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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도자,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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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2-08 ㅣ No.115

[커버스토리] 수도자, 그들은 누구인가


수도회 3苦 시대

 

 

“수도자는 본당이나 사회복지 단체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수도회 숫자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별 차이도 없는데 통합하면 되지 않을까?”

 

“수도자들은 남의 사목활동에 참견하지 말고, 그냥 기도하고 너그러운 어머니처럼 뒤에서 도움이나 주면 좋겠다.”

 

수도자의 정체성이, 수도생활이 크게 곡해되고 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수도자는 여전히 일하는 ‘기능인’으로 인식된다. 수도자의 삶을 의료인이나 법조인, 예술인처럼 어떤 전문 분야로 이해하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비단 사제와 신자들만의 오해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수도자 스스로도 정체성의 혼란과 영성의 빈곤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신자는 물론 비신자들도 영적 갈증을 느끼지만, 수도자들로부터 충분한 도움을 받기 어렵다.

 

사도직 환경도 급변했다. 전문화·다원화된 사회 흐름과 함께 교구 사제의 증가, 평신도의 역량 강화 등은 수도자들이 설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기존에 진출한 사도직을 없애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계속 유지하기도 어려워 어느 순간부터 수도자들의 사도직은 ‘계륵’이 됐다. 이미 유럽과 미국 교회 등이 겪은 대로 성소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수도회의 쇠퇴와 몰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 한국 수도자들은 영성의 약화, 사도직 환경의 변화, 성소자 감소라는 ‘3고(苦)’를 겪고 있다.

 

이 땅에 수도회가 발을 내디딘 지도 벌써 120년을 넘어섰다. 초기 한국 교회가 뿌리 내리고 성장해온 원동력의 중심에는 수도자들의 투철한 헌신이 있었다. 이후에도 수도회는 한국 교회 성장에 꾸준히 기여하며 2007년 현재 153개 수도회, 1만1400여 명의 수도자가 활동하는 규모로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 안에서 어느 위치에 서야 하는 지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수도회가 늘고 있다. 수도회가 직면한 3고는 이 시대 수도회들이 피해갈 수 없는 장애물이 됐다. 올바른 쇄신 노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수도회 존립 자체를 보장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이형우 아빠스는 올해 봉헌생활의 날 담화를 통해 “날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 교회 안에서 오늘날 수도회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보다 외적인 성장과 조화를 이루는 내적 성장을 위해 현대인들의 ‘영적 쉼터’가 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각 수도회 장상들도 “지금은 무엇보다 수도자들의 회개가 필요한 때”라며 “수도자들이 그동안의 안이함과 편안함을 벗어버리고 빈 몸으로 복음정신을 올바로 살아가는 본연의 모습을 지킬 때 한국 교회 미래와 복음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도생활의 가치와 방식들은 현대사회 안에서 실효성을 잃은 것이 아니다. 이 시대는 더욱 더 철저하게 복음정신을 살아가는 모범과 영적 동반자를 필요로 한다. 우려되는 것은 ‘수도자의 존재적 역할’에 대한 이해부족과 내적 쇄신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지적이다. [가톨릭신문, 2009년 2월 8일, 주정아 기자]

 

 

수도자, '존재' 만으로 충분한가


“전문·다원화 된 현대 사회에 수도자로 존재해야”

 

 

- 한국 교회의 발전 과정 안에서 수도자들은 외적 활동에 치우쳐 영적 역할에 소홀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수도회 안팎으로 수도생활의 본질을 찾자는 목소리가 높다. 수도회별로 성찰과 쇄신의 노력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수도생활에 대한 위기의식은 수도자 스스로가 가장 크게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자들을 온실 안에서 자라는 화초처럼 여기는 시선들도 적지 않다.

 

기본적으로 수도자의 정체성에 대해, 수도생활 대해 올바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사제나 평신도 뿐 아니라 수도자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성장과 발전, 변화를 멈추지 않는 현대사회 안에서 사도직 환경 또한 급변하고 있다.

