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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국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의 역사: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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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07 ㅣ No.826

한국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의 역사 -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을 중심으로

 

 

1. 서론

 

한국에서 아동 복지의 역사는 외국 선교사나 수도회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재도 전국의 영아 시설과 육아 시설의 운영에 있어서 그리스도교가 전체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1) 천주교의 사회 복지 활동을 분야별 분포도를 조사하면, 아동 · 청소년 분야가 전체 기관의 2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2)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아동 복지 시설 문제에 관한 한, 천주교 아동 복지는 한국 사회 전체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라 가족의 형태와 기능도 본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1997년 IMF로 인한 경제위기는 대량실업 문제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고, 가장의 실직으로 인한 부부갈등, 이혼, 아내 가출, 자살, 생활고로 어린 자녀들이 유기되고, 보육시설에 보내지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현재도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는 실업, 이혼, 가출, 약물중독, 가장의 사망, 사고, 자살로 인한 가족해체 현상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아동 복지 시설의 요구는 현재도 감소되지 않고 있다.3) 2000년 이후 국가가 아동복지 시설에 대한 지원 수준을 지속적으로 증가시켜 왔고 많은 개선이 이루어져왔다. 그리고 요보호 아동을 중심으로 하는 아동 복지 서비스 체계도 발전을 지속하여 왔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다양한 문제들이 있다.4)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에서 근대적인 영유아 보육사업과 아동 복지사업의 출현 경위와 그 역사적 전개 과정에 관해서 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근대적인 영유아 보육사업과 아동 복지사업이 천주교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영유아 보육 학자들과 사회 복지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5) 천주교 아동 복지 시설은 초기 아동 복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국가가 아동 복지에 있어서 모든 자원과 서비스를 책임질 수 없기에 현재도 종교의 아동 복지 시설의 역할과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이제까지 연구들의 경향을 보면, 한국 천주교 사회 복지 사업에 관한 연구,6) 조선 천주교회의 아동 복지에 관한 연구,7) 한국 천주교 사회 복지사 연구,8) 가톨릭 무료 노인복지 시설의 운영 실태와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9) 한국 가톨릭 여자 수도회의 사회 복지 사업에 관한 연구,10) 조선후기 가톨릭 아동 복지 사업 전개와 성격에 관한 연구,11) 가톨릭 사회 복지 시설 종사자의 직무 만족도 연구12) 등이 있다. 이에 비해서 아동 · 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천주교의 사회 복지 시설만을 특화하여 그 역사를 연구한 것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한국 천주교의 아동 · 청소년 시설을 중심으로 그 역사에 관해서 연구하고자 한다.

 

먼저 시기 구분의 문제를 분명하게 정리하고 들어가겠다. 샤를르 달레(Charles Dallet)는 한국 천주교 역사를 이승훈이 영세를 받은 1784년부터 1827년 정해박해까지와, 조선교구가 설정되는 1831년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2시기로 구분했다. 유홍렬은 한국 천주교 역사를 예수회 가스파르 빌렐라 신부가 일본에서 조선에 선교 계획을 세웠던 1556년부터 해방 후 교회 발전까지 10시기로 구분하였다. 이에 비해서 사회 복지 발달사의 관점에서 한국 천주교사의 시기를 구분한 것은 전창범과 심흥보였다.

 

전창범은 ① 1784년 한국 천주교회 성립부터 1886년 선교 자유까지 제1 단계 : 박해시대, ② 선교 자유부터 1945년 해방까지 제2 단계 : 문호 개방과 일제강점기, ③ 해방 이후 1975년 인성회 설립 전까지 제3 단계 : 자치교회의 발전기, 그리고 ④ 1991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까지 제4 단계 : 인성회 활동시기 등 4시기로 구분했다. 심흥보는 ①1777년부터 1886년까지 초기 교회 신앙정립 과정의 활동기, ② 1886년부터 1910년까지 제2기 종교자유 획득과 수도회 결성 이후 활동기, ③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제3기 일제식민시기의 활동기, ④ 1945년부터 1975년까지 제4기 해방 후 활동기, ⑤ 1975년부터 1991년까지 제5기 인성회 조직 이후의 활동기, ⑥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제6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조직 이후의 활동기 등 6시기로 구분했다.13)

 

본 연구는 역사학에서 한국 근 · 현대사를 구분하는 관점14)과 천주교의 외부를 구성하는 객관적 환경 변화와 수용주체들의 능동적 대응측면을 동시에 구분하는 방법15)을 채택하였다. 그래서 초기 한국 천주교에서의 아동 복지 태동(1784~1830), 근대 한국 천주교의 아동 복지 사업과 활동(1830~1910), 일제 식민시기 한국 천주교의 아동 복지 사업과 활동(1910~1945), 해방 후 한국 천주교의 아동 복지 사업과 활동(1945~1975), 인성회(仁成會) 조직 이후 아동 복지 사업과 활동(1975~1991),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조직 이후 한국 천주교의 아동 · 청소년복지 사업과 활동(1991~2000), 대희년 이후 한국 천주교의 아동 · 청소년복지 사업과 활동(2000~현재) 등으로 7단계의 시기로 구분하여 한국 천주교에서 아동 · 청소년 복지 발달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한국 천주교의 아동·청소년 복지 발달사

 

1) 아동 복지의 태동(1784~1830)

 

조선사회에서 가족의 부자관계에서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일방적인 ‘효’(孝) 의무만을 강조하는 규범이었기에16) 아동인권은 거의 인정되지 않았다. 조선후기에 접어들어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고, 연속된 자연재해로 대기근, 대규모 전염병 확산 등으로 인해 사망자가 수십 만 명에 이르는 상황이 발생하자, 그 일차적 피해자는 아동이었다.17) 질병과 영양실조에 따른 아동 사망률은 어른보다 높았고, 기아(棄兒)의 숫자도 조선후기에는 더욱 증가하였다. 정조 7년(1783년)에 자휼전칙(字恤典則)18)을 반포하여 행걸아(行乞兒)와 유기아(遺棄兒)를 구제하려고 하였으나, 법령이 반포된 후 1년 정도 지나 유명무실하게 되었다.19)

 

한편 17세기 실학자들의 서학 운동을 배경으로 하여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신앙을 전파함에 따라 한국 천주교가 설립되었다. 그 뒤 거의 1세기 동안 박해를 받았음에도20) 조선인 신자들은 교회가 가르친 인간 존엄성과 평등성을 구현하기 위해서 신분을 초월하여 재산을 공동으로 사용하였고, 가난한 자들에게 애긍(哀矜)을 하였고, 자기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박해 중에도 시대적 상황으로 생긴 과부, 홀아비, 고아, 빈민, 노인 구제사업, 의료사업, 문맹퇴치 교육활동 등 사회 복지 활동을 전개하였다.21)

 

한국 천주교 초기 아동 복지 활동은 어린이 인격에 대한 인식 확산과 영유아, 기아, 고아에 대한 구제활동을 펼쳤다. 신자들의 고해성사 준비서인 《셩찰긔략》에는 부모가 자녀들의 양육과 관련하여 준수해야 할 의무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22) 천주교회 설립 초기부터 신자들은 천주교 인간관에 바탕을 두고, 기아들과 고아들을 구제하는 영유아 보육사업과 아동 복지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영유아, 고아, 기아들의 구제활동은 한국 천주교 초기에는 평신도단체인 명도회(明道會)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23)

 

2) 근대적 아동 복지 사업의 개시(1830~1910)

 

1830년대 프랑스 선교사들의 입국을 계기로 체계적인 영유아 보육 사업과 아동 복지 사업이 조직화되고 확립되었다. 1886년 한불수호조약체결 이후 천주교는 이전부터 수행하던 빈민구제, 고아구제, 환자치료 등 사회 복지 사업을 전개하였다.24) 특히 천주교는 고아들을 돌보는 사업을 시작하였고, 근대적 아동복지의 효시가 되는 최초의 근대적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시기 천주교 사회 복지의 특징을 전체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855년부터 제도화된 천주교 영유아 보육 사업, 기아와 고아들의 구제활동을 인간 존엄성에 두었고, 근대적 영유아 보육과 아동 복지 사업의 효시를 이루었다.25) 둘째, 한국 최초로 근대적 아동 복지 시설인 고아원과 탁아소를 운영했고, 아동들의 문맹퇴치와 기술교육에 힘썼으며, 시약소를 설치하여 치료를 병행하였다.26) 셋째, 아동 · 청소년 교육 시설을 설립하여 근대적 교육을 실시했다. 이런 교육 시설은 1910년에 78개교나 되었다.27) 넷째, 한불조약 이후 선교와 아동 복지 사업을 위해 여러 수도회를 초청했지만, 사회 복지 사업의 주체는 성당 중심이었다.28)

 

(1) 아동 복지 사업과 활동

 

한국 천주교에서는 1830년대 프랑스 선교사들의 입국을 계기로 체계적인 고아 구제 사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명도회(明道會, 평신도단체)에 의해 고아 사업이 시작되었고, 1852년 메스트르(Maistre) 신부는 초기 여신자들과 함께 고아들을 자원봉사 형식으로 돌보다가 프랑스 영해회(?孩會, Sancta Infantia) 본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양육비로 매월 8프랑을 지불하고, 1855년에는 한국에도 영해회 기관을 설립하였다.29)

 

영해회는 기아, 고아, 부양능력이 없는 가정의 아이를 대상으로 자립 기술을 실시하여 12세가 되면 본인 자유의사로 진로를 선택하게 하였고, 아동 양육에 철저한 지도와 감독을 하였다는 점에서 근대 아동 복지 사업의 시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30) 하지만 1866년 병인박해로 영해회의 영유아 보육 사업과 기아 고아 구제 사업은 중단되었다.

