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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아르테미데 자티 시성: 살레시오회 첫 번째 수사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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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2-05 ㅣ No.2158

[커버스토리] 아르테미데 자티 시성 - 살레시오회 첫 번째 수사 성인


“믿었습니다, 약속했습니다, 치유받았습니다!”

 

 

2022년 10월 9일 아르테미데 자티의 시성을 축하하며, 살레시오 가족에게 중요한 역사적 순간으로 기억될 자티 성인의 시성과 삶을 소개한다.

 

 

살레시오회 첫 번째 수사 성인

 

40여 년 전, 당시 살레시오회 총장이던 후안 에드문도 베키 신부는 돈 보스코의 여덟 번째 후계자로서 자신의 총장서한을 통해 아르테미데 자티 수사의 시복 소식을 알린 바 있다.

 

1951년 3월 15일,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든 자티 수사의 장례식은 그의 거룩한 명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자티 수사가 평생을 일하던 비에드미 교구는 그의 시성을 준비하였고 1980년 3월 22일부터 시복 · 시성 절차를 시작하였다. 그 후 1997년 7월 7일 가톨릭교회는 자티 수사를 가경자로 선포하였다. 2002년 4월 14일에는 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자티 수사를 복자품에 올려 전 세계에 선포하였으며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22년 10월 9일, 교황 프란치스코 성하는 드디어 자티 수사를 성인품에 올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성대한 시성식을 봉헌하고 만천하에 아르테미데 자티의 성덕과 모범을 알려 본받도록 선포하였다.

 

살레시오회에는 크게 두 가지 성소가 있다. 많은 경우 살레시오 회원은 서품을 받고 사제로 살지만, 고유한 선택으로 평생토록 수사로 살아가는 이들도 존재한다. 수도회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살레시오 가족은 평생을 고유 수사로 사는 이야말로 겸손과 희생으로 더 위대한 성소의 길을 걸어간다며 칭송하기도 한다. 살레시오회가 설립된 지 170년이 다 되어 가는 현재, 살레시오회에서 특별한 성소로 헌신하다가 시성된 첫 번째 성인 수사가 탄생했다. 물론 성 자티 수사 이전에도 수사 신분으로 시성된 이들이 존재했지만, 그들은 모두 순교 성인이었다. 따라서 아르테미데 자티는 순교자가 아닌 최초의 살레시오 수사 성인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며 이민자

 

성 아르테미데 자티 수사(1880.10.12.~1951.3.15.)는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 지방 보레토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 루이스 자티와 어머니 알비나 베키가 낳은 8남매 중 셋째 아들이며, 본래 이름은 ‘아르테미데 조아키노 데시데리오 마리아 자티’(Artemide Gioacchino Desiderio Maria Zatti)였다. 자티는 어리디 어린 네 살 때부터 들에 나가 일했으며,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나기 전인 열여섯 살 무렵까지 농장 일꾼으로 살았다. 이 시기 자티는 당시 많은 어린이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힘을 보태었듯이 돈을 벌기 위해 아홉 살 때까지만 학교에 다니고 그만두었다. 1870년 이탈리아 통일 이후 사람들은 자유와 번영이 실현되리라 희망했지만,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의 득세와 북아프리카 식민화 정책의 난항으로 식량 부족 및 빈번한 폭동을 겪으며 극심한 혼란기에 접어든다. 이러한 역사 안에서 많은 이탈리아 서민들이 농업 위기, 대량 실업, 노동 착취 등을 피해 여러 나라로 이민을 떠나게 되는데 자티 가족도 그들 중 하나였다. 1870년 통일 이탈리아 시기부터 2차 세계대전 말까지 이탈리아를 떠난 이민자의 숫자는 무려 1500만 명에 이른다.

 

1897년, 자티 가족은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자수성가한 요한 삼촌의 초대와 전폭적인 지지를 믿고 바이아블랑카(‘백색만’이라는 이름의 도시)로 떠난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에 위치한 바이아블랑카는 당시 신흥도시로 급부상 중이었다. 자티의 아버지는 요한 삼촌의 도움으로 시장에 노점을 차릴 수 있었고 자티는 호텔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티는 그 일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금방 그만두고 대신 마을의 타일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자티 가족(사진 뒷줄 중앙이 자티 수사).

