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회 탐방: 말씀의 빛 – 말씀의 선교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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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2-27 ㅣ No.663

[수도회 탐방] 말씀의 빛 – 말씀의 선교수도회

 

 

“코로나 19가 초래한 고통과 도전 속에서도 교회의 선교 여정은 멈춰서는 안 된다.”

 

고백하자면 지난 10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하신 이 말씀은 제 귀에 닿기도 전에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선교는커녕, 제 신앙마저 갈팡질팡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내 코가 석 자’, 내 신앙이 석 자였습니다. 그러니 코로나 19 이전에도 멀게만 느껴졌던 선교는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서울대교구 사목국 사목기획팀이 지난 7월에 실시한 ‘코로나 19와 신앙생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저와 마찬가지로 많은 평신도가 신앙에 있어 갈증, 두려움,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내 안의 선교.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을 향한 선교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유례 없는 팬데믹 상황에서 점점 지쳐가는 요즈음이지만 사실, 어떤 시대든 힘든 시기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배워 온 힘겨움이든 개인적으로 직접 겪은 힘겨움이든, 또 종류가 어떻든 말입니다. 1870년대 독일이 겪고 있던 힘겨움은 반(反)가톨릭적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과 함께인 이들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기 마련인지, ‘말씀의 선교수도회(神言會: SVD)’는 그 반가톨릭 분위기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1861년에 독일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성 아놀드 얀센(St. Arnold Janssen) 신부는 비스마르크의 문화혁명의 영향으로 독일에서는 선교 신학교 설립을 할 수 없게 되자, 이웃 나라인 네덜란드 슈타일(Steyl)에 선교 신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1875년 9월 8일. 이날이 바로 말씀의 선교수도회 창립기념일입니다. 반가톨릭적 분위기에서 절망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당시를 생각한다면 참으로 무모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많은 이들은 “파괴의 시간에 신학교 건립은 너무 무모한 도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 아놀드 얀센 신부는 만류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무너지는 그 시간이 바로 다시 세워야 하는 시간이며 해외 선교를 준비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이다.”

 

내 안의 신앙도 지키기 어렵다며 징징거리던 제게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준 말이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시간이 어쩌면 제 신앙을 돌아보고 다시 세워야 하는 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례 이후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신앙생활을 계획해 보는 시간, 이 기회에 기둥을 튼튼하게 세워 앞으로는 그 어떤 어려움이 와도 주님 안에서 굳건할 수 있는 신앙을 다지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겼습니다. 성 아놀드 얀센 신부는 그 기둥을 ‘말씀’이라 보았습니다. 세상이 가리고 있어 보이지 않았던 ‘한 처음부터 계셨던 말씀(요한1,1)’을 다시 온 세상에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미사 중에 생각지도 못하게 눈물이 솟구쳐 오를 때가 있습니다. 다양한 경우에 그렇습니다만 그날의 ‘말씀’이 제 마음에 와닿았을 때, 특히 그렇습니다. 미사 때만이 아니라 ‘말씀 사탕’을 뽑았을 때, 무심코 성경을 펼쳤을 때, 방송에서 말씀이 들려 왔을 때처럼 마치 나에게 해 주시는 말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나를 지켜보고 계시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나에게 속삭여 주시는 말씀처럼 마음에 위로가 되기도 하고, 복잡했던 마음에 실마리가 보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의 힘’일 것입니다. ‘말씀의 힘’은 ‘말씀의 선교수도회’가 설립된 지 10여 년 만인 1889년 12월 8일에 ‘성령선교 수녀회(SSpS)’를, 1896년 12월 8일에는 관상 수녀회인 ‘성체조배의 성령선교 수녀회’를 창설하여 ‘아놀드 얀센의 선교 가족 수도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성 아놀드 얀센 신부는 1909년 돌아가시기 전까지 5개의 선교 신학교를 설립하였고, 이후에도 후손들이 그뜻을 이어받아 14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 100여 개 양성의 집에서 선교사를 양성하고 있고, 2020년 현재는 세계 72개국에서 6,000여 명의 선교사와 3,500여 명의 성령선교 수녀, 400여 명의 성체조배의 성령선교 수녀를 탄생시켰습니다. 그야말로 ‘한 처음에 계셨던 말씀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요한 1,14)’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놀라운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수도회가 설립됐을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결과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농부가 뿌린 씨를 자라게 하는 건 하느님이시듯, 어둠을 탓하지 말고 나부터가 ‘말씀’을 전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농담처럼 전 세계가 이번 2020년은 없던 해로 하고 다시 한번 2020년을 살자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2020년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어김없이 겨울이 왔고 대림이 왔고 곧 성탄이 다가옵니다. 그러고 보면 작년에도 ‘말씀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말씀’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만나지 않고 느끼지 못했는가 스스로 묻습니다. 마치 작년에만 오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끔 ‘내가 하느님을 몰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고는 합니다. 양심 따위 못 느끼며 편하게 살았을 거란 생각이 잠깐 스치기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참 불쌍하고 의미 없는 삶을 살았을 거란 겁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폭풍이라도 만나면 금방 가라앉고 마는 가여운 존재로 말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하느님을 알게 해 준 어머니가 한없이 고마울 뿐입니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성 아놀드 얀센 신부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선포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자 했고 그중에서도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집중했습니다. 그리하여 수도회가 창설된 지 4년만인 1879년에 첫 선교사인 요한 밥티스트 신부와 요셉 프라이나데메츠 신부가 중국에 파견되었고 그 결과, 최근에 선교가 시작된 태국과 미얀마를 포함하여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타이완, 필리핀, 한국, 홍콩 등 아시아 국가의 선교사 수가 전체 ‘말씀의 선교수도회’의 53%일 정도로 활발한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시아뿐 아니라 1892년에 토고를 시작으로 한 아프리카 선교도 가나, 보츠와나, 앙골라, 자이레, 케냐 등으로 이어져 그리스도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수도회의 사명이 충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말씀의 선포를 위해 세계 어느 나라, 어느 곳에라도 갈 수 있는 열린 선교 소명을 갖는 것이 수도회 입회에 필수 조건입니다.