 

수도자는 자신의 복음적 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존재와 그분의 사랑을 세상에 선포하고 증거하는 사람들이다.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본당 사목회장 2년차 김경민씨가 바라본 수도자

 

우선 외적인 면에서는 교회 내 자원봉사자나 단체 직원들의 활동과 큰 차이를 못 느낀다. 더구나 각 기관단체에서는 경력이나 학력과 관계없이 운영자 등으로 나서고 있어 신자들과 일반인들의 불만을 낳고 있다. 수도자들도 무한 경쟁의 사회생활 안에서 또 한사람의 경쟁자로 인식될 정도다.

 

특히 여자 수도자들의 경우 각 본당에서 소위 제2인자처럼 행동하고 권한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갈등을 야기한다. 신자들의 신앙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기 보다는 본당 운영에 간섭할 생각만 하고 있는 모습, 또 본당 사제와 대립하는 모습이 마땅찮게 다가온다. 그러한 모습들에서 빚어지는 갈등이 신자들을 냉담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수도자로 파견됐으면서도 소위 존경을 받겠다는 자세도 도드라진다. 교회의 ‘권위’에 가장 쉽게 도달하는 방법 중 하나가 수도자가 되는 것처럼 비쳐질 때가 있다.

 

남자 수도자들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 지조차 잘 모르겠다. 숫자가 적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수도회에 입회하면 다 사제가 되는 것이 아닌가. 직장을 잡지 못하거나 신학교에 떨어지면 수도회 입회를 고려하는 이들도 주변에 적잖다.

 

세속화 문제는 수도자들 사이에서도 심각한 듯 보인다. 요즘의 수도자들의 모습에서 ‘청빈’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수도회는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실제 각 수도회가 소유한 건물의 규모도 크고, 수도자 개개인도 대체로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넓은 수녀원과 풍족한 살림살이를 이용한다.

 

 

본당 사도직 7년차 현마리아 수녀의 수도생활 돌아보기

 

우리 자신들부터 성찰과 회개를 이어오고 있다. 그렇지만 생활 속에서 체득, 세상 속에서 수도자로서 올바른 정체성을 실현하기 위해선 꾸준한 노력이 절실하다.

 

수도자들 또한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한다. 오랜 시간 양성을 담당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야할 지를 몰라 헤매기도 했다.

 

특히 수도자의 정체성 위기와 신원의식의 부재 현상을 가장 많이 보여주는 곳이 본당이었다. 그동안 본당에서 수도자들의 역할은 사제의 보조자 수준에 머물렀고 우리들부터 사제들과 영적 도움을 주고받기 보다는 수직적 상하 관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사제의 증가와 평신도의 역량 강화로 기존 소임들이 크게 줄어들면서, 본당 사제와 신자 사이에서 소외감과 상실감마저 크게 느낀다. 간혹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사제들과 대립하는 젊은 수녀들의 모습은 우리들도 당황할 정도다. 수도자들 사이에서도 경쟁심과 세속적인 출세욕을 드러내는 모습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교구 사제들의 편협함과 부족한 파트너십, 가부장적인 사고 등도 문제점 중 하나다. 신자들도 본당에서 어떤 직책으로 봉사하는 것을 무슨 감투마냥 생각하고,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모습을 종종 본다. 수도자들을 바라볼 때도 사회에서의 잣대를 들이대며 순수한 동기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남자 수도자들의 경우 본당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크게 줄어 수도성소를 알리는 것 자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도자 스스로도 완벽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있기도 했다. 세련된 지성을 갖추지 않았다고 무시하는 신자들 사이에서, 이제는 필요없는 존재라는 말에서, 수도자에 대해 관심도 없는 듯한 태도에서 막막함을 느끼고 상처를 받는다. 

