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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카푸친 작은 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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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28 ㅣ No.81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카푸친 작은 형제회 (상)

 

 

카푸친 작은형제회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과 삶을 보다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개혁정신에서 비롯됐다. 사진은 한국 카푸친 회원들.

 

 

긴 세모꼴 두건 카푸치오(cappuccio)가 달린 갈색 수도복을 입어 「카푸치니」(cappuccini)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로인해 「카푸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카푸친 작은형제회(Ordo Fratrum Minorum Capuccinorum)」는 「작은형제회」 「꼰벤뚜알 성프란치스꼬회」와 함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르는 수도회의 한 갈래다.

 

1528년 관상기도, 고행, 엄격한 가난,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 헌신 등 창설자의 수도 회칙을 문자 그대로 보다 엄격히 지키려는 수도회 내 개혁운동으로 시작된 카푸친 작은형제회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완성시켜 제2의 창설자로 불리는 성보나벤투라, 둔스 스코투스와 같은 훌륭한 신학자를 배출한 수도회로도 유명하다.

 

카푸친회는 새로운 수도회라기 보다 프란치스칸들 내부에서 지속돼온 개혁들중 하나로 볼 수 있다. 1525년초 이탈리아의 바시오의 마태오가 교황 클레멘스 7세로부터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규칙을 모든 면에서 엄격히 준수하겠다는 허락을 얻어냄으로써 시작된 카푸친회의 설립은 규칙 준수파들의 광범위한 호응을 불러 일으켰고 클레멘스 7세 교황의 공식 인준과 함께 1536년 바오로 3세가 정식 인가를 내림으로써 자리를 굳히게 됐다.

 

설립 초기 카푸친 회원들은 고독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프란치스칸 은수자」들로 알려졌으나 기존 프란치스칸들과는 다른 수도복과 외형, 즉 끝이 뾰족한 모자와 턱수염 때문에 카푸치노라는 통칭으로 불리게 됐다.

 

설립 10년만에 12개 관구와 700여명 회원을 가질 만큼 급속한 성장을 보였던 카푸친회는 1538년 총대리로 선출됐던 베르나르디노 오키노가 칼빈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인해 교황청으로부터 모든 카푸친 회원들의 설교 금지, 새로운 공동체 설립 금지 등의 조처를 당했다.

 

이러한 금령은 1587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해제할 때 까지 지속되다가 1619년 교황 바오로 5세의 칙서로 인해 카푸친회는 작은형제회, 꼰벤뚜알 성프란치스꼬회 등과 같은 조건으로 완전한 독립이 허용된 프란치스칸 가족으로 인정됐다.

 

이후 카푸친회는 다양한 민족들 문화에 쉽게 적응하는 특유의 장점으로 전 유럽에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고 그런 면에서 설립 100년이 흐른 뒤에는 1260개 수도원 42개 관구에 1만7000여명 회원을 가진 수도회로 성장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과 삶을 보다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개혁 정신에서 비롯된 만큼 카푸친회의 법적인 구조와 영성은 초기 프란치스칸주의를 충실히 반향하고 있다.

 

은수 생활, 철저한 가난, 하느님을 향한 자녀다운 사랑과 형제들을 향한 모성의 사랑, 특별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조건없는 봉사의 사랑이 이들의 두드러진 면모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프란치스코 성인이 보여주었던 「기도와 은둔」의 생활은 16세기 카푸친 개혁 회원들이 가장 소중히 여긴 가치로 알려진다. 

 

수도회 개념보다 형제회 개념을 중시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뜻 처럼 카푸친 회원들은 「수사」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 작은 형제, 보다 더 작은 형제로 살기를 원하며 형제라 칭하는 이들은 사제품을 받은 경우 더 더욱 「신부」라는 호칭은 사양한다. [가톨릭신문, 2004년 4월 4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카푸친 작은 형제회 (하)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카푸친 회원들은 1만1000여명 정도이며 한국의 경우 1986년 아일랜드 관구에서 4명의 회원들이 파견되면서 지부 활동이 시작됐다.

 

 

『작은 형제들의 회칙과 생활은 순종안에, 소유없이, 정결안에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제2회칙, 1:1 )

 

카푸친 작은 형제회는 천상 성부의 한 아들들로서 형제 생활을 함께 하며, 가난하고 겸손하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가난한 이들에게 가까워 지는 생활을 모토로 한다. 

 

회원들은 또 기도와 관상의 정신을 기르는 노력으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당신 마음에 새기신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항상 복음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기 자신이 기도함으로써 기도의 교사가 되는 것을 배운다』는 1536년 제정된 회헌 문맥 대부분이 아직도 현 회헌에 들어 있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실제 교회 역사안에서 카푸친 회원들이 개인 기도와 관상의 교실에서 배웠던 그러한 교훈들은 말과 모범으로써 설교되고 가르치는 모습으로 구현돼 왔다. 

 

오상의 성인으로 유명한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1887~1968), 「Deo gratias(하느님께 감사) 형제」로 불렸던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1515~1587) 등 카푸친 작은형제회 정신을 드러낸 성인들.

 

21세기를 사는 회원들도 같은 관점에서 현대 세상 안의 프란치스칸 정신을 심는데 주력하자는 입장이다. 1973년에 프랑스 떼제에서 열린 제3차 수도회 전체 공의회와 1982 /1990년 제정된 회헌에서도 이러한 정신은 거듭 강조된다.

 

「기도는 인간 마음의 지극한 필요를 표현하는 것이며, 사랑의 호흡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 「기도, 특히 내적인 기도의 영을 하느님 백성 가운데서 극진히 기르자」 「우리는 그 분의 사랑의 증인들로서 모든 이들을 하느님께 대한 찬미에로 초대하여 평화와 참회를 전하면서 세상을 두루 다니자」는 내용들이 대표적.

 

한편 여기서의 기도는 현실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나환자 안에서 주님을 찾았던 성 프란치스코를 본받아, 가난하고 고생하시는 그리스도를 이웃의 얼굴 안에서 보고, 그들에게 봉사함으로써 그분을 섬기며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원들은 또한 형제들의 내적인 삶을 세상 모든 이와 나눈다는 입장에서 말과 행동으로 만민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며 지역교회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사도직(선교, 피정의 집, 청소년교육, 행려자를 위한 식당, 특수사목- 교도소, 군인, 병원, 양로사목 등)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특히 가난한 이들과 실직자들, 집없는 이들, 알코올중독과 약물중독으로 고생하는 이들, 재소자들과 소수 민족 등 사회내 소외된 소수의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내고 있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카푸친 회원들은 1만1000여명 정도이며 한국의 경우 1986년 아일랜드 관구에서 4명의 회원들이 파견되면서 지부 활동이 시작됐다.

 

한국 형제들을 포함 8명의 종신서원자, 4명의 유기서원자가 있으며 서울 효창동 한국지부, 가평 수련소, 강화 양성소 등 세곳에 공동체가 마련돼 있다. [가톨릭신문, 2004년 4월 11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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