 

받아들이는 이들을 향한 배려도 없이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선교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의 선교수도회’는 선교를 외부의 것을 주입하는 것이 아닌 그들 삶 안에 이미 현존하시는 주님을 찾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합니다. 그래서 양성 기간에는 Regency(선교 현장 실습 기간) 및 O.T.P.(해외 훈련 프로그램) 프로그램을 통해 자국 및 타국의 언어, 문화, 풍습 등을 체험하며 미래 선교사의 자질을 준비시킵니다. 더불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감’으로서 주님을 증명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면 주님이 그들 삶 속에서 드러나고 그런 주님을 보고 그들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돕는 것이 바로 선교사의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말씀의 선교수도회’의 선교 방법을 배우고 느끼면서 나는 과연 주님을 알고 있는지, 주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나는 과연 주님을 알리고 드러내는 삶을 살고 있는지 물어봅니다.

 

 

선교는 보편 교회의 임무

 

‘말씀의 선교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84년 8월 24일입니다. 당시 수원교구 교구장이셨던 김남수 안젤로 주교님의 초청 덕분이었습니다. 그 이후, 현재 한국에는 6개국(마다가스카,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콩고, 필리핀)에서 17명의 외국인 회원과 6명의 한국인 회원이 매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본당 사목부터 학교, 교육, 병원, 출판 인쇄, 피정 지도, 매스컴(TV, 라디오 방송), 농어민, 소수 부족, 특수 사목, 가난한 이들의 생활 개선, 사회 정의와 평화 운동 등 셀 수 없이 다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 활동은 그저 도구일 뿐, 그 목적은 그리스도를 전혀 모르는 사람과 그분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선교 수도회’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와 친교를 원하시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 그분의 자녀로 살며 그분의 사랑을 전하는 선교는 보편 교회의 임무이다. 때문에 우리는 선교가 우리만의 고유한 소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선교 활동은 그 교회의 선교 임무에 참여하며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선교 활동의 궁극적 목표는 친교를 위해 사람이 되시어 인간으로 생활하신 말씀(Divine Word)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과 모든 사람이 이루는 친교의 성실한 일꾼이 되는 것이다.’ 선교가 고유한 소명이라 생각하지 않는 수도회와는 달리 정작 나는 수도회나 특별한 이들이 하는 특별한 활동이라 여기며 살고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한 해를 시작하면서 깊은 곳에 말씀을 간직하고 말씀을 증거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해 봅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선교의 열매는 주님께서 맺어주실 거라는 믿음을 갖고 말입니다.

 

[평신도, 2020년 겨울(계간 70호), 글 서희정 마리아, 사진 말씀의 선교수도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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