31)

 

(2) 근대적인 고아원 설립과 고아 보육 사업

 

1880년 블랑 신부는 그동안 중단되었던 영유아, 기아들을 위한 아동 복지 활동을 재개하였다. 1885년 서울 곤당골(美洞, 현재 을지로 1가 주한 미국대사관 서측)에 세운 고아원은 근대 민간 사회 복지 시설의 효시가 되었다.32) 1886년 영해회 고아원의 고아가 250명을 넘자, 당시 블랑 주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들을 초청하여 1894년 제물포 성당 고아원을 운영하도록 위탁하였는데, 현재 인천 해성보육원이 그 후신이다.33)

 

당시 어려운 재정 중에도 고아 사업에 많은 힘을 기울였는데,34) 당시 고아원에서는 의식주 해결과 함께 시약소(施藥所)를 병설하여 고아들의 건강을 돌보고 치료도 하였다.35) 그리고 한글, 한문 등 교육사업과 재봉, 수예, 상업, 목공, 철공 등 기술교육도 실시하였다.36) 당시 아동 복지 사업이 소극적이었으며 인적 및 물적 측면에서 많은 제약이 있었음에도, 소외된 어린이들의 인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37)

 

(3) 근대적인 아동 · 청소년 교육 복지

 

1882년부터 명동 성당에 인현서당, 1895년 중림동 성당은 약현서당을 설립하여 한문과 교리교육, 실업교육을 실시하였다. 1906년 약명(藥明) 남자학교, 가명(加明) 여자학교를 세워 현대적인 교육을 실시했다.38) 1898년 황해도 매화동 성당은 봉삼학교, 1899년 인천 제물포 성당은 보육원과 학교를 개교했고, 평양 성당은 1905년에 기명학교를, 그리고 1906년에는 성모여학교를 열었다. 진남포 성당은 1900년에 돈의학교를 세웠는데, 2대 교장 안중근(安重根, 토마스)을 맞아 민족운동에 크게 기여하는 전통학교가 되었다.39)

 

1901년 수원 왕림 성당에 세워진 삼덕학교(三德學校)는 1981년에 폐교되고, 현재 수원가톨릭대학이 들어서게 되었다.40) 1907년 서울에 세워진 소의학교는 현재 동성중고등학교가 되었다.41) 장호원 성당은 1907년 매괴학당을 설립하고, 오늘날 매괴중고등학교가 되었다.42)

 

3) 일제 치하 아동 복지 사업(1910~1945)

 

1910년 한일합방으로 사회 복지 사업과 활동은 일본의 간섭과 제한을 받았다. 특히 시약소나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전문자격증을 요구했기에 사회복지 활동이 많이 위축되었다.43) 이 시기 천주교 사회 복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근대적 교육을 통해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향한 정신계몽 운동에 기여했다.44) 둘째, 아동 · 청소년을 위한 교육은 일제의 탄압으로 학교 수가 감소했다.45) 셋째, 각 성당에서 실시해 오던 시약소가 체계적인 의원 수준으로 확장 개원했다.46) 넷째, 청각 장애아들을 위한 복지를 시작했다.47) 다섯째, 수도회의 진출로 수도회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사회 복지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 복지 사업의 주체는 성당과 수도회가 중심을 이루었다.48)

 

(1) 보육원

 

영해회 고아원은 1930년부터 유치반, 초등반, 중등반으로 나뉘었는데, 1915년 대구 계산동 성당의 여자 고아원도 영아부, 유아부, 아동부 등으로 분리하여 운영하였다.49) 1926년 평남 영유 성당은 시약소와 고아원을, 함남 청진 성당은 빈민학교를 세웠으며, 1935년 평양에서는 영해고아원, 1936년 포항에서 성모자애원이 설립되었다.50) 이 시설들은 근대적 아동 복지 시설의 효시이자 최초의 시약소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면에서는 재정능력의 부족으로 개신교에 비해서 미흡하다.

 

(2) 어린이집, 탁아소, 유치원

 

1918년 평남 진남포 성당은 마리아유치원을 설립 운영하였으나 1945년 초 일본의 강압으로 폐원되었다. 평북 의주 성당은 1921년 해성유치원, 1926년 시약소와 고아원, 그리고 황해도 은율 성당은 1923년 성모유치원,51) 서울 명동 성당은 1925년 계성보통학교에 유치반 등을 세웠다. 1926년 황해도 매화동 성당은 봉삼유치원, 1927년 서울 약현 성당은 가명유치원, 원산 성당은 해성유치원, 1934년 원주 성당은 소화유치원, 1937년 사리원 성당은 봉화유치원, 인천 성당은 박문유치원, 혜화동 성당은 혜화유치원을 설립하였고, 혜화유치원의 초대원장은 장면이었다.52) 이북의 유치원들은 해방 후 1945년 공산정권으로 인해 폐쇄되었다.53)

 

(3) 아동 · 청소년 교육 복지

 

1925년에 인천 사립 박문보통학교가 세워졌으며, 1910년 마산에서는 성지학원(현 성지여자중학교), 진남포 성당에서는 지정(智貞)여학교가 개교했다.54) 1911년 서울 혜화동에 숭신학교를 세워 사범교육을 실시하였고, 1912년 황해도 매화동 성당에서 봉삼여학교, 안성 성당에 안법학교, 1916년 제주도에 신성초등학교를 개교하였다.55)

 

매괴학당은 1912년 여학교도 설립하였고, 1922년 원산 성당은 해성보통학교와 소의학교를 열었다. 1923년 충북 고마리 성당에서는 숭애의숙학교, 1924년 연길 성당은 보록학교를 개교하였으나 1945년 소련군에 의해 폐쇄되었다.56) 인현서당은 1941년 계성국민학교가 되었다.57) 원산 성당의 호수천신학교는 1941년 6년제 정식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1927년 평북 영유 성당은 영유여자들을 위한 기예학교를 운영하였다. 평양에 세워진 성모보통학교는 해방 후 공산당에 몰수당하고 폐쇄되었다.58)

 

1931년 원주 원동 성당에서 세운 사립학교는 1937년 일제에 의해 폐쇄되었고, 1932년 연길 상시 성당은 해성학교,59) 1933년 함북 회령 성당은 명악학교, 1934년 수원 북수동 성당은 소화초등학교, 1935년 함남 내평 성당은 해성보통학교, 1936년 함남 고산 성당은 해성학교, 1936년 함남 흥남 성당은 해성학원,60) 1936년 평양 대신리 성당은 동평학교를 열었으나, 동평학교는 해방 후에 폐교되었고,61) 1944년 서울 명동 성당은 계성여자중 · 고등학교를 세웠다.62)

 

1910년에 원주 성당은 야학학교를 운영하였고, 서울 혜화동에는 숭공학교가 세워져 실업교육을 실시하였다63) 1916년에는 황해도 사리원 성당이 성모성심학원을, 1921년 원산 성당은 야학강습소를, 1929년 황해도 은율 성당은 해성야학원을, 덕원 성당은 각 공소마다 야학교를 설립하였다.64) 1931년 평남 진남포 성당은 성심학원과 5곳의 야학교, 1934년 평남 안주 성당은 성모학원, 1937년 평북 마전동 성당은 성심학교,65) 1939년 황해도 사리원 성당은 명성학원, 1940년 평북 마전동 성당은 야학을 개설하였다.

 

아울러 일제 치하 천주교의 아동 복지 사업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장애인 복지였다. 즉 1930년 초 원산 성당에서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수녀들이 청각 장애 어린이들에게 수화로 교리를 교육하였던 것이다.66) 한국에서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화 교육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상세하게 연구된 바가 없다. 그러므로 1930년 초에 이미 청각 장애 어린이들에게 수화를 가르쳐서 교리교육을 하였다는 기록은 장애인 복지의 역사에서도 상당히 주목할 일임에 분명하다.

 

4) 해방 후 아동 복지 사업(1945~1975)

 

이 시기는 사회 복지 측면에서 근대 사회 사업 방식을 도입하면서, 해외 원조기구와 교황청 수도회의 활동이 두드러졌고, 아울러 교세 증가로 인한 자원동원력이 높아지면서 아동 복지가 발전하는 단계였다. 이 시기 천주교 사회 복지의 성격을 결정한 요소는 한국 전쟁에서부터 1970년대 이후까지 계속된 해외원조,67)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75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인성회 설립 등이 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사회 복지 투자가 늘어나 전체복지에서 종교 복지의 비중이 점차 감소하게 된다.68)

 

이 시기 천주교 사회 복지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톨릭 구제회, 미국 가톨릭 여성연합회,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 등 외원기관과 교황청 수도회들의 자원이 천주교 사회 복지의 토대를 구축하였다.69) 둘째, 교회 신자의 양적 증가와 교회 자립 능력이 커지면서 가톨릭 노동운동, 가톨릭 농민운동, 도시빈민운동, 민주화운동 등 인권 복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70) 셋째, 한국사회의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아동 · 청소년 복지, 노동 복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71) 넷째, 국제 수도회의 진출로 원조와 서구 활동 수도회의 발전된 사회사업 기술을 도입할 수 있었다. 사회 복지에서 수도회가 담당하던 역할은 후반으로 올수록 그 비중이 감소한다.72) 다섯째, 사회 복지가 한국 교회 자체의 노력보다는 외생적인 변수들에 의해서 발전하였기 때문에 자립의 토대가 빈약하고, 교구와 수도회 중심으로 되어 평신도들의 역할은 수동적이었다.73)

 

(1) 보육원

 

해방과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전쟁고아들과 걸식아동들이 크게 증가하자, 교회는 고아원을 많이 설립하였다. 그러나 고아의 수가 점차 줄어들면서, 그 대신 양로사업이나 정신박약아, 장애인 등과 같은 특수 사회 사업이 대두되었다.74)

