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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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성모님 발현과 레지오: 성모님 발현에 대한 기본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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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1-04 ㅣ No.852

[성모님 발현과 레지오] 성모님 발현에 대한 기본적 이해 (1)

 

 

- 에브로 강가에 세워진 사라고사 필라 대성당.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군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레지오 마리애에 소속된 각 단원들은 다른 신자들보다도 성모님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성모님에 대한 내용들이 너무나 신학적인 면에 치우쳐있다 보니 이해하기도 어렵고, 성모님에 대한 자료 또한 충분하지 않습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교본 제5장 6절의 제목은 ‘성모님을 알리자’로 되어있습니다. 이 제목의 영어 원본은 If Mary were but known인데 ‘성모님을 알리자’보다는 ‘성모님을 알기만 한다면’으로 더 많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최초로 사용한 분은 미사 때 많이 불리는 ‘환난과 핍박 중에서~’로 시작하는 성가 286번 ‘순교자의 믿음’을 작사한 영국인 프레드릭 윌리엄 페이버 신부님입니다. 페이버 신부는 성공회의 사제였으나 옥스퍼드 대학의 선배인 존 헨리 뉴먼을 만나 그를 추종하면서 그의 제자가 되었고 1845년에 뉴먼을 따라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습니다.

 

그는 선종하기 1년 전인 1862년에 프랑스 몽포르의 루도비코 마리아가 저술한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을 영어로 번역하였고 머리말에서 ‘오! 성모님을 알기만 한다면’(Oh, if Mary were but known)을 여러 번 사용하며 성모님을 제대로 알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이것이 결국 그 영혼들에게 슬픈 결과를 낳는다고 기술하였습니다.

 

- 성모님이 사도 대 야고보에게 주신 기둥(Pilar)(좌), 성모님이 주신 기둥이 보관된 사라고사 필라 대성당 내부. 기둥은 현재 빨간 천으로 감싸져 있다.(사진의 아래쪽 가운데 부분)

 

 

페이버 신부의 머리말 중 일부를 요약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모님께 대한 신심은 너무나도 미약하고 초라하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사랑받지 못하시고 이단자들은 회개하지 않으며 교회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성인이 될 수 있는 영혼들은 시들어 줄어들고, 열성적인 복음 전파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누구든지 성모 신심을 지니도록 스스로 노력해 보라. 그러면 신심이 가져다주는 은총과 변화에 놀라게 될 것이다. 오! 성모님을 알기만 한다면 예수님은 더 이상 냉대받지 않으실 것이며, 오! 성모님을 알기만 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더 훌륭해지고 우리의 영성체도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며, 오! 성모님을 알기만 한다면 우리는 더 거룩해지며, 성모님이 가장 사랑하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을 잘 알고 성모님을 사랑하게 된다면 신앙생활과 레지오 활동을 올바르게 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을 아는 것은 레지오 활동을 잘하기 위한 기본이자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에 관한 이야기 중 우리가 평상시에 가장 많이 접해 왔던 것 중의 하나가 성모님의 발현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루르드나 파티마 등 성모님 발현 성지에 대해 여러 번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발현은 성모님을 생생하게 체험하면서 성모님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새로운 길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것입니다.

 

앞으로 24회에 걸쳐 성모님의 발현을 자세히 알아볼 뿐만 아니라 성모님의 발현과 레지오 마리애의 연관성도 살펴볼 계획이므로 레지오 단원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과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산티아고 가는 길을 안내하는 가리비 표식(파란색 바탕에 있는 노란색 표시)(좌) 사진은 종착점인 피스테라와 룩시아에 있는 0km 표지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크립트(지하 묘지)에 있는 야고보의 관(가운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전경(우)

 


1) 성모님의 발현이란?

