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 영성: 엄률 시토회(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여자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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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5 ㅣ No.150

[수도 영성] 엄률 시토회(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여자 수도원)


사막의 고독과 공동체 생활 사이의 균형과 조화

 

 

원천으로 돌아가다!

 

시토 수도원에 대한 바깥사람들의 이미지는 엄격함, 침묵, 노동, 기도, 봉쇄일 것이다. 그런데 시토회 수도자 자신들에게 물어본다면 아마도 개혁수도원, 원천으로 돌아감, 복음적 철저함이란 말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말보다는 원천으로 돌아감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사실 시토 수도원의 생활은 사막에서 처음 수도생활이 시작되고 공동생활이 생겨났을 당시의 수도자들의 모습과 2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수도자들을 수도원으로 부르는 유일한 것은, 오직 하느님만을 찾고자 하는 갈망 하나뿐으로, 수도원은 이 갈망이 실현되도록 그들에게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고, 올바른 길과 방법을 제시해 준다.

 

수도생활이 처음 생겨났던 사막에서 초기에는 은수생활이 발달하였다. 침묵, 절제, 단식, 철야, 기도 등 수도생활에서 자기 훈련의 수단이 적극적으로 발달하던 시기였다. 이후 공동생활이 생겨났으며 이웃사랑, 공동체의 가치, 자기포기, 교회의 가치 등 복음을 살아감에 다른 면이 강조되었다. 이후 수도생활에 분명히 차이가 나던 이 두 흐름은 6세기 베네딕토 성인에 이르러 합류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공동생활과 사막의 요소가 적절하게 조화되어 인간이 하느님을 찾기에 합당한 생활양식을 갖춘 수도생활이 점차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사막으로 들어간 초기 수도승들이나 공동생활을 처음 창시한 분들, 또는 현대에 수도원에 입회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공통점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르겠다는 유일한 갈망”일 것이다. 수도생활은 거의 2천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도 이 근본은 변하지 않았고 특히 시토회 트라피스트 수도생활은 이러한 초기 수도승들의 갈망을 그대로 이어 받았으며, 2천년 수도생활의 역사를 통해 쌓여온 지혜는 수도생활 양식과 관습, 기도, 거룩한 독서, 노동 안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작성된 시토회 회헌은 이 정신을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하느님을 찾기에 적합한 생활양식

 

1. 공동생활 : 시토회의 생활방식은 공동생활이다. 시토 수도회의 수도자들은 형제애의 학교인 영속적인 공동체 안에서 규율과 원장의 지도 아래 하느님을 찾고 그리스도를 따른다. 모든 자매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있음으로 모든 것을 공유한다. 서로 남의 짐을 져줌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채우고, 그의 수난에 참여함으로써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을 희망한다.

 

2. 관상생활 : 수도원은 주님을 섬기는 학교로, 그 안에서 전례, 원장의 교훈, 형제적 친교를 통해 자매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새겨진다. 그로써 수도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음과 행동의 규율을 배우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마음의 순결과 끊임없는 하느님의 현존의식에 도달한다.

 

3. 사막생활 : 수도자들은 과거 사막에서 영적 싸움을 하도록 하느님께 부름을 받은 이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곧 자신들의 거처가 하늘에 있음을 알고 세속적 행위를 멀리한다. 고독과 침묵 안에 살면서 지혜를 낳게 하는 내적 고요를 갈망한다.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자기 자신을 끊어버린다. 교만과 죄의 모반을 거슬러 겸손과 순종으로 싸운다. 단순함과 노동 안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약속된 저 행복을 추구한다. 즐거운 손님맞이로 그리스도가 후히 베풀어주는 평화와 희망을 순례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가진다.

 

4. 수도원은 교회 신비의 표상 : 수도원은 교회의 신비의 표상이다. 따라서 수도공동체는 아버지의 영광의 찬미에 그 어떤 것도 우선시키지 않고, 공동생활 전체 최고의 법인 복음에 순응하여 어떤 영적 선물에도 부족함이 없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수도자들은 하느님의 백성 전체와 뜻을 같이하고 전 그리스도 신자들의 일치에 대한 적극적인 소망에 참여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자신들의 수도원 생활을 충실히 보존하고, 고유한 숨은 사도직의 열매로 하느님의 백성과 전 인류에 봉사한다. 본수도회의 각 성당과 수도자 각자는 믿음과 사랑과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로 인해 교회의 어머니가 되시는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에게 봉헌되어 있다.

 

5. 그리스도 중심 : 수도원의 일체의 통치는 수도자들이 그리스도와 긴밀히 일치함을 목표로 한다. 왜냐하면 시토회적 소명의 특수한 선물들은 오직 각자의 주 예수에 대한 사랑 안에서 꽃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매들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는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우선시키지 않고, 오직 단순하고 숨겨지고 노고에 찬 생활 안에 항구할 때만 행복할 것이다.

 

이렇게 사막의 고독과 공동체의 형제생활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가치를 함께 조화시키고자 하는 시토 수도자들의 추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며, 복음적 가치를 철두철미하게 찾고자 하던 초기 수도자들로부터 이어져 오는 흐름 속에 있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수도생활이든 어떤 방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복음적 가치를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이 고독과 형제생활이라는 역설은 반드시 조화를 이루어내어야 할 필수 요소이다.

 

 

지극히 단순한

 

2천년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수많은 형태의 수도생활들이 생겨나고, 교회와 인류에 봉사하고, 사라져 가거나 다시 생겨나고 또 현재까지 남아있는 수도원들이 있지만 이른바 관상수도회, 봉쇄수도회라 불리는 수도원들은 생겨난 이래 쉽게 그 형태가 변하거나 역사의 흐름에 휘말려 사라지거나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봉쇄수도자들이 특별히 잘 살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봉쇄수도원 자체의 존재 이유가 바로 가장 근본적인 목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만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래서 각 지체들의 역할과 위치는 다양하다. 그 가운데 봉쇄수도자들은 교회에 직접 봉사를 하거나 당대 사회의 요긴한 필요에 부응함으로써 봉사하는 일은 없지만 숨겨진 노고에 찬 삶 안에서 고독과 형제애를 실천하며 참으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모해 갈 때 수도공동체는 진정한 의미에서 작은 교회로 살아갈 수 있음은 오늘날에도 진실된 것이다.

 

봉쇄수도회의 삶은 남에게 보여서는 안될 베일에 싸인 비밀의 삶이 아니라, 기도, 노동, 거룩한 독서로 이루어진 지극히 단순한 삶이다. 하느님을 찾는 것으로만 방향 지우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로만 이루어져 하느님의 말씀이 쉽게 마음에 침투하고, 단순함 안에서 분열되고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십자가를 체험함으로써 이미 이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와 부활을 맛보고자 하는 삶이다.

 

[경향잡지, 2009년 3월호, 글 · 사진 엄률 시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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