 

1946년 서울 잠원동에 세워진 성심원, 그리고 부산 범일동 성당이 운영한 소화보육원을 시작으로 1955년까지 10개의 고아원들이 설립되었다. 1963년 대구에 한국 SOS어린이마을, 1972년 까리따스 수녀회가 전남 영암에 탁아소, 1973년 부산과 1975년 서울 응암동에 메리놀 수도회 소(알로이시오) 신부가 고아들을 위한 소년의 집을 설립하였다.75)

 

(2) 유치원

 

1952년 이후 전주 대동 성당은 성모유치원, 대구 범어동 성당은 샛별유치원, 대전 대흥동 성당은 소화유치원, 하양 성당은 소화유치원, 영등포 성당은 샛별유치원, 구로동 성당은 샛별유치원 등 6개의 유치원을 개원하였다.76) 1970년 이후에는 부산에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분도유치원, 인보 성체 수도회가 성남에 철거민 자녀들을 위한 새싹어린이집,77) 군인가족자녀들을 위해 장미유치원,78) 한국 순교 복자 수도회가 복자유치원,79) 1972년 노틀담 수녀회가 부산 아미동에 가난한 가정과 직장의 자녀들을 위해 노틀담유치원, 1975년 오산에 오산어린이집을 개원하였다.80)

 

(3) 아동 · 청소년 교육 복지

 

해방 이후 북한 지역에 있던 모든 천주교 교육기관들은 공산정권에 의해 폐교되었다. 원산 성당에서 1945년에 개교한 효성가정여학교는 1947년 폐교되었다. 이 시기에 개교한 학교를 보면, 제주도에서는 신성여자중학원을, 1953년 서정리 성당은 효명중학교와 실업계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81) 1953년 매괴학교는 남자고등학교를 신설하였고,82) 1954년 부산에 데레사여자중고등학교, 1955년 왜관의 순심중고등학교를 인수하고, 1957년부터 1964년까지 성심여자중학교, 성심여자고등학교, 성심초등학교, 그리고 서울과 춘천에 성심여자대학교가 개교하였다. 그리고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봉천동에 천막학교를 세워 1965년부터 1968년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했다.83) 1958년 광주에서 살레시오여자중학교, 1961년 살레시오여자고등학교, 1963년 살레시오초등학교, 1960년 천안에 복자여자중학교, 1963년 복자여자고등학교, 1962년 논산에 대건중고등학교, 해성여자중고등학교, 1963년 쌘뽈초등학교, 1964년 부산에 성모여자고등학교, 전주에 가톨릭여학생관, 1965년 대전성모여자중학교와 초등학교, 1970년 상지여자실업전문학교, 1967년 목포에 성신간호전문대학, 1968년 영등포 성당은 애전고등공민학교, 1974년 용인에 효신실업학교, 1975년 소년의집 중학교와 전자기계공업고등학교를 개교하여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도록 하였다.84)

 

(4) 아동 · 청소년을 위한 복지

 

아동 · 청소년을 위한 야학과 기술 복지를 살펴보면, 1960년 성가소비녀회가 도시와 농촌 청소년을 위한 나자렛기술학원, 1962년 까리따스 수녀회가 까리따스 문화복장학원, 1969년 살레시오 수도회가 요한보스코 기술교육원을 설립하여 무보호자나 극빈가정의 청소년들에게 기술 교육을 실시하고 취업까지도 알선했다.85) 1973년 마리스타 수도회가 서울과 안동에 마리스타 교육관을 설립하여 지방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독서실를 마련하였으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여자 청소년들에게는 주산, 부기, 타자를, 남자 청소년들에게는 선반, 자동차 정비기술 교육을 실시했다.86)

 

근로 청소년을 위한 복지를 살펴보면, 1963년부터 안양 지역에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게 되어 10대와 20대 초반의 근로 청소년을 위한 기숙사와 안양근로자회관이 세워졌고, 1966년 서강대학교 부설 산업문제연구소가 설립되어 노동조합지도자와 사용자들에 대한 교육을 했다. 1968년 노틀담 수녀회는 버스 안내양을 위한 숙박시설과 교양교육사업을 전개했고, 1970년 살레시오 수녀회는 숙박시설인 마자렐로 센터를 설립했고, 1973년 성 베네딕도 수도회가 구미공단의 여성들을 위해 근로여성복지관을 설립하여 기능교육, 교양교육을 실시했다.87)

 

그뿐 아니라 천주교에서는 장애인 복지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농아 청소년들의 복지 증진, 수화교육, 선교활동으로 1957년 돈암동 성당에, 1959년 약현 성당에, 1980년 명동 성당에 농아부를 창립했다. 그리고 1960년에는 농아인 자녀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애덕농아 자활원을 설립했다.88)

 

5) 인성회(仁成會)의 출범(1975~1991)

 

인성회(仁成會)가 조직된 1975년 이후 1991년까지는 한국 천주교 사회 복지가 질적 · 양적으로 큰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89) 인성회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산하 사회주교위원회 소속으로 제반긴급구호, 자선활동, 복지사업, 개발활동, 사회의식계발 활동을 관장하였고, 각 교구의 사회 복지 활동을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 시기의 천주교 사회 복지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었다. 첫째, 개신교와 함께 한국의 민주화 발전에 기여한 시기로 인권 복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둘째, 사회 복지에 있어서 외국자원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을 모색하는 시기이다. 셋째, 복지적인 측면에서 국가와의 제휴가 증가하고,90) 한국 천주교의 자원을 해외에 지원하고, 전체 사회 복지에서의 종교 사회 복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진다. 국가시설 위탁이 증가하면서 사회 복지 재정을 국가에 의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서 천주교 복지활동의 정체성을 위협받게 된다. 넷째, 불교나 원불교 등 타 종교의 사회 복지 측면에서의 괄목한 성장과 NGO, NPO들의 참여로 천주교 사회 복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감소했다.91) 다섯째, 일부 신부들과 수도자들이 사회 복지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으나, 성당들이 행하던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가 과거보다 약화되었다.92)

 

(1) 나환자 자녀들을 위한 복지

 

1975년 파(라이문도) 신부가 나환자들의 미감아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기술교육, 정규학교진학을 위해 서울 응암동에 예수그리스도의집을, 1976년 성모영보 수녀회가 전북 함열 성당 상지원을 세웠으며, 1976년 메리놀 수녀회가 경북 울진에서, 그리고 1979년 전남 광주에서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 병원과 1980년 거창에서 나환자 가족들을 위한 의료사업을 하며 자녀들도 돌보았다. 1981년 경북 영주에서 6개 정착마을의 주민들과 자녀들을 위해 이동 진료를 하였고, 매년 나환자 자녀들을 위한 산간학교를 개최하고, 영농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장학사업, 학자금, 교육비 등을 지원했다.93)

 

(2) 보육원, 유치원, 어린이집, 탁아소

 

1982년 고아들을 위해 서울과 순천에 SOS어린이마을, 1983년 난지도에 애기들의 집, 광주에 고아원인 소년의집, 1984년 상계동에 성모자애보육원을 개설하여 운영했다.94) 한편 어린이집의 개원 현황을 보면, 1976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거지, 노동자, 전과자, 결핵환자, 정신병자, 알코올 중독자, 나환자들의 자녀들을 위해 황령산에 분도어린이집, 1976년 노틀담 수녀회가 오산에 가난한 농촌 가정과 공장 노동자의 자녀들을 위해 이동어린이집, 1979년 소록도 본당 내에 나환자 자녀들을 위한 ‘쌘뽈유치원’을 개원했다.95)

 

1981년 서울 마천동에 새마을유아원을, 1982년 신림동에 율곡어린이집, 1987년 솔샘아가방, 부산에서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성분도빛둘레집을 설립하였고, 1988년 경인지역 신림동, 부천의 아가방, 우리두리 탁아소와 공부방 등이 가톨릭지역아동협의회를 발족했다. 저소득층, 결손가정, 맞벌이부부 자녀들을 위해서 1988년 구로동에 꾸러기동산어린이집, 정선에서 카테키스타 수도회가 대철베드로집, 1990년 요셉놀이방,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가 정릉에 성모의 집을, 1991년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고척동에 만남의 집을 개설하였다.96)

 

(3) 아동 · 청소년을 위한 복지

 

아동 · 청소년을 위한 교육 복지로는 1975년 부천에 성심여자대학교 분교를 신설하고, 1979년 마산성지여자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분리 운영, 1985년부터 근로 청소년들을 위한 산업체 특별 12학급을 부설했다.97) 그리고 1975년 홍제동성당은 중학교 과정 교육을 위해 분도학교,98) 1976년 착한 목자 수녀회는 윤락여성들을 위해 마리아집을 개원하였다.99) 1977년 김몽은 신부는 경기도 광주에 보호자가 없어 가정법원에서 보호 위탁한 아동들을 위한 청소년 시설, 1979년 살레시오 수도회는 살레시오 근로청소년 회관을 설립했고, 마산에서는 살레시오 수녀회가 가난한 청소년을 위한 아욱실리움센터를 설립했다.100)

 

여성 근로자를 위해 1979년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가 가리봉동에 선화기숙사를 세웠고, 구로본동, 창동, 구로3동, 시흥동 성당에 노동문제상담소가 설립되었다. 1979년 노틀담 수녀회는 안내양 교양센터를 개원했고, 1984년부터 쥴리학원으로 변경하여 방송통신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101)

 

