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자료실 묻고답하기

독서자의 연습과 준비 2

스크랩 인쇄

유타한인성당 [kccu] 쪽지 캡슐

2012-10-12 ㅣ No.1380


'전례헌장' 7항에서는 "교회에서 성서를 읽을 때 말씀하시는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독서자는 "교우들이 독서를 들으면서 성서에 대한 감미롭고 생생한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봉독 자질을 갖추어야 하며, 봉독할 독서를 성실히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영성적인 준비와 기술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독서자는 미리 그날의 독서를 집에서 여러번 읽어보고 한마디 한마디를 정확하고 또박또박 발음하는 연습을 충분히 해야 하며, 성서본문은 구두점을 따라 정확히 끊으면서 유창하게 그러면서도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그리고 주관적으로 흐르지 않고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로 성서를 봉독해야 합니다. 그리고 확성장치를 적절히 이용을 해야 하며, 독서를 봉독할 때에는 두 손을 모으고 해야 합니다. 성서 봉독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과 '사업'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영성적 준비"란 전례와 성서에 대한 기본 자질을 갖추는 것을 말하며, 가장 중요한 준비이다. 따라서 사목자들은 사전에 독서자 교육을 철저히 시킬 필요가 있다. 독서자 교육은 성서교육과 전례교육을 병행해야 한다. 성서교육은 독서자가 봉독할 독서 본문을 해당 성서의 문맥과 함께 미리 읽고 묵상하여, 신앙의 빛으로 본문의 의미와 핵심을 깨닫고 동의하며 확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을 말한다. 전례교육은 말씀 전례의 구조와 의미 및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의 특성과 상호관계 등에 관한 기본적인 전례 상식을 갖추게 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독서자는 독서 준비를 잘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영성적 준비란 독서자 자신이 성서 본문을 잘 이해하고 신앙으로 받아들여 그 말씀에서 영적 양식을 취하는 과정을 말한다.

"기술적 준비"란 정확히 읽는 연습을 하는 것을 말한다. 정확히 읽자면 먼저 소리, 발음, 속도, 음정 등에 유의하면서 여러번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독창자나 합창단이 무대에서 노래를 잘 부르면 지정곡을 여러번 연습하여 임한다. 독서자는 이러한 차원을 훨씬 넘어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중책을 지니고서도 읽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여 읽기 연습을 하지 않거나 소홀히 하면 그만큼 하느님의 말씀은 가치를 잃기 쉽다.

독서자가 정확히 읽으려면 읽는 연습만으로 부족하고 확성장치를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음향기술의 발달로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성당과 경당에 성능 좋은 확성장치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서자들은 이러한 장치를 제대로 이용할 줄 몰라 청중을 불편하게 만든다. 방송국 등에서 사용하는 마이크는 다르지만 보통 마이크는 한 뼘 정도 거리를 두고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입과 마이크의 거리가 너무 가깝거나 멀면 그만큼 듣는 데 불편을 준다. 따라서 독서자들은 미리 성당 마이크를 점검하고 그 성능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봉독법
독서자는 이상과 같이 영성적·기술적 준비를 철저히 한 다음 실제로 미사중에 독서를 봉독할 때에는 다음 사항에 유의해야 한다.
① 독서자는 먼저 봉독할 "성서 명칭"을 알아야 한다. 성서 명칭은 일부 개정된 명칭 외에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명칭을 사용한다. 일부 개정된 명칭이란 예를 들면 과거의 "왕국기 1서", "왕국기 2서"가 지금은 "사무엘 1서", "사무엘 2서"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또 새 불가따 번역본에서는 예언서 가운데 일부는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라고 하고, 일부는 "에제키엘 예언서", "호세아 예언서" 등으로 표기한다. 그러니까 성서 가운데 일부는 책이름이 명칭이고, 일부는 저자 이름과 책이름이 명칭이다. 그리고 예언서 가운데 일부는 저자 이름이 명칭이고, 일부는 저자 이름에 예언서라는 말이 붙는다. 이러한 명칭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미사 독서책에는 그 명칭을 표기하여 주니까 그대로 읽으면 된다. 한국어 독서책의 독서 명칭은 국어 어법에 맞게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에서 지정해 놓았다. 독서책이 없어 성서를 들고 봉독할 때에는 간단하게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 명칭만 사용하면 무리가 없다. 예를 들면 "로마서 말씀입니다"라고 하면 된다. 저자 이름도 밝히고 싶으면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라고 한다. 이 말은 "이제 하느님께서 사도 바오로의 편지인 로마서를 통해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라는 성대한 선언과 같다. 현대의 성서학에서는 역사비평 방법론을 통하여 모세오경, 시편, 지혜서, 제2 바오로의 편지 등 적지 않은 책들이 흔히 알고 있거나 성서 본문이 밝히는 저자의 작품이 아니라 가명 작품임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모세오경이나 성문서 등은 전통 명칭대로 단순히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잠언의 말씀입니다" 라고 한다. 그러나 일부 사도 바오로의 편지나 가톨릭 편지들은 거의 확실히 가명 작품이지만 성서 본문에서 저자 이름을 밝히기 때문에 그 저자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디모테오 전서를 봉독할 때에는 "디모테오 1서의 말씀입니다" 또는 "사도 바오로의 디모테오 1서의 말슴입니다" 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구약의 「애가」와 신약의 「히브리서」는 저자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이 책들은 분명히 가명 작품일 뿐 아니라 책에 저자에 관한 아무런 말도 없기 때문이다.

