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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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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8 ㅣ No.99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 (1)

 

 

사목 상담자로 살아가면서 실제로 가장 많이 접하지만 가장 다루기 힘든 영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부부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한 개인의 내적 문제를 함께 해주는 개인 상담의 영역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들, 곧 남편과 아내 각 개인의 독특한 성격과 기질의 문제들을 기본으로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부부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문제,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 시부모 또는 장인 장모와의 갈등 문제, 경제적인 문제, 성(性)적인 문제 등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혼과 가정 해체의 위기 상황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부부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인격 내적인 문제들과 상황 외적인 문제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일어나는 것이기에 이러한 상호작용의 구조와 역동을 잘 이해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상담적 개입의 지혜가 요구되는 상담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설사 상담자가 이러한 가족 내의 상호작용에 대한 구조와 역동을 잘 분석해 낸다 하더라도 부부 상담이라고 하는 특성 자체가 그 어떤 개인 상담의 영역보다도 훨씬 그 구조가 복잡할 뿐 아니라 단순한 심리 내적인 문제만이 아닌 개인의 노력으로는 변화가 어려운 상황적이며 환경적인 요소들이 늘 함께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상담자 편에서는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운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한층 더 나아가 한 가족의 문제를 사목 상담자의 입장에서, 아니 본질적으로는 사목자의 위치에서 접근한다고 할 때, 특히 이혼이라고 하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는 상황은 사목 상담자에게 ‘뜨거운 감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 않은 성직자와 수도자가 어떻게 결혼생활을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도움을 준다 하더라도 과연 얼마나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단순한 부부간 대화의 부재나 성격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자녀 양육과 교육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부부의 은밀한 성(性) 문제에 대해서는 실제로 가정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과 그 경험을 나눈다는 것이 여간 탐탁지 않을 것이 너무도 확연하다. 반면에 이러한 경험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는 사목자를 만난다 하더라도 그들은 피상적이고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치부하고, 실제적인 경험을 통한 이해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충분히 공감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 어려워한다. 이러한 이유로 사실 부부 상담은 거의 사목 상담자들에게 의뢰되지 않으며, 더군다나 신앙과 연결되어 있는 사목자에게 이혼을 생각하거나 전제로 한 상담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혼의 위기에 놓인 가정이 사목자의 도움을 애타게 찾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사목자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한 심리치료나 법률적 차원의 도움이 아닌, 인간적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느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애원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신앙적 도움이다. 따라서 사목 상담자가 이러한 위기에 빠진 가정에 신앙적 도움과 함께 인간적이며 실제적인 상담적 도움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하느님 백성의 가정들이 하느님의 은총과 도우심 안에서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가정이 늘어날수록 신앙을 가진 가정들이 교회가 자신들을 잘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신앙 밖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만 하는 자세를 지양하고 신앙과 함께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는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나갈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목 상담자는 신자들의 가정문제에 대해 신앙을 바탕으로 한 사목적 배려와 함께 전문적인 상담 기술도 아울러 겸비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만이 신자들이 가정의 문제로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게 할 것이며, 가정의 문제를 신앙 안에서 실제적인 상담적 도움과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먼저 사목 상담자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가정문제의 구조적 발생 원인에 대한 이론적 배경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이 이론적 구조틀은 사실 수많은 종류의 가정문제와 부부문제들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며 부부 상담의 목표를 세우는 데에 초석이 된다.

 

 

1. 부부관계와 부부 갈등에 관한 이론적 이해

 

먼저 한정된 지면으로는 부부문제를 다룬 학자들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종합하기 어려운 관계로 여기서는 대략적으로 큰 범주 안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개념 세 가지만을 제시해 볼까 한다. 먼저 부부문제를 하드웨어적으로, 곧 조직과 체제 안에서 바라보는 관점과 두 번째로는 부부문제를 소프트웨어적으로 부부간의 대화의 문제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는 보웬(Murray Bowen)이라고 하는 학자가 주장한 분화(differentiation)의 개념을 살펴봄으로써 부부문제의 발생에 대한 구조적인 틀을 이해해 보도록 하겠다.

 

1) 체제론적 관점(system)

 

(1) 가족은 체제이다. 

 

이 관점은 한마디로 가족 자체를 체제(system)로 보는 것이다. 체제에는 전체체제가 있고 그 아래에 딸린 하위체제들(subsystems)이 있는데, 전체체제는 하위체제들을 가지고 있지만, 하위체제들 없이는 전체체제가 유지될 수 없는 성질이 있다. 곧 하위체제는 전체체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하위체제들은 또한 자체로 전체체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가족이라는 전체체제는 부부라는 하위체제와 부모라는 하위체제, 그리고 자녀라는 또 하나의 하위체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하위체제들은 가족이라는 전체체제의 단위로 존재하면서도 각 하위체제 없이는 가족이라는 전체체제가 유지되지 않는 각각의 고유한 전체체제인 것이다. 

 

(2) 체제들은 위계질서(hierarchy)가 있다.

 

체제에는 위계질서가 있는데, 상위의 체제들은 하위의 체제들에 선행하는 규칙과 질서가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부모의 체제는 자녀의 체제보다 상위의 체제이기 때문에 부모의 생각과 행동이 자녀의 생각과 행동에 선행한다는 규칙과 질서가 두 체제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3) 체제들은 경계선(boundary)이 있다. 

 

각 체제는 자신을 다른 체제와 구분 지을 수 있는 개념적 경계선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경계선으로 전체체제와 하위체제의 구분이 이루어지는데, 이 경계선은 눈에 보일 수도 있으며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부모체제와 자녀체제 사이의 경계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집에서 대문은 안과 밖의 경계선으로서 눈에 보인다. 또한 한 가족과 다른 가족 사이의 경계선은 각 가족이 가지고 있는 규칙에서 드러난다. 이때의 규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다. 

 

한편 경계선에는 그 성격에 따라 완전투과형 경계선, 반투과형 경계선, 불투과형 경계선 등이 있으며, 기능에 따라 순기능적 경계선과 역기능적 또는 병리적 경계선이 있다. 만일 어떤 체제의 경계선이 자신 안으로 들어오려는 정보를 여과 없이 무조건 받아들인다면 이를 완전투과형 경계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각 체제가 가지고 있는 규칙에 따라 어떤 정보는 받아들이고 어떤 정보는 체제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배제할 수 있는 선택이 존재한다면 이는 반투과형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무조건 어떤 정보도 체제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하는 경계선이 바로 불투과형 경계선이다. 