1980년 대구대교구가 가천청소년교육원,102) 1984년 김몽은 신부가 마포에 정신장애청소년들을 위한 엠마우스근로여성회관,103) 1984년 여자 청소년들의 기술교육을 위한 김효주아녜스집, 1985년 마리스타 교육 수도회가 강원도 원주에 마리스타 교육원, 1964년 애드나 스미스가 설립한 서울역 구두닦이 청소년을 위한 요한보스코시설을 설립했다.104)

 

1985년 글라렛 수도회는 가출 청소년이나 실직 청소년들을 위한 나눔의집, 소년원에서 퇴원한 실직 청소년의 자립을 위한 중간의 집(Halfway House)을 설립했으며, 1986년 살레시오 수도회는 부모 사망, 이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아동 · 청소년에게 도움을 주는 그룹홈을 현재 12개소 운영하고 있다. 1987년 도봉독서실을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가 위탁운영을 하였다.105)

 

1987년 매춘여성과 미혼모를 위한 이태원공동체,106) 장안동에 문제행동아동(비행, 가출, 도벽, 환각제사용 등)의 일시 보호 치료 및 정서 장애 아동의 통원치료를 위한 서울시립동부아동상담소,107) 가출청소년을 위해 1988년 살레시오 수녀회는 나자렛집을, 1990년 경북 군위에 성바오로청소년집을,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의 학습을 위해 1989년 구로3동 성당에서 보스꼬자습실을 운영하고 있다.108) 1989년 임신한 미혼모 여학생을 위해 구기동에 나자렛성가원을, 성 골롬반 외방선교 수녀회가 성북구 하월곡동에 매춘여성과 성폭행 당한 여성들을 위한 사마리아집을 개설했다.109)

 

(4) 장애인복지

 

1978년 사랑의 선교회가 청소년 장애인들을 위한 공동체, 1978년부터 장애 아동 · 청소년을 위한 직업재활교육원 명휘원, 장애청소년해동일터, 지체장애청소년 명혜학교, 명휘어린이집, 명휘체육관, 양재과, 편물과, 공예과, 보호자립장도 운영하고 있다.110) 1980년 부산 범일동 성당은 소화영아재활원을, 1981년 지체부자유자들에게 예술과 기술교육을 하기 위한 비둘기교실을 개설했다.111) 1981년 임마누엘장애어린이집, 지체부자유자를 위한 은혜초등학교,112) 뇌성마비아들을 위한 성모어린이집을 설립했다.113)

 

1982년 발달장애아동들을 위한 갈리리의집과 춘천교구 사회복지회에서 정신지체아 상담, 포항에 18세 이상 여성지체장애인의 의료와 직업재활을 위한 마리아집, 명일동에 장애인들의 상담, 치료, 교육직업훈련을 위한 장애인복지관을 위탁 운영하고, 1983년 정신지체장애자들의 기술교육을 위한 늘푸른나무,114) 1983년 부산에 직업기술교육을 위한 지산자활원, 맹인자녀를 위한 탁아시설을 설립했다.115) 장애아들의 재활치료와 직업재활을 위해 1986년 맹인중복장애아들의 라파엘의 집,116) 1987년 부산에서 청각 장애 청소년을 위한 하나의집, 1988년 영아재활치료기관, 부산에 성분도장애인직업재활원, 인천에 노틀담장애인교육원, 여자 정신지체장애자를 위한 맑음터, 도곡동에 신망애집, 1989년 중복장애인들을 위한 사랑손, 춘천에 밀알재활원, 광주에 사랑의집과 지체장애자고등학교 등을 개교했다.117)

 

6)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의 구성(1991~2000)

 

이 시기 천주교 사회 복지는 안정적인 체계를 구축하고, 인성회는 1991년 10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로 개칭되면서 천주교 사회 복지를 대표하게 된다.118) 각 교구조직으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들어 교구 사회복지회119)를 설립하고, 사회복지법인으로 인가를 받고, 사회 복지 분야별 전국적 협의기구가 많이 늘어난다.120)

 

이 시기의 특징은 다음 여섯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사회참여로 인한 인권 복지121)가 활발하였지만, 통일 문제에 관해서는 정의 구현 사제단이나 가톨릭 학생회 중심으로 비교적 소극적이었다.122) 둘째, 사회 복지 기관과 시설의 양적 확대와 활동에서 수도자의 참여비율이 30% 정도로 수도회 비중이 높다.123) 셋째, 한국 천주교가 경제성장과 교회의 양적인 성장으로 자원동원 능력에서 자립도가 높아지고, 외국과 북한에 원조를 하는 교회로 성장했다.124) 넷째, 교구와 수도회들이 국가로부터 복지 시설 위탁을 받는 수가 증가함으로써 종교자율성이 감소된다.125) 다섯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와 사회 복지 분야별 전국적 협의기구의 영향으로 복지역량을 네트워크화하고, 재원을 통합적으로 관리 배분하게 되었다. 여섯째, 전국적 체제정비는 천주교 사회 복지를 체계적으로 구축하였지만, 사회 복지 활동들이 일원화되어 수도회나 개인의 사회복지 활동을 축소시켰다.126) 여섯째, 이제까지 천주교 사회 복지 정신이 퇴색되어 가고, 양적 성장에 걸맞는 질적인 성장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127)

 

(1) 나환자 자녀를 위한 복지

 

1996년 대구가톨릭피부과의원은 나환우 자녀들을 위해 엠마우스재단을 설립하였다.128)

 

(2) 보육원

 

1993년 농촌 지역사회에 저소득층 결손가정의 자녀들을 일시보호 또는 자립할 때까지 건전하게 육성하기 위해서 경기도 여주에 그룹홈 형태인 일신우리집을 설립했다.129)

 

(3) 유치원, 어린이집, 탁아소

 

수녀회에서 1990년부터 많은 유치원, 어린이집, 탁아소 등 광주 씨튼어린이집을 비롯하여 33개의 어린이집을 설립하거나 위탁받아 운영하였다.130) 또한 보호자가 없거나 공장 노동자 영유아를 위해 송학놀이방, 원주에 무지개탁아소를 개원하였다.131)

 

(4) 아동 · 청소년 교육 복지

 

1990년대 이후 성모의집 공부방 등 5개, 샛마루공부방 등을 설립하거나 위탁운영하고 있다.132) 1992년 청주에 아동 · 청소년의 교육을 위해 야간공부방, 재가복지봉사센터, 인표어린이도서관을, 1998년 살레시오 사회교육문화원을 설립했다.133)

 

(5) 아동 · 청소년을 위한 복지

 

1991년 가출청소년을 위해 서울에 마천동에 소년예수의 집, 1994년 까르딘청소년 상담터, 1996년 화양동에 착한목자의집을 개설하였다.134) 1994년 아동 · 청소년을 위한 안동종합사회복지관, 영주시에서 가흥종합사회복지관, 제천종합사회복지관, 1995년 서울 양천구에서 한빛종합사회복지관을 위탁 운영하고 있다.135) 1990년대 이후 대전에서는 나자렛의 집 등 아동들의 생활자립을 위한 가정공동체형태 청소년 그룹홈을 10개 정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6) 아동 · 청소년 미혼모 시설

 

1993년 수녀회에서 수원에 생명의 집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고, 1996년 강서구 화곡동에 성심의어머니집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136)

 

(7) 장애인복지

 

1990년도에는 장애아동을 위해 성남시에 조기교육원기쁜샘, 1997년 서울 강북구에 까리따스어린이집, 1992년 서울 금호동에 성모 조기 교육원, 경남장애인복지관, 10세 이상 중증장애인요양시설 성모마을을 충남 논산에 설립했다.137) 이 시기에는 장애아를 위해 1998년 목포시에 명도어린이집을 비롯하여 3개가 설립되었다.138) 1992년 맹인 장애 아동 재활 서비스를 위해 하상장애인종합복지관, 경기도 양주에 인지의집을 운영하고 있다. 1994년 마포구에 주간보호 햇빛자리, 1997년 여주에 여주평화재활원에서는 맹인 영유 장애아들을 보호하고 있다.139) 1990년대에는 정신지체장애아동과 여성장애인을 위해 양육 시설과 보호 치료 시설로 원주에 가톨릭중증장애인요양원과 천사들의집, 양주에 나루터공동체, 거제시와 제주도에 파랑포마을, 용인에 뇌성마비아동을 위한 요한의집, 수원장애인보호시설, 정신지체아동을 위한 일심재활원을 설립 또는 위탁받아 운영 중에 있다.140) 1997년 서울에 농아 어린이를 위한 장애아어린이집, 중복장애아조기교실, 보육시설인 카리타스 어린이집, 인천 계양구에 중증장애아재활치료를 위한 장애인종합복지관, 1998년 부산에 지체부자유 영아들을 위한 시설인 아이들의 집을 개원하였다.141)

 

7) 대희년 이후(2000~현재)

 

대희년 이후 한국 천주교의 사회 복지는 안정적인 발전을 하지만, 1998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2000년 이후 사회복지사업에서 전반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142) 2000년 이전에는 사회복지법인으로 설립인가를 받은 교구가 7개였지만, 2002년 광주대교구에서 사회복지법인 가톨릭 광주사회복지회143) 외 3개 교구나 수도회들도 2000년대 들어 사회복지회 법인을 설립하여 인가를 받았다. 본당들에서는 사회사목 분과나 사회복지협의회가 결성되고, 신자들에게 사회 복지 교육을 실시하여 자원봉사자들을 양성하였다. 서울대교구에서는 긴급구호 활동과 봉사 활동을 위해 서울카리타스봉사단이 조직되었다.144) 사회 복지 시설 종사자들을 위한 연수와 교육, 피정을 실시하여 사회복지 종사자들이 천주교 사회 복지 정신에 맞게 사업과 활동에 투신하도록 노력한다.145)

 

