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015-1108.....연중 제32주일 나해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11-07 ㅣ No.1905

연중 제32주일 (나해)

1열왕기 17,10-16         히브리 9,24-28       마르 12,41-44 (짧게)

2015. 11. 8. (주일) 이태원

주제 : 내가 바치는 예물

사람이 목숨을 유지하는 일에 먹는 일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사실은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아도 아는 일입니다. 이 땅에서 통용되는 말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 표현을 알고 그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목숨을 유지하는 일에 먹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을 시작하면, 다음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먹는 것에 대한 문제만 해결되면 사람에게 생길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일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질문의 배경에 깔린 소리는 당연히 아마도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소리는 아닐 걸(!)’입니다. 그럼 어떤 일을 더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소리를 내가 이 자리에서 듣는다면, 과연 내 생각은 그 얘기에 얼마나 연결되겠습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에는 성경(聖經)이 글로 쓰인 시대나 성경의 기록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대명사인 과부(寡婦)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마르코복음에는 과부이기도 했고 가난하기도 했던 여인이 성전에 헌금을 봉헌하는 얘기가 나왔고, 열왕기상권에는 가뭄과 흉년에 찌든 상황에서 가난한 과부가 땔감을 조금 주워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빵을 만들어 먹고 죽음을 기다릴 상황에 처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세상의 삶은 가난한 사람이 힘든 법입니다. 부자라고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가난한 사람의 삶이 힘겨운 법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는 없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재물이 없는 사람이 하느님과 가까이 일치할 수는 있어도 그 얘기가 반드시 그렇게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가 마지막으로 먹고 삶의 끝을 기다리겠다는 말을 듣고, 엘리야예언자는 과부와 아들보다 예언자인 자신에게 먼저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이 현실을 여러분은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가난했던 과부에게 일어난 훗날의 일까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우리의 판단은 달라지겠지만, 예언자의 말,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삶에 먼저 새겼던 여인에게 일어난 일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이지만,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사람의 삶에서 해석이 달라지면, 그의 삶도 달라집니다. 과거는 이미 이루어진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현실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의 삶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같은 입장에서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는 일을 바라보셨던 모습은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부자들이 와서 과부보다 더 많은 돈을 넣었겠지만, 그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은 예수님은 세상의 셈법을 몰랐던 것일까요? 아니면 기준이 다른데 있었던 것일까요? 희한하게도 렙톤 두 개, 요즘의 우리로 말하면 500원짜리 동전 2개를 넣었을 법한 과부가 가장 많은 돈을 넣었다는 논리를 여러분은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성당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니, 성당에 와서는 돈을 많이 내는 것이 아니야(!)’라든가 성당에 감사헌금이나 특별헌금을 하는 것보다는 우리 단체에 회비를 더 많이 내는 것이 옳은 행동이지(!)’ 하는 주장이 얼마나 옳은 것이겠습니까?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자의 뜻은 많을수록 더 좋다는 뜻이지만, 어떤 것이 많든지 상관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삶에 좋은 결과를 만들 가능성이 있는 것이 많다는 뜻이라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구별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맺을 것이 많다면 그것은 다다익선이 아니라, 많으면 많을수록 공동체에 해롭고 그것이 만들어낼 악이 더 커진다는 소리이니, 그 표현은 해당되지 않을 것입니다.

 

엘리야예언자가 사렙타의 마을에 살던 과부에게, 빵을 먼저 가져오라면서 한 말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말한 일종의 조건이었지만, 그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인, 과부였던 여인에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대사제로서 인류를 위해서 봉헌하신 제사의 좋은 영향을 입는 신앙인들입니다. 물론 그것도 올바른 자세를 갖춘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 모습을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올바른 자세는 잘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선택하는 대로 일이 진행될 확률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내 삶을 통해서 이뤄지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는지 진지하게 기도할 시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과연 어떤 봉헌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1,12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