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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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쁨 해설32: 우리는 모두 선교하는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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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27 ㅣ No.698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2) 우리는 모두 선교하는 제자


우리는 모두 선교하는 제자

 

 

우리 교구 어느 시골 본당의 이야기이다. 바닷가 근처 본당이다. 매 주일, 80여 명이 미사에 참여한다. 신자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그들 가운데 성당 일에 전심전력으로 봉사하는 젊은 부부가 있다. 그들의 나이를 정확히는 모르나 40대 후반 정도로 보인다. 그들에게는 늦게 얻은 막내아들이 있는데, 그 녀석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이고 성당을 놀이터 삼아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성장하고 있다. 2014년, 그 본당의 영세자는 8명이었다. 대세를 받은 사람이 2명, 유아 세례자가 1명, 나머지 5명은 명오(明悟)가 열려 성인으로 취급받는 초등학생들이었다. 여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명오가 열린 영세자 5명 모두가 막내아들의 친구라는 것이다. 요즘 복사로 활동하며 즐거움에 흠뻑 빠진 이 어린이 외에는, 바닷가 근처 옥(玉) 같은 시냇물[溪]이 흐르는 본당에서 2014년에 선교에 힘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표현을 고쳐본다. 많은 이들이 선교에 힘썼으나 열매 맺은 것은 오직 그 꼬마의 활동밖에 없었다. 그래도 슬프다.

 

 

공동체 모두가 선교 사명을 부여받으니 

 

교황은 세례받은 모든 사람은 교회 안에서의 역할과 지위에 상관없이 선교 사명을 받았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만난 그리스도인은 모두 선교사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제자와 선교사가 아니라 언제나 ‘선교하는 제자’라고 말해야 합니다”(120항). 지금까지 이곳저곳에서 말씀하신 내용이다. 특히 119항에서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말씀을 하셨는데,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필자가 새롭게 번역해 보았다. CBCK 번역문과 함께 올려본다. 권고문의 표현을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하기 위해, 「치빌타 카톨리카」와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서도 일부분을 실어보았다. 비교하며 심화시키길 바란다.

 

 

CBCK 번역문 

 

“세례 받은 모든 사람 안에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령의 성화하는 힘이 작용하여 복음화를 재촉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이 도유에 힘입어 거룩해집니다. 이는 믿음에서(in credendo) 오류가 없게 합니다. 비록 자신의 신앙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여도, 하느님 백성은 믿을 때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 백성을 진리 안에서 이끄시어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인류에 대한 당신 사랑의 신비의 일부로, 하느님께서는 신자들 전체에게 신앙의 본능, 곧 신앙 감각(sensus fidei)을 심어 주시어 무엇이 참으로 하느님의 것인지를 식별하도록 해 주십니다. 성령의 현존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적인 실재들과 어떤 공본성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확히 표현할 방법이 없더라도 그러한 실재들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지혜도 주십니다”(119항).

 

 

필자 번역문 

 

“세례받은 모든 사람 안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복음화를 재촉하는 성령의 힘, 즉 거룩하게 만드는 힘이 작용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거룩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에서(in credendo) 오류를 범할 수 없도록 이끄는 기름으로 도유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하느님 백성은 비록 자신의 신앙을 설명해 낼 표현을 찾지 못할 때라도, 그들이 신앙할 때에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하느님 백성을 진리 안에서 이끄시고 구원에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에 대한 당신 사랑의 신비의 영역으로서, 신자 전체(개인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 안에)에게 신앙의 본능, 곧 신앙 감각(sensus fidei)을 심어 주시어, 무엇이 참으로 하느님의 것인지를 식별토록 해주셨습니다. 성령의 현존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적인 실재들을 (하느님과) 같은 본성으로 느끼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또한 그들이 정확히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할 때에라도, 성령께서는 그러한 실제들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니다”(119항).

 

 

「치빌타 카톨리카」와의 인터뷰 내용 

 

“신앙으로 형성된 하느님 백성은 믿음에서 백성 전체의 이름으로 오류를 범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여정을 함께하는 모든 백성의 초자연적 감각을 통해 자신들의 믿음을 표명합니다. 바로 이 신앙 안에서 그들의 무류성이 분명히 밝혀집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모든 신자의 무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을 어떤 이들은 포퓰리즘의 한 형태로 여길 수 있기에,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들어주십시오. 포퓰리즘이 아닙니다. 성 이냐시오가 교회를 사목자들과 백성 전체의 의미로 ‘하느님 백성’이라 부른 것처럼, 이것은(모든 신자의 무류성은) ‘자모이시며 거룩한 교계적 교회’의 경험입니다(역사를 통해 입증된 것이라는 의미). 교회는 하느님 백성 전체를 의미합니다”(두 분 교황님과 함께, 39-40 발췌).

 

[평화신문, 2015년 7월 26일,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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