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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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위령] 위령 성월에는 꼭 식사 후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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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1-28 ㅣ No.2367

[돌아보고 헤아리고] 위령 성월에는 꼭 식사 후 기도를…

 

 

한 해를 마감하는 위령 성월입니다. 위령 성월이 11월, 곧 전례력의 마지막 달에 온 것은 ‘위령의 날’이 11월 2일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교회에서 순교자 공경과 성인 공경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서 점차 많은 성인이 생겨나자, 11월 1일이 ‘모든 성인의 날’로 정해져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수도원 개혁으로 유명한 클뤼니 수도원에서는 998년에 제5대 원장이었던 오딜로(Odilo)가 그다음 날인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지내도록 수도자들에게 명령하였고, 그 이후로 점차 정착되어 11월 한 달 위령 기도가 바쳐지고 위령 성월이 되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첫날 11월 1일에 ‘모든 성인의 날’ 전구 기도를 통해서 성인들의 은덕을 받고, 아직 보속이 남은 연옥 영혼들을 위해 다음 날 ‘위령의 날’에 기도해 드리는 것은 매우 좋은 전통인 듯합니다. 이미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는 한국교회의 시작부터 좋은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옛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에는 곳곳에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먼저 저녁기도인 만과(晩課)에는 시편 129편과 함께 두 가지 기도문이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첫째는 「남녀 교우 중에 새로운 죽은 이들을 위하여 바치는 기도」입니다.

 

(남녀 교우 중에 새로 죽은 이 있거든 그들을 위해 이 아래 경을 염하라.)

“성모께 간절히 비나니 전차로(전구 기도로) 천주께 구하사, 새로 죽은 (아무)의 영혼이 연옥 형벌을 면하고, 길이 평안함을 누리게 하소서.” (천주경, 성모경 각 한 번)

 

교우촌에서 굶주림과 병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음에 이른 교우들을 위해 이렇게 짧은 전구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어서 성영(聖詠, 시편) 129편 기도를 바칩니다.

 

“주여 나ㅣ 깊고 그윽한 곳에서 네게 부르짖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굽어 들으소서. 네 귀를 기울이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주여 너ㅣ 만일 죄악을 살피시면, 주여 뉘 능히 당하리잇가. [중략] 주여 망자들에게 길이 평안함을 주소서. 영원한 빛이 저희에게 비추어지이다. 망자들이 평안함에 쉬여지이다. 아멘.”

 

그러고 나서 두 번째 기도문 「죽은 모든 믿는 이들을 위하여 바치는 기도」가 이어집니다.

 

“모든 믿는 자를 조성하시고 구원하신 천주여, 너를 섬기던 남녀 영혼들에게 모든 죄를 풀어주사 그 평생에 원하던바 사하심을 우리 정성된 기도로 얻게 하소서. 아멘.”

 

이렇게 매일 저녁기도 때마다 우리 신자들은 최근에 선종하신 분을 위해 기도드리고, 동시에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주일마다 미사를 대신하는 「첨례경」에는 ‘칠기구(七祈求)’라는 일곱 가지 보편 지향 기도가 있었습니다. 교황님, 주교님과 사제들, 임금과 관리들, 신자들, 병들고 가난한 이들, 이단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옥 영혼을 위하여 매주 기도했습니다. “죄벌을 용서하사 길이 평안케 하소서.”라는 매우 짧은 화살기도 형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천주성교공과』 기도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천주성교예규』라는 상장례 예식서를 만들어서 임종 및 입관, 하관 등 예식과 기도를 함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바로 거기서 시편 기도를 외우는 연도(煉禱)가 생겨났습니다.

 

“상장례 예식서 출간 이래로 그 남쪽의 모든 지역에서 외교인들을 의식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그것을 실행하는데, 그것이 많은 고장에서 성공하여 입교자들을 끌어들이기까지 했습니다. … 구경하는 외교인들은 아랑곳없이 선두에 십자가를 앞세우고 저마다 손에는 촛불을 들고서 큰 소리로 시편을 암송하며 열을 지어 지나가는 천주교인들의 장례 행렬은 조선에서는 보기에도 참으로 야릇한 광경이지요. 그 먼 지방의 외교인들은 대체적으로 우리 천주교의 장례의식이 장엄하고 아름답다고 보았으며, 천주교인들의 장례가 자기네들의 그것보다 훨씬 낫게 치러지고 있다는 말까지 합니다”(1863년 9월 13일, 다블뤼 주교가 부모님께 보낸 편지 중에서).

 

다블뤼 주교의 이 편지는 천주교 장례 예식과 연도가 이미 그 시기에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옛 신자들은 삶에서 죽음을 매우 가까이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삶의 목적이 본래 온 곳으로 되돌아가고, 본 주인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임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요리 문답의 첫 문항입니다.

 

문 :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

답 :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났느니라. 우리가 연옥 영혼들을 위해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식사 후 기도를 잘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영혼 영혼을 위한 기도가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후 축문(飯後祝文, 식사 후 기도문)

전능하신 천주여, 네 모든 은혜를 위하여 우리들이 네게 감사하나이다. 아멘.

계 : 주의 이름을 찬송함이여!

응 : 이제로부터 무궁세에 이어지이다.

죽은 믿는 자들의 영혼이 천주의 인자하심으로 편안함에 쉬여지이다. 아멘. 

 

[교회와 역사, 2023년 11월호,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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