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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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57: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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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17 ㅣ No.820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57)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⑨


세심증에 걸린 소화 데레사, 자비를 체험하다

 

 

- 수련기 때의 성녀 소화 데레사.

 

 

영적 어린이의 길 발견하기까지

 

지난 호까지 우리는 소화 데레사가 가르친 영적 어린이의 길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성녀는 어떻게 영적 어린이의 길을 발견하게 됐을까? 영적 어린이의 길은 소화 데레사의 영성에 있어 핵심이기 때문에 성녀가 어떻게 이 길을 발견했는가는 성녀의 영성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영성 생활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녀가 이 길을 발견하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쳐 왔는지에 대해 앞으로 4회에 걸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수도 생활 초기의 투사적인 모습

 

사실, 성녀가 수도 생활 처음부터 이 길을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본격적으로 영성 생활에 입문했던 초기에 소화 데레사의 모습은 엄격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가장 작은 희생까지도 영웅적으로 바치려 했습니다. 그야말로 투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소화 데레사는 자신의 힘으로 공로를 쌓고 진보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소화 데레사는 끊임없는 한계에 부딪히고 맙니다. 자신의 나약함, 끊임없이 죄의 경향으로 기우는 본성, 고행과 희생 앞에서 갖는 두려움! 그리고 힘겹게 노력해서 자신이 원하던 상태에 이르면, 자기 내면 안에서 요구하는 사랑의 목표가 다시 저 멀리 달아나 버리는 체험들! 그러한 한계 체험들을 통해 성녀는 진정한 영적인 진보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성녀는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하느님의 능력, 그분의 손길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세심증으로 인한 고통

 

사실, 성녀는 어려서부터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러지 않으려고 늘 조심하며 살았습니다. 열두 살이 될 무렵, 성녀는 극심한 세심증에 걸려서 1년 반 동안 심적으로 많은 고통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훗날 이런 세심증에서 해방된 후에도, 성녀는 항상 하느님을 언짢게 해드리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고 합니다. 가르멜에 입회한 지 두 달 만에 수녀원 지도 신부님에게 총고해를 하고 나서야 성녀는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깊이 믿기 시작했습니다.

 

 

부족함과 한계를 끌어안는 하느님 체험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890년 9월 8일, 소화 데레사는 수도 서원을 하면서 하느님을 향한 보다 순수한 사랑에 대한 열망을 뿌리내리게 됩니다. 당시 성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가슴에 품고 서원을 했습니다. 

 

“하느님이신 나의 정배, 예수님! 제 세례의 두 번째 옷을 영원히 잃지 말게 하시고, 아무리 가벼운 죄라도 일부러 범하기 전에 저를 거두어 주소서.” 

 

당시 성녀는 아직 자신에게는 그 사랑에 합당하지 못한 부족함들이 많음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치며 성녀는 점차 그런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끌어안으시는 주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점차 내적 평화에 들어서면서 성녀는 주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의 길에 대해 매우 강하게 끌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감히 그 길로 나아가지 못하며 주저하다가, 1891년 10월 알렉시스 프루라는 신부와 더불어 하게 된 수도 공동체 피정 동안, 성녀는 그 신부와 면담을 통해 신뢰와 사랑의 길에 대한 권위 있는 확인을 받게 됩니다. 피정 지도 신부는 소화 데레사에게 하느님은 그의 모든 불완전함과 나약함을 결코 싫어하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만족해하신다고 격려하며 내적 확신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프루 신부와의 만남은 성녀를 세심증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에 깊이를 더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성녀가 세심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수도 공동체의 원장인 마리아 곤자가 수녀는 소화 데레사를 상당히 강하고 엄격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성녀는 다시 세심증에 빠지곤 했습니다.

 

 

아녜스 원장 수녀의 모범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에 함께 살던 둘째 언니 폴리나, 즉 아녜스 수녀가 1893년 2월 원장으로 선출됨으로써 소화 데레사에게는 돌파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녜스 수녀는 성품이 상당히 너그럽고 애정 가득한 사람으로 공동체 회원들을 잘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공동체 수녀들의 자잘한 부족함을 용서하고 감싸주는 따스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소화 데레사는 자신의 둘째 엄마이자 둘째 언니였던 원장 수녀님의 그런 모습을 보며 예수님의 자애 깊은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소화 데레사는 아녜스 수녀가 공동체 원장으로 선출된 날부터 사랑의 길, 신뢰의 길, 의탁의 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성녀 스스로도 “사랑은 자신을 낮추는 데 있습니다”(자서전)라고 고백하듯이, 신뢰와 사랑의 길에서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내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자기비허(自己卑虛)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7월 17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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