 

성모님의 발현이란 꿈이나 환각 상태가 아닌 실제 현실 세계에 성모님이 나타나시어 시현자에게 메시지를 전하여 주는 초자연적인 현상입니다. 그리고 아무나 성모님을 목격할 수는 없고 선택받은 사람(시현자)만이 성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성모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피의 희생제물이 된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났지만 우리들이 가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강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약해져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스스로의 무관심과 나태함으로 약해지기도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소속된 지역공동체의 혼란과 분열로 인하여 자신의 신앙이 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악한 무리에 의해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신앙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올바르지 않은 상태가 계속 누적된다면 신앙심의 회복은 불가능해질 수가 있으며, 한두 번의 불신앙과 흔들리는 믿음이 습관화되면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완전히 구원되지 않았으며 사탄의 무리들은 항상 이 세상의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여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흔들고 약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런 올바르지 않은 상황을 스스로의 힘으로 제대로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느님이 취하신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성모님의 발현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잘 이해하는 교회의 어머니이자 인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발현의 당사자로 선택하시어 흔들리며 멀어져 가는 우리의 신앙을 다시 원위치로 복귀시킨 것입니다. 앞으로 연재할 교황청에서 인정한 16건의 성모님 발현을 살펴보면 흔들리며 철저하게 냉대받고 심지어는 박해까지 받던 가톨릭 신앙이 다시 회복되어 원래의 상태로 복귀하는 과정과 결과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콩크의 생트 푸아 대성당(좌), 툴루즈의 생 세르냉 대성당(가운데), 페리괴의 생 프롱 대성당(우)

 

 

2) 최초의 성모님 발현

 

최초의 성모님 발현은 기원후 40년 스페인 사라고사의 에브로 강에서 사도 대 야고보에게 나타난 발현입니다. 성모님은 야고보에게 작은 기둥(Pilar)을 하나 주시면서 여기에 성모님의 성당을 지은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발현 1년 후 야고보에 의해 성모님께 봉헌되는 역사상 최초의 성당이 사라고사에 세워졌으며, 발현 4년 후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로데 아그리파 임금에 의해 처형되어 순교한 첫 번째 사도가 되었습니다.

 

야고보의 시신과 배는 가리비(부채 조개)가 잔뜩 달라붙어 조금도 손상이 없는 상태로 스페인으로 돌아왔고 이 전승에서 가리비가 야고보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9세기 초반에 오랫동안 잊혔던 야고보의 무덤이 별빛이 쏟아진 들판(콤포스텔라)에서 발견되면서 무덤 위에 성당이 건립되었고 야고보가 선교를 위해 걸었던 길은 유명한 순례길인 ‘산티아고 가는 길(카미노 데 산티아고)’이 되었습니다. 성 야고보는 스페인어로 산티아고로 불립니다.

 

중세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1000년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자 하느님이 다시 인간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느님께 더 봉헌하려고 노력한 것이 바로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교 초기 순교한 성인의 유해가 있는 성지를 순례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에 따라 ‘산티아고 가는 길’이 가장 인기 많은 순례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순례객들이 지나가는 주요 마을에는 엄청난 규모의 성당들이 경쟁적으로 축성되었습니다. 콩크의 생트 푸아 대성당(11세기 후반), 툴루즈의 생 세르냉 대성당(1118년), 페리괴의 생 프롱 대성당(1120년), 베즐레의 생트 마들렌 대성당(1150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1211년), 부르고스 대성당(1221년), 레온 대성당 등이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훌륭한 성당들입니다. 성모님의 첫 번째 발현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이상과 같이 많은 신앙적 결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월호, 최하경 대건안드레아(서울대교구 도곡동성당 인자하신 모후 Pr.)]

 

 

[성모님 발현과 레지오] 성모님 발현에 대한 기본적 이해 (2)

 

 

- 1214년 성모님이 성 도미니크에게 묵주기도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좌) (당시에는 묵주가 없었지만 이 장면을 강조하기 위하여 묵주를 그려 넣었다) 1251년 성모님이 성 시몬 스톡에게 스카풀라를 건네시는 장면.(우)

 

 

3) 성모님 발현에 대한 공인제도의 필요성 대두

 

성모님은 사라고사에서 발현한 이후 성 도미니꼬, 성 시몬 스톡 등 성인이나 성직자에게 꾸준히 발현하셨으며 그 발현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후대로 구전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를 전승(傳承)에 의한 성모님의 발현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성모님 발현을 목격한 시현자들은 새로운 영적인 삶을 살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온전히 봉헌하였기에 성모님의 발현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첫 발현 때부터 1500년 가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며 이어져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종교개혁파는 성모님께 대한 공경을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였으며 성모님의 발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성모님의 발현에 대하여 어떤 구체적인 기준이나 조사조차도 한 적이 없어 의미 있는 자료나 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셨다는 보고가 증가하면서 유럽뿐만 아니라 다른 대륙에서도 발현이 이어지고 있지만 로마 교황청이 그 모든 발현을 직접 조사하고 결론을 낸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에 더해 성모님의 발현이 이제 성인이나 성직자가 아니라 일반 신자들, 심지어는 어린아이들에게 더 많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일반 신자들에게 일어난 성모님의 발현을 모두 다 발현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기에 이전과 같이 아무 조사 없이 그냥 놔두는 것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향후 일어날 성모님 발현의 진위에 대해서 확실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가톨릭 내부에서 형성되었습니다.