 

이러한 세 종류의 경계선 가운데 반투과형 경계선이 기능적으로는 각 체제의 규칙에 따라서 정보의 흐름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순기능적 경계선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투과형과 불투과형은 체제의 규칙에 관계없이 정보가 무조건 유입되거나 아니면 무조건 거부되는 것이므로 기능을 잘하지 못하는 병리적 경계선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반투과형 경계선, 곧 기능하는 경계선을 가진 체제는 환경과 체제의 상호작용이 원활하기에 ‘열린 체제’라고 부른다. 이러한 체제는 정보의 유입과 방출이 자유로운 상태로 문제가 없이 체제와 환경 그리고 체제와 체제 사이에 관계가 좋아진다. 그러나 완전투과형이나 불투과형 경계선을 가진 체제는 ‘닫힌 체제’라고 불리면서 체제와 체제 그리고 체제와 환경 사이의 어떠한 상호작용도 거부한다. 

 

사실 엄격히 말하면 어떠한 체제도 완전한 ‘열린 체제’ 또는 완벽한 ‘닫힌 체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체제의 열림 정도가 필요에 따라 그리고 체제의 특성에 따라 각 상황이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계선의 투과성은 때와 장소 그리고 시기에 맞추어 얼마나 적절히 체제들과 환경들에 상호작용하게 되는지에 따라 그 효용성이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관계를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부모체제와 자녀체제 사이에 상호작용에서 부모체제가 어떤 때에 자녀의 요구를 받아줄 것인지 어떤 때에 그 요구를 받아들여주지 않고 야단을 칠 것인지는 그 때와 장소 그리고 상황의 유동적 변수에 달려있다. 이 경계선이 적당히 상황에 적응하여 열리고 닫혀야 부모와 자녀 체제는 서로 유기적으로 기능하며 체제 유지를 할 수 있다. 부부간에도 어느 때에 나의 경계선을 열어 상대방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나의 희생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나의 경계선을 닫고 상대방의 요구를 거절하여 나의 의견이나 감정을 주장할 것인지에 대한 경계선의 열림과 닫힘은 늘 때와 장소 그리고 상황의 특수성에 달려있다. 이러한 기능이 부부체제에서 원활히 조정되어야만 부부간의 체제 유지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4) 체제들은 자신의 안정과 생존, 그리고 재구성을 위한 항상성(home­ostasis), 변형성(morphogenesis), 그리고 재방향성(reorientation)을 가지고 있다. 

 

체제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자신의 안정을 위해 자신을 스스로 지키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항상성이라고 한다. 이 항상성은 체제에 일관성과 안정성을 부여하여 혼란과 무질서를 방지해 준다. 그러나 세상과 환경 그리고 가치관이 바뀌면서 이러한 체제들은 결코 자신 안에 안주하여 생존할 수 없음을 알게 되어 스스로 바뀌어야 함을 느낀다. 이때 체제는 항상성을 포기하고 변형성을 선택하게 된다. 또한 이렇게 변화한 체제는 자신이 변화했던 이 모양 자체에 가치관적 변화를 덧붙여 완성을 이루게 되는데 이를 재방향성이라고 한다.

 

이를 부부의 문제에 대입해 보면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부부들은 각자 자신들의 독특한 개성과 기질을 가지고 살아오다 혼인을 하면서 처음으로 다른 개성과 기질을 가지고 살았던 배우자와 살아가게 된다. 이때부터 부부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체제를 계속해서 유지하려는 항상성과 배우자를 위해 자신의 체제를 변형시켜야 하는 변형성 사이에서 긴장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성숙한 체제들은 삶을 지속하면서 각자의 항상성만을 고수해서는 부부체제가 원활하게 성립되지 않음을 깨닫고 자신의 항상성을 포기하고 변형성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성숙하지 않은 체제들은 변형성으로 나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엄두를 못 낸다. 왜냐하면 자신의 고유한 체제의 항상성을 포기해야 하는 아픔이 따르고,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여 재방향성을 구축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남성상에 대한 편협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여성을 비하하는 언행에 익숙한 남편이 자신의 가치관을 조정하고 체제를 변화시켜 동등한 성의식을 키워가고 부부의 동반자적 가치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상당한 자기 성숙과 고통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이다. 항상성 원리로만 유지되는 가정은 절대 기능하지 못하게 되어있으며 변화를 거부하는 체제는 결국 붕괴를 맞게 된다. 따라서 각 체제간에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항상성 원리만을 서로 고수할 때 부부관계에 위기가 오는 것이다. 

 

2) 대화론적 관점(communication)

 

앞서 살펴본 가족체제 이론은 부부관계나 가정관계의 모든 문제를 하나의 체제(system)로 보아 체제가 자체로 생존하면서도 또한 전체체제 안에서 유기적으로 상호연관을 맺으며 생존하려면 스스로 경계선을 조절하고 체제의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데 그것에 문제가 있을 경우 체제에 위기가 발생한다는 원리였다. 그러나 대화론적 관점은 모든 인간의 문제는 ‘의사소통(communication)’에서 발생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1) 부부의 문제는 대화, 곧 의사소통의 문제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의사소통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행위 자체는 대화를 위한 것인데, 이는 꼭 언어적인 대화만이 아닌 신체적인 대화, 곧 비언어적인 의사소통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부부의 문제 역시 모든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일어난다고 본다.

 

(2) 대화에는 내용(content)과 관계(relationship)의 차원이 있다.

 

대화에는 그 대화가 뜻하고 있는 내용이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화는 그 대화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주고 있다. 예를 들면 직장 상사가 여직원에게 “미스 김, 여기 커피 한 잔 가져와!”라고 말했다면 내용으로는 커피 한 잔 달라는 이야기이지만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볼 때 이 대화의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수직관계가 존재하며, 직원은 상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관계 규정적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부부 사이에서도 대화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떤 방식의 관계를 가지고 행해지는지도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대등한 위치(position)에서 대등한 힘(power)을 가지고 서로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의 가정에서는 거의 대부분 한 편이 다른 한 편 위에서 권력을 행사하며 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대화의 관계적 차원은 부부문제에서 아주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3) 인간은 대화를 타인이 아닌 자신의 입장에서만 전개하려 한다.

