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교육ㅣ심리ㅣ상담

[피정] 성령칠은3: 두려움(외경)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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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9 ㅣ No.48

[성령칠은 제3강의] 두려움(敬畏 fear)의 은혜 (9월 6일 주일 오전)

 

 

시편 8편 :

 

(시8:1) 야훼, 우리의 주여! 주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주의 영광 기리는 노래 하늘 높이 퍼집니다. (시8:2) 어린이, 젖먹이들이 노래합니다. 이로써 원수들과 반역자들을 꺾으시고 당신께 맞서는 자들을 무색케 하셨습니다. (시8:3)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보면 (시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시8:5)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시8:6) 손수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발밑에 거느리게 하셨습니다. (시8:7) 크고 작은 온갖 가축과 들에서 뛰노는 짐승들하며 (시8:8)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 물길 따라 두루 다니는 물고기들을 통틀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시8:9) 야훼, 우리의 주여! 주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어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인 “하느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안다면”에 귀를 기울이고 묵상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성령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마태7:11) 너희는 악하면서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청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기 않겠습니까?

 

하느님은 당신의 성령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세례의 은총입니다. 모든 성사 통해서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성령의 은혜들이 무엇인지 공부합시다. 성령의 여러 가지 많은 선물들이 있다. 사도직을 할 수 있는 은총. 교회에 봉사하는 은총. 이것들을 특은이라고 한다. 은사들도 있다. 이상한 언어를 한다든지 등등. 여기서는 특별히 성령 7은에 대하여 말씀드립니다. 성령 칠은은 견진성사 때에 가르친다. 피정 시작 때에 오소서 성령이여 하고 성령 송가를 부른다. 이 성령 7은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특별한 은총이다. 이사야 11장에 성령의 6가지 은혜가 나온다. 교회 시작 때부터 교부들 특히 이레네오 교부가 성령을 언급한다. 하느님이 성령을 내렸습니다. 지혜와 통달 의견과 굳셈. 지식과 효경. 주님을 두려워하는 영. 이런 똑같은 영을 교회에 주셨다. 이 성령 7은은 우리 마음과 우리의 선교 생활에서 성삼의 생명이 무엇인지 체험하게 한다. 똑 같은 성령 안에 성부 성자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것이 우리의 생명이다. 그것이 현세에서 우리의 생명이고 우리의 사명이며 천국에서 영원히 우리의 삶이 될 것이다. 똑 같은 성령 안에 성부와 성자가 누리는 생명을 형제들에게 전해야 한다.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이것을 전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성령이 주님 위에 충만히 내렸다. 성부 성자의 이 관계가 아주 점진적으로 천천히 주님 안에서 보여진다. 그것이 교회의 생명이다. 교회는 성부 성자의 관계로 풍요로워지는 가족이고 그런 관계를 우리가 전한다. 우리는 자주 성호경을 긋는다. 그 내용은? 뜻은? 성삼의 삶이 무엇일까요?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산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파견되었다. 여러분은 이것을 깨닫고 있습니까? 성령은 성삼의 삶을 살도록 특별한 감각을 주신다.

 

(요한 1서 1장) 1절-(1) 우리는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그 말씀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 보았습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났을 때에 우리는 그 생명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증언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난 것입니다. (3) 우리가 보고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충만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이 글을 써 보냅니다.

 

말씀의 생명을 아버지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여러분에서 선포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기쁨이 충만해지길 바랍니다. 우리가 본 것인 하느님의 말씀을 와서 보십시오.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서 경험한 것입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라는 신비에까지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눈으로 그분을 뵈었습니다. 요한 성인은 예수님의 인간성을 보았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선물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하늘로부터 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만졌습니다. 하느님의 생명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것을 전하려고 한다. 성령이 주시는 은총의 선물들도 교회를 통해서 주신다. 그것은 선물이다. 하느님은 자유롭게 주신다. 4-5살 아이들에게도 이런 선물을 주신다.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는 감각을 주신다. 화해하려고 애쓰는 죄인에게도 주신다. 내가 이렇게 하면 얻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것은 자유로운 선물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성향은 있다. 특별히 성사의 은총을 통해서 받아들인다. 현대사회는 너무 많은 것들로 혼란을 겪고 있다. 예를들면 다이아나 황태자비를 보십시오. 사람들은 그분을 미친 듯이 좋아했습니다. 그녀의 삶 속에 여러 가지 가치 있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부정적인 것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우상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올바르게 방향 지을 영의 선물이 필요하다.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알기만 한다면”하시며 예수님은 그 생명을 주시려고 하신다. 하느님이 선사하시고자 하신 선물이다. 그분은 당신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자 하신다. 당신 자신 외에 그보다 더 덜한 것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성령 7은 중에 첫째 것을 봅시다.

