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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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묵주기도에 대한 오해와 이해: 가장 복음적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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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5 ㅣ No.273

[경향 돋보기] 묵주기도에 대한 오해와 이해


가장 복음적인 기도

 

 

10월에 우리는 묵주기도 성월을 지낸다. 제이천년기에 들어와 점차 형식을 갖추고 확산되어 온 묵주기도는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대표적 상징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인류 구원의 신비를 함축하고 있는 묵주기도에 대해 궁금한 점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무처장이자 가톨릭 대학교 교의신학 교수인 조규만 바실리오 신부에게 물어보았다. - 편집자

 


묵주기도는 어떻게 생겨났나요?

 

11세기경에 어느 수도원에서는 글을 못 읽는 수도자들을 위해 150편의 시편으로 기도하는 대신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150번씩 외우게 했어요. 보조 수도자들이나 열심한 신자들은 아침, 점심, 저녁에 성무일도 시간경을 바치면서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50번씩 외웠는데, 이것이 확산되어 묵주기도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성모송은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루가 1,28 참조), 엘리사벳의 찬양(루가 1,42 참조)으로만 되어있었어요.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이 첨가된 때는 15세기입니다.

 

14세기경에는 150번의 기도를 15단으로 나누게 됩니다. 성모송 10번에 주님의 기도 l번, 이렇게 나눈 것이지요. 거기에 카르투시오 회원이었던 프러시아의 도미니코 수사가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는 구절을 추가하고, 16세기에 이것이 환희, 고통, 영광의 15가지 신비로 정착되었지요.

 

1569년에는 교황 비오 5세가 회칙을 통하여 오늘날과 같은 형식을 정하였고, 17세기에는 성모송 10번에 이어 영광송(마태 6,13 참조)을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연옥영혼을 위한 기도는 1917년 파티마 성모발현 이후 첨가되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2년에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공생활을 묵상하는 ‘빛의 신비’를 제정했지요(21항 참조).

 

 

어떤 신자들은 같은 기도문을 반복하는 것보다 자유로이 기도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반문하는데, 교회가 특별히 묵주기도를 강조하고 장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묵주기도는 단순한 형식으로 쉽게 바칠 수 있고, 철저히 성서를 묵상하는 내용으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빛의 신비’가 추가되면서 복음서 전체를 20단 안에 요약해서 묵상할 수 있게 되었지요.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모두가 복음서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함께하는 기도잖아요.

 

기도문의 반복도 의미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연인과 부부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고백이라 하면, 왜 반복하느냐는 물음은 무의미하죠.

 

 

묵주기도는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인가요?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는 묵주기도의 정의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묵주기도는 분명히 성모신심의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 우리는 이를테면 성모님의 마음을 통하여 바로 예수님과 생생하게 결합됩니다”(2-3항). 한마디로 묵주기도는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기도입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는 나를 잘 이끌어 줄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면 훨씬 도움이 되겠지요.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묵주기도는 성서적 근거가 없으며, 하느님이 아닌 인간의 계명으로 만든 기도”라고 하던데요?

 

묵주기도는 성서의 많은 내용을 담은 기도입니다. 20단의 묵상 내용 모두가 복음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주님의 기도(마태 6,9-13), 성모송, 영광송도 마찬가지고요. 또한 우리는 성서에서 사람들이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 부탁하는 장면(요한 2,1-5 참조)을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하고 전구를 간청하는 것도 같은 이치지요. 묵주기도에 복음 아닌 부분이 어디 있습니까?

 

 

‘구원을 위한 기도’나 ‘성모찬송’을 꼭 바쳐야 하나요? 또한 오랫동안 전승되어 왔다는 ‘성모칠고 7단’ 같은 기도도 바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묵주기도의 형식이 오랜 역사를 거쳐 변했다고 해서 옛사람들이 바친 기도가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지요. 성모찬송이나 구원송도 기도를 풍요롭게 하려고 만든 방법의 하나인 것이지, 꼭 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어요. 영광송 뒤에 다른 기도를 바칠 수도 있고요.

 

다른 묵상도 할 수는 있어요. 예컨대 특별히 지향을 두고 기도하는 것도 가능하죠. 각 단마다 복음묵상도 할 수 있고, 실제로 전에는 다른 내용의 신비도 많았어요.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고 이웃과 연대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묵상을 할 수 있죠. 성모칠고, 칠락 같은 묵상도 그러한 전통으로 볼 수 있고요.

 

그런데 자유로이 하는 묵상이 자칫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될 위험도 있죠.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잊어버린 채 기적 중심으로 치우칠 수도 있고요. 교회가 수많은 묵상 가운데 오늘날의 20단을 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이것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증된, 그리스도의 복음과 구원의 신비를 가장 쉽고 바르게 묵상할 수 있는 모델을 선택한 것이지요.

 


묵주기도를 바칠 때 자세가 바르지 않거나, 기도하다가 분심에 빠지거나 지향을 생각하면 잘못이라고도 하던데요?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할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하고는 어느 장소에서든 대화할 수 있는 것처럼…. 물론 참 좋은 기도의 자세가 있어요.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은 것이 가장 집중하기 좋은 기본적 몸가짐이지만. 매번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환자라면 누워서 기도할 수밖에 없고, 시간이 없으면 운전하면서 기도할 수도 있지요.

 

기도의 의미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도문에 담겨있는 복음의 신비,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사명에 대해 잘 묵상하면 하느님께서 길잡이가 되어 주시겠지요. 그런데 어떤 때는 하느님과의 대화 속에 다른 마음도 들어오죠. 많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하다가 분심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내가 청해야 할 부분, 하느님과 함께 이야기해야 할 중요한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비신자도 묵주기도를 할 수 있나요?

 

신자가 아니라고 묵주기도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죠.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고, 누구든지 하느님께 말을 걸 수 있어요.

 

 

이따금 성모발현 관련 메시지에서 “묵주기도를 바치면 이러이러한 효력이 있을 것이다.”는 내용을 보게 됩니다. 기도와 은총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요?

 

교회의 입장은 분명해요. 교회가 인정한 발현도 있고, 아직 인정을 보류한 사건도 있어요. 교회 전례일에도 등급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하지만 교회가 인정한다고 해서 그 지역의 신심행위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교회가 가르치는 모든 진리의 핵심이자 최우선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묵주기도를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것도 조심해야 할 유혹입니다. 물론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얻을 수 있겠지만, 복을 받는다고 기계적으로 생각하는건 상업적인 계산이지 믿음의 관계는 아니죠. 마찬가지로 묵주를 지니고 있으면 행운이 온다든지, 묵주가 끊어지면 불길하다든지 하는 생각도 경계해야지요.

 

 

축복받지 않은 묵주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묵주는 본질적으로 기도를 돕는 도구이지요. 축복은 준성사의 일종으로, 성사처럼 성령의 은총을 주지는 않아도 교회의 기도를 통해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은총에 협력하도록 결심하게 하죠. 물건을 축복함으로써 그것이 하느님께 속한 것임을 드러내고, 목적에 맞게 사용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성화시키고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68-1672항 참조). 물론 축복받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축복받지 않은 묵주라고 해서 기도하는데 쓰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요즈음 묵주를 본뜬 목걸이가 유행인데, 묵주를 장신구로 사용할 수 있나요?

 

묵주를 목에 거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가지고 다니기 좋게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거나, 팔찌로 만들어 손목에 착용하거나, 휴대전화에 매달아놓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묵주의 최우선 용도는 기도인 만큼, 묵주를 기도가 아니라 오로지 장식 목적으로 휴대하는 건 본래의 목적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경향잡지, 2005년 10월호, 정리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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