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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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칼럼: 언노운 걸 - 문을 열면, 마음도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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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4-03 ㅣ No.1285

[영화칼럼] 영화 ‘언노운 걸’ - 2016년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 뤽 다르덴


문을 열면, 마음도 열립니다

 

 

당신이라면 다를까요. 낯선 누군가 급하게 대문을 두드린다면. 그것도 일이 끝난 시간이거나 한밤에. 쉽게 문을 열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당신의 안전을 위해. 그럼 인터폰을 통해 한눈에 그가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문을 열어 주겠습니까.

 

벨기에의 빈민가, 간호사도 없는 작은 클리닉(진료소)의 석 달 임시 의사인 제니(아델 하에넬 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한 흑인 소녀가 다급히 인터폰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는 것을 무시했습니다. 순간적인 오만과 이기심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늦게 오면 의사는 쉬지도 말란 말이야.” 평소 그녀는 가난하고 외롭고 아픈 사람들을 성의껏 치료해왔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불러도 불평 없이 집으로 달려갑니다. 불법 체류자라고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날 밤 딱 한 번이었습니다. 내일이면 클리닉의 근무가 끝나는 데다, 오늘은 어느 때보다 늦게까지 환자가 많았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기억조차 못 하고 무심히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문을 두드린 신원 미상의 그 소녀가 강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세상의 틀로 보면 그녀의 잘못은 없습니다. 진료 시간이 끝났고, 응급 환자도 아니었고, 치료를 하지 않아 죽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경찰도 잊어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그녀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지만, 하느님은 그녀에게 단 한 번의 외면과 무심함조차 허락하지 않으면서, “너는 정말 아무 죄가 없느냐?”고 묻습니다. 그녀는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것까지 포기하고 누군지도, 무엇 때문에,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소녀의 행적을 찾아 나섭니다.

 

제니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언노운 걸(The Unknown Girl)>이 보여주려는 것은 우리 모두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가거나, 그렇게 해도 괜찮거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한 성찰입니다. 그녀 역시 큰 사명감이나 신념으로 소녀의 죽음에 매달린 것은 아닙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양심이 움직이는 대로 갔을 뿐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소녀의 존재를,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왜 중요할까요. 성매매 강요로 그 소녀를 실족사하게 만든 남자와 나눈 대화가 답을 해줍니다. “경찰에 가서 모든 진실을 밝히라.”는 제니의 요구에 남자는 “왜 내가 그래야 해. 죽으면 끝난 것이 아니냐.”면서 거부합니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죽은 소녀가 지금 우리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끝난 것이 아니니까 우리가 이렇게 괴로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소녀의 죽음에 나도 잘못이 있음을 고백할 때 비로소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소녀의 죽음의 진실이 그렇듯 어쩌면 우리 모두는 타인의 아픔과 불행에 ‘공범’일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모르고 지나간다고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모르는 죄까지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문’을 열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모습이야말로 주님 사랑의 실천이고, 주님이 바라는 세상이 아닐까요.

 

[2022년 4월 3일 사순 제5주일 서울주보 6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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