 

최근에는 우리들의 생활수준이 과거의 ‘청빈’과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와 소비주의 등은 복음적 청빈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우리만 결심하고 바라는 것만으로는 청빈의 삶을 살아가는데 힘든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생활과 활동에 당연하고도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첨단 기기들을 얼마만큼 소유하고 써야할 지, 단순히 갖지 않는 것만이 방법인지 매순간 갈등에 빠진다. 수도자들이 행하는 각종 전례와 교육, 피정 등을 고려하다 보면 성당과 수련원, 피정시설 등도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지기 마련일 것이라고 수용하게 된다. 또 수도회 활동 영역의 확장과 각 교구와의 관계 구축, 일종의 체면 등이 앞서 내적인 면을 간과한 부분도 있다. 

 

그동안 수도생활에 대해 너무 많이, 너무 길게, 너무 아름답게 말해온 것은 아닌가 반문해본다.

 

 

수도자는 존재 자체로 충분한가?

 

초대 박해시기 교회에서는 수도생활이라는 카리스마가 필요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입교 순간부터 수덕생활을 했고, 완덕의 정상인 순교를 준비하고 또 갈망하며 살았다. 이후에야 수도생활은 순교를 대신하는 하나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2007년 주교회의 교세통계에 따르면 한국 수도자는 총 153개(여자 107개, 남자 46개) 수도회 1만1400명이다. 특히 여자 수도자의 경우 9861명 중 2224명이 현재 본당 전교수녀로 파견, 활동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도회의 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수도생활의 의미와 중요성이 무엇인지, 수도자가 누구인지 올바로 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수도자가 겪는 어려움은 수도생활에 대한 그릇된 이해로 꼽힌다. 

 

수도자들의 삶은 단순히 ‘헌신성’으로 사도직을 실천하는 모습만으로 드러나선 안된다. 전문화, 세분화, 다원화된 현대사회 구조 안에서 수도자들이 사회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큰 모순이다. 사도적 활동은 수도생활의 여러 영역 가운데 하나, 여러 표현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전임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원장 이덕근 아빠스는 “오늘날의 수도생활은 지나치게 성직화됐고, 수도자들은 사도적 활동의 인간적 성취감과 사회적 대우를 즐기는데 익숙해져 수도자의 정체성 회복과 예언자적 직분 수행에 소홀한 면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 교회의 발전 과정 안에서 수도자들은 외적 활동에 치우쳐 영적 역할에 소홀했다. 수도자들 스스로에게서 먼저 나온 반성의 목소리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수도회 자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미처 토착화되지 못한 문화 속에서 자라난 성소자들은 수도자로서 거듭날 수 있는 여건을 적절히 제공받지 못했고, 여자 수도자들의 경우 가부장적인 사회문화 영향으로 ‘전통적인 어머니 역할’을 일방적으로 요구받은 시간이 길었다.

 

교회법에서는 수도생활을 ‘복음적 권고의 공적 선서를 통한 봉헌생활’이라고 정의한다.

 

사목회의 의안에서도 “수도자는 ‘그 존재 자체가 사도적’이며 사도직 활동에 있어서는 겸손한 마음과 섬기는 자세가 가장 먼저 요구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현재 한국의 각 수도회에서는 객관적인 환경 변화에 앞서 수도자 스스로가 먼저 정체성을 찾고 내적 복음화 하는 노력도 점차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수도자란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존재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가?

 

각 수도회 장상들은 “수도자들은 사회인의 생활양식과 기능을 포기하는 수도자 신분의 제한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영적 성장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도자의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며 사제, 신자들과 영적인 동반자, 협력자로 서는데 힘써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장상들은 “사제와 신자들도 더 이상 수도자들을 기능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존재적 역할’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요청한다.

 

수도생활의 정체성은 뭔가를 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에 있다. 수도생활의 사명은 직업적 활동이 아니라 카리스마적 체험을 살고, 그 복음적인 삶으로 하느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수도생활의 최고 회칙은 바로 복음이다. [가톨릭신문, 2009년 2월 8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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