 

의사소통은 계속적인 연속선상에서 흘러간다. 예를 들면 부부간의 대화는 서로 만남을 시작하면서부터 계속적인 연속선상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부간에 문제가 발생하면 각각은 서로 지금까지 전개된 연속적인 대화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어 확대 해석하거나 과잉 일반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입장과 이해만을 대변하며, 상대방에게 모든 문제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곧 각자가 자기만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전체적인 대화의 면모를 보지 못하고 자신들이 보려고만 하는 부분적인 대화의 면모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가 취하고 싶은 논리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상대의 논리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지 않고 대화가 단절되게 된다. 

 

예를 들면 가정법원에 이혼 신청을 낸 어떤 부부의 경우, 남편은 이 이혼의 책임은 부인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라고 하고, 부인은 남편의 폭행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곧 남편은 부인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폭행을 했다고 하고, 부인은 남편이 폭행을 일삼기 때문에 바람을 피우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 부부간의 문제는 누가 먼저 사건을 일으켰는지에 대해 따져보거나, 아니면 어느 쪽이 먼저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는지를 추궁하는 논리적 접근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건은 다른 요소들과 함께 연속선상에서 함께 고려되어야만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곧 서로의 논리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체적인 의사소통과 삶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부부문제의 원인을 규명한다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논하는 과정과 같이 명확하게 한 쪽의 책임으로만 전가시킬 수 없는 특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3) 보웬의 분화적 관점(differentiation)

 

보웬은 인간들은 대부분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게 되어있다고 주장한다. 실로 감정의 힘은 이성의 힘보다 훨씬 더 자연적인 본능이며 감정체계는 모든 생명체의 행동양식을 통제하는 삶의 힘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동물을 볼 때 먹이를 놓고 다투는 것은 생존을 위한 감정 때문에 시발된 행동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사회에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며 아이를 양육하는 그 모든 것도 대부분 감정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감정체제 외에도 느낌체제(feeling system)와 지적 체제(intellectual system)를 가지고 있다. 느낌이란 인간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가지게 되는 인지적 인식(cognitive awareness), 곧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인지적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에게 분노라는 감정이 들 때 자신이 이러한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느낄 수 있다. 곧 분노는 일차 감정이고 수치심은 이에 따르는 이차 느낌이다. 한편 지적 체제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제를 놓고 볼 때 가족이란 인간의 순수한 감정적 집단체라고 보웬은 규정하였다. 곧 가족이란 분화되지 않은 자아의 덩어리(undifferentiated family ego mass)로서 생물학적 개념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성보다는 감성이 발달한 한국사회 안에서 가족의 개념은 순수한 감정적 집단체 그 자체이다. 자식이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호되게 매를 맞고 들어왔다고 하자. 이성적인 가족이라면 조목조목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물어볼 것이며 잘잘못을 가려내어 만일 잘못한 일이 있었다면 학교 선생님에게 자식을 가정에서 잘못 가르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할 것이다. 이것이 학부형으로서 옳은 행동이며 이성적인 부모의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의 부모들은 일단 감정적으로 화부터 치밀어오르기 시작하여 학교 선생님에게 항의를 한다. 내 자식이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자식이 맞아서 힘들어하는 상황을 보면 일단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가족은 감정적 집단체임을 증명해 준다.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감싸 안기가 우선인 집단이 바로 가족인 것이다. 

 

만일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사를 욕하며 한참 넋두리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 아내가 나름대로 상사의 입장이 또 다를 수 있다며 직장 상사의 입장을 대변했다고 하자. 그 다음의 이야기는 물 보듯 뻔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반대로 이웃집 누구 엄마와 싸운 이야기를 토로하며 한껏 열을 내며 욕하는 아내에게 “내가 보기에는 당신도 그 싸움의 원인을 제공하긴 했구먼.” 하고 중립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남편이 있다고 하자. 그 다음에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사네 못 사네 하면서 한 판 싸움이 벌어질 것이 뻔하다. 왜냐하면 가족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감정적인 유대감에 어긋난 말을 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 편이야?”, “그렇게 그 여자 편을 들고 싶으면 그 여자하고 살아!” 등의 말도 안 되는 감정적인 말이 쏟아져나오게 되는 배경에는 가족이란 감정적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같은 편’이어야 한다는 감정적 유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보웬은 이러한 가족의 감정적 체제 안에서 개인은 반드시 지적 체제로 분화(differentiation)되어야 하며, 이러한 분화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에 따라 가족간의 문제나 부부간의 문제가 잘 풀어지는가 아닌가가 결정된다고 하였다. 곧 ‘분화’라고 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얽혀있는 가족과의 자연스러운 감정 덩어리에서부터 자신이 지적 체제를 가지고 얼마나 이 감정들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어머니와의 감정적 분화가 되지 않은 남편을 둔 부인은 분명 부부간에 문제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가족과의 감정을 이성적으로 통제하고 자신의 본가와의 감정적 관계의 분화에 적절히 성공한 남편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부부문제를 덜 일으킬 수 있다. 곧 분화라는 개념은 감정으로 얽힌 환경 속에서 얼마만큼 지적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척도를 말한다. 

 

사실 이러한 분화는 평생을 놓고 힘써야 하는 도를 닦는 과정일 수 있다. 특히 부모와 자식 사이에 분화를 이루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어떤 어머니는 아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감싸고돌다가, 아들이 결국 경찰에 잡히게 되자 자신의 아이는 결코 그런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하소연하는 분화가 안 된 어머니가 있는 반면에, 범죄를 저지른 자식을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며 경찰에 신고하는 분화가 잘된(?) 아버지도 있다. 자신이 직접 낳은 아이가 아니기에 생물학적인 정은 없지만 입양을 통해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하나의 생명이며 인격체로 생각하여 입양아를 자신의 자식과 같이 잘 키우는 분화가 잘된 부모들이 있는 반면, 전 부인 또는 전 남편에게서 얻은 자녀를 데리고 재혼을 한 배우자의 아이들이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고 하여 괄시하고 학대하는 분화가 안 된 부모들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분화는 인간이 감정의 동물에서 이성의 존재로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에 부부관계에서 이 분화가 무척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지금까지 부부문제를 바라보는 많은 인식의 틀 가운데 크게 세 가지(체제적 관점, 대화적 관점, 분화적 관점)만을 요약해서 살펴보았다. 그 외에도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일단 사목 상담자는 이 세 가지만을 염두에 두어도 부부간에 문제가 생겨났을 때 어느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으며 따라서 어떠한 방식으로 상담을 이끌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사목, 2005년 9월호, 박현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 신부)]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 (2)

 

 

2. 위기에 놓인 부부들을 위한 상담과 치료

 

앞서 우리는 부부 갈등의 원인에 대한 세 가지 이론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곧 부부 갈등은 체제론적 관점에서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는 견해, 부부들 상호간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견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 두 가지의 내용을 함께 가지고 있으면서 나름대로 분화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보웬(Bowen)의 견해를 알아보았다.