 

1. 두려움의 은혜 : Fear of God : sense of the sacred /sense of marvel

 

 하느님을 ‘무서워’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한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노예를 삼지 않고 공포를 일으키는 노예의 성령이 아니시다. 성요한은 “사랑 안에서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라고 한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성서의 특별한 어휘가 있다. 경탄하다. 감탄하다. 깜짝 놀라다. 숭배하다. 사로잡히다. 경이로 가득할 것이다. 아!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장난감이 있는 가게에서 아! 하고 감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아이는 시간을 내서 그 앞에서 멈추어 서 있습니다. 어머니가 잡아끌어도 더 보고 싶다고 우기고 그것에 사로잡힌다. 어떤 때에는 몸을 떨기도 한다. 거대한 폭포 앞에서 전율하기도 하지요. 경탄하는 감각이다. 성서에서 천사가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아름다움을 관상하도록 창조되었다. 성서에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관한 묘사가 많다. 욥기를 보자. 욥은 하느님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앞도 된다. 시편을 읽을 때에 성령께 이 경외(敬畏)심의 은총을 주시라고 기도하면 좋겠다. 시편 8편 외에 많은 시편이 경탄의 시편이다. 성무일도 시편에도 하느님의 피조물들에게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라고 초대한다. 우리들의 마음을 열기 위한 준비이다.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의 위대함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똑같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고, 그 성령이 우리를 파견하신다. 성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가 파견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잃어버렸다.


창세기 28장 10절-19;

 

(창28:10)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하여 가다가 (11) 한 곳에 이르러 밤을 지내게 되었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 간 뒤였다. 그는 그곳에서 돌을 하나 주워 배게 삼고 그 자리에 누워 잠을 자다가 (12) 꿈을 꾸었다. 그는 꿈에 땅에서 하늘에 닿은 층계가 있고 그 층계를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13) 야훼께서 그의 옆에 나타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야훼,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 네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이다. 나는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 (14) 네 후손은 땅의 티끌만큼 불어나서 동서남북으로 널리 퍼질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종족이 너와 네 후손의 덕을 입을 것이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다가 기어이 이리로 다시 데려 오리라.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어 줄 때까지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16)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참말 야훼께서 여기 계셨는데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하며 (17) 두려움에 사로잡혀 외쳤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여기가 바로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구나.” (18)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베고 자던 돌을 세워 석상을 삼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붓고는 (창28:19) 그 곳을 베델이라 불렀다.

 

제가 가정을 방문해서 축복할 때에 이 성서 본문을 택한다.

 

두려움의 은혜는 경이를 일으킨다. 야곱은 꿈에서 깨어나 하느님이 여기 계시는데 나는 그것을 몰랐구나 라고 한다. 이곳 이 가족들이 사는 이 집이 야훼가 현존하시는 곳이다. 하느님의 현존을 알게 되면 경이로움이 일어난다. 제가 가정을 방문하여 집을 축성 할 때에 그 가족들의 마음을 일으킨다. 하느님이 현존하시고 하느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당신의 외아드님을 거져 주십니다. 하느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똑 같은 영을 여러분에게 주신다. 하느님과 여러분 사이에 똑 같은 사랑이 교환되도록 하신다. 이 집이 하늘의 문이다. 이 교류가 항상 이루어진다. 하느님은 축복으로 이 집에 내려오신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내려오신 것처럼 하느님은 그들과 함께 내려오신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의 축복을 가지고 내려오시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을 그분께 바쳐 드린다. 하느님은 내려오시고 우리는 올려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성령의 선물이다. 경외심을 일으키는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깨닫는 것이다. 이 선물을 받기 위해서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먼저 성령께 우리를 일깨워 달라고 청하자. 아버지는 청하는 사람에게 은총의 선물을 주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신다. 성무일도를 바칠 때에 별로 생각하지 않고 바친다. 그냥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반응을 하고 청해야 한다. 당신의 영을 주시라고 청해야 한다. 판에 박힌 듯이 해서는 안되고 그분께 응답을 하고 자신을 흔들어 놓아야 한다. 시간을 내서 그분께 응답해야 한다. 시편을 기도하면서 한 구절 안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자세히 살피며 기도를 해야 한다. 복음서에서 예수님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나온다. 루가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청하고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사람들이 놀라는 것을 본다. 복음을 통해서 그것을 체험하는 것을 보아야 한다. 예수그리스도 안의 신비를 체험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신비를 체험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복음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그렇게 하자. 예를들면 예수님이 회당에 처음 나타나신다. 루가 4,18에서 이사야를 인용한다.

 

(루가4: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 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 (루가4:17)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말이를 받아 들고 이러한 말씀이 적혀 있는 대목을 펴서 읽으셨다. (루가4:18)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루가4:19)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가4:20) 예수께서 두루말이를 말아서 시중들던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고 자리에 앉으시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예수에게 쏠렸다. (루가4:21)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4:22)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칭찬하였고 그가 하시는 은총의 말씀에 탄복하며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수군거렸다.