이 시기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첫째, 2000년도 들어오면서 중산층 신자들이 많아짐으로써 교회 자원이 사회 복지적인 측면에 집중되어146) 양적으로 팽창하였다. 2000년대에는 교회 보수화와 신자들의 중산층화로 인권 사회복지가 후퇴하였다.147) 둘째, 2000년대 이후 사회 복지 시설의 양적 증가는 각 교구와 수도회가 사회 복지 법인을 설립하여 국가로부터 복지 시설을 위탁을 받았기 때문이다.148) 셋째, 한국 주교회의 사회복지회가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해외원조를 하는 기구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2002년 해외 22개 사업에 미화 74만 6800달러(환화 9억 622만원), 대북지원 사업에 미화 42만 6300달러(한화 5억 1500만원)를 지원하였는데, 2009년에는 33개 사업에 미화 140만 7900달러(한화 17억 3700만원)로 증가하였고, 대북지원에서 식량 외에 대북개발 사업, 의료품 지원 등 종목이 확대되었다.149) 넷째, 국가로부터 복지 시설을 위탁받는 빈도가 증가하여 천주교 본연의 사회 복지 정신이 퇴색되고 교회의 정체성이 약화되었다.150) 다섯째, 각 교구들은 본당별로 사회 복지 분과, 교구 사회 복지, 사회 복지 분야별 전국협의회들이 생겨서 상호 긴밀한 조정과 협력을 하게 되었다.151) 여섯째, 각 교구들이 사회 복지 후원금과 사순절 헌금 등으로 결식아동 급식사업이나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광주대교구 사회복지회는 결식아동 급식사업을 위해 광주 · 전남 지역 196개 학교 1,628명에게 총 3억 2,493만원을 지원하였다.152) 일곱째, 시설운영에 있어서 교구 사회 복지나 성직자들의 진출이 증가하였다.153) 여덟째, 인터넷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각 교구 사회복지와 사회 복지 단체들이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사회 복지 활동과 사업을 홍보하고 정보를 교류하게 되었다. 일례를 들자면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는 2000년 홈페이지를 개설하였다.154) 아홉째, IMF의 영향으로 인해 2000년 전후로 아동 · 청소년 시설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현재 아동양육시설155)이 18개, 아동일시보호시설156)은 14개, 아동상담소157)는 11개, 아동전용시설158)은 8개, 공동생활가정159)은 24개, 지역아동센터160)도 129개나 증가하였다. 아동보호치료시설161)도 새로 8개나 생겼다. 열째, 한국 종교계 사회복지협의회에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도 참여하면서 타 종단 간의 협력 사업과 새로운 복지 정책을 추진하는데 역점을 두었다.162)

 

(1) 아동 · 청소년상담소

 

2000년 이전에는 아동 · 청소년상담소가 3개였으나163) 2000년대 이후 아동 · 청소년 문제를 전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맑은샘심리상담연구소, 평화심리상담소 등 총 12개로 늘어났다.164)

 

(2) 보육원

 

2005년 부산교구는 저소득층가정의 심장병어린이들을 위한 성 바오로 아동요양원을 개관하였다.165)

 

(3) 유치원, 어린이집, 탁아소

 

교구와 수녀회와 수도회에서 2000년대 이후 많은 유치원, 어린이집, 공부방, 탁아소를 개원하였고, 2002년 광주대교구는 저소득층 맞벌이부모의 자녀를 위한 느티나무공부방을 운영하였다.166) 2003년 부산교구는 여덟 번째 디딤터공부방과 감만어린이집 개소식이 있었다.167)

 

(4) 아동 · 청소년 교육 복지

 

2002년 수원교구 안산시에서는 청소년들의 전인교육을 위한 사동디지털문화의 집을 개원하였으며,168) 2005년 전주교구에서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프란치스코지역아동센터’를 개원하여 지역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169) 2005년 의정부교구에서는 저소득층 아동들을 위해 방과 후 학습을 지도할 수 있는 도밍고 지역아동센터를 개관하였다.170) 서울대교구에서는 2011년 부모가 없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개교하였다.171)

 

(5) 아동 · 청소년을 위한 복지

 

2003년 마산교구에서는 여성 청소년들이 일시보호시설 후 지속적인 보호를 위해 장기선도시설인 ‘로뎀의 집’을 개관하였다.172) 1994년 아동 · 청소년을 위한 복지사업으로 안동종합사회복지관, 영주시에서 가흥종합사회복지관, 제천종합사회복지관, 1995년 서울 양천구에서 한빛종합사회복지관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173) 1990년대 이후 대전에 나자렛집 등 아동들의 생활자립을 위한 가정공동체 형태의 청소년 그룹홈을 10개 정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또한 2000년 송파에 성심 대건의 집, 나자렛집, 2001년 성북구 동선동에 성빈센트 청소년열림터, 안동시에 희망의샘쉼자리, 광주에 해바라기쉼터, 부천시에서 모퉁이쉼터, 2001년 울산시에서 은총의 집을 설치 또는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174)

 

(6) 아동 · 청소년 미혼모 시설

 

2003년 미혼 양육모를 위한 요셉의 집을 개원하여 착한 목자 수녀회가 운영하고 있다.175) 2004년 마산교구에서는 미혼모자세대를 위한 생명터를 개소하였다.176)

 

(7) 장애인 복지

 

청주교구에서는 2000년에 장애 청소년을 위한 충북재활원 비하동 그룹홈을 개원하였으며,177) 2001년 대구교구에서는 포항 장애인복지관을 개관하였고, 2002년 ‘씨튼수녀회사회복지원’ 법인 산하의 지체장애청소년들을 위한 보호작업장 및 주간보호시설인 ‘씨튼장애인직업재활센터’가 설립되었다.178) 2002년 청주교구는 정신장애인 어머니와 정신지체 자녀들이 공동생활을 할 수 있는 상춘 사랑의 집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179) 2002년 춘천교구에서는 강릉시에 장애인보호작업장 사랑의 일터와 춘천시에 희망의 일터를 개설하였고, 장애인 생활 시설인 애지람을 개원하여 운영하고 있다.180) 2002년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는 장애아동들을 위한 북구어린이집을 운영하였으며,181) 2002년 전주교구 익산에 위치한 작은자매의 집에서는 영유아장애어린이를 위한 작은천사어린이집을 개원하였다.182) 2002년 제주교구 사회복지회는 중증 정신지체 장애아동 시설인 애덕의 집을 운영하였으며,183) 2003년 사회복지법인 성요셉복지재단은 장애인보호작업장인 성요셉재활원을 설립했다.184) 2003년 일산복지관 내 장애아동들을 위한 발달장애치료센터를 개소하였다.185) 2005년 의정부교구는 장애아동 시설인 숲속학교를 개설하였으며,186) 광주교구에서는 2006년 정신지체장애청소년들을 위한 직업재활 시설인 ‘소화아람일터’가 설립되어 재활 교육과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187)

 

원주교구에서는 2006년 정신지체장애청소년들을 위한 직업재활 시설인 ‘살레시오의 집’이 설립되어 재활 교육과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188)

 

 

3. 평가와 전망

 

1)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에 대한 평가

 

한국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는 183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한국 천주교는 창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아동 · 청소년을 위한 복지 사업에 역점을 두었으며, 천주교의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에서도 전통적으로 소외되고 불우한 아동 청소년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데 노력하여 왔다. 또한 한국 아동 · 청소년 복지가 지난 세기 동안 한국에서 아동 · 청소년 복지 분야에서 근대화와 긍정적인 역할과 많은 기여를 했다. 한국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에 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이 시기별로 하겠다.

 

첫째, 초기 한국 천주교는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동들의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을 구현하고, 아동의 인격에 대한 인식 확산과 아동 복지 활동으로 영유아, 기아, 고아에 대한 구제활동을 전개하였다. 아동들을 위한 의료 사업과 문맹 퇴치를 위한 교육 사업도 펼쳤다.

 

둘째, 근대 한국 천주교에서는 1845년 영유아, 기아, 고아들을 위한 영해회를 설립한 것이 근대적 아동 복지의 효시였고, 1885년에는 이를 구체화하여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고아원을 설립했다. 이는 아동 복지 활동을 조직화한 한국에서 최초의 근대적인 아동 복지 시설이다.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 활동은 한불수호조약(1886) 체결 이후 고아들을 위한 보다 체계적인 구민 활동으로 활성화되었다. 또한 수도회 진출과 함께 본격화되어 1894년에 제물포 성당을 시작으로 고아원과 시약소를 설치하여 운영함으로서 의료 활동도 하였으며, 1882년 최초로 명동 성당에 인현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이는 천주교가 설립한 근대 교육의 효시로 평가된다. 아동들의 문맹퇴치를 위해 학교들을 설립했고, 청소년들의 교육과 기술교육을 위해서 중고등학교와 기술학교들이 설립되어서 1910년에는 78개 학교가 되었다.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을 위해 여러 나라 외국 수도회를 초청하였고, 이 시기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의 주체는 성당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천주교가 전개한 각종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과 활동은 사회개발의 측면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다.

 

셋째, 일제 식민시기 한국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는 일본의 간섭과 탄압으로 많이 위축되어 유치원들이 폐원되고, 학교 수도 많이 감소했다. 일본은 본당에서 이제까지 복지 사업으로 해오던 시약소나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전문자격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는 근대적인 교육을 통해서 민족의 자주와 독립정신 계몽운동에 기여했고, 각 성당에서 운영해 오던 시약소들은 의원 수준으로 확장했다. 1930년 초에는 원산 성당에서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수녀들이 청각 장애 어린이들에게 처음으로 수화로 교리교육을 실시했다. 이 시기에 수도회 자체적으로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이 시작되었고,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의 주체는 성당과 수도회였다. 당시 천주교가 전개한 다양한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과 활동을 통하여 영향을 받은 한국인들이 여러 사회 분야에서 역할을 함으로써 사회 개발과 사회 발전에 계기를 제공했다.