 

사실 이러한 관점 외에도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원(原)가족과의 문제를 통해 현재의 가족문제와 부부문제를 바라보는 대상관계 이론을 비롯하여, 체제적 관점이냐(hardware, system) 아니면 상호관계적 관점이냐(software, communication)의 사이에는 수많은 이론들이 교집합처럼 산재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이론은 한 사람을 어느 한 부분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다각적인 시각이 결국에는 전체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곧 부부체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상호관계에 대한 감각이 서로 발달하면 체제의 문제가 완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부부간에 상호관계적 문제가 있을 때에도 부부체제나 가족체제를 지금까지의 ‘항상성’ 기능을 포기하고 ‘변형성’을 통한 ‘재방향성’으로 그 경계선을 재구성한다면 의사소통이라든지 상호관계에 대한 문제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곧 부부 자신들이 바뀌든지(체제론적 관점), 아니면 두 사람의 상호관계에 대한 기술이 향상된다든지(대화론적 관점), 서로가 가진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상관없이 치료는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산재해 있는 수많은 부부 치료 기법들은 다음의 두 가지 방향성을 가지고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방향성은 이러한 모든 이론의 종합을 통해 새로운 통합적 접근법을 사용하여 부부문제의 유형에 따라 적절히 이 모든 치료 기법들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향성은 반대로 아예 하나의 이론적 기법을 집중적으로 치료에 이용하면 자신이 다루지 못한 치료적 영역에서도 동시에 상호보완적 시너지 효과가 이루어지리라 믿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부부 치료 상담가들은 두 번째 방향과 같이 하나의 이론과 기법을 전문적이며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상담을 하지만 현대에는 특히 가족치료 분야에서 통합적인 모델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실 개인 상담 영역은 물론이고 전문적인 가족 치료나 부부 치료에서 통합적 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실제 임상 장면에서는 어렵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왜냐하면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상담자가 여러 치료 이론들의 접근법에 모두 능통해야 하고 어떤 기법을 어떤 사례에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많은 임상 경험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도 개인 상담 영역보다는 가족 치료 영역이나 부부 치료 영역에서 이러한 통합적 방법이 훨씬 매혹적이며 실제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은, 개인의 내적인 역동을 다루는 상담 영역과는 달리 부부 치료는 부부간의 관계는 물론이고 가족들과 상호 역동을 모두 다루어야 하는 전체적이고 거시적인 상담기법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합주의적 이론의 관점은 특히 사목 상황에서 부부문제를 다루어야 할 사목 상담자들에게 더없이 중요한 통찰을 제시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곧 사목 상담자는 여타의 심리치료사들이나 가족치료사들의 접근방식과는 다른 사목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부부들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 사목자가 바라보는 부부들의 문제나 치료의 관점은 분명 심리학자들과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심리치료사들은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목자들은 문제해결과 함께 사목적인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다.

 

사목자에게 부부 치료란 단순히 부부문제만을 해결해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부부가 서로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하느님 안에서 성가정을 계속적으로 이루어갈 수 있도록 하는 자부적인 사목적 배려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사목자는 전체적인 상담 기획과 통합적인 상담 기술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부부 치료 이론은 가족 치료 이론에서 부부관계만을 가지고 따로 파생된 이론으로서 가족들과의 관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부부 치료는 동시에 가족 치료이고, 이는 사목자들이 궁극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사목의 목적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실 가정사목이란 말 자체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목이란 본래 가정에서 시작해서 교회와 사회로 확장되어 결국 다시 가정으로 귀결되는 것인데 가정사목이란 말 자체가 마치 전체 사목의 영역 중 일부로서 여겨지거나 아니면 하나의 특수사목인 것처럼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사목자들이 구체적으로 부부 상담을 할 때 각 사례들을 구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지, 아니면 대화론적인 관점(이후로는 전략적인 관점이라는 표현을 하기로 함)에서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안목과 비전을 가질 수 있는 통합적인 상담 기획에 대한 모델을 나름대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초기 면접

 

(1) 부부와 합류하기(joining)

 

이 초기 면접은 부부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회기이다. 부부는 이 회기를 통해 자신들이 계속해서 이 치료를 받을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대략 30-40%가 두 번째 약속 회기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첫 회기에 상담자에 대한 이미지 또는 신뢰성이 얼마나 이 부부 치료에 중요한 관건이 되는지 가르쳐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또한 사목 상담자를 찾아오는 부부들 중에는 위기상황의 초기에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가 희망을 찾지 못하거나 이혼을 신중하게 고려하는 시기에 찾아오므로 첫 회기에서 치료의 확신이 들지 않을 경우 거의 대부분 다음에 찾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사목 상담자는 부부들과 합류하기 위한 마음가짐이나 신뢰와 라포(감정 전이) 형성이라는 차원에서 자신의 이미지나 인격에 대한 성찰을 늘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2) 총체적인 사정(assessment)

 

① 부부 상호작용 사정(전략적 접근): 일단 첫 사정은 부부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작업을 하는 전략적 접근으로 시작한다.

 

· 언어와 비언어적 태도 관찰: 우선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언어나 비언어적인 태도(얼굴 표정, 복장, 자세, 동작, 음성의 어조, 대화의 방식 등)가 관찰의 대상이 된다. 남편이 말을 할 때 아내는 어떤 감정과 태도를 보이며 아내가 눈물을 흘린다면 남편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관찰이 이루어진다.

