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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가톨릭 영성을 따라서3: 스위스 아인지델른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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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2-18 ㅣ No.367

가톨릭 영성을 따라서 (3) 스위스 아인지델른 수도원

유럽 신자들에 수도 영성 심고 신앙 나누는 장소로 자리매김


- 베네딕도회 스위스연합회 소속인 아인지델른수도원은 천여 년의 역사 속에 지역내 신앙 학문 문화의 중심지로서, 또 성모신심 순례지로서 매년 15~20만 순례객의 발걸음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수도원 대성당 전경.


독일의 성오틸리엔 수도원을 떠나 기자단이 향한 곳은 스위스 중북동부 슈비츠시 북동쪽 알프스산 오른쪽 기슭의 아인지델른(Einsideln)이었다.

1만4000명 인구의 소도시 아인지델른은 이곳에 위치한 아인지델른 수도원으로 유명해진 곳이라 한다. 독일어로 ‘아인지들러’(einsiedler)는 ‘수행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아인지델른 수도원은 ‘수행자들의 장소’라는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 미친 수도원의 영향력이 크다는 뜻일 듯했다.

수도원에 도착하자 수도원 도서관장 유스티노 판야멘토 신부가 환한 웃음으로 기자단을 맞았다. 스위스내 이태리어 지역인 루가노 출신인 판야멘토 신부는 학교 졸업후 10년 정도 IT 계통에서 일하다 뒤늦게 수도회에 입회한 자신의 경력을 들려줬다. 지난 10월 사제품을 받은 새신부이기도 했다.

- 수도원 도서관장 유스티노 판야멘토 신부. 수도원내 베네딕도 성인상 앞에서 수도회의 모토 ‘기도하며 일하라’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아인지델른 수도원의 기원은 마인라트(Meinrad) 라는 수도자가 천여 년 전 이곳에 은수처를 짓고 수도생활을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숲속의 은둔지 에첼산 기슭에서 순교 하는데 1세기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후대의 수도자들이 그를 기념하여 순교 장소에 수도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수도원 설립은 934년 이뤄졌다. 슈트라스부르크 수도원장을 지냈던 에른하르트가 교회와 수도원을 세우고 초대 수도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였다. 이후 수도원 주위로 마을이 형성되고 도시가 발전하면서 아인지델른은 그야말로 수행자들의 장소에서 수도원 도시 같은 모습으로 커가게 됐다.

종교전쟁, 프랑스 혁명 등 영향으로 한때 수도자가 격감하는 부침을 겪기도 했으나 이후 어려움을 견뎌내고 학교 등을 설립, 지역내 신앙 문화 학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 역사를 거쳤다.

- 수도원 대성당에 모셔진 검은 성모상.


현재의 대성당 건물은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스위스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꼽힌다.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도 기록되는 이 성당은 아인지델른에서 40여년을 거주했던 건축가, 카스파 무스부르거의 걸작 중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웅장하지만 다소 단순한 듯한 외형과 달리 대성당 내부에 들어서니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이 눈길을 끌었다. 수많은 조각들과 성상들이 호화로운 느낌마저 주었는데 판야멘토 신부는 1000개가 넘는 천사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고 했다.

성당 입구쪽에는 특별한 경당이 있었다. 아인지델른 수도원에 수많은 순례객들 발걸음을 모으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바로 ‘검은 성모상’이 설치된 경당이었다. 이 성모상으로 인해 수도원은 스위스 최대 성모신심 순례지로 불린다. 14세기부터 유럽의 순례자들이 신성시 했다고 한다. 기자단이 대성당을 찾은 이날도 경당 앞에는 여러 신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기도를 드리거나 묵상을 하고 있었다. 검은 성모상을 상징하듯 경당을 둘러싼 외벽들도 검은 빛으로 장식돼 있었다.
 
왜 검은 성모상일까. 판야멘토 신부는 ‘너무 많은 순례객들이 촛불을 봉헌하고 기도하면서 그 그을음으로 성모상이 검게 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왕관 차림으로 역시 머리에 왕관을 얹은 어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형상이 인상적이다.

이 성모상의 특징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복장을 달리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신자들이나 단체가 성모님께 공경을 드리는 의미에서 옷을 봉헌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현재 31개의 옷이 준비돼 있다고 한다.

- 9세기초 교회 서적을 비롯 23만여 권의 장서를 보관하고 있는 아인지델른 수도원의 도서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던 이곳에서는 매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이 되면 수도원 광장에서 고유의 축일 행사가 거행된다. 종교전쟁 등의 거센 풍파 속에서도 지켜져 온 가톨릭의 아름다운 전통이라 할 것이다.

대성당에 이어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인지델른 수도원의 명성은 도서관에서 다시금 이름을 알리고 있다.

9세기 후반 교회 서적들을 비롯 총 23만여 권의 장서를 소유하고 있다는 도서관은 특히 필사본 도서가 많은 것으로 그 중요도를 인정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레고리오 성가 필사본 악보를 보관하고 있는 점이 더욱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9세기초에 필사된 것을 비롯 교회음악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필독서라 할 수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 121번 악보가 보관돼 있다고 했다. 개방된 도서관에는 121번 악보의 복사본과 필사된 그레고리오 성가 악보들이 전시돼 있었다. 그만큼 아인지델른 수도원은 교회 안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발전시키고 시대적으로 악보 필사의 기술을 전수한 중요한 거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수도자들에 의해 필사된 그레고리오 성가 악보.


그레고리오 성가의 계승 발전에 큰 몫을 한 수도원의 내공은 매일 저녁기도 후 성모상이 모셔진 경당에서 수도자들이 함께 바치는 ‘성모 찬송’(Salve Resina) 합창으로 그 진가가 확인될 수 있었다.

수백년에 걸쳐 아인지델른 수도원 안에서만 전승돼 왔다는 고유 음률에 맞춰 60여 명 수도자들이 한목소리로 성모찬송가를 봉헌하는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었다. 성가 첫마디가 대성당의 정적을 깨는 순간 온 몸이 오그라드는 전율감마저 느껴졌다. 16세기경부터 불러 왔다는 수도자들의 성모찬송은 아인지델른 수도원이 지녀온 역사를 드러내는 정수였다.

저녁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길, 수도원 앞 광장에 분수처럼 보이는 우물이 눈에 띄었다. 과거 순례자들이 이곳을 거치며 휴식을 취하고 물을 마시던 곳이라고 한다. 수도원이 로마 바티칸과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꼼뽀스텔라를 가기 위한 중요 포스트 였다는 점에서 그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 졌다. 그야말로 ‘순례자들의 우물’인 셈이다.

천여 년의 시간을 지켜온 아인지델른 수도원은 개별 수도원의 의미를 넘어 유럽 전체 신자들에게 수도원 영성을 심어주고 신앙을 나누어온 교회 역사의 자리였다.
 
[가톨릭신문, 2011년 12월 18일, 스위스 아인지델른 수도원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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