 

- 트리엔트 공의회가 열린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이탈리아 트렌토)과 성당 내부.

 

 

4) 성모님 발현에 대한 공인제도 도입

 

1545년 신교의 종교개혁에 대응하고 가톨릭 내부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하여 트리엔트 공의회가 소집되었고, 여기서 성모님의 발현을 포함한 기적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1563년 교황 비오 5세가 주관한 트리엔트공의회 마지막 회기(제25차)에서 결정된 내용에 따르면 주교는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성모님의 발현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기적으로 공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주교가 공인한 상(像)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특별한 상을 교회나 어떠한 장소에도 배치할 수 없다. 또한 주교가 인지하고 공인하지 않는 한 새로운 기적을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주교는 신학자 및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은 후 진실과 경건함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의심스럽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결론을 내리기 전에 상위 주교나 주교회의의 의견을 구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교황과 먼저 상의할 수 있다.”

 

트리엔트공의회의 결정이 이루어진 후 지역의 주교는 신학자 및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아래와 같은 조사를 통하여 성모님의 발현에 대한 증거들을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 트리엔트 공의회가 진행되고 있는 장면 (출처:위키백과)

 

 

• 조사는 성모님의 발현을 직접 목격한 시현자에 대해 가장 먼저 진행합니다. 시현자가 진술하는 이야기에 진정성이 있는지, 반복적인 질문에 시현자가 일관되게 동일한 답을 하는지부터 시현자가 심리적으로 균형 잡혀있으며, 정직하고 도덕적이며, 교회의 권위를 존중하고 있는지까지도 조사합니다. 따라서 조사위원회에 의사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현자의 진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발현이 일어난 초기에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시현자의 사망 등 조사가 어려운 어떤 일이 생긴다면 성모님의 발현에 대해서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성모님의 주신 메시지가 신학적으로나 영적으로 오류가 없으며, 교회의 가르침과 교리에 일치하는지를 조사합니다.

 

• 돈을 벌려고 하는 등 교회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른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발현을 조작한 것은 아닌지를 조사합니다.

 

• 또한 건전한 종교적 헌신과 영적 결실이라는 의미 있는 결과가 있는지 조사하며, 기적과 관련한 내용이 있는지도 조사합니다. 만일 기적과 관련한 내용이 없다면 성모님의 발현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실제로 특별한 기적이 없어서 성모님의 발현으로 공인받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주교는 성모님의 발현에 대한 조사위원회의 결과를 전달받은 후 그 내용을 기반으로 발현의 진위에 대하여 다음 세 가지 결론으로 공식적인 의견을 선언할 수 있습니다.

 

• 믿을 가치가 없다(Not Worthy of Belief) : 성모님의 발현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보여주는 특성이 없으며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 신앙에 반하지 않는다(Nothing Contrary to the Faith) : 성모님의 발현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불확실하지만 신앙과 윤리에 반하지 않는다.

 

• 공인한다(Approved) : 성모님의 발현이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믿을 만한 가치에 합당하며 신앙과 윤리에도 반하는 것이 없다.

 

- 성모님이 발현한 언덕 위에 세워진 메주고리예 성모상(좌), 재건축된 야곱 성당(2000년)의 전면 광장에 있는 메주고리예 성모상(가운데), 메주고리예 야외 성전을 가득 메운 가톨릭 신자(우)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각 지역의 주교가 성모님의 발현에 대하여 발현의 진위를 결정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지만 상당 기간 동안 주교는 성모님의 발현에 대한 결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주교의 입장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판단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주교가 이러한 절차와 기준 등을 통하여 공인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성모님의 발현을 공인한 사례는 총 20건이 있습니다. 지금도 성모님의 발현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메주고리예처럼 성모님의 발현에 대한 진위 여부가 조사 중인 발현도 있으므로 성모님의 발현에 대한 공인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주교가 성모님의 발현을 공인하였다면 발현한 성모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신앙과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며, 발현 장소에서 성모님을 특별히 공경할 수 있으며 신자들이 발현의 초자연성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적 계시(성모님의 메시지)에 대한 믿음을 신자에게 요구하지 않으며 이러한 기적 현상이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대신할 수 없다고 봄으로 신자들 스스로가 성모님의 발현에 대하여 믿을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2월호, 최하경 대건안드레아(서울대교구 도곡동성당 인자하신 모후 Pr.)]