 

 

자티 수사의 성소 여정

 

성공적인 이민 이후 자티 가족은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자마자 신심 깊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성당을 찾는다. 이들이 정착한 마을은 1875년 살레시오 선교사들이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이후 줄곧 사목하던 곳이었다. 열여덟 살의 건장한 청년이 된 자티는 성당 일과 본당 신부의 사목을 돕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일은 환자들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본당 신부 카를로는 자티의 손에 『돈 보스코의 생애』라는 책을 쥐여 준다. 책을 단숨에 읽은 그의 머릿속에는 ‘살레시안이 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가득 차게 된다.

 

카를로 신부는 아르테미데 자티의 고해성사와 성당 봉사 활동을 통해 드러난 그의 영혼과 인격이 사제가 되기에 합당하다는 점을 서서히 깨닫는다. 카를로 신부는 이러한 자신의 의견을 담아 자티에게 사제가 되면 어떻겠냐며 살레시오 성소를 제안했다. 그러자 자티는 바로 그 자리에서 흔쾌히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열광적으로 기뻐했다. 이후 카를로 신부는 자티의 부모를 찾아가 자티가 훌륭한 사제가 될 자질을 지녔다고 말하며 아들을 수도회에 보내 달라고 청했다. 자티의 어머니는 잠시 남편과 상의한 다음 먼지 이렇게 말했다. “신부님이 말한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르테미데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해야겠지요. 다만 저희는 우리 애가 다시 집에 돌아오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라고 응답했다.

 

아르테미데 자티는 열아홉 살이 되던 해 베르날 신학교로 떠났다. 베르날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쪽으로 24km 정도 떨어진 소도시로 그곳에는 살레시오회 양성 공동체가 있었다. 입회를 하던 날 자티의 어머니는 집에서 650km나 떨어진 베르날 신학교까지 아들을 동행하였다.

 

또래보다 나이가 많았던 자티는 수도회 영성과 회헌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장상을 돕는 조력자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핵에 걸린 살레시오 사제 한 명이 베르날에 왔고 공동체는 자티 수련자에게 그의 치료를 돕도록 명한다. 하지만 병든 사제를 간호하던 중 자티마저 감염되고 만다. 당시 결핵은 모든 전염병 중 가장 무서운 병이었고 자티가 간호하던 젊은 사제는 1902년 1월 2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02년 3월, 자티는 치료를 위해 비에드마의 살레시오 집으로 옮겨 가 치료와 재활의 수도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비에드마의 살레시오 집은 병원과 약국을 갖춘 유일한 살레시오 시설이었다.

 

 

치유의 기적

 

자티 수련자가 비에드마의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인 가로네 신부는 자티를 그곳 성당의 도움이신 마리아 제단으로 데려가 말했다. ‘믿으시오, 약속하십시오, 치유받으십시오.’

 

“자티 수사님, 당신이 건강을 회복한다면 환자들을 돌보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고 약속합시다. 그러면 도움이신 마리아와 돈 보스코의 축복으로 건강을 회복하게 될 거라고 장담합니다.” 의사 가로네 신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한 달 뒤면 좋아지기 시작할 겁니다.”

 

자티 수사(사진 맨 왼쪽)와 아이돌.

 

 

자티 수사의 증언

 

“제가 만일 병이 낫고 건강해져 좋은 상태로 이웃들에게 조금이라도 선을 행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의사인 가로네 신부님 덕분이 분명합니다. 저는 잦은 객혈을 동반한 결핵으로 나날이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고 가로네 신부님은 그런 저를 보며, ‘만일 자네가 다른 많은 이들처럼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다면, 도움이신 마리아 곁에 항상 남아 있겠다고 그분께 서약하게.’라고 말하며 치료를 이어 갔습니다. 그분은 성모님을 신뢰하였기에 병자들을 돌보고 저를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믿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마리아께서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그분을 도왔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저는 마리아를 믿었습니다. 저는 약속했습니다. 항상 이웃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던 것이 저의 열망이었기 때문에 저는 서약했습니다. 저는 치유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종의 말을 들어주셨기에 저는 치유되었습니다.”

