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새해에는 사랑의 말, 효도의 말, 아름다운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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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1-04 ㅣ No.849

[허영엽 신부의 ‘나눔’] 새해에는 사랑의 말, 효도의 말, 아름다운 말을

 

 

새해 첫날

아버지 무얼하고 계십니까

당신의 나라에도

설을 지내고 고운 한복을 차리시고

세밸다니십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큰 고모님 조카들 한상에 둘러서

떡국에 윷놀이 즐기시고

이 세상 자식들 이야기에

웃음꽃 피우십니까.

 

새해 첫날밤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빈 공간에 가득한

고통스런 기침소리 때문도 아니요

 

생애 그림자가 너무 짧아

야속한 마음 때문도 아니요

 

밤 깊도록

도란도란 옛이야기 들려주시던

구수한 목소리가

이젠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세배드립니다.

올해도 복 많이 받으시고

당신의 나라에서

뵈올 때까지 부디 안녕.<작가 미상>

 

벌써 새해입니다. 새해가 되면 세상을 떠난 부모님, 친척들, 인연들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통공의 은총을 나누며 기억하고 기도하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올해도 레지오 마리애 모든 단원들과 가족들에게 하느님의 크신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01년 9월11일,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여객기 2대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충돌한 미증유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빌딩 안 자욱한 연기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낀 희생자들이 남긴 전화 메시지는 거의 비슷했습니다.

 

“이게 당신과 마지막 전화가 될 것 같아. 그동안 당신에게 감사하고 그리고 미안했어. 사랑해.”

“나는 당신과 나의 가족들을 사랑해, 영원히….”

 

사람들이 곧 죽음을 직면하면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남긴 메시지 어디에도 미움과 복수에 관한 것은 없었고 모두 사랑과 용서, 감사에 관한 메시지였습니다. 인간의 마지막 순간에 남기는 말, 유언은 정말 그 사람에게 소중한 말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중요한 사람에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사랑의 말이 아닐까요. 하느님이 나에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성경에 잘 담겨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랑의 정의는 간결하고 분명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16)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면 메두짜라고 부르는, 성경 구절을 적은 양피지를 넣은 작은 성구갑을 이마와 왼쪽 팔에 차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성구갑을 이마와 왼쪽 팔에 차는 것은 머리로는 율법을 생각하고 왼팔 윗부분이 닿는 심장으로는 율법을 사랑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구갑 안에 담겨있는 성경 구절들은 모세오경의 탈출기 13장 1-10절과 11-l6절, 신명기 6장 4-9절과 1l장 13-21절입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권능을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해 성구갑을 착용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인간은 자주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곳에 있어야 반복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성구갑은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몸에 지니고, 몸과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공부할 때 모르는 내용도 100번을 큰소리로 읽으면 뜻을 알 수 있다고 옛 성현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단어들을 외울 때 밖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것과 눈으로만 읽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성호를 긋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말씀으로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 생활뿐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생활에도 엄청난 결과를 드러냅니다. 올해는 긍정적이고 사람을 살리는 말씀, 사랑과 감사 등 좋은 말만을 하도록 노력합시다. 이웃사랑의 첫발도 말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정과 믿음의 어머니 말씀에 큰 변화 가져와

 

초등학교 때 성적이 안 좋아 여름방학 날 어머니께 성적표를 갖다 드리며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날따라 어머니는 성적표는 찬찬히 살피시고 생활난에 선생님이 써준 글을 읽고 짧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능하면 반에서 발표를 좀 더 많이 하렴.” 나는 어머니께 야단을 맞을 줄 알았는데 성적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안 하셨습니다.

 

“영엽아! 네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성적은 좋아질 거로 생각해. 그래서 성적은 솔직히 걱정 안 해.” 어머니는 그 이후에도 공부를 강요하는 말씀은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야단을 안 맞아 안도했지만 나에 대한 인정과 믿음의 어머니 말씀은 어린 나이였지만 공부하는 데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회초리를 맞거나 말로라도 야단을 맞았다면 아마도 그 이후는 전혀 달라졌을 것입니다. 식구가 다 잠든 새벽 시간에도 찬물로 세수하고 스스로 공부하고, 어머니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시도록 숙제도 스스로 해냈습니다. 일제 강점기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어머니가 교육학적 의미에서 그런 방법을 의도하셨는지 여쭈어본 적은 없지만 어린 나이부터 공부는 온전히 내가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몹시 더운 여름날 공부하다 창문을 조금 열어보면 때마침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멀리까지 배달을 마치고 오신 어머니가 허리가 아프신지 허리를 한 팔로 툭툭 치시며 찬물을 바가지로 벌컥벌컥 들이켜는 것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서도 지금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힘들게 일하셔서 우리를 공부시켜주는 데 일이 많아도 짜증 한 번 안 내시고 큰 소리 한번 안 내셔서 고맙고 또 감사합니다.”

 

올해는 만나는 사람에게 특별히 좋고 아름답고 살리는 말을 하도록 더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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