 

 

성모님 발현에 대한 기본적 이해 (3) 성모님 발현과 레지오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폴란드 레자이스크의 성모화에 봉헌한(1752년) 왕관과 면류복(좌), 교황 레오 13세가 봉헌한(1892년) 왕관을 쓰고 있는 로마 프라테 성당의 성모화 앞에서 기도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중),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아일랜드 노크 성지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 봉헌한(1979년) 황금 장미(우)

 

 

5) 성모님 발현에 대한 교황청의 인정

 

성모님의 발현에 대해서 지역 주교의 조사와 보고가 이루어졌고, 조사보고서의 결론이 발현에 긍정적이었다면 지역 주교의 공인과 상관없이 교황은 지지 의사를 표명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성모님의 발현 중 16건에 대하여는 교황이 지지 의사를 표명하였는데 이를 성모님의 발현에 대한 교황청의 인정(Recognition by Vatican)으로 받아들입니다. 교황(교황청)이 아래와 같이 행할 경우 성모님의 발현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 교황이 직접 성모님이 발현 장소를 방문하여 성모님의 발현과 관련하여 축복을 하거나 기념 미사를 집전하는 경우

나) 교황이 발현과 관련된 성모상이나 성모화에 왕관(대관식), 면류관과 면류옷, 황금 장미, 묵주 등의 선물을 전달하는 경우

다) 교황이 성모님의 발현을 기념하는 성당의 건립을 승인하거나 성당의 등급을 대성당(Basilica)으로 상향하는 경우

라) 교황이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시현자를 시복, 시성하는 경우

마) 교황이 성모님의 발현일을 축일(기념일)로 지정하는 경우

바) 교황이나 교황청이 발현에 관련하여 공식적인 성명을 발표하는 경우

 

교황이 지지 의사를 표명한 성모님의 발현은 총 16건인데 이 중에서 주교의 공식적인 공인이 없었던 경우가 5건입니다. 비록 주교의 공인이 없더라도 5건 모두 주교의 조사가 완료되어 발현에 긍정적인 보고서가 제출되었습니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교황이 관심을 갖고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성모님의 발현을 인정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예로 멕시코 과달루페, 아일랜드 노크 등은 주교의 조사를 통하여 발현에 대한 긍정적인 보고는 있었지만 정식으로 공인을 선언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교황의 방문이나 선물 등 교황이 지지 의사를 표명하였기에 인정을 받은 성모님 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테티엔르로와 필리포프의 경우처럼 교황의 지지 의사 표명이 있은 후에 주교가 공식적으로 공인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래서 생테티엔르로는 성모님이 발현한 후 344년, 기에트시바우두는 100년이 지난 다음에야 주교의 공인이 이루어졌습니다.

성모님 발현에 대한 주교의 공식적인 공인과 교황의 지지 의사 표명한 사례를 합하면 총 25건이며, 공인과 인정이 이루어졌던 과정은 아래와 같이 4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가) 주교의 조사와 보고 – 주교의 공인 – 교황의 지지 의사 표명 : 9건

뤼뒤박, 라살레트, 루르드, 필리포프, 퐁맹, 파타미, 보랭, 바뇌, 키베호.

공인제도를 도입한 후 가장 일반적인 과정으로 주교가 공인을 선언하고, 교황이 이를 지지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보여줍니다.

 

나) 주교의 조사와 보고 – 교황의 지지 의사 표명 – 주교의 공인 : 2건

생테티엔르로, 기에트시바우두.

 

다) 주교의 조사와 보고 – 교황의 지지 의사 표명 : 5건

과달루페, 레자이스크, 실루바, 로마 프라테 성당, 노크.