 

사람들은 탄복한다. 경악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이 성서 구절을 쉽게 읽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체험할 수 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을 체험할 수 있다. 내가 내 눈으로 귀로 이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성령의 은총을 통해서 그 말씀을 관통할 수 있다. 아! 이분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신 분이구나 하고 감탄할 수 있다. 하느님의 사랑을 가난한 사람에게 전하도록 보내심을 받으신 분이시구나. 이것이 무슨 뜻인지 시간을 내서 바라볼 수 있다. 이 짧은 문장 안에서 성령이 예수께 내려오시고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그 선물을 청하십시오.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청하십시오.

 

예수님이 부정한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을 치유하십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경악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말씀이 무슨 뜻일 까”하고 서로 수군거린다. 이분이 부정한 악령에게 명령을 내리니 그들까지도 순종하는구나. 이분은 권한과 능력으로 말씀하시는구나. 우리는 이런 악령을 쫓아내도록 파견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하느님의 말씀인 복음을 갖고 있다. 그런 능력을 주시라고 청하자. 이 복음과 함께 우리는 이런 권한을 받을 수 있다. 악을 쫓아 버릴 수 있는 권한이다.

 

루가복음에는 이런 비슷한 말씀이 많다. 중풍병자를 낫게 한다든지 나인의 과부의 딸을 일으킨다든지. 예수님이 폭풍우를 잠재우는 것으로 그 사람들은 경외심에 사로잡히고 그 사람들은 깜짝 놀랬습니다. 이분이 누구 신가! 이분은 도대체 누구 신가! 이분이 바람도 파도에 명령하니 그것이 순종하는 구나! 이분이 누구 신가! 그분은 얼마나 위대하시고 아름다우시고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가! 이것은 하느님의 사랑의 능력이다.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고 우리가 이런 능력과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도되는 체험이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아름다움의 계시를 본다. 성삼 안에서 이런 선물들의 원천을 보십시오. 당신의 사랑하는 성자 앞에서 성부께서 영원히 아! 하고 감탄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자 또한 성부의 풍성한 너그러우심을 보시고 그 아름다움에 사로잡히신다. 성령은 우리에게 이 분들의 삶에 동참하라고 주어진다. 유아 세례를 준비할 때에 이 아기 앞에서 어머니가 감탄하는 것을 본다. 우리도 그 아기보고 감탄하면 엄마가 좋아한다. 어머니는 이미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한다. 하느님의 모상이 인간 안에 실현되는 것은 아름다움이다. 세례의 은총을 어머니에게 설명했지만 다시 설명해 줄 수 있다. 세례 통해서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아름다움을 일깨울 수 있다. 성부가 당신의 외아들에게 갖은 숭배에 가까운 사랑의 감정을 이 아이에게 갖으심을 설명해 줄 수 있다. 똑같은 성령을 통해서 어머니가 이것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혼인 성사의 예를 들자. 젊은 사람들이 결혼의 시기가 되면, 결혼 전에 여러 가지 두려움이 있다. 새로운 삶. 새로운 인간 새로운 성.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근심 걱정이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 딸을 새롭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깨우쳐 줄 수 있다. 아무도 인간의 마음을 파악할 수 없다. 하느님의 손으로부터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받아들일 때에 남편과 아내가 상대방을 하느님의 훌륭한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동반자는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오고 우리의 형제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속량된 동반자이다. 결혼의 가장 큰 선물은 두 배우자들 안에 작용할 성부와 성자의 사랑이다. 똑 같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의 사랑으로 부부를 일치시킬 것이다. 그들의 이 결혼 생활에 똑같은 성령의 활동이 펼쳐진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이 배우자들 간에 사랑이 현존한다. 수도 공동체 안에서 수녀들 사이에 현존하신다.

 

판에 박은 것같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기도할 때나 성사를 집전할 때에,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할 수 없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기도할 때에 삼위의 현존을 의식하고 있습니까? 마음 안에 경탄할 시간을 내자. 현존을 깨닫고 참여하고, 현존을 체험할 때에 감사드리자. 조금이라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때에 하느님께 정말 감사드리자.

 

내가 살고 있는 집 앞에 작은 찻집이 있었습니다. 작은 책상이 있었고 거기에 모든 것을 차려 놓고 있었다. 그는 계속 적으로 “옴! 옴!” 하고 만트라를 외치고 있었다. 찬양의 말이고 하느님 앞에 형언할 수 없을 때에 “옴!”이라고 표현한다.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경탄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합시다. 성모님이 예수님의 육화의 신비에 이끌려서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경탄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성모송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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