 

· 부부의 전반적인 기능과 특별한 문제점 평가: 이 질문들은 부부와 사목 상담자 간에 신뢰의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 가능하므로 너무 이른 시기라 생각되면 다음 회기로 넘기면서 첫 회기에는 자연스럽게 비구조화 상담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이 단계에 사용되는 질문들은 단순히 사정의 도구로서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치료 효과도 함께 가지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부부 상호간의 관계에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을 상담자가 개입된 상황에서 다시 말로 재현하는 과정이란 일단 그 자체로 자신들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먼저 상담자는 기본적으로 문제를 알아보고자 현재를 탐색하고(예: 지금 당신의 관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과거로 회귀하며(예: 이 문제가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때는 언제부터입니까? 이 문제가 일어나기 전 두 사람의 관계에서는 어떤 점이 좋았습니까? 문제가 일어난 뒤 두 사람의 관계 중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다시 미래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다(예: 만일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됩니까?). 이것을 통해 사목 상담자는 부부의 당면 문제, 문제가 있기 전 관계가 좋았을 때의 상황, 그리고 그 문제들 주변에 존재하는 환경적 영향들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 상호 연쇄작용의 유형 평가: 이러한 문제 탐색과 확인 질문이 끝나면 이 문제들이 어떤 방식으로 ‘유형화’되어 계속적인 문제를 만들어 나가는지, 곧 ‘상호 연쇄작용’에 대한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당신은 지금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그 내용에 동의하십니까? 아니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와 같은 질문은 서로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준다. 또한 “당신이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당신의 부인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었나요?”와 같은 질문은 문제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드러내준다.

 

사목 상담자는 지혜를 발휘하여 두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서로 인식할 수 있도록 질문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 작업을 통해 사목 상담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부부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며 그 결과로 누가 어떻게 구체적인 반응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 문제의 심각성 또는 강도에 대한 신념과 자신의 감정 평가: 이 질문들은 각자가 자신의 문제점에 대한 주관적 감정 평가를 하는 항목들로 구성된다. “당신은 얼마나 오랜 기간 아내가 자신을 무시해 오고 있었다고 느끼십니까?”, “당신은 상대가 이 문제 때문에 얼마나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만일 당신의 느낌과 상대의 느낌에 차이가 있다면 그 문제의 심각성 또는 강도의 차이가 어디서부터 비롯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이러한 차이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 대안적 재구성 질문: 이 단계에서 사목 상담자는 부부들이 서로 지금까지의 문제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서로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운전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옆 좌석에 앉아서 화를 버럭 내는 남편이 당신을 무시하고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미래에 이런 상황에서 혹시나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소리를 지르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와 같은 질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질문은 지금까지 남편의 폭언이나 높은 언성이 아내에게는 자존심을 깎아내리고 자신을 무시하며 비난하는 부정적인 행동으로 인식되었지만 점차로 이러한 언행이 아내와 가정을 생각하는 남편의 불안감에서 시작된 것이거나 아니면 과거의 교통사고와 같은 상처에서 파생되는 개인적인 불안감의 발로로 이해될 때 과연 어떤 반응이 아내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서는 인지적 재구성을 위한 인지치료의 기법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목 상담자는 절대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또한 전략적 접근 사정을 하는 상담자는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또는 누가 먼저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집중적으로 찾아내는 것은 구조적인 접근에서나 사용하는 방법이기에 문제의 원인 제공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전략적 접근방법에서의 부부 치료는 문제의 책임 소재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화합을 위해 두 사람이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목 상담자는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고 싶은지에 대한 희망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 사람이 좋았던 체험이나 느낌들을 다시 한 번 공유할 수 있도록, 두 사람 사이에 숨겨있었던 자원을 발굴하는 방향으로 질문을 던지는 데 익숙해야 한다.

 

② 가계도 작성(구조적 접근): 두 번째 사정은 부부 치료에서 가장 기본적 정보라 할 수 있는 가계도에 대한 작성이다. 이 가계도의 정보는 보웬의 상징기호들을 참고해서 작성하면 된다. 사목 상담자는 이 작업을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혼자 작성하거나, 아니면 부부와 공동으로 작성할 수 있다. 사목 상담자는 이 가계도 안에서 현재의 부부문제와 연계된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상담 회기 동안 검증하고 확인할 것이라는 언질을 준다. 곧 각자가 원가족과의 관계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검증이 되면, 그러한 원가족과의 관계가 또한 어떻게 부부 사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목 상담자는 이 가계도를 통해 한 사람이 배우자 외에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그 경계선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되고, 가족 사이의 무언의 규칙 등을 재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부부나 가정에 대한 자신만의 개념이나 신념이 어떻게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된다. 이 외에도 가계도를 통해 사목 상담자는 부부들의 중요한 건강문제나 정신장애, 질병에 대한 가족사, 서로에 대한 성역할 기대와 환상, 가족간의 문화적 특성과 정신적 외상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된다.

 

· 원가족과 부부관계의 구조적 원인 사정: 가계도 작성을 마치면 사목 상담자는 이 안에서 배우자와 그 원가족과의 관계가 부부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구조적 원인을 밝혀낼 수 있어야 한다. 이 구조적 접근의 이론적 배경은 정신 역동적 대상관계 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상관계 이론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현상을 통한 부부관계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대상관계에서는 부부문제의 많은 부분이 원가족과의 관계에서 파생된 서로에 대한 환상(fantasy)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언변이 유창하고 활달한 성격을 가지며 상냥하고 싹싹한 여성은 자신과 같이 말이 많고 가볍게 보이는 남자보다는 과묵하고 무게가 있으며 중후한 사람에게 더 신뢰심을 가지며 이끌릴 수 있다. 이런 경우 흔히 우리는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이 만나야 상호보완관계를 이루어 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좋은 궁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상관계 이론에서는 이러한 궁합이 결코 오래갈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것은 상호보완으로 끌리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통해 끌리는 결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환상이 생겨나게 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개인은 자신이 의식적으로 억눌러왔던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상대방에게서 발견하게 되면 ‘동일시(identification)’ 현상을 체험하면서 곧바로 상대를 강렬하게 원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동일시에서 생긴 환상의 대상인 상대방은 결혼 뒤에 곧바로 다시 ‘대상관계’로 변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억눌러왔던 바로 그 부정적인 모습을 상대방에게 다시 찾아내게 되는 ‘투사(projection)’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앞의 예를 다시 적용해 본다면, 상냥하고 싹싹한 아가씨는 사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과묵하면서도 감정 표현이 즉각적이지 않고 항상 중심이 서있는 듯한 모습을 자신의 내면에서 싫어하거나 억누르고 있을 수 있다.

