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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강론자료

2020-12-06.....대림 제2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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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0-12-06 ㅣ No.2368

                                                 대림 제2주일(나해)

이사야 40,1-5.9-11        2베드로 3,8-14              마르코 1,1-8

2020. 12. 6.

주제 : 하느님에 관한 선언

현실에서 하느님에 관한 표현과 하느님께서 세상에 하셨다는 일에 관한 내용을 들으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이겠습니까? 늘 그렇듯이 우리가 듣는 질문에 관한 대답은 두 가지의 표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말하는 내용이나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들을 때 그 말을 반기거나 진지하게 듣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반대로 세상에서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었다거나 그 하느님은 나의 삶에 불편한 대상이라는 삶의 자세를 드러내고 그 소리에서 몸을 숨기고 귀를 막는 사람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제가 두 가지로 구별했습니다만, 하느님에 관하여 행동하는 어느 한쪽도 다른 쪽의 상황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기본적인 사실입니다. 한쪽 편의 모습을 특별히 중요하게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쪽을 무시했다가는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쪽만 고집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에 관한 말씀을 들을 때, 나는 그 내용을 반기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 말을 듣는 일에서 몸을 낮추고 숨는 사람이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말하는 질문의 내용이 개인의 행동에 관해 묻는 일이 아니라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는 행동이 나의 삶에 영향을 주고 미래의 삶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우리는 한 가지를 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복음의 시작입니다. 그 내용은 세례자요한의 등장과 그가 하는 첫째 선언입니다. 우리가 대림절을 시작하고 예수님의 강생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세례자 요한이 말한 준비하는 자세를 올바르게 돌아봐야 합니다. 세례자요한은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 데도, 예수님을 가리켜 자기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닌 분이며 자기는 몸을 굽혀서 그분의 신발의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의 뒤에 올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사람이기에 그렇게 표현했겠습니까?

 

세상에 놀라운 일을 하실 구세주를 맞이하는 올바른 자세는 세례자 요한이 말한 것과 다름이 없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 구세주를 파견하신 일의 의미는 우리가 이사야예언서의 말씀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을 상대로 이사야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찾아오신다면 그 시간은 노예 생활이 끝난 때이고 그 노예생활을 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이 범한 죄는 모두 용서된 순간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만, 자존심을 드러내려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하느님께서 오신다고 하는 이사야 예언자의 선포는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구세주로 오신 일에 관해서 우리는 그분께서 오신 일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신 분이라는 신앙의 자세로 해석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셨을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가 정치적인 독립을 목표로 하는 대상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정치의 일을 할 인물로 대할 것이냐, 신앙의 일을 하실 분으로 대할 것이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같은 세상에서 똑같은 신앙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도, 정치를 신앙보다 앞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과, 우리의 삶에 세상의 조건들이 영향을 주기는 해도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신앙의 정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제 말을 듣는 여러분은 어떤 것을 자기의 삶으로 드러내는 분이십니까?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과 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다는 베드로사도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세상에서 오래 살 것을 생각하는 사람일까요? 그렇게 삶의 길이를 말하는 일보다는 현실에서 끝이 있는 기간에서 우리가 충실한 삶을 드러내어서 하느님의 뜻을 잘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알면 좋겠습니다.

 

대림시기 둘째주일의 시작에 구세주를 받아들일 올바른 자세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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