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배티: 숨은 꽃들의 보금자리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200

배티 - '숨은 꽃'들의 보금자리

 

 

고 윤의병(바오로) 신부의 [은화](隱花). 말 그대로 박해 시대에 피어난 숨은 꽃들의 신앙과 고난을 그린 군난 소설이다. 지금까지 이 작품만큼이나 오랫동안 신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또 그만큼 신자들의 가슴에 깊이 남아 있는 소설은 없었다. 아울러 저자 신부가 6.25 전쟁으로 행방 불명됨으로써 미완성 작품으로 끝나게 된 점도 우리에게는 영원한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다.

 

바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이 골배나무가 많았다던 배티[梨峙](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와 그 일대의 교우촌들이다. 윤의병 신부가 태어난 곳은 배티 입구의 용진골(용덕리)이었고, 순교자들을 배출한 절골(용덕리), 동골(양백리), 발래기(명암리), 퉁점(명암리) 등도 배티 인근에 퍼져 있다. 특히 현재에도 옛 교우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삼박골은 배티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삼박골이 바로 [은화]의 주된 배경이었다. 또 그 남쪽 성거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서덕골(충남 목천군 송전리)은 최양업 신부의 둘째 아우인 최선정(안드레아)이 성장한 곳이고, 그 이웃인 소학골(충남 북면 납안리)은 칼래(Calais, 姜) 신부의 피난처였다.

 

배티 성지를 가려면, 중부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진천에서 빠져 나와 약 30분 정도롤 다시 서쪽으로 달려 백곡면 소재지를 지난 뒤 북쪽 골짜기로 들어서면 된다. 지금은 경기도 안성에서 배나무 고개를 넘어 진천으로 가는 길이 잘 포장되어 있지만, 1970년대만 해도 배티로 가는 교통로는 방금 말한 '진천 - 백곡로'를 이용하거나 충남 '입장 - 백곡로'를 거쳐 가야만 했다.

 

이 일대에서 배티 인근만큼 깊은 산골짜기도 없었다. 그러니까 박해를 피해 새 터전을 찾아나선 충남, 경기, 충북의 신자들이 하나 둘 이 골짜기로 모여 들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그들은 우연히 서로가 신자임을 알게 되어 함께 비밀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산을 개간하여 오죽잖은 밭농사로 생계를 꾸려 나갔고, 때로는 옹기나 숯을 구어 생활하였다. 그러면서도 새 신자들이 교우촌에 들어오면 서슴지 않고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 결과 인근에는 점차 교우촌이 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삼박골은 배나무 고갯길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길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집터나 돌담의 흔적, 우물터만이 겨우 남아 있지만, 마을 뒷편에는 유명한 신자인 이씨 집안의 순교자 무덤 2기가 있으며, 왼쪽 골짜기에는 유사시에 배티로 도망하던 신자들의 비밀 통로가 있다. 이처럼 박해 시대에 형성된 교우촌으로, 신자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 있다는 것이 배티 성지가 지니고 있는 첫 번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신자들은 박해의 칼날을 피해 어렵게 터전을 잡은 이곳에서도 마음놓고 살 수가 없었다. 신앙 생활은 언제나 감추어진 상태였고, 교회 서적이나 성물도 충분하지 못했으며, 더욱이 죽는 날까지 성사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가 신자들은 1850년 초에 최양업 신부를 모시는 기쁨을 얻게 되었다. 이 때 최 신부가 거처로 정한 곳이 바로 배티 이웃에 있는 동골 교우촌이었는데, 당시 이곳에 있는 그의 친척집에는 셋째 아우인 최우정(바시리오)이 살고 있었다. 또 산너머에 있는 서덕골 교우촌의 백부 댁에는 둘째 아우가 있었다.

 

[사목, 1999년 7월, pp.126-127, 차기진]



93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