 

넷째, 해방 후 한국 천주교에서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과 활동은 1970년대까지 계속된 해외 원조기구를 통해서 동원된 막대한 물적 자원으로 큰 발전을 가져왔고, 이후 한국 천주교에서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에 기반을 구축하였다. 이 시기에는 신자의 양적 증가와 더불어 사회 복지 자원이 증가하지만, 국가의 사회 복지 예산이 증가하면서 전체 아동 · 청소년 복지에서 한국 천주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하게 된다. 한국 전쟁으로 전쟁고아들이 많이 양산되어 고아원과 보육원 사업과 기술학교에 큰 관심을 가졌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으로 제기되는 사회정의와 인권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가톨릭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등 노동 복지와 인권 복지 사업을 전개했다. 1963년 수원교구가 안양에 근로자회관을 건립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국제 수도회의 진출로 원조와 발전된 아동 · 청소년 복지 사회 사업기술을 도입할 수 있었던 장점은 있었지만, 한편 한국 천주교와 신자들은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과 활동에 있어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후반으로 올수록 수도회의 아동 · 청소년 복지 역할이 감소되었다. 하지만 천주교는 수도회와 교구를 통해서 아동 · 청소년복지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왔고, 한국에서 아동 · 청소년 복지 증진과 발전에 토대를 제공하였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아동 · 청소년 복지 영역에서 긴급 구호의 성격을 떠나 구조적인 접근을 시도했고, 아동 · 청소년 복지를 구축하고 한국 사회에서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도록 노력하였다는 점도 긍정적이라 사료된다.

 

다섯째, 인성회 조직 이후 한국 천주교에서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과 활동은 양적 · 질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인성회는 한국 천주교 사회주교위원회 소속이 되어 각 교구의 모든 복지사업과 활동을 관장하고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한국 가톨릭 아동복지협의회가 1984년 주교회의 산하 전국단체로 인준을 받아 활동하게 되었고, 이 협회에는 전국에 있는 가톨릭 아동 · 청소년 기관과 시설들이 가입하였다. 이 시기는 사회 복지가 인권 복지 측면에서 민주화 발전에 기여했고, 외원으로부터 자립을 모색하면서 오히려 외국에 원조를 시작하였다. 아동 · 청소년 복지에서 국가와의 제휴가 증가하면서 재정을 국가에 의존하는 비중이 늘었다. 이와 같은 원인과 타 종교의 괄목할 만한 참여로 아동 · 청소년 복지에서 천주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에서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아동 · 청소년 복지에서 전담비율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일 수 있지만, 조직의 폐쇄성과 의사결정에 있어서 보수성으로 나타나 비효율적인 경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과거보다도 가난하고 소외된 아동 ·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약화되었다는 점은 아쉽다. 이 시기는 천주교가 한국에서 아동 · 청소년 복지 기여, 인권 복지 영역에서의 활동, 외국의 기아원조,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과 활동에서 투명성을 확보하였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섯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조직 이후 아동 복지 사업과 활동은 1991년 인성회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로 개칭되고, 1990년대 들어서 각 교구들이 교구 사회복지위원회와 1994년 수원교구 외 4개 교구가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여 안정적인 체계를 구축했다. 이 시기에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과 기관들이 이전보다 103개나 획기적으로 증가했는데, 그 원인이 국가로부터 위탁받은 시설과 기관들이 많아서이다. 국가로부터 위탁받은 빈도가 높을수록 가톨릭의 아동 · 청소년 복지 정신이 퇴색될 위험이 있고, 각 교구에 사회복지위원회가 생김으로써 통합적으로 자원을 관리하고 배분하는 장점은 있게 되었으나 신자들의 독자적인 활동을 축소시킬 수 있다. 전반적으로 가톨릭의 아동 · 청소년 복지 정신이 퇴색되었고, 양적인 성장에 걸맞는 질적인 성장을 하지 못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시기는 천주교가 아동 · 청소년 복지 분야에서 체계적으로 안정성을 가져왔고, 전문성을 위해 노력했으며, 과거의 시기보다 한 단계 도약을 하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일곱째, 대희년 이후 현재까지 천주교의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과 활동은 1998년 사회복지법 개정 이후 많은 변화 속에서도 올바로 대처하면서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안정적인 발전을 해오고 있다. 2000년도에도 각 교구들과 수도회들이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했고, 국가로부터 위탁을 받은 영향으로 아동 · 청소년 시설과 기관들이 이전보다 227개나 증가했다. 본당에 사회사목 분과나 사회복지협의회가 결성되어 신자들이 사회 복지에 관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과 활동에 투입되었고, 자원봉사단이 조직되어 체계적인 봉사 활동을 하게 되었다. 중산층 신자들의 증가, 사회 복지 후원회원들의 후원금, 사순절 헌금, 본당의 사회 복지 예산 등으로 사회 복지 예산이 증가되었고, 외국과 북한의 기아로 고통을 받는 어린들에 대한 지원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각 교구들이나 단체들이 홈페이지를 개설함으로서 정보를 교류하고, 한국종교계사회복지협의회가 결성됨으로써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의 정책과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에 공동으로 대처하게 되었다. 국가로부터 위탁받은 빈도가 증가함으로써 가톨릭의 아동 · 청소년 복지의 고유한 영역과 정체성이 약화되는 면을 가져오고 있으며,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과 기관의 책임자로서 성직자의 증가는 운영에 있어서 경직화와 전문성 결여를 초래할 수 있다. 차츰 교회의 보수화와 중산층 신자들의 증가로 인권 복지의 관심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천주교가 다양한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과 활동을 통하여 아동 · 청소년 복지 분야에서 헌신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아동 · 청소년 복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과거보다 더욱 더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과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2)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의 전망

 

21세기 대희년을 맞이하여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 사업과 활동에 있어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당면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활성화 방안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이제까지 천주교에서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을 운영하면서 축적하였던 경험들을 이론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천주교에서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을 시기별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에 있지만 아동 · 청소년 시설을 어떤 방향으로 늘려 나갈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아동 · 청소년 복지사업과 활동에서의 장점들은 계속 살려 나가면서 시대적 상황과 변화에 부응하고, 한국의 아동 · 청소년들에게 맞는 아동 · 청소년 복지이론들을 접목시켜 나가면서 가톨릭 사회복지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고 한 차원 높은 복지사업과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둘째,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 운영자와 직원은 사회학문의 전문성과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의 전문성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 현재 성직자와 수도자란 이름으로 시설의 책임자 역할을 하는 것은 조직의 폐쇄성과 전문성을 해칠 수 있다. 천주교의 고유한 사업과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천주교의 정신에 입각한 사업과 활동을 전개할 프로그램 개발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셋째, 천주교의 아동 복지 시설과 활동에 있어서 균형이 요구된다. 교구별이나 지역별을 보면, 아동 · 청소년 시설과 기관을 운영하는 데 여러 측면에서 불균등성이 존재하고 있다. 현재 아동 · 청소년 시설이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고, 지역아동센터, 어린이집, 놀이방 등에 대부분 주력하고 있기에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 · 청소년들을 위한 시설, 장애아들이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주간보호시설, 그룹홈, 직업훈련장 등 새로운 시설의 증가가 필요하고 본다.

 

넷째, 아동 · 청소년 미신고 시설은 서비스의 효과성을 높이고, 관리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하루 빨리 양성화를 추진해야 한다.

 

다섯째, 현재 아동 · 청소년 시설의 운영주체인 성직자와 수도자 중심이 향후 신자 중심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미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에 근무하는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사회 복지와 천주교 사회 복지 정신에 입각한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그에 따르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의 운영 주체가 교구,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비율이 높은 것은 평신도나 단체들이 사회 복지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소외경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여섯째,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국가로부터 위탁을 받는 빈도가 증가하였기 때문이므로 국가로부터 시설위탁을 받는 양적인 증가보다는 천주교의 자율성과 천주교 사회 복지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운영하는 시설을 늘려 나갈 필요가 있다.189) 재정에서 국가 의존도가 증가하면 천주교 아동 · 청소년 복지의 정체성이 위협받을 수 있고, 천주교의 아동 · 청소년 복지의 고유성을 잃어버리고 천주교의 정신이 퇴색되어 갈 수 있다. 이제 교회가 아동 · 청소년들을 위한 사업 항목으로 결정하여 복지예산을 배정하고, 신자들에게 아동 · 청소년 복지에 대한 동기부여와 훈련을 강화시켜 나가고, 교회의 사정과 형편을 고려하여 자체적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일곱째, 현재 아동 · 청소년 시설 운영에 만족하지 말고,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이 지역아동센터에 집중된 현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족형태인 약물중독자가정, 새터민가정,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중독문제, 폭력문제, 비행문제 등을 가진 청소년들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천주교다운 사회 복지 접근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8. 결론

 

한국 천주교회가 아동 복지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1830년대부터의 일이었다. 천주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아동을 위한 복지 사업에 역점을 두었고, 교회가 운영하는 아동 복지 시설에 전통적으로 소외되고 불우한 아동 청소년을 받아들여 양육하고 교육하는 데 노력하였다. 또한 천주교의 아동 복지가 지난 백 년 동안 한국 사회의 아동 복지 분야에서 근대화와 긍정적인 역할을 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천주교 아동 복지의 발전과 새로운 도약을 위해 아동 복지 시설과 기관에 대한 성찰과 평가를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21세기 세계는 현재 교통(transportation), 통신(telecommunication), 무역(trade), 관광(tourism)이 4T시대를 맞아 국제화 · 세계화가 계속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화 · 지방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인간의 문제와 사회 복지의 욕구, 사회 복지 체계가 다양해질 것이다. 특히 기존 사회 복지의 대상으로서 취약계층이었던 아동 · 청소년들의 삶의 질은 높이기 위해서 보건, 의료, 주택, 환경, 여가, 교육, 문화, 복지에 관한 욕구가 증대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정부 및 종교를 포함한 민간차원의 다양한 복지 지원이 요구될 것이다.190) 그래서 현재 교회에서 실시 중인 각종 아동 · 청소년 복지 시설 운영과 사업에 있어서 보다 강화하거나 새로운 차원의 사업을 전개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현대에 들어와 사회 복지의 일차적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하더라도 천주교회는 아동 · 청소년 사회 복지의 책임을 전적으로 국가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가나 사회가 할 수 없는 분야는 교회가 선도적이거나 보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고, 또한 국가의 아동 · 청소년 사회 복지 정책에 바람직한 제안을 함으로써 현재의 정책들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발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천주교 아동 복지 분야에서 더욱 더 중심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하지만 본 연구의 한계점을 지적하자면, 근 · 현대 역사에서 학교 사회 복지가 한국과 천주교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연구를 담아내지 못한 점이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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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종운 · 임구원, 《기독교사회복지론》, 홍익재, 2003, 79쪽.

