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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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하느님의 숭고한 사업을 위해(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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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4-13 ㅣ No.805

[레지오와 마음읽기] 하느님의 숭고한 사업을 위해(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

 

 

미국의 심리학자 콜버그는 1956년 10~16세 미국 중류층 남자 아동·청소년 75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그는 도덕적으로 고민이 되는 상황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상황에 대한 판단과 이유를 물었다. 다음 이야기는 그 실험에서 사용된 예화 중의 하나를 요약한 것이다.

 

한 부인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 부인을 살릴 수 있을 지도 모르는 한 가지 약이 있었는데, 그 약은 같은 마을에 사는 약사가 개발한 것이었다. 그 약사는 원가의 10배나 비싸게 약을 팔았는데, 아주 적은 양의 약을 2000달러나 받았다. 그 부인의 남편인 하인츠는 그 약을 사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돈을 꾸었지만 약값의 절반인 1000달러 밖에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이츠는 약사에게 가서 자신의 아내가 죽어가고 있으니 그 약을 조금 싸게 팔든지 아니면 모자라는 액수는 나중에 갚겠으니 편의를 봐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약사는 이 약으로 돈을 벌 생각이라면서 끝내 하인츠의 부탁을 거절하였다. 하인츠는 절망한 나머지 그 약을 훔치기 위해 약방의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하인츠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콜버그는 실험대상자들의 답을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한 것을 넘어 그 판단에 이르게 된 숨어 있는 논리를 중요시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도덕성 수준을 세 개로 나누고, 도덕성은 단계적으로 발달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를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이라고 한다.

 

하인츠가 약사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아내를 살리려면 이 방법 밖에는 없으니 그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약사가 돈을 받고 팔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하인츠의 행동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위와 같은 생각으로 하인츠의 행동을 판단하였다면, 콜버그가 말하는 첫 번째 도덕성 수준에 해당한다. 이는 인습(因習)보다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에 도덕적 행동을 하는 경우로, 상황 또한 보상이나 처벌에 근거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아내를 살리는 것이 남편의 의무이니 그의 행동은 정당하다. 그러나 처벌은 받아야 한다’라던가 ‘아내를 살리려는 것은 당연하지만 훔치는 것은 나쁘다’라는 논리라면, 이는 콜버그의 두 번째 도덕성 수준이다. 이 수준의 사람은 주로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도덕적 행동을 하며 동기나 의도, 신뢰나 존경, 법과 질서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에게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남이 보지 않아도 법을 잘 준수하는 특성을 보인다.

 

 

도덕성은 단계적으로 발달한다

 

세 번째 수준은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수준으로, 도덕적 가치를 완전히 내면화하여 외부 기준이 필요 없는 상태이다. 사회규범을 이해하고 인정하지만 그것보다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 정의 같은 원리에 따라 행동한다. 이 수준은 ‘훔치는 것이 나쁜 것이긴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누구나 약을 훔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든가 ‘아무리 상황이 그러하여도 하인츠의 행동이 옳은 것이 아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라는 등의 논리로 판단한다.

 

K형제는 유아 세례를 받았지만 주일만 지키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40대에 견진을 받으면서 레지오에 입단하였다. 한동안 즐겁게 단원생활을 하였지만 이웃에게 돈을 떼이고 사업이 부진해지는 등 힘든 일이 생기면서 신앙에 대한 회의가 왔다고 한다. 더구나 주변에 봉사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탈단을 고민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Pr. 단장으로 기쁘게 단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저는 어렸을 때 어머님께서 ‘말 안 들으면 지옥 간다’고 하신 말씀 때문에 하느님이 늘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성인이 되고 레지오를 하면서 조금씩 하느님의 부드러움을 느끼게 되었고 신앙의 기쁨도 커졌지요. 하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닥쳐 제 믿음이 흔들리게 됐습니다. 절박해진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성경읽기에 매달렸는데 그게 신앙 회복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느님은 율법보다 인간에 대한 연민을, 단죄보다 자비를 베푸시는 분으로 정말 사랑이셨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변하니 신앙생활도 절로 변하더라고요. 지금 저에게 봉사는 하느님을 닮아가는 행동이니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려 합니다.”

 

나는 왜 레지오 단원으로 봉사하고 있는가? 봉사를 해야 내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이웃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인가? 혹은 남을 돕는 게 사람의 도리이며 누구나 가치 있게 생각하는 일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나라가 하루 빨리 이 세상에 완성되는 데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함인가?

 

 

봉사는 신앙이 동기가 되어 우러나야

 

우리 각자는 다양한 이유로 레지오 단원이 되었고, 대부분은 여전히 단원으로 머물고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이거나 여러 개 일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며 변했을 수도, 혹은 그대로일 수도 있다. 실제로 콜버그에 따르면 도덕적 수준은 단계별로 발달하나 퇴행도 있다 하니 우리의 동기에 변화가 있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봉사를 위해 레지오 단원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그럼에도 뉴만 추기경의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물질적 진보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위험한 것’(교본 122쪽)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봉사는 신앙이 동기가 되어 우러나야’(교본 122쪽) 한다. 이는 신앙 외의 이유들은 우리를 지속적으로 봉사할 수 있게 끌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봉사의 동기가 보상이라면 좋은 일이 없고 어려운 일만 겹치게 되면 그만 두고 싶어질 것이며, 사람들의 인정이 중요하다면 남이 알아주지 못하거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때 레지오를 그만 두고 싶은 이유가 될 것이다. 만약 그런 유혹이 들면 이때는 내 안의 동기를 살펴보며 신발 끈을 다시 묶어야 한다. 그리고 레지오 단원으로서 꿋꿋이 걸어가야 한다.

 

성모님의 군사들이여! 봉사하는 동기가 어떻든 용기를 내어 나아가자! 교본에 ‘레지오는 사회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강력한 동기를 지니고 있다.’(120쪽)고 되어 있으니 내가 레지오를 떠나지 않는 한, 나의 동기는 레지오의 동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성모님 군사로 하느님 나라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여, 보라! 레지오야말로 하느님의 숭고한 사업을 위해 모든 사람을 하나 되게 하는 신비의 기사단이 아닌가?’(교본 122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4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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