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새로운 교회 공동체는 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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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7-02 ㅣ No.755

[레지오 영성] 새로운 교회 공동체는 ‘나’로부터

 

 

금방 끝날 것 같던 코로나 감염병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산발적인 집단감염으로 미사가 중단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레지오 주회를 비롯해 많은 소모임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본당 공동체가 여러 가지 노력을 하지만 코로나로 위축된 신앙생활은 쉽사리 회복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실 지금 교회가 처한 위기상황은 감염병 때문만은 아닙니다. 감염병 대유행으로 다만 그 시기가 앞당겨진 것뿐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변하는데도, 우리 교회는 현실에 안주한 나머지 다양한 시대적 요청에 안이한 태도와 느긋한 자세로만 일관해 온 탓은 아닌지 성찰해 보게 됩니다.

 

“Ecclesia semper reformanda”, 즉 교회는 언제나 쇄신되어야 한다는 유명한 라틴어 격언처럼, 교회는 언제나 새롭게 변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이미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통해 교회의 쇄신을 강조하셨듯이, 현실에 만족한 채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복음의 기쁨, 49항)가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언제나 열려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먼저 달려가야 합니다. 비록 그곳이 상처를 남기고 더럽혀지는 길거리라 할지라도 교회는 그곳을 향해 출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요새가 아니라 터를 넓혀갈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천막”이고, “교회는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고, 언제나 움직이며 모든 사람이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자신의 공간을 넓혀가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2019년 10월 23일, 베드로 대광장 교리문답시간).

 

이를 위해서 먼저 교회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아버지의 집”(복음의 기쁨, 46~47항 참고)이 되어야 합니다. 루카 복음 15장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자비로운 아버지처럼, 교회는 방탕한 아들이 돌아와 선 듯 집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언제나 그 문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통해 교회를 바라보고, ‘나’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나’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따라서 우리 하나하나가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이고, 하느님의 얼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허물없이, 차별 없이 열린 마음으로 맞아들일 때, 그들은 문을 활짝 열어놓은 교회 공동체를 만나고, 그 안에서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교우의 이야기입니다. 집안일로 타 본당 주일미사에 참례하게 되었는데 성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 본당 신자가 아니면 미사에 참례할 수 없다고 했답니다. 사정을 말하며 부탁을 했는데도, 끝끝내 주일미사 참례를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감염병 대유행으로 이해될 법도 하지만 씻지 못할 큰 상처를 받았다는 그분의 말씀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몇몇 본당 안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모습이이지만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해 여전히 우리 교회 공동체 한쪽에서는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아버지의 집이 아닌, 경계가 더 삼엄한 요새 같아 속상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경계와 따가운 눈초리로 맞이하는 공동체가 아닌 누가 오더라도 환영받는 교회 공동체, 낯선 사람이기에 더 배려하고 더 관심을 두고 더 환대하는 교회 공동체가 우리 모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각자의 공동체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교회이고, 교회의 얼굴임을 잊지 않기를

 

또한 교회는 먼저 찾아 나서는 성모님의 마음을 닮은 어머니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먼저 찾아 나서셨습니다. 노산(老産) 중인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도(루카 1,36.39 참고), 아들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어버렸을 때도(루카 1,43~51 참고), 아들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마르 3,21.31 참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에도(요한 19,25 참고), 성모님은 언제나 먼저 찾아 나서셨습니다. 이처럼 성모님의 시선은 언제나 타인을 향해 머물러 있었고, 성모님의 마음은 언제나 모성애적 사랑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이러한 성모님의 시선과 마음을 본받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아닌 그중 단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위한 작은 성모님이 되어주면 어떨까요? 그가 감염병으로 힘겨운 점은 없는지, 식사는 잘하는지, 신앙적으로 어려운 점은 없는지 등 직접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전화통화나 문자를 통해 먼저 다가서고 관심을 기울이는 작은 성모님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 한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또 그 한 사람을 위해 진심 어린 기도를 하느님께 바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의 마음을 닮아 살아가는 우리의 길입니다.

 

감염병으로 시작된 새로운 일상 속에서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첫걸음은 바로 우리 자신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마음으로 모든 이들에게 열린 마음을 갖고, 성모님이 지니셨던 어머니다운 사랑의 마음으로 내 주위의 한 사람에게 작은 관심과 할 수 있는 정성을 기울 때, 우리를 통해 우리 교회는 하느님 보시기에 더 좋은, 시대적 요청에 부합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새로운 교회이고, 교회의 얼굴임을 잊지 않기를 희망해 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7월호, 최문석 안드레아 신부(청주교구 선교사목국장, 청주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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