2)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한국천주교사회복지편람》, 2008, 18쪽.

 

3) 임종운 · 임구원, 앞의 책 ; 서상철, 《현대사회문제와 사회복지》, 학현사, 2004, 40~43쪽 ; 강경미, <한국의 가족변화에 따른 아동양육시설(보육원)의 실태와 기독교상담의 역할>, 《성경과 신학》 46, 한국복음주의신학회, 2008, 212쪽.

 

4) 임종운 · 임구원, 앞의 책 ; 손선옥, <아동복지시설의 조직혁신활동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 《한국아동복지학》 28, 2009, 46쪽.

 

5) 성영혜, 《아동복지》, 학문사, 1997, 48쪽 ; 박정문, 《아동복지와 보육사업의 이해》, 보육사, 2000, 30쪽 ; 이은화 · 이경우 · 문미옥 · 유희정 공저, 《육아를 위한 복지의 이론과 실제》, 창지사, 2000, 34쪽 ; 장인협 · 오정수, 《아동 · 청소년복지론》,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95쪽 ; 김오남 · 곽수란 · 노명희 공저, 《아동복지의 이해》, 형설출판사, 2001, 18쪽.

 

6) 박석돈, <한국의 천주교사회복지사업에 관한 연구>, 한서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1.

7) 조화영, <조선천주교회의 아동복지에 관한 연구 - 박해시대 영해회 사업을 중심으로>,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9.

8) 심흥보, <한국천주교 사회복지사 연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8.

9) 이귀자, <가톨릭 무료노인복지시설의 운영 실태와 개선방안>, 광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9.

10) 김경숙, <한국가톨릭 여자수도회의 사회복지사업에 관한 연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11) 노길명, <조선 후기 민중의 동요와 천주교 신앙운동>, 《민족사와 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2000.

12) 김영수, <가톨릭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의 직무만족도 연구>, 명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6.

13) 심흥보,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7~19쪽.

14) 한철호 외 5인 공저, 《한국 근 · 현대사》, 대한교과서(주), 2009.

 

15) 수용주체들의 능동적 대응측면을 동시에 구분하는 방법 -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에 발달단계에 따른 구분, 수혜자의 주체적 반응변화에 따른 구분, 통합적 접근방법으로 자본주의 발전단계를 외재적 측면으로 하고, 사회정책의 형태와 내용, 사회정책에 대한 수혜자의 의식 및 수혜자에 대한 사회인식을 내적 측면으로 설정하여 시기를 구분한다.

 

16) 노길명, 《민족사와 천주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2005, 185쪽.

 

17) 조광, <19세기 민란의 사회적 배경>, 진덕규 외, 《19세기 한국 전통사회의 변모와 민중의식》,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185~207쪽.

 

18) 정조 7년에 반포된 자휼전칙은 행걸아(行乞兒)와 유기아(遺棄兒)를 구제하기 위한 아동보호법령이다. 이 당시 이 같은 법령이 반포되었다는 것은 어린이 유기가 많았으며, 유기된 어린이들을 양육한다는 명분 아래 자행되는 사회적 폐해와 문제가 심각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19) 최원규, <조선 후기의 아동복지>, 하상락 편, 《한국사회복지사론》, 박영사, 1989, 245쪽.

20) 노길명, <조선 후기 민중의 동요와 천주교 신앙운동>, 231~241쪽.

 

21) 노길명, <박해기 · 개화기의 한국천주교회와 사회개발>,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기념 한국 교회사 논문집》 1,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157~217쪽.

 

22) 《셩찰긔략》은 19세기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죄를 성찰하는 지침서이다. 이 책의 내용 중 자녀와 관련된 내용을 보면, 자식을 싫어하거나 부양의무를 원망하는 행위, 자식의 생명이나 의식주를 돌보지 않는 행위, 자식을 엄격하게 다루거나 악한 말로 꾸짖거나 상스러운 욕을 하거나 매질을 하는 행위, 자식을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않거나 자식의 잘못을 고쳐주지 않는 행위, 딸을 낳았다고 박대하거나 돌보지 않는 행위 등을 죄로 간주하여 통회하고 고백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조화영, <조선 천주교회의 아동복지에 관한 연구>, 《나눔 연구》 창간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1992, 12~14쪽).

 

23) 정식단체 설립 이전부터 명도회와 같은 평신도 단체들의 구제활동이 교회 초창기부터 있어 왔다. 노길명, 《가톨릭과 조선 후기 사회변동》,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8, 191쪽.

 

24)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30년사》, 한국교회사연구소, 2006, 38쪽.

25) 근 · 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 《한국 근 · 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상), 가톨릭출판사, 2003, 321쪽.

26) 노길명, 앞의 책, 2005, 202~204쪽.

27) 근 · 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 앞의 책, 338쪽.

28)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앞의 책, 참조.

29) 영해회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조직된 근대적 아동보호사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박석돈, 앞의 글, 34쪽).

30) 노길명, 앞의 책, 2005, 196쪽.

 

31) Charles Dallet, Histoire de l’Eglise de Coree, Paris : Victor Palm , 1874 ;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천주교회사》 상권,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392쪽.

 

32) 현재 을지로 1가에 기와집 한 채를 구입하여 26명의 고아들을 수용하는 고아원을 설립했다(노길명, 앞의 책, 2005, 197~198쪽).

33)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00년사》,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991, 995쪽.

34)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앞의 책, 35쪽.

35) 최석우, <한국종교 운동사 : 천주교>, 《한국 현대 문화사 대계》 5,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0, 235쪽.

36) 김옥희, <조선교구의 활동>, 《교회사연구》 4, 한국교회사연구소, 1983, 57쪽.

37) 노길명, 앞의 책, 2005, 202~204쪽.

38)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앞의 책, 35쪽.

39)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 305쪽.

40)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앞의 책, 1002쪽.

41)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309쪽.

42)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앞의 책, 857쪽.

43) 심흥보, 앞의 책, 380~383쪽.

44) 근 · 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 앞의 책, 351쪽.

45) 윤선자, 《일제의 종교정책과 천주교회》, 경인문화사, 2001, 68~69쪽.

46)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앞의 책, 39쪽.

47) 이정순, 《원산수녀원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1987, 73쪽.

48)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앞의 책, 35, 38쪽.

49)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앞의 책, 995쪽.

50)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앞의 책, 39쪽.

51)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278쪽.

52)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앞의 책, 891쪽 ; 이정순, 앞의 책, 165쪽.

53)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278쪽.

54) 위의 책, 1104쪽.

55) 위의 책, 722~775쪽.

56) 위의 책, 389쪽.

57)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앞의 책, 793쪽.

58) 이정순, 앞의 책, 165쪽.

59)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822쪽, 891쪽.

60) 이정순, 앞의 책, 148, 150, 245쪽.

61)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310쪽.

62)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앞의 책, 797~874쪽.

63)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310쪽.

64) 이정순, 앞의 책, 166쪽.

65)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369, 779, 1104쪽.

66) 이정순, 앞의 책, 73쪽.

 

67) 가톨릭계 외원기관은 미국 가톨릭복지협의회(NCWC) 산하의 Catholic Relief Service, 오스트리아의 가톨릭 부인회(KFBO), 독일의 미세레오르가 대표적이다.

 

68) 근 · 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 《한국 근 · 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중), 가톨릭출판사, 2005, 422쪽.

69) 노치준, <사회복지를 향한 개신교의 사회봉사>, 이삼열 외, 《한국사회발전과 기독교의 역할》, 한울, 2000, 167쪽.

70) 근 · 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 앞의 책, 2005, 433쪽.

71) 위의 책, 443~445쪽.

 

72) 수도회의 역할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교회를 위하여 선교와 사목에 역량을 배분하게 된 결과라고 사료된다(윤선자, 《이우철 신부의 생애와 활동》,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회, 2002, 39쪽).

 

73) 대부분의 복지시설은 교구나 수도회가 운영하고 자원동원을 거의 독점한 이유로 평신도들은 자원봉사나 후원금 제공과 같은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게 되었던 연유이다.

 

74)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995쪽.

 

75) 근 · 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 앞의 책, 2005, 444쪽 ; 서경돈 · 이인숙 · 남인숙, <해방 이후 가톨릭여자수도회의 사회복지활동>, 《한국가톨릭신학학회》, 2005, 66쪽.