 

이 이유는 원가족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곧 아버지가 권위적이었거나 감정 표현이 없고 과묵하면서 역기능적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이 여성은 이러한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 안에서 몰아내느라 정신이 없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절대 나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거야.’라는 식의 내면적 다짐이 이러한 성격을 자신 안에 억눌러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은 동시에 잃어버린 이 부분이 자신도 모르게 내면으로 이상화되거나 아니면 익숙한 의존적 감정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예를 들면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처럼 자신이 억압했던 부분이 사실은 자신이 가장 익숙해 있던 부분이고, 자신도 모르게 의존적인 성향으로 자신 안에 억눌려 있는 상태로 내재되어 있었던 부분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곧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린 뒤 다시 중독자 가정이 되는 그런 경우이다. 또한 배우자를 선택할 때 자녀들이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같은 이미지를 혐오하면서도 결국은 그 이미지와 같은 사람을 찾게 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여성의 경우 자신이 억눌렀던 이미지를 상대에게서 확인하면 자신이 부정했지만 사실 이상적인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동일시’가 적용되면서 ‘환상’을 만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은 얼마 가지 않아서 자신이 그토록 억눌러왔던 바로 그 성격임을 깨닫게 되는데 이때 사용되는 것이 바로 ‘투사(projection)’로서 아버지의 싫은 모습이 다시 배우자에게 투사되어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것이라 생각되어 환상에 이끌려 결혼하지만, 나중에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혼에 이르게 된다. 곧 결혼 전에는 과묵하고 진지하며 중후하게 보였던 남편이 결혼 뒤에는 오히려 대화가 부족하며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매사에 권위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현상은 부부문제와 관련한 근원적인 무의식 탐구에 많이 응용되지만 부부관계를 너무 무의식의 문제로만 보게 된다는 비판도 많이 받는다.

 

따라서 보웬은 이를 보완하여 다른 차원에서 투사적 동일시 현상을 소개한다. 그는 분화(differentiation)의 차원(원가족과 자신을 정신적으로 구별하는 수준)에서는 같은 수준에 있는 사람끼리 동일시를 통해 만나고, 사용하는 방어기제의 측면에서는 서로 상반되는 사람끼리 투사를 통해 만난다고 하였다. 앞의 예를 적용해 보면 언변이 출중하고 싹싹한 여성은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사람이기에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과묵하고 조용하며 무게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다.

 

· 부부 사이의 밀착과 격리 경계선 사정: 가계도를 통해 또 하나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구조적 요인은 바로 부부의 경계선에 대한 사정이다. 이는 각 개인이 얼마나 자신의 원가족과 분화를 잘 이루었는지에 대한 사정과, 각 부부 사이는 서로가 자신의 경계선을 명확히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서로 밀착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정이다. 곧 함께 지내는 것과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에 대한 유연성이 잘 이루어져야만 구조적으로 기능하는 가정이라 할 수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부부문제에서 이 경계선은 병리적인 수준인 경우가 많다. 이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심한 경우는 경계선 인격장애를 앓게 되거나 정신분열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자신과 어머니 사이의 경계선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밀착되어 있는 상태의 남성이 결혼을 하면, 자신의 존재를 지탱해 줄 어머니와의 밀착을 유지하자니 아내와의 관계가 안정될 수 없고, 그렇다고 떨어지자니 어머니로부터 안정된 감정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가정불화는 물론이고 급기야는 자신의 고유한 경계선마저도 잃어버리는 상태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 부부의 권력관계 및 의사결정 사정: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 알맞은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일 어느 한 쪽이 지나치게 많은 힘을 가지고 있거나 적은 힘을 가지고 있으면 가족의 위계질서는 무너지게 된다. 이것은 부부관계나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곧 가족들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들에서 어떤 역기능적 구조가 있는지를 사정하는 것이다.

 

· 부부의 역할과 책임감 사정: 가족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상대방을 잘 돌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들 모두 자신의 역할과 책임감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사정하는 것이다.

 

· 부부의 의사소통 구조 사정: 밀란(Milan) 연구팀은 부부간에 진실된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의 대부분은 그들이 게임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류분석 치료의 이론을 기반으로 부부간의 상호작용에서 혹시 게임이 등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정은 가족들이 더 이상 비밀스런 상호작용으로서 심리게임을 하지 않고 진실하고 올바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첫 사정에 해당한다.

 

③ 특수사정 또는 심리검사를 통한 사정: 특수사정은 일반적인 영역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특수한 문제가 부부에게 존재하는지 사정하는 것으로서 대개 면접이나 가계도 사정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지만, 심리측정 도구를 통한 자료는 이러한 면접과 가계도에서 얻어진 자료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정신장애나 일반적인 의학적 조건과 관련된 여러 관계상의 문제(우울성 적응장애나 불안 적응장애 등), 신체적 학대나 폭력의 문제, 약물 중독의 문제, 성적 학대나 성 도착증 또는 성 정체감 문제 등은 DSM-Ⅳ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제4편)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심리측정도구를 사용하면 좋을 특수사정 범주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특수사정 외에 일반적인 사정에서 심리학적 부부치료용 검사를 사용할 경우 다음과 같은 검사용 도구가 유용할 수 있다.

 

원가족 척도(Hovestadt, Anderson, Piercy, Cochran & Fine, 1985), MBTI, The Cattell 16-PF(Institute for Personality and Ability Testing, 1967), 결혼문제척도(Swenson & Fiore, 1982), 결혼활동척도(Birchler, Weiss & Vincent, 1975), 변화영역질문지(Weiss, Hopes & Patterson, 1973), 부부갈등척도(Notarius & Vanzetti, 1983), 성적상호작용척도(LoPiccolo & Steger, 1974), Golombok-Rust의 성만족척도(Golombok, Rust & Pickard, 1984), 갈등전략척도(Straus, 1979), 결혼적응척도(Locke & Wallace, 1959), 부부적응척도(Spanier & Filsinger, 1983), 결혼 준비-관계향상척도(Olsen, Fournier & Druckman, 1982), 친밀감척도(Olson & Schaefer), 결혼문제해결척도(Baugh, Avery & Sheets-Haworth, 1982), Golombok-Rust의 결혼상태척도(Rust, Bennun, Crowe & Golombok, 1988), 결혼지위척도(Weiss & Cerreto, 1980), 관계사정척도(Hendrick, 1988) 등. [사목, 2005년 10월호, 박현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 신부)]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 (3)

 

 

④ 정신장애와 진단: 네 번째 사정은 부부들 중 어느 한 쪽이 DSM-IV(「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제4편)의 진단 범주에 해당되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부부 상담과 치료는 이성과 감성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부부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기에 만일 어느 한 편이 정신장애를 경험하고 있다면 이것부터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습적 음주와 이에 따른 폭력이 문제가 되는 가정에서는 모든 상담 이전에 반드시 알코올 중독 치료가 선행되어야 하고, 가족 구성원들이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상황을 보장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또한 배우자의 극심한 우울증은 일단 부부의 위기이기 이전에 개인의 위기 상황이라는 인식 아래 적극적인 우울증 치료에 대한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한편, 이러한 심각한 정신장애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정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관계상의 문제(부부 사이와 부모 자녀 사이)’와 ‘학대나 방임에 관련된 문제(신체적 학대나 성적 학대)’가 부부간에 나타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DSM-IV의 ‘V’ 코드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2) 상담 목표와 전략 설정

