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기도 배움터: 성경구절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묵상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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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16 ㅣ No.683

[기도 배움터] 성경구절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묵상기도’



녹음이 짙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에 가까이 초대되는 예수 성심 성월을 지내고 있다. 해마다 예수 성심 성월이 오고가지만 때때로 남다른 전례시기를 맞이할 수가 있다. 가족 안에서 본당 공동체 안에서 일터에서 우리는 늘 관계 속에 살아가는데, 따뜻한 무언가를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어떤 자매가 내게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한 이 한 마디 말이 나를 새롭게 각성시키는 계기가 됐다. 나도 똑같이 6월을 맞고 또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아름다운 교정을 수없이 오가지만, 한 학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데 정신이 온통 쏠려 있음을 각성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도의 방법을 나누는 이 지면에 녹아 있다. 지난 달에 이어 성경으로 묵상하는 방법을 나누려 하는데,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6월이 내게 살아 있는 계절로 또 온 몸으로 초록빛을 느끼는 계절로 각성이 되듯, 우리의 기도도 그러하다. 곧 우리는 성경을 읽다가 어느때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만난다. 물론 이는 은총이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색다르게 다가오는 성경구절을 발견할 때, 이 구절을 지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이전에 느끼지 못한 성경내용에 관해 통찰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방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는 성경구절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기도를 ‘묵상기도’ 또는 ‘성독’(聖讀; Lectio Divina)이라 부른다. 묵상기도를 위한 성경본문으로 시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시편 27편을 읽는 가운데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27,1) 하는 말씀이 마음에 와닿아 계속 이 말씀만 반복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구약성경 가운데 어떤 본문을 읽다가 한 구절을 가지고 반복하여 기도하거나 또는 매일미사의 독서와 복음을 읽으며 묵상기도를 해도 좋다. 좀더 구체적인 묵상기도의 예로 마태오 복음 11장 25-30절의 말씀에 잠겨보기로 한다. 지난 호에서도 여러 번 강조하였듯이 모든 기도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기도의 준비, 곧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성경을 열 번 이상 읽는 일이며, 늘 그러하듯이 기도를 시작할 때 하느님께 은혜를 구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주님, 오늘도 이미 이 성경 말씀을 통해 제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주님께서 저에게 어떤 깨우침을 주실지, 제가 깨어서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무엇이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 제게는 가장 좋은 것이 될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한다.

이러한 청원기도를 한 뒤 약 10분 정도 잠심을 하고 이어서 자신이 기도하려고 준비한 성경본문을 천천히 읽어나간다. 그러다 문득 마음에 드는 성경구절을 발견할 수가 있다. 가령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마태 11,28) 하는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 “무거운 짐”이라는 말 마디가 마음속에서 크게 울려퍼지며 문득 고3인 딸이 날마다 대학입시라는 무거운 짐을 진 채 걸어가는 느낌이 올 수 있다. 이 때 주님께 자신의 딸과 이 땅의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또는 무거운 짐을 진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 때도 역시 주님께 자신의 짐에 관해 말씀을 드리며, 주님께서 초대하신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는 말씀에 기대어 쉴 수도 있다.

이어지는 성경구절인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하는 말씀을 천천히 읽어나갈 때 ‘온유’, ‘겸손’이라는 단어가 마음 언저리에 닿았다 떨어졌다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데, 특히 ‘겸손’이라는 단어는 빨리 지나가고 싶어하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왜 그러한가? 이는 일상가운데 ‘겸손’과 관련된 어떤 체험 때문에 그 단어는 직면하고 싶지 않은 데서 온다. 이렇듯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있는 그대로 초대하시므로, 어느 때 우리는 성경구절에 기대어 쉬기도 하고, 어느 때는 직면하기 어려운 자기 마음의 상태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성경구절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묵상기도는 앞서 실습해본 관상기도에서처럼 특정한 장면 하나하나를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내용 가운데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묵상하는 것이다. 한 구절 내지 한 마디 말을 마음에 품고 하느님께 청원하고 기다리는 등 이를 내내 반복하면서 통찰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성 이냐시오는 어떤 기도든 무엇을 얻기 위하여 또는 성찰하기 위하여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어느 한 두 말마디에서 생각할 만한 좋은 소재를 발견하고 맛과 위로를 느끼면 거기서 시간이 다 지나가게 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말 것이다(성 이냐시오 영신수련 254항). 그러나 각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서두르기도 하고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이 또한 기도에서는 하나의 주제가 될 수 있다. 가령 “왜 나는 수없이 반복을 해도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을까?”하는 의구심이 일어날 때도 그것 자체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초대일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그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언어 속으로 초대받기 때문에, 이때에도 역시 하느님께 기도해야 한다. 곧 “주님, 당신의 말씀을 반복하는데 제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 드리면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평온한 마음을 갖도록 제게 믿음을(또는 인내심을) 주십시오”하고 기도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도를 성 이냐시오의 묵상기도라 하는데, 이는 성경말씀을 가지고 깨어있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성경구절을 반복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 앞에서 깨어 있기 위함이다. 다른 잡념과 두려움과 걱정이 우리를 혼란하게 할지라도, 어떤 말씀이 마음에 와닿으면 바로 그 말씀과 더불어 청원기도를 하는 것이다.

“모든 어둠의 순간에, 오 하느님, 이 모든 것이 제 실체의 중심을 파고들어 당신 안으로 저를 데려가기 위하여, 제 존재의 본질을 고통스럽게 갈라놓는 분이 당신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허락하소서.” -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는 은총」 中

* 이명기 수녀는 1986년 성심수녀회 입회, 첫서원 후 성심여고에서 교육사도직 수행, 종신서원 후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대학원에서 문학박사 취득, 2006년부터 현재까지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에서 기초교양필수과목인 ‘인간학’과 ‘영성’을 가르치고 있다.

[외침, 2015년 6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글 이명기 수녀(성심회, 가톨릭대 성심교정 ELP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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