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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미사

[축일] 전례력 돋보기: 라테라노 대성전과 성 대 레오 교황, 그리고 우리 영혼의 성전 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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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1-21 ㅣ No.2364

[전례력 돋보기] 라테라노 대성전과 성 대 레오 교황, 그리고 우리 영혼의 성전 가꾸기

 

 

대구대교구의 첫 성당은 1885년 김보록 신부가 신나무골에 세운 대구 본당이다. 그렇다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첫 성당은 어디일까? 바로 11월 9일 봉헌 축일을 지내는 로마의 성 라테라노 대성전이다.

 

 

‘로마와 그밖의 전 세계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머리’

 

로마의 다른 대성전, 가령 성 베드로 대성전이나 성 바오로 대성전, 성모 대성전의 봉헌 기념일은 선택이지만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일은 모든 교회의 의무 기념일이다. 그만큼 라테라노 대성전은 모든 성당에 앞서는 특별한 지위를 차지한다. 바로 로마 교회가 첫 번째로 봉헌한 성당이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박해를 멈추고 그리스도교를 공인했다. 그리고 성 실베스트로 교황(재위 314-335)에게 본래 라테라노 가문의 소유였던 궁전을 내어 주어 교황이 머물며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도록 했다. 이렇게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첫 성당이 탄생한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성당 입구에는 ‘로마와 그밖의 전 세계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머리 (omnium urbis et orbis ecclesiarum mater et caput)’라고 분명히 새겨져 있다. 이후 로마 주교인 교황들은 라테라노 대성전에 머물렀고, 14세기 초 교황청이 프랑스 아비뇽으로 잠시 이전할 때까지 교황청의 역할을 했다. 현재 교황은 바티칸 시국 안에 머무르지만 로마의 주교좌는 라테라노 대성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첫 성당은 예나 지금이나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서 그 권위와 중요성을 이어가고 있다.

 

 

로마 교회를 지켜낸 성 대 레오 교황 강론

 

성전 봉헌 기념일은 단순히 역사적인 의미만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머무시는 살아있는 성전, 곧 우리 자신의 영혼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가꾸는 날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일 다음날인 11월 10일에 기념하는 성 대 레오 교황(재위 440~461)의 강론은 거룩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교회 역사 안에서 ‘대교황’이라는 칭호를 받은 분은 레오 교황과 그레고리오 교황(+604)뿐이며 레오 교황은 이단으로 인한 교회의 분열과 이민족의 침입에서 로마를 구한 놀라운 업적을 남기셨다. 레오 교황은 칼체돈 공의회(451)에 서한을 보내 예수님의 신성만 인정하고, 인성과 강생의 신비를 부정하던 단성론자들을 이단으로 배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다. 이듬해인 452년에는 로마로 진격해 온 훈족의 장수 아틸라와 담판을 벌여 돌려보냈다. 전설에 의하면 교황의 위엄을 크게 떨친 레오 교황 뒤로 그가 특별히 공경한 로마의 두 사도,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가 나타나 이민족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또한 레오 교황은 455년 반달족이 로마를 침입했을 때 로마를 수호하기 위해 협상에 나서 살인과 방화를 피하게 하셨다. 레오 교황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라테라노 대성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 신자들에게 정통 교리와 예수님 강생의 신비를 가르친 레오 교황은 수많은 강론집을 남겨 교회 박사의 칭호도 얻으셨다. 특별히 큰 축일을 앞두고 성전을 청소하듯 영혼의 정화없이 부활 축제를 준비할 수 없다고 가르친 레오 교황의 사순 강론을 통해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의 영혼까지 단장하는 11월 위령 성월과 대림 시기의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경축해야 할 축일이 크면 클수록 이를 경축하는 사람도 그만큼 잘 준비해야 합니다. 사실 축제의 날에 옷을 더 화려하게 차려 입고 마음의 기쁨을 육체의 옷으로 표시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며 종교적 태도로 여겨집니다. 그때에 우리는 주의를 더 기울여 성당 자체를 할 수 있는 한 화려한 장식으로 꾸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살아있는 진짜 성전인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지혜롭게 자신을 단장하고, 자기에게 구원을 주는 성사를 경축하기에 앞서 어떤 죄의 때가 자기를 가리고 있지는 않는지, 또는 이중적인 마음의 주름이 자기를 흉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사람의 내면이 악습들로 오염되어 더럽혀져 있다면, 아무리 외적으로 잘 꾸며 말끔한 모습을 보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영혼의 순결과 마음의 거울을 가리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벗겨내야 하며, 그 광채를 되찾기 위해서 더 깨끗해져야 합니다. 각자 자기 양심을 성찰하고 엄한 심판대에서처럼 스스로 자기 자신을 심문해 보아야 합니다. … 죄를 쉽게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 『레오 대종, 사순시기 강론집』 사순시기 제3강론 중에서(128~131쪽 참조)

 

[월간빛, 2023년 11월호, 소형섭 아우구스티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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