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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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쁨 해설42: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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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0-25 ㅣ No.719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42)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불의한 분배로 꺼져가는 생명들



교황은 4장에서 사회 참여의 당위성을 설명한 뒤,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두 가지 문제에 집중한다. 첫째는 ‘가난한 이들의 사회 통합 문제’이고, 둘째는 ‘평화와 사회적 대화의 문제’이다.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고통받는 이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의 사회 통합 문제를 다루면서, 사회 구조적인 모순과 절대적인 자유시장경제의 해악을 지적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우리의 죄를 씻는 방법이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임을 분명히 한다. 다음과 같은 주제로 이 모든 문제를 다뤘다. ‘하느님과 함께 우리가 듣는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허사가 되지 않도록 복음에 충실하십시오’, ‘하느님 백성 안에서 가난한 이들의 특별한 자리’, ‘경제와 소득 분배’, ‘상처받기 쉬운 이들에 대한 관심’.

교황은 하느님께서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언제나 귀 기울이신다고 역설하면서, 그들이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도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 안에서 그들이 존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작금의 구조는 그들이 도저히 회생할 수 없는 악순환의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울부짖음이 하늘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말씀이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없애고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발전을 촉진하도록 일하라는 의미이다(188항). 교황은 이런 사실을 주지시키면서 ‘연대성’의 의미를 환기시키는데, 이는 어쩌다가 베푸는 자선 행위 이상의 의미로서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연대는 재산의 사회적 기능과 재화의 보편적 목적이 사유재산에 앞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이들의 자발적인 행동입니다. 재화의 사적 소유는 그 재화를 보호하고 증진하여 공동선에 더 잘 이바지할 수 있을 때에 정당화됩니다”(189항).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해서는 안 돼

교황은 계속해서 가난한 이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며, 오늘날 안타깝게도 인권마저도 개인의 권리나 부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에 이용되고 있음도 지적한다(190항). “모든 국가의 자율과 문화를 온전히 존중하지만, 우리는 지구가 온 인류의 것이고 온 인류를 위한 것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자원이 부족하고 발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그들이 인간답지 못하게 살아가는 사실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남보다 잘사는 사람들은 자기 재산을 남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너그러이 일정한 자기 권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려면, 우리의 시야를 넓혀서 자국민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연대성을 증진해야 합니다”(190항). 그리고 다음과 같은 브라질 주교회의 발표문을 인용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먹을 만큼 충분한 양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굶주림은 재화와 소득의 불의한 분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분노합니다. 이 문제는 낭비의 만연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191항).

교황은 마지막에 당신이 하고 싶은 말로 다음과 같이 결론 맺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더한 것도 바랍니다. 우리의 꿈은 드높이 날아오릅니다. 우리는 단순히 모든 사람을 위한 양식이나 ‘품위 있는 생계’의 보장만이 아니라, 그들의 ‘모든 복지와 번영’도 바랍니다. 이는 교육, 의료혜택, 무엇보다도 고용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바로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참여적이고 연대적인 노동을 통하여 삶의 품위를 드러내고 드높이기 때문입니다”(192항). 오늘도 이렇게 질문을 만들어 보았다.

Q> 가난한 이들과 산업 현장에서의 고용 문제는 우리 사회에도 첨예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쌍용자동차 정리 해고 문제, 비정규 노동자 문제, 대기업의 대형마트와 영세상인 문제, 실업자 문제, 노사 간의 갈등 문제, 노인 복지 문제 등이 사회 전반에 걸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대화와 타협 및 양보로 협상의 합의점을 도출하기보다는, 갈등과 투쟁, 억압과 폭력으로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이와 같은 때에 교회의 역할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 뱀처럼 슬기롭게, 비둘기처럼 양순하게 복음적 가르침을 분쟁의 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그 소임을 어떻게 실행하고 있는지 성찰해보자.

[평화신문, 2015년 10월 25일,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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