 

(1) 상담 목표 설정

 

지금까지의 초기 면접에서 얻은 정보들은 상담의 목표와 전략을 세우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된다. 먼저 사목 상담자는 부부들에게 분명 자신들의 문제가 이전보다는 훨씬 더 호전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줄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초기 면접 이후 부부들이 다시 상담자를 찾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상담자는 이러한 치료 과정이 절대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지금의 상태보다는 분명히 훨씬 더 발전된 관계로 변화할 수 있음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물론 부부들을 위한 이러한 희망의 메시지는 사목 상담자 자신의 수많은 임상 경험과 연륜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어야 하겠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상담자라 하더라도 초기 면접 단계에서 어느 정도 객관적이며 정확한 사정이 이루어졌다면 스스로 이러한 자신감과 희망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모든 사정이 끝나면 부부들에게 발견되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들이 보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 가운데 사목 상담자는 어떠한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인지를 찾아내어 문제를 다룰 순서와 중요성에 대한 등급을 분류해야 한다. 일단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문제는 역시 정신장애나 폭력 또는 약물 남용과 같은 위급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들 가운데는 정신과 의사나 사회복지 전문가 또는 변호사들의 도움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부분도 많기 때문에 사목 상담자는 이러한 분야의 전문가들과도 유기적인 연락 체제를 늘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정신장애나 심각한 폭력에 대한 문제가 없고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부부들의 관계 갈등에 관한 문제들이 발견될 경우, 사목 상담자는 그 문제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제 부부들과 함께 그 각각의 문제점 가운데서 본인들이 어느 것을 제일 먼저 자발적으로 다룰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찾아내는 작업을 한다. 어느 문제를 남편이 먼저 해결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아내로서는 그것보다 다른 문제를 먼저 다루고 싶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상담자는 이러한 순위를 결정하는 데 제일 먼저 부부 상호 간에 모두 준비를 갖추어 스스로 문제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때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역시 본인들이 함께 작업을 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희망과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함께하는 치료 과정을 통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그 자체야말로 미래의 치료를 현재에 선취하여 경험할 수 있는 귀중한 첫 근거가 되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이 그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며 자신이 결혼생활 중에 수없이 노력해 봤지만 소용없었다고 하소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상담자는 그러한 개인적 노력과는 달리 부부가 함께 문제의식을 가지고 상담자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내는 작업은 전혀 다른 과정임을 잘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가능하지 않은 목표라고 어느 한 쪽이 부정한다면 다시 두 사람이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목표를 찾도록 해야 할 것이며, 그 문제는 추후로 돌려야 한다.

 

이러한 치료 목표를 부부와 함께 설정하는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물론 치료의 주체와 객체는 본인들이므로 본인들이 스스로 자발적인 의지와 가능성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에도 이유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외재화하는 것에 있다. 보통 부부들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필요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밀착된 상태에서 부부들은 대부분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서로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문제와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보웬의 ‘분화’의 개념으로 볼 때 분화가 덜 된 부부일수록 자신들의 문제를 하나의 객관적인 문제로 보고 그것을 공격하여 풀어갈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그 문제를 개인의 인격과 동일시하는 과오를 범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때 서로에게 비난의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만일 부부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부부 사이에 늘 발생하게 되는 ‘관계적 부산물’로서 극복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 문제를 개개인의 인격과 분리해서 외현화할 수만 있다면 부부관계에 상당한 진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부부와 함께 치료 목표를 세우는 것은, 이렇게 두 사람이 자신들의 문제를 자신들과 분리하여 하나의 문제 자체로서 외현화하는, 사실상 치료의 첫 발걸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음은 부부와 함께 치료 목표를 세우는 데 참고할 지침들이라고 할 수 있다.

 

① 치료는 반드시 성과가 있음을 부부에게 확신시킨다.

 

- 상담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받지 못한 부부는 치료의 과정에 합류하지 못한다.

 

② 이때의 치료는 의학적 개념이 아닌 학습의 개념임을 확인시킨다.

 

- 이 의미는 부부 치료가 단순히 수동적으로 상담에 함께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또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학습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③ 따라서 이 치료의 과정은 부부 모두가 문제를 다룰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타의가 아닌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져야 하며, 가능한 목표를 설정해야 함을 인식시킨다.

 

④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문제에서 시작하여 상위 단계의 욕구 순서로 올라간다.

 

- 곧, 가장 실제적인 문제를 먼저 다루고 부부간의 친밀감이라든지 궁극적인 신앙의 문제들의 순서대로 나아간다. 이것은 부부애나 신앙이 현실적인 문제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⑤ 즉각적인 문제 해결이나 임시방편적 해결보다는 일반적인 수준 향상에 목표를 둔다.

 

- 습관적인 분노와 쉽게 분노하는 문제가 있다고 하면 분노를 억제하는 기술을 목표로 잡지 말고 분노의 감정을 인식하는 단계의 확장이나 분노의 촉발 원인을 줄여나가는 것을 목표로 잡아야 한다.

 

⑥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목표보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목표를 설정한다.

 

- 미국의 와이오밍 주 그랜드 테턴 국립공원에 가면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든가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면 벌금 부과”라는 흔한 경고문은 찾아볼 수 없고, “이곳은 쓰레기를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연입니다.”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곧 사람의 변화는 부정적인 통제보다는 긍정적인 감화와 공감에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부부문제에서도 부부 상호 간에 무엇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두지 말고 어느 행동을 긍정적으로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설정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⑦ 단순하고 실천적인 목표를 설정하되 인지적, 정서적, 행동적인 세 영역에서 어느 한 곳을 목표로 정해도 좋다.

