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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49: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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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14 ㅣ No.799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49)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①


평범함 속에서 빛나는 ‘영적 어린이의 길’

 

 

1894년 아녜스 원장 수녀 축일을 기념한 연극에서 잔다르크 역을 맡은 소화 데레사.

 

 

평범함 속에서 빛나는 비범한 영성

 

성녀 소화 데레사는 살아생전에 3편의 자서전 원고와 266통의 편지 그리고 54편의 시, 21편의 기도, 8편의 희곡을 남겼습니다. 그 중 특히 「자서전」은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현대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증거하고 자신이 걸었던 ‘영적 어린이의 길’을 걷도록 깊은 영감을 준 명작으로 손꼽힙니다. 

 

사실, 24살이라고 하는 짧은 생애, 9년이라고 하는 수도생활을 보면, 과연 소화 데레사에게서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까 의문을 던지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그런 어린 수녀에게 뭐 별거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곤 합니다. 또 워낙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이 오래전부터 신부님, 수녀님들 사이에 대중화되다 보니까 그분들이 권해서 그 책을 읽어보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자서전」을 읽어보고는 대부분 그냥 평범한 어린 소녀의 어린 시절 추억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면서 별거 없더라 하는 평들을 하곤 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녀가 「자서전」에서 풀어낸 자신의 일생, 그리고 그 일생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평이한 말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너무도 익숙하고 쉬운 말이기 때문에 특별한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평범함 이면에는 성성(聖性)을 향한 깊은 예지(叡智)가 번뜩이고 있습니다. 

 

교회가 한 사람을 성인품에 올릴 때는 상당히 많은 면에서 검증을 하게 됩니다. 그것도 먼저 성인품에 올리지 않고 하느님의 종, 가경자, 복자, 성인 순으로 단계를 밟습니다. 교회는 후보자를 각각의 품계에 올릴 때 그의 생애와 영성을 두고 수많은 검증 절차를 밟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성직자, 수도자, 학자들이 시복, 시성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런데 소화 데레사는 성녀이자 선교사업의 수호자가 됐습니다. 거기다 교회 박사라는 칭호까지 받았습니다. 이는 성녀의 생애와 영적 가르침이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 보편 교회 전체에 큰 유익을 주고 있음을 교회가 보증한 셈입니다. 나이가 젊다고 우매한 것도, 많다고 지혜로운 것도 아닙니다. 성성의 길에는 생물학적 나이가 별로 소용이 되지 못합니다. 지혜서 4장 7-9절에는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때 이르게 죽더라도 안식을 얻는다. 영예로운 나이는 장수로 결정되지 않고 살아온 햇수로 셈해지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예지가 곧 백발이고, 티 없는 삶이 곧 원숙한 노년이다.”

 

 

대성인이 되고 싶은 작은 거인

 

소화 데레사는 어려서부터 대성인이 되고 싶은 원의를 품었습니다. 소화 데레사의 영성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소화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겠다고, 그것도 아주 큰 성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예컨대, 다섯 자매 중 제일 맏언니인 마리아 수녀가 당시 원장인 아녜스 수녀(폴리나)에게 요청해서 소화 데레사로 하여금 1895년 1월부터 이듬해인 1896년 1월까지 쓰게 한, 「자서전 A」에는 성녀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거기서 소화 데레사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상본을 들여다보는 것과 독서를 많이 좋아했다고 술회했습니다. 

 

실제로 소화는 15살에 가르멜에 입회하기 전까지 독서에 대한 매력에 푹 빠져 있었고 많은 책을 읽었는데, 그중 가장 인상에 남은 책으로 「영웅전」을 꼽았습니다. 소화는 그 책에 소개된 많은 영웅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 역사상 대표적인 여걸(女傑)로 손꼽히는 잔다르크에게 속된 말로 필이 팍 꽂혔습니다. 소화는 영국의 침공으로 인해 국가가 일척간두의 위기에 있을 때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구하고 모함을 받아 장렬하게 순교한 잔다르크의 영웅적인 이야기를 읽으며 그를 본받고 싶은 커다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영감과 열정을 받아 자신도 그런 큰 영웅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한 마디로, 소화에게 있어 잔다르크는 ‘롤 모델’이었습니다. 성녀는 훗날 죽기 1년 전에 마감한 자서전 A에서 이 점을 언급하며 이 체험을 늘 일생의 가장 큰 은혜 중의 하나로 여겼다고 고백했습니다. 소화는 잔다르크라는 국가적인 영웅을 통해 성교회의 큰 영웅이 되고 싶다는, 다시 말해 성교회를 떠받치는 대성인(大聖人)이 되고 싶은 원의를 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화 데레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영광을 위해서 났다는 것을 생각하고 또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찾는 중에… 그런 생각을 제게 일으켜 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제 영광이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고 오직 큰 성녀가 되는 데 있다는 것을 이해시켜 주셨습니다. … 저는 항상 ‘큰 성녀’가 되겠다는 한결같이 대담한 자신을 느끼고 있습니다.”

 

소화 데레사는 이 글의 수취인인 아녜스 원장 수녀, 즉 둘째 언니인 폴리나가 가르멜에 입회하기(1882년 10월 2일) 전의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소화 데레사가 큰 영웅이 되겠다는 원의를 품기 시작한 것이 다름 아닌 9살 때의 일임을 보여 주는 증언입니다. 훗날 소화 데레사가 치열한 수도 생활을 통해 발견한 ‘영적 어린이의 길’은 그가 9살 때 품기 시작한 대성인이 되겠다는 그 원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4살이라는 앳된 나이에 타계한 젊은 가르멜 수녀, 그러나 소화 데레사는 작은 거인이라 일컬어질 만큼 현대 교회에 많은 영적인 빛을 비춰주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헌장인 「인류의 빛」 5장 40항은 “어떠한 신분이나 계층이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으로 부름 받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130년 전 지구 반대편에 살았던 소화 데레사는 오늘 우리로 하여금 천상을 향한 거룩한 대의(大義)를 품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성녀의 전구의 힘입어 성인이 되고픈 원의를 일으키시기 바랍니다. 그 원의가 부족하다면, 그 원의를 갖고 싶은 원의를 허락하시도록 주님께 청하십시오.

 

[평화신문, 2016년 5월 8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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