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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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2-06 ㅣ No.856

[레지오 영성]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무엇보다 성모님을 우리에게 어머니로 주신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요한 16:26-27 참조)

 

우리 천주교인에겐 자애롭고 자상하신 영적인 어머니가 계십니다. “성모님…” 또는 “성모 어머니…”하며 나지막이 불러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어머니이십니다. 육적인 어머니가 있는 이에게나 어머니가 없는 고아에게나, 심지어 어머니와의 힘든 관계 속에서 가슴앓이를 하는 이에게도 성모님은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든든한 어머니로서 항상 옆에 서 계십니다. 그래서 성모송은 천주교인에게 ‘주님의 기도’ 다음으로 사랑받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 성모송에 대하여 한번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묵주의 기도를 처음 배울 때 똑같은 성모송을 열 번이나 계속 암송하는 것이 좀 어색하고 또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초대 교회, 시계가 없던 시절부터 신앙인들의 전통 안에서 서서히 그 모습이 갖추어지고 전해진 이 묵주기도는 이 ‘열 번’이라는 것이 각 신비들의 묵상을 위한 시간의 의미도 있으므로 편안하게 성모송을 열 번 암송하라는 가르침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여전히 같은 기도를 반복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계속 분심과 싸워야 했고, 성의 없이 기계적으로 바쳤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반복하곤 해서 묵주기도 5단을 1시간 안에 끝내기가 어려웠고, 기도 후엔 피로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묵주기도가 편해지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엄마와 어린아이’의 비유를 듣고 난 후부터였습니다. 어린아이가 갖고 싶은 물건을 사달라고 엄마 손을 잡고 “엄마, 엄마…” 하면서 칭얼거리듯이 우리는 묵주기도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성모님의 손을 잡고서 성모송을 되뇐다는 것이지요. 이 ‘엄마와 어린아이’의 비유가 저의 마음에 너무 와닿았고, 이후 저는 별 의미 없이도 편안하게, 가끔 어리광을 피우며 보채듯이 성모송을 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연 인자하신 성모님은 포용력이 깊으신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를 특별히 기억하며 묵주기도 시작할 때 성모송 세 번 바쳐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마리아에게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의 첫 인사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충직한 천사가 계시한 진리의 말씀이었고, 성모님의 일생을 통틀어 규정지은 장엄한 선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송을 무엇보다도 먼저, 지극히 당연하게도, 이 거룩한 천사의 인사말로 시작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이 천사와 마리아의 만남은 신구약을 통합하는 삼위일체의 신비가 처음으로 온전히 계시되는 엄숙한 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루카 1,35) 이 삼위일체의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은총이 가득한 이(하느님의 사랑받는 딸, 성자의 존귀한 어머니, 성령의 선택된 짝)”를 특별히 기억하며 우리는 묵주기도를 시작할 때 성모송을 세 번 바칩니다.

 

천사의 아룀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님께서는 즉시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십니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엘리사벳이 그 늙은 나이에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천사의 알림으로 알게 되어 엘리사벳을 도우러 가시는 것이지요.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엘리사벳이 사는 유다 산악 지방까지는 걸어서 사흘이나 걸린다고 하는데, 어리고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그 먼 길을 다녀온 것을 보면 마리아는 결단력이 있는 강인한 성품과 자신을 희생으로 투신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녔던 듯합니다. 천사와의 대화에서도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역경과 위험을 무릅쓰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한 마리아의 관대하고 적극적인 모습은 과연 그녀의 엘리사벳 방문과 잘 연결이 됩니다.

 

엘리사벳은 그 원했던 아기를 당신 생의 말년에 가지게 되어 더없이 기뻐하면서도 아마도 그 늙은 나이 때문에 부끄러웠던 모양입니다. 다섯 달 동안 숨어지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엘리사벳의 곤란을 알아채신 성모님께서는 서둘러 먼 길을 떠나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석 달가량 함께 지내십니다. 성모님의 이 엘리사벳 방문은 천사의 알림에 대한 어떤 확인이나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늙은 나이에 임신한 한 친척의 그 곤궁에 힘이 되어 주기 위한 것이었음을 성모님을 맞이한 엘리사벳의 외침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치기를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라며 성모님의 믿음을 찬양합니다. 성모님은 천사의 알림을 모두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셨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자신의 삶 속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적극적으로 응답하신 분이었습니다.

 

 

우리 상황을 빨리 알아차리시고 즉시 보살펴주시는 성모님

 

우리는 또한 이 이야기 안에서 우리의 상황과 입장을 빨리 알아차리시고 즉시 보살펴주시는, 생각이 깊고 마음이 따뜻한 어머니 같은 성모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후에 성모님께서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빨리 알아차리시고,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며 난색을 표명하시는 예수님을 지혜로운 믿음의 말씀으로 움직이시어 포도주를 마련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일꾼들에게 하신 이 말씀 속에는 성모님의 신앙과 따뜻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깊은 모성애로 우리를 보살피시고 도우시며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간구하시는 성모님을 향한 깊은 믿음과 신뢰로써 성모송의 후반부를 기도하게 됩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그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였던 한 늙은 여인과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한 젊은 여인의 만남, 운명이 기구한 이 두 여인의 만남은 참 대조적이면서도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일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 여인의 만남과 함께 태중에 있는 두 아기의 만남도 이루어지고 또 서로 간에 어떤 통교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권세 있는 자를 낮추시고 미천한 이를 높이시며, 의기양양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상처 입고 기가 죽은 이들을 어루만져 세워주시는 하느님의 권능과 자비를 찬미하는 ‘마리아의 노래’가 이후에 펼쳐질 당신의 삶을 향하여 또 오로지 하느님께 희망을 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복음의 찬가로 울려 퍼집니다.

 

과연 천사의 말씀대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이 두 여인의 삶과 그 만남 속에서 우리는 확인하게 되며 또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엘리사벳처럼 환희에 찬 마음으로, 기쁜 소식을 전해준 천사와 함께 성모송의 전반부를 기도하게 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그럼, 이제 우리 모두 고요히 마음을 모아 성모송을 한번 성모님께 바쳐 드립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2월호, 안정호 이시도르 신부(이주노동자 지원센터 이웃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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