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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성 유대철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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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105

성 유대철 베드로(1827-1839, 소년, 기해박해 때 교수)

 

 

유진길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난 유대철(劉大喆)은 어려서 아버지의 모범을 따라 입교한 후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 천주교를 미워하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으나 그 때마다 항상 어머니와 누나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다. 1839년 기해박해로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어 감동적인 순교를 하자 유대철은 순교를 결심하고 자헌했다. 포청에서 13세의 어린 나이로는 견디기 힘든 형벌과 고문을 받았다. 허벅지의 살을 뜯어내며 "이래도 천주교를 믿겠느냐?"하고 으름장을 놓는 형리에게 "믿고 말고요. 그렇게 한다고 제가 하느님을 버릴 줄 아세요?" 하고 대답하자 화가 난 형리는 다시 시뻘겋게 단 숯덩이를 입에 넣으려하니 "자요" 하고 입을 크게 벌려 형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포청에서 총 14회의 신문을 받고 100여 대의 매와 40여 대의 치도곤을 맞아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유대철은 항상 만족스럽고 평화롭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형리들은 유대철을 배교시킬 수 없게 되자 10월 31일 포청옥에서 몰래 목을 졸라 죽였다. 그는 103위 성인 중 가장 어린 순교자이다.

 

- 성 유진길(劉進吉) 아우구스티노는 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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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포도청을 찾아와 "나도 천주교인이오. 자수하러 왔습니다"고 관원들에게 말하였다. 눈이 휘둥그래진 관원들은 어린아이가 찾아와 하는 이 말에 어이가 없었다. 이 소년이 역관 유진길(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인 유대철(베드로)이다.

 

서울에 태어난 유대철은 어려서 아버지의 모범을 따라 입교한 뒤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와 누나는 천주교를 믿는 것을 반대하며 베드로를 괴롭혔고, 그 때마다 베드로는 어머니와 누나의 회계를 위해 기도했다.

 

1839년 박해가 시작되면서 만은 교우들이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하였다. 이러한 감동 어린 순교는 어린 유대철의 마음에 순교하고자 하는 열망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체포되어 심한 형벌을 받고 있을 때 자신도 천주교인이라면서 관헌에게 자수하러 온 것이다.

 

포청에서는 베드로한테 배교한다는 말을 들으려고, 어르고 엄포하고 고문하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하였다. 어느 날 포졸이 구리로 된 담뱃대로 그의 허벅지 살을 때어내면서 소리쳤다. "이래도 천주교를 믿겠느냐?" 그러자 베드로는 "그럼요. 이것쯤으로 제가 하느님을 버릴 줄 아세요?" 하고 대답했다. 몹시 화가 난 포졸은 다시 시뻘겋게 단 숯덩이를 입에 넣으려 하자 베드로는 "자요" 하고 입을 크게 벌려 그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 뒤 베드로는 심한 고문을 당해 까무러쳐 옥으로 끌려왔다. 옥에 갇혀있던 교우들이 베드로를 정신들게 하려고 허둥지둥할 때 그는, "너무 수고들 하지 마세요. 이런 것으로 죽지는 않을 거에요" 하면서 오히려 교우들을 위로했다.

 

유 베드로는 포청에서 모두 열네 번 신문을 받고 백여 대의 매와 사십여대의 치도곤을 맞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항상 평화롭고 시쁜 표정을 지었다. 포청에서는 어린 그를 공공연히 죽이면 군중이 반발할 것을 두려워하여 1839년 10월 21일 형리가 옥안으로 들어가 목을 졸라 죽였다. 이때 베드로의 나이는 겨우 열세살이었다. 그는 103위 성인 가운데 가장 어린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경향잡지, 199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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