족, 2020년 9월호(164호), 김건중 신부(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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