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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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쁨 해설31: 다양한 모습을 지닌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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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18 ㅣ No.697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1) 다양한 모습을 지닌 백성


성령의 품 안에서 하나 되는 우리

 

 

한 사회의 구성원이 타인이나 다른 피조물과 맺는 관계를 규정한 포괄적 개념어가 ‘문화’이다. 모든 민족은 자신의 역사 안에서 고유의 문화를 지니고 이를 자율적으로 보존하고 발전시킬 정당한 권리가 있다(116항 참조). 우리는 이와 같은 문화를 통해 타민족의 역사와 그들 고유의 토양 그리고 인간관과 세계관을 이해하게 된다. 서로에 대한 동질성과 상이성도 발견하게 된다. 

 

지금 시복을 위한 마지막 과정에 도달한 이 시대의 참된 신앙인 한 분을 알고 있다. 베트남 출신의 반 투안(Francois-Xavier Van Thun, 1928~2002) 추기경이다. 그분은 생전에 남긴 마지막 강론집에서, 지금은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의 만남을 잊지 못한다고 술회했다. 이 만남에서 교황은 추기경에게 2000년 희년의 교황청 사순 피정을 부탁했다. 그는 피정을 마치면서 이렇게 회고했다. “저는 베트남 음식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리 냄비와 내용물(희망의 복음)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메뉴를 바꿀 것입니다. 아시아의 양념과 향료를 넣을 것이고 먹을 때는 젓가락을 사용할 것입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통치 않은 요리사는 불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참된 불길, 곧 성령이 필요합니다”(「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중에서).

 

 

다양한 문화로 풍요로워지는 교회 

 

하느님 백성은 많은 민족으로 구성되었기에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인종과 언어와 관습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다른 그만큼 저마다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다양한 민족의 숫자만큼 고유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각 민족은 자신들의 고유 문화를 통해, 하느님과 관계 맺고 신앙을 표현해 왔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교의 자산이 되었다. “고유의 문화에 따라 하느님 은총을 경험한 다양한 민족들 안에서, 교회는 참다운 보편성을 표현하고 다양한 모습을 한 교회의 아름다움을 보여 줍니다”(116항). 

 

다양한 문화와 습속의 차이 때문에 ‘일치’와 ‘하나 됨’을 특징으로 하는 교회의 모습이 훼손될 수 있다는 걱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일찍부터 기우(杞憂)로 여겨졌다. 여러 민족이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교회의 아름다움이고 풍요로운 자기 표현이 되는 것이지, 이것 때문에 분열이 발생하거나 일치에 장애가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령께서는 고유 문화 속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그 문화 자체를 새로운 복음화로 변화시키신다. 소위 말하는 ‘토착화’는 ‘성령의 문화적 강생’이라고 바꾸어 표현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토착화 작업을 통해 표현된 신앙은, 그 민족 고유의 문화가 거룩함의 새 옷을 입은 것이기에, 교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다양한 문화의 가치들을 받아들여 패물로 단장한 신부(sponsa ornata monilibus suis, 이사 61,10 참조)가 됩니다”(116항).

 

 

그리스도인을 하나로 묶는 성령 

 

교황은 다양성이 신앙 안에서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일치의 영이신 ‘성령’께서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임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었다. 모든 문화 속에서 다양한 일치를 이루어 주시는 분은 ‘성령’이라고 강조했다. 성부와 성자께서 보내주시는 성령은 성삼위의 완전한 친교와 일치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우리 역시 서로에게 사랑의 유대가 되도록 이끄신다. “성령께서는 풍요롭고 다양한 은사를 가져다주시면서 동시에 결코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을 끌어당겨서 조화와 일치를 이루게 하십니다”(117항). 

 

우리가 사는 읍면의 작은 촌락에서도 적잖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문화권, 같은 나라, 같은 세대라고 해도, 서로 다른 종교를 지녔기에 발생할 수 있는 문화적 차이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사랑의 유대로 서로를 표현하고 수용하며 공존하도록 이끄는 것이 성령의 역할이다. 가끔 열심하다는 신앙인들의 열성이 분별력을 잃었을 때, 사회적 물의가 발생하는 것을 본다. 성령의 감도로 표현된 조화로운 신앙이 아니라 악한 영이 그들의 눈을 흐리게 하여 개인적 욕심이 분별없이 표현된 결과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그 일례이다. 교황은 ‘복음화’라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특정 문화의 옷을 입힌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광신적 모습으로 전달하는 것은 성령의 활동이 아니라고 했다(117항 참조). 

 

성령께서 활동하시며 구체적인 문화를 통해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시나 그 내용은 그 ‘문화’의 틀 속에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그 문화의 틀 속에서만 하느님의 메시지에 응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메시지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구원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들이 복음 선포와 그리스도교 사상의 발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계시된 메시지는 그 가운데 어떤 문화와도 동일시되지 않고 문화를 초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117항). “우리는 모든 대륙의 민족들이 그들의 그리스도 신앙을 표현하면서, 유럽 국가들이 그들 역사의 특정한 시기에 발전시킨 표현 양식을 따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어느 특정 문화의 이해와 표현의 한계에 갇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 하나의 문화가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완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118항).

 

[평화신문, 2015년 7월 19일,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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