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58: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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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23 ㅣ No.822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58)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⑩


세상 둥지 걷어가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다

 

 

- 소화 데레사는 아버지의 고통을 통해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드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병고로 인한 정화

 

지난 호의 마지막에서 소화 데레사가 신뢰와 사랑의 길에서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먼저 자기 비허(卑虛)의 길을 걸어야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그로부터 얼마 후 성녀가 아버지의 병고로 인해 겪게 되는 인간적인 아픔 그리고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며 겪었던 자기 자신과 이 세상으로부터 이탈을 의미합니다. 

 

소화 데레사는 가르멜에 입회한 지 얼마 후부터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했던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많은 사람 앞에서 수치를 당하고 끝내 금치산자(禁治産者) 선고를 받아 사회적인 죽음을 겪는 일련의 사건을 봉쇄 수녀원 안에서 들으며 심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1889년 2월 정신병이 심해지면서 캉에 있는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1892년 5월이 돼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큰 병고를 겪고 마침내 아버지가 다시 리지외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성녀에게 큰 위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해 10월 성녀는 피정을 하는 동안 그간 아버지와 관련해서 있었던 일련의 일들을 묵상하며 깊은 영적인 진리를 깨우치게 됩니다. 이는 성녀가 당시 바로 손위 언니인 셀리나에게 10월 19일자로 보낸 편지에 잘 담겨 있습니다. 거기서 성녀는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인해 캉의 정신병원에서 지냈던 3년간은 가족 모두에게, 특히 자신에게 깊은 절망의 시간이었고 아버지의 시련과 더불어 이제 자신이 마음의 고향으로 여겼던 이 세상의 집은 사라지고 말았다고 고백합니다.

 

성녀는 하느님께서 아버지의 일로 자신을 치셨으며 이 지상에서의 거처를 완전히 없애주심으로써 이 세상 여정 동안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예수님과 같은 처지가 되었음을, 그래서 이제 천상을 향해 날아갈 영적인 바탕이 자기 내면에서 마련되기 시작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게 하자. 그분은 내 영혼 안에서 어떻게 당신의 일을 완성시킬지 알고 계시니까.”

 

 

주님께 주도권을 내어드림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인 아버지의 일을 겪으며 성녀는 이때부터 자기 삶의 주도권을 예수님께 온전히 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성녀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일을 통해 자신을 정화시키셨음을 보았습니다. 즉, 주님은 그 일을 통해 성녀를 이 세상으로부터 이탈하게 해주었습니다. 그간 성녀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아무것도 아니기를 열망해 왔으나 1892년 피정 동안 이 세상에 기댈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며 비로소 “내려오너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된 것입니다. 

 

당시 성녀는 자신이 예수님의 거처가 되어 그분을 섬겨드리기 위해서는, 세상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내려와야 한다는 것, 즉 완전히 이탈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철저한 가난이자, 예수님 이외에는 기댈 그 누구도 지니지 않는 완전한 내적 가난의 여정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녀는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수치를 당하는 사건을 통해 성면(聖面)의 신비를 깨달았습니다. 성녀는 주님의 성면 안에서 이 내적 가난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비천하게 되신 주님의 얼굴을 보며 자신의 얼굴 역시 가려져 오직 주님만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눈물을 헤아려 주시길 염원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속에 그분이 머리를 기대고 쉬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드리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작음과 무능함에 대한 체험

 

이런 일련의 일들은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소화 데레사에게 모든 위로를 거둬갔습니다. 1893년 7월 6일자 편지를 보면, 성녀는 당시 어두움과 메마름 속을 걸으며 때때로 아무것도 못 느낄 정도로 기도와 덕을 실천하는 데 있어 무기력감을 많이 경험했다고 고백합니다. 성녀는 성성(聖性)을 향한 여정에서 자신의 작음과 무능함을 느끼며 동시에 지적, 영적 가난함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성녀는 이 무능함 속에서 성경과 준주성범의 도움으로 단단하고 영양가 많은 영적 음식을 발견해 갔으며 특히 복음서에서 새로운 빛과 숨겨진 신비로운 뜻을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소화 데레사의 아버지는 1894년 7월 29일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간 아버지를 돌보아 드렸던 셀리나가 그로부터 몇 달 후인 9월 14일 리지외 가르멜에 입회하게 됩니다. 가르멜에 들어올 당시, 셀리나는 작은 성경 선집(選集)을 갖고 들어왔으며 소화 데레사가 읽을 수 있도록 이 선집을 넘겨주었습니다. 이는 그간 아버지의 일로 아파하며 영적인 메마름과 세심증 속에서 자신의 무능함과 가난함을 깊이 체험하던 성녀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영적인 비전을 발견하는 촉매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성녀는 이 선집에서 장차 자신의 영적 어린이의 길을 발견하게 해 줄 두 구절인 ‘누가 작은 자이거든 내게로 오라’(잠언 9,4 참조),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귀여워하는 것같이 나도 너희를 위로하고 너희를 품에 안고 무릎에 올려놓고 흔들어 주겠노라’(이사 66,12-13 참조)라는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평화신문, 2016년 7월 24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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