 

라) 주교의 조사 및 보고 – 주교의 공식적인 공인 : 9건

지역 주교만이 공인을 한 성모님의 발현은 9건이나 되지만 발현 지역명을 볼 때 지금 보기에도 다소 생소한 사례가 많습니다. 이 9건의 내용을 여기서는 다루지 않기 때문에 발현한 성지의 명칭만을 아래에 간단히 나열합니다.

 

① 에코도르 키토(1594년) ② 프랑스 케리앙(1692년) ③ 이탈리아 몬타냐가(1729년) ④ 미국 위스콘신주 챔피언(1859년) ⑤ 이탈리아 카스텔페트로스(1888년) ⑥ 일본 아키타(1973년) ⑦ 베네수엘라 베타니아(1976년) ⑧ 니카라과 쿠아파(1980년) ⑨ 아르헨티나 산 니콜라스(1983년)

 

벨기에 보랭 성지를 순방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85년)(좌), 프랑스 루르드 성지를 순방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83년과 2004년)(중), 실루바 성모 발현 기념 경당에서 기도하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93년)(우)

 

 

미국에 있는 테이턴 대학교의 국제 마리아 연구소는 성모님이 사라고사에서 발현하신 후 최근까지 무려 2,500건이나 발현하셨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렇지만 공인이나 인정을 받은 성모님의 발현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단 25건에 그치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음에도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지 못한 경우가 있을 것이고,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시현자가 사망하거나 다른 이유로 진행되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다른 불순한 목적으로 성모님의 발현을 조작한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2,500건의 발현을 다 알아보기보다는 우선 교황(교황청)이 인정한 16건의 성모님의 발현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16건의 성모님 발현은 우리에게 성모님의 중요한 역할과 발현의 풍성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잘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성모님께 대한 공경

 

성모님께 대한 공경이 불처럼 타올랐던 경우가 역사상 여러 차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700년 전에 집중적으로 건립되었던 고딕성당과 100년 전인 1900년 전후로 발생한 성모 신심 운동입니다.

 

1000년이 무사히 지나가고 이민족의 침입이 사라지자 유럽 사회가 안정화되면서 농업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였습니다. 숲을 개간하여 농토가 급속도로 증가하였고, 농기구가 개량되자 농작물 생산량이 급증했습니다. 이에 농촌과 도시에 인구가 폭증하면서 농촌 인근의 도시마다 고딕성당을 경쟁적으로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좌) 아미앵의 노트르담 대성당(중) 사르트르의 노트르담 대성당(우)

 

 

특히 그 당시 농촌의 대지를 지키고 생산을 관장하는 토착신은 대부분이 여신이었는데 그리스도교가 농촌으로 확산하면서 이 역할이 성모님으로 옮겨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그 당시 고딕성당은 거의 대부분 성모님께 봉헌되었고 특히 프랑스의 경우 성모님을 의미하는 ‘노트르담’이 성당 이름에 붙여졌습니다. 고딕성당의 최고봉으로 여기는 파리, 아미앵, 사르트르의 경우 이런 흐름에 따라 ‘노트르담 대성당’이 되었습니다.

 

교황청의 인정을 받은 성모님의 발현 16건 중 11건이 1830년부터 100년 동안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1830년 뤼뒤박 발현 12년 후 로마, 그 4년 후 라살레트, 12년 후 루르드, 8년 후 필리포프, 5년 후 퐁맹, 6년 후 기에트슈바우트, 2년 후 노크까지 쉴 틈 없이 성모님 발현이 이어졌습니다. 또한 성모님이 루르드에서 18번이나 발현하셨듯이 한 번만 발현하시는 것이 아니기에 그 당시 유럽 사람들은 성모님의 발현 속에서 살았다고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1854년 교황 비오 9세는 성모님이 원죄 없이 잉태되었음을 가톨릭교회의 교의로 선포하였습니다. 이 무염시태 교의까지 널리 퍼지자 성모 신심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이를 성모 신심 운동이라고 합니다. 가톨릭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이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가 바로 레지오 마리애로 보고 있습니다. 이름조차 성모님의 군대이니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3월호, 최하경 대건안드레아(서울대교구 도곡동성당 인자하신 모후 Pr.)]

 

* 최하경 대건 안드레아는 2011년에 레지오 단원으로 입단한 후 Pr. 단장과 Cu. 부단장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수년간 성모님의 발현 성지를 순례한 후 2021년에 ‘세계의 성모님 발현 성지를 찾아서’를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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