해설자는 미리 성서 명칭을 밝힐 필요가 없으며, 설령 밝혔다고 해도 독서자는 그에 구애받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사실을 미리 선언해야 한다. 흔히 해설자가 성서 명칭을 미리 밝히면 독서자는 즉시 "형제 여러분" 하고 즉시 본문을 봉독하는데, 이는 좋지 않은 습관이다. 그리고 독서자는 때때로 독서 순서 ("제1독서" 또는 "제2독서"), 본문의 장과 절, 독서책에 기록된 제목 등을 알리기도 하는데, 독서자의 직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회중이 알아야 할 사항은 아니다.

② 성서 본문 봉독을 시작할 때에는 "형제 여러분",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친애하는 그대여", "그때에", "어느 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등 독서 내용에 알맞은 시간, 장소, 인물 등을 알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독서책에는 이런 말을 수록하여 놓았기 때문에 그대로 읽으면 되지만 성서 자체를 독서책으로 사용할 때에는 독서자가 간단히 누가 누구에게 언제 무슨 말씀을 하셨나 등 그 배경을 알려주는 말을 성서 본문에 붙일 수 있다. 그리고 성서 본문 이해에 도움이 된다면 독서의 시작 부분과 끝부분을 생략하거나 적절한 말을 첨가할 수도 있다.

성서 본문을 봉독하는 데 가장 중요한 봉독법은 앞의 독서 준비 항목에서 언급했듯이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독서 본문을 정확히 봉독하는 것이다. 회중의 일부라도 독서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면 독서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선포의 임무를 올바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독서자는 성서 본문을 "명확히", "천천히", "의미를 살려", "하느님의 말씀답게 경건히" 봉독해야 한다.

"명확히"란 목소리를 크게 내고 발음을 똑똑히 하라는 말이다. 목소리도 작고 발음도 분명치 않으면 성당 안에 있는 사람들의 태반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 현상이 잦은데도 사목자나 수도자나 평신도 지도자들이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사람들이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독서 형식만 갖춘다고 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은 아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복음이 선포된단 말인가.

"천천히"라는 말은 물론 교회가 제시한 독서 지침에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독서자들은 너무 빨리 읽기 때문에 필자가 별도로 요구하는 사항이다. 일반 사회 책과는 달리 성서는 우리와 시대, 문화, 언어, 사상이 전혀 다른 고대 문헌에 속한다. 그리고 그 내용의 상당 부분이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바오로의 편지 대부분은 신학적으로 매우 심오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성서 본문을 일반 책 읽듯이 빠른 속도로 줄줄 봉독해 버리면 청중은 잘 알아듣지 못하고 귓전으로 흘러버리고 만다. 성서 말씀은 직접·간접으로 구원과 관련된 값진 말씀이기 때문에 한 마디라도 적당히 지나칠 것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교우들이 다소 지루해하더라도 천천히 봉독하여 그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이 독서의 목적에 더 부합한다.

"의미를 살려" 라는 말은 본문 내용에 따라 읽는 속도, 음정, 목소리 등을 달리하여 문장이나 단락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히 알려주라는 말이다. 특히 주제와 관련된 핵심 단어나 문장은 목소리나 읽는 속도를 달리하여 듣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해야 한다. 성서는 모두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주제나 소주제와 직접 관련된 더 핵심적인 말씀이 있다. 그러한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속도와 높이와 크기로 봉독하면 청중은 하느님이 무엇을 특별히 강조하시려는지도 모르고 지나치고 만다. 독서자는 웅변가나 드라마의 성우는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기 뜻을 대중에게 정확하게 전할 줄 아는 연사는 되어야 한다. 그가 만일 자기가 직접 준비한 원고로 강론을 한다면 그때에도 그렇게 아무런 목소리의 변화도 없이 목석과 같은 어조로 읽어내리겠는가. 아니면 예수님께서 직접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 여러분은 내 사랑 안에 머무시오" 라고 말씀하신다면 책 읽듯이 그렇게 감정도 없이 훌쩍 읽어치우시겠는가. 등산을 하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점점 높이 올라 결국 정상을 정복한다. 그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온다. 독서자는 이러한 특성을 잘 파악하여 하느님께서 성서 본문을 통하여 밝히고자 하시는 뜻을 잘 파악하여 되도록 정확히 전하도록 한다.

"하느님의 말씀답게 경건히"는 독서가 어느 인간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러한 말씀답게 존경심을 가지고 봉독하라는 말이다. 때로는 미사 중에 봉독하는 독서를 들으면 하느님의 말씀이 무척 무시당하고 있다는 일종의 모멸감을 느낀다. "지존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저렇게 무성의하게 경솔하게 읽어 치울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새벽에 일어나 목욕제계를 하고 분향을 한 다음 사서오경이니 하는 옛 성현들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어느 신하가 임금의 옥서를 받았을 때엔 정장을 하고 대궐이 있는 쪽으로 큰절을 한 다음 무릎을 꿇고 그 친서를 경건히 봉독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독서자는 다른 분도 아닌 절대자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거룩한 전례중에 봉독하여 사람들에게 선포한다. 아니 독서자야말로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입이요 대변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파견하신 현대의 예언자이자 사도이다. 그들은 이 위대한 사명을 전례 독서 때에 탁월하게 수행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서자가 성서를 봉독하는 동안 바로 하느님 또는 그리스도 자신이 그를 통하여 직접 말씀하신다. 모든 독서자는 이러한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숭고한 사명을 정성을 다해 완수해야 한다.
 




1,142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