 

- 한 영역에서의 변화는 다른 영역에서의 변화를 유발하기에(chain reaction effect) 부부문제의 여러 측면 가운데 한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문제 유형을 깨뜨리면 다른 부분에서도 치료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서로 이해할 수 없으며 대화가 안 된다고 하소연하는 부부가 있었다. 아내에게 남편은 언제나 모든 것에 참견하며 냉정하고 권위주의적인 독재자였다. 이 부부가 이혼을 앞두고 사목 상담자를 찾아왔다. 아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이혼을 결심하였고, 남편은 자신은 가정을 사랑한 죄밖에 없는데 아내가 왜 이혼하겠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더욱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이러한 사람과 어떻게 대화가 되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목 상담자는 초기 면담 사정에서 남편의 강압적인 행동이 그의 아버지와 해결되지 않은 감정에 기초한다는 가설을 세우게 되었다. 이 남편은 군인이었던 아버지에게 정서적 학대를 체험했다. 남자는 강해야 하며 모든 것은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명확하고 확실해야 한다는 생활 신념을 강요받았다. 그는 철저하게 잡초처럼 내던져져서 생존의식을 가지고 살아왔으며 그것이 남자답게 사는 것이라는 교육을 강요받았다.

 

그는 이러한 아버지가 싫어서 자신이 결혼하면 가정적이고 다정다감하며 자식들에게 인자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아버지가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러나 그의 최선을 다한 사랑의 행동은 결국 이전의 아버지가 했던 바로 그 강압적인 방법이었음을 느끼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신은 무관심하게 아내와 아이들을 방관하지 않고 사랑을 준다는 것이 아내에게는 편집증적으로 간섭하고 아이들에게는 강박적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권위를 내세우게 된 것이다. 곧 아버지와는 다르게 산다고 한 것이 결국 아버지의 모습을 재생산해 낸 결과를 가져왔고, 더 보살피고 사랑을 준다는 것이 식구들에게는 더 철저한 구속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 경우 사목 상담자는 다음의 몇 가지 방식으로 상담 접근법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왜 남편이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하는지를 아내가 남편의 가족사를 통해 이해하면서, 그 통찰로 이전에 받아들이지 못했던 감정을 서서히 풀어나가는 정신분석이나 대상관계 이론적 접근이 있을 수 있다. 이 접근에서 남편 스스로도 자신을 분석하여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다.

 

그 다음은 인지적 접근으로서 남편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랑과 돌봄의 방식이 실제로는 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 매우 비합리적인 사랑의 방법임을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비합리적인 신념들(예를 들면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방관하지 않는 것이다.’라든가 ‘자율적으로 놔두는 것은 방관하는 것이다.’라는 식의 신념들)을 합리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상담의 초점이 될 수 있다.

 

또 하나의 방식은 정서적 접근(Virginia Satir 가족치료, 심리극, 게슈탈트 치료 등의 주된 개념)으로서 자신 안에 억누르고 있던 감정을 토해냄으로써 감정적 카타르시스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다. 이 접근은 사람이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되면 신체적인 변화와 인지적인 변화가 동시에 찾아오게 된다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

 

이 사례에서 사목 상담자는 마지막 접근 방식을 시도하였다. 상담자는 남편에게 눈을 감고 천천히 어릴 적 과거로 여행을 떠나 아버지를 불러내어 만나게 하였다. 그 아버지에게 다하지 못한 감정을 토로하게 하고 그 감정에 머물도록 지시했다. 이에 남편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아버지를 향한 감정을 쏟아내며 울분을 토해놓았다.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을 쏟아내면서 남편은 수차례 경련을 일으키고 가슴 통증을 호소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남편 자신뿐 아니라 아내에게는 더 커다란 치유의 과정이 되었다. 그때까지의 남편은 항상 권위주의적이고 냉랭하며 남성적 우월감으로만 꽉 차있는 독재자였지만 그러한 내적인 치유의 과정을 지켜보며 아내는 처음으로 상처받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닌 남편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정서, 인지, 행동 등의 여러 측면 가운데 어느 한 쪽만이라도 성공적인 접근을 한다면 치료는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2) 상담 전략 설정

 

부부와 함께 상담 목표를 설정하였다면 이제 사목 상담자 편에서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나가는데, 이것은 상담의 이론적 접근 방법과 기술을 어떻게 실제에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어느 문제는 정서나 행동보다는 인지적인 접근이 더 쉬울 수 있고, 어느 문제에 대해서는 인지나 정서보다는 행동 수정이 훨씬 더 효용적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문제 유형별로 어느 접근법이 유용하며 효과적이라고 통계적으로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학문적 근거는 없다. 왜냐하면 같은 문제 유형이라도 각 부부들의 성격적 특성과 상황적 고유성에 대한 변인들은 사례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가 생각하는 통합적인 치료의 관점은 어떠한 문제 유형에는 어떠한 치료 접근법을 이용한다는 식으로 치료 이론들의 물리적인 통합 방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 상황과 문제의 유형에 따라 때로는 여러 접근법이 동시에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전제에서 화학적 통합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곧 이때의 전략은 각 문제 유형별로 효과적인 상담 기법을 미리 정해놓고 대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상담 기법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각 상황에서 어느 방식을 선택할 것인지를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전략에는 순발력이 필요하며 동시에 부부의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직관력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3) 사목적 배려와 사후 상담

 

상담 회기는 보통 단기 치료와 문제 해결 중심 치료의 경우 10주기 내외로 구성된다. 앞서 설명한 대로 상담의 목표를 설정할 때 정신분석적 치료나 대상관계 치료처럼 과거에 대한 이해와 무의식적 통찰을 필요로 하는 상담은 기간이 많이 소요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과거 문제의 원인을 캐내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와 어떻게 하면 둘이 좋아질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 상담하게 되는 단기 치료적 상황에서는 10주 정도 치료의 과정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계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사목 상담자는 회기 후에 계속적인 사목적 배려를 기울여주고, 세 달에 한 번 사후 상담을 가져야 하며, 지금까지 상담 과정에서 실습한 효과적인 의사소통 기술, 권력의 재분배, 항상성 향상, 반투과적 경계선 만들기 등등의 기술들을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지자 집단 프로그램’ 등에 적극적으로 참석할 것을 권고해 준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목 상담자는 계속해서 장기적으로 내적 탐구를 필요로 한다.

 

또한, 장기 상담으로 가는 부부를 만났을 때는 상담 과정에서 사목적인 배려를 함께 기울여야 한다. 사실 내적 치유를 위한 기도와 묵상은 자신의 내적 탐구를 이루어가는 기간 중에 가장 필요한 영적인 자산이다. 또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실존적인 무기력 증상을 지닌 부부나, 과도하게 이성적 활동에만 집착하는 부부의 경우에도 감수성 개발 프로그램과 함께, 성사적 전례를 통해 영적인 체험을 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효과적인 치유의 자원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목, 2005년 11월호, 박현민(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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