 

76) 심흥보, 앞의 책, 162~163쪽.

77)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667쪽.

78)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1004쪽.

79)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1259쪽.

80) 심흥보, 앞의 책, 167쪽.

81)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270쪽.

82)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앞의 책, 857쪽.

83)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649쪽.

84) 심흥보, 앞의 책, 175~190쪽.

85)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608쪽.

86) 위의 책, 362쪽.

87) 위의 책, 555~565쪽.

88) 위의 책, 3쪽

 

89) 인성회는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아 주교회의 산하의 사회사목을 조정하는 기구로 정식발족하고 초대 총재는 지학순(1921~1993) 주교가 되었다. 이 기구의 주요기능은 가톨릭 사회복지의 수직적 전달체계의 최상위에 위치하면서 정책을 수립, 정보교환지원, 협의조정과 복지활동의 수행을 위하여 인적 · 물적 · 기술적 자원을 개발하고 배분하는 것이었다(이혜숙, 《종교 사회복지》,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3, 62~64쪽).

 

90) 종교가 국가와 제휴하는 것은 국가 전체적으로 사회복지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만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정부는 재정적 지원을 이유로 운영에 지나치게 개입할 여지가 있다(남세진 · 조흥식, 《한국 사회복지론》, 나남출판사, 1995, 90~91쪽).

 

91) 근 · 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 《한국 근 · 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하)》, 가톨릭출판사, 2006, 345~347쪽.

92) 심흥보, 앞의 책, 389쪽.

93) 위의 책, 389쪽 ;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15쪽.

94) 위의 책, 1132쪽.

95) 위의 책, 254쪽 ; 심흥보, 앞의 책, 254~255쪽.

 

96) 60주년 준비위원 편, 《은혜 60년: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1991, 457쪽 ; 심흥보, 앞의 책, 256~260쪽.

 

97)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649쪽.

98) 위의 책, 1305쪽.

99) 위의 책, 1115쪽.

100) 심흥보, 앞의 책, 286~289쪽.

101)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18, 245쪽.

102) 위의 책, 18쪽.

103) 심흥보, 앞의 책, 285쪽.

104)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14쪽.

105) 심흥보, 앞의 책, 290~291쪽.

106) 위의 책, 297쪽.

107)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앞의 책, 827쪽.

108) 심흥보, 앞의 책, 294~296쪽.

109) 위의 책, 297쪽.

110)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596쪽.

111) 심흥보, 앞의 책, 263~266쪽.

112)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앞의 책, 366쪽, 713쪽.

113)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50년사 편찬위원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50년사》,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1983, 382쪽.

114)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앞의 책, 2쪽.

115) 심흥보, 앞의 책, 268~271쪽.

116) 위의 책, 264쪽.

117) 위의 책, 272~278쪽.

118) 근 · 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 앞의 책, 2006, 355쪽.

 

119) 교구 사회복지기구의 역할은 교구에서 관할하는 사회 복지시설과 단체들에 대한 행정적 협의와 조정, 교육, 홍보, 조사연구, 사회 복지시설의 위탁운영 및 프로그램 개발 운영 등이다.

 

120) 이혜숙, 《종교 사회복지》, 동국대학교출판부, 2003, 62~64쪽.

 

121) 인권 복지는 가톨릭 사회복지의 특징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며, 현대 가톨릭의 사회적 위신과 평판을 결정지은 요소이다. 사회참여는 가톨릭 노동운동, 가톨릭 농민운동, 도시빈민운동 등 세 가지 형태로 전개되었다.

 

122) 문규현, 《한국천주교회사》 II, 도서출판 빛두레, 1994, 500~519쪽.

 

123)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2001 한국 천주교 사회 복지 백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2002, 59~61쪽.

 

12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 천주교회 총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 70~71쪽.

 

125) 1990년 중반 이후 수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헌신성, 투명성을 활용하려는 국가의 필요에 의하여 그리고 천주교의 자원을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이 역시 양면성을 가진다. 앞의 주 96) 참조, 364~365쪽.

 

126) 근 · 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 앞의 책, 2006, 356쪽.

127) 강인철 · 박문수 · 박영대,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 가톨릭신문사, 2000, 77~81쪽.

128) 심흥보, 앞의 책, 355쪽.

129) 위의 책, 333쪽.

130) 서경돈 · 이인숙 · 남인숙, 《해방 이후 가톨릭여자수도회의 사회복지활동》, 한국가톨릭신학학회, 2005, 116 ~117쪽.

131) 심흥보, 앞의 책, 333~337쪽.

132) 서경돈 · 이인숙 · 남인숙, 앞의 책, 120쪽.

133) 심흥보, 앞의 책, 359~367쪽.

134) 위의 책, 352~353쪽.

135) 위의 책, 365~363쪽.

136) 위의 책, 354~355쪽.

137) 위의 책, 337~339쪽.

138) 위의 책, 151쪽.

139) 위의 책, 340~342쪽.

140) 위의 책, 143~145쪽.

141) 위의 책, 345~346쪽.

142)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앞의 책, 87쪽.

143) 한국천주교사회복지위원회, 《가톨릭사회복지》, 2003. 여름, 93쪽

144)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앞의 책, 91쪽

145) 한국천주교사회복지위원회, 앞의 책, 95~116쪽.

146) 교회 인력과 자원이 전통적인 사회 복지에 집중되는 것은 교회의 사회·정치적인 역할의 축소와 관련이 있다.

 

147) 근 · 현대 한국 가톨릭연구단, 앞의 책, 2006, 362쪽.

 

148) 가톨릭교회의 헌신성과 투명성을 활용하려는 국가의 필요와 가톨릭교회의 욕구와 관계가 있다(근 · 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 《한국 근 · 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하), 가톨릭출판사, 2006, 364쪽).

 

149) 대북개발 사업으로 국수공장, 식료품 가공공장, 식수기계 설치, 결핵병원에 의료지원,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한 백신 등을 제공하였다(한국천주교사회복지위원회, 앞의 책, 2007. 여름, 58~63쪽 ; 위의 책, 2009. 봄, 79~83쪽 ; 위의 책, 2009. 겨울, 79쪽 ; 위의 책, 2010. 여름, 51~52쪽).

 

150) 실제로 사회 복지 시설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직자나 수도들마저도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근 · 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 앞의 책, 2006, 365쪽).

 

151) 《평화신문》 562, 2000년 1월 23일 11면.

152) 한국천주교사회복지위원회, 앞의 책, 93쪽.

153) 근 · 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 앞의 책, 2006, 365쪽.

154)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앞의 책, 121쪽.

155)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을 입소시켜 보호, 양육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

156) 요보호아동을 일시보호하고 아동에 대한 향후 양육대책수립 및 보호조치를 행하는 목적으로 하는 시설.

157) 아동과 그 가족의 문제에 관한 상담, 치료, 예방 및 연구 등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

 

158) 어린이공원, 어린이놀이터, 아동회관, 체육, 연극, 영화, 과학실험전시시설, 아동휴게숙박시설, 야영장 등 아동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여 심신건강유지와 복지증진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목적으로 하는 시설.

 

159)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에게 가정과 같은 주거여건과 보호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

 

160) 지역사회 아동의 보호, 교육, 건전한 놀이와 오락의 제공, 보호자와 지역사회의 연계 등 아동의 건전육성을 위하여 종합적인 아동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

 

161) 불량행위를 하거나 불량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아동으로서 보호자가 없거나 친권자나 후견인이 입소를 신청한 아동 또는 가정법원, 지방법원소년부지부에서 보호, 위탁한 아동을 입소시켜 그들을 선도하여 건전한 사회인으로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

 

162) 이 협의회는 종사 간 사회복지 관련된 협력사업, 공공 민간사회복지계와 협력사업, 종교사회복지 조사연구, 출판사업 등 공동목표를 가지고 활동을 하였다(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앞의 책, 96쪽).

 

163)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천주교사회복지편람》, 1999, 577~595쪽.

164) 한국천주교주교회의사회복지위원회, 《천주교사회복지편람》, 2008, 20쪽; <천주교서울대교구 서울주보> 2010년 5월 2일자 8면.

165) 한국천주교사회복지위원회. 앞의 책, 2005. 겨울, 90쪽.

166) 위의 책, 2002. 여름, 80쪽.

167) 위의 책, 102~104쪽.

168) 위의 책, 90쪽.

169) 위의 책, 2005. 겨울, 107쪽.

170) 위의 책, 103쪽.

171) http://flowerdaymorning.com/_page/sub/sub1.php.

172) 한국천주교사회복지위원회. 앞의 책, 2003. 여름, 100쪽.

173) 위의 책, 102쪽.

174) 심흥보, 앞의 책, 122~123쪽.

175) 한국천주교사회복지위원회. 앞의 책, 2003. 여름, 116쪽.

176) 위의 책, 2005. 겨울, 88쪽.

177) 위의 책, 2003. 여름, 95쪽.

178) 위의 책, 93쪽.

179) 위의 책, 115~116쪽.

180) 위의 책, 115쪽.

181) 위의 책, 2002. 여름, 80쪽.

182) 위의 책, 2002. 겨울, 105쪽.

183) 위의 책, 107쪽.

184) 위의 책, 2003. 여름, 94쪽.

185) 위의 책, 105쪽.

186) 위의 책, 2005. 겨울, 103쪽.

187) 위의 책, 2006. 겨울, 57쪽.

188) 위의 책, 75쪽.

 

189) 천주교가 국가와의 관계를 단절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여건을 살펴볼 때 천주교가 국가의 보조적 ·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190) 신민선 · 박용순, 《기독교와 아동복지》, 예영커뮤니케이션, 2005, 265~266쪽.

 

[교회사 연구 제35집, 2010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허근(서울기독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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