 

자티는 비에드마 병원에서 2년간의 치료를 받은 끝에 극심했던 기침과 객혈의 병에서 완치된다.

 


새로운 성소의 길

 

1908년 8월 1일, 아르테미데 자티는 무려 8년의 기다림 끝에 살레시오 회원으로서 첫 서원을 한다. 이 오랜 기다림의 양성 기간은 결핵에 감염된 이후 지난한 치료 기간과 유기서원기 연장 그리고 군 복무 해결을 위한 시간이었지만 당시 상황을 설명할 명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이 오랜 기다림은 자티가 자신의 사제직 성소를 고유 수사 성소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자티는 첫 서원 후 3년이 지난해 서른 살의 나이로 종신서원을 했다. 당시 그는 장상들과 상의 후 신학 공부를 그만두고 병원장 신부를 돕는 일에 전념하기로 한다. 1911년 병원장이 사망하자 자티 수사는 갑작스럽게 ‘성 프란치스코 약국’과 ‘성 주세페 병원’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일하게 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치유자였던 자티

 

성 주세페 병원의 책임자 자티 수사는 무려 50년간 의료 사도직에 종사하며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돈 보스코의 예방교육 영성이 교육 현장뿐만 아니라 의료 분야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를 보여 주었다. (자티 수사의 영웅적인 활동과 기록은 오른쪽 QR 코드의 한국어 자막 유튜브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50년 7월 19일, 당시 일흔 살이던 자티 수사는 비 내리는 날 병원의 물탱크를 수리하기 위해 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가 추락한다. 이 사고로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여러 검사를 받던 중 그가 간암을 앓고 있으며 이미 너무 많이 진행되어 치료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1951년 3월 15일, 살레시오회 수사 아르테미데 자티는 오랜 봉사와 헌신의 삶을 마감하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 돈 보스코의 천상 정원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된다.

 

자티 수사는 질병으로 인해 사제가 될 수 없었지만, 간호사이며 약사로서 무엇보다 살레시오 수시로 아픈 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전문 의료인이며 가난한 환자들의 아버지가 되어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했다.

 

 

2022년 10월 9일 시성식

 

평생 수많은 병자 특히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약사이며 간호사 그리고 병원장으로 살았던 자티 수사는 죽음 이후에도 많은 이를 치유하고 있다. 특히 2022년 10월 9일의 시성식에는 자티 수사의 전구를 통한 기도로 기적적으로 치유된 두 명의 산증인(필리핀 오벳 수사의 형, 아르헨티나 전 관구장 카를로 보시오 신부)도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도움이신 마리아와 주님을 간절히 믿었고, 평생 병자들을 위해 살기로 서약하면서 치유된 자티는 자신이 받은 은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며 치유의 성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치유의 기적을 간절히 원하는 이들은 자티 수사의 전구를 통해 기도하길 권한다(엽서 기도문 참조).

 

2022년 4월 9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아르티메데 자티의 시성을 결정한 후 살레시오회 총장 앙헬 페르난데스 아르티메 신부는 전 세계 모든 살레시오 수사들을 시성식에 초대했다. 이 초대를 받은 1500여 명의 수사 중 600여 명의 수사가 바티칸으로 모였으며, 수만 명에 달하는 가톨릭 신자들도 시성식을 위해 모였다. 이번 세기 살레시오 역사에서 가장 뜻깊은 순간으로 기억될 자티 수사의 시성식은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신앙인, 특히 살레시오 가족에게 거룩한 기쁨이 흘러넘치는 찬미의 시간이었다.

 

 

성덕과 성인(聖人)이 가득한 살레시오 가족

 

2022년 현재 살레시오 가족 성인 인명록에 따르면, 성인은 모두 10명(성 자티 수사 포함)이며 복자(118명)와 가경자(18명), 하느님의 종(28명)까지 시복 · 시성 단계에 있는 이가 무려 174명에 이른다. 가톨릭교회 안에 설립 200년이 채 안 되는 역사 안에서 이만큼 많은 성인 · 성녀를 탄생시킨 가족 단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살레시오 가족의 성덕과 열심한 신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살레시오 가족, 2022년 11월호(177호), 유명일 신부(가족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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