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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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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60: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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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8-08 ㅣ No.828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0)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수많은 죄도 주님 자비의 불 앞엔 한방울 물

 

 

삼위일체 대축일에 받은 은총

 

1895년 6월 9일, 삼위일체 대축일에 소화 데레사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오랫동안 가둬진 강물처럼 헤아릴 수 없는 당신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쏟아부으며 당신 자신을 통교하시고, 그 사랑의 불로 영혼을 불사르는 가운데 동시에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 원하신다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이해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성녀는 하느님의 사랑에 자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했고, 이틀 후에는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언니 셀리나와 함께 ‘하느님의 인자하신 사랑에 희생 제물로 자기 자신을 바침’이란 기도문을 작성하고 스스로를 봉헌했습니다. 성녀는 이 기도문에서 성성(聖性)의 길에서 자신이 되고자 하는 바에 대해 그리고 그 목적을 정당화하는 이유와 그 목적을 향한 열망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성화(聖化)의 관점에서 당신의 사랑을 통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을 향한 응답으로서 자신을 봉헌하며 끝맺었습니다. “완전한 사랑 속에 살기 위하여, 당신의 인자하신 사랑의 희생 제물로 저 자신을 드리며, 간절히 구하오니, 저를 끊임없이 불태워 주시며, 당신 안에 들어 있는 무한한 애정의 물결이 제 영혼에 넘치게 하시어 당신 사랑의 순교자가 되게 하소서.” 

 

성녀는 이 사랑의 순교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자신을 영혼을 정화하고 변화시키는 가운데 그분 앞에 설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켜 갔습니다.

 

소화 데레사는 천상에서 은총의 장미꽃을 뿌리길 원했다. 프랑스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 대성당 제대소화 데레사는 천상에서 은총의 장미꽃을 뿌리길 원했다. 프랑스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 대성당 제대.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봉헌함

 

소화 데레사는 자주 이 봉헌 기도문을 읊조리며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내어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문에 담긴 정신을 깊이 새기며 그분을 향한 완전한 위탁(委託)과 신뢰(信賴)의 태도로 죽기까지 이 봉헌을 갱신했습니다. 성녀는 이것이 전형적인 영적 어린이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성녀는 영적 어린이가 걸어야 할 ‘작은 길’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1896년 4월 3일 성 금요일 새벽에, 소화 데레사는 폐결핵으로 인한 첫 번째로 각혈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녀는 그것을 마치 정배의 오심을 알려 주는 고요하고 아득한 속삭임으로 여기며 무척 기뻐했습니다. 

 

1896년 4월 5일 부활절부터, 소화 데레사는 어두운 밤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성녀는 그간 혼신을 다해 믿고 살아왔던 신앙의 진리가 흔들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성녀는 이 신앙의 시련이 예수님께서 자신을 정화하기 위해 마련한 연옥이자 사랑의 불이라 여기며 기꺼이 이 시련을 거쳐 갔습니다.

 

 

무죄한 어린이들 안에서 ‘작은 길’을 다짐

 

1986년 겨울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에, 성녀는 어린 시절 일찍 죽은 자신의 형제자매들을 기리며 ‘하늘에 있는 나의 작은 형제자매들’이란 시(詩)를 썼습니다. 당시 성녀는 이 축일을 보내며 공로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무상(無償)으로 주어지는 주님의 자비를 깨닫는 은총을 받으며 특히 무죄한 어린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그간 자신이 찾았던 ‘작은 길’의 완전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 연계해서 로마서의 여러 구절들(3,24; 4,4.6)을 묵상했습니다. 

 

성녀에 따르면, 예수께서 선사하시는 무상의 자비는 특별히 어린 아이들 안에서 더욱 충만한 의미를 갖습니다.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은 인간의 무력함과 나약함의 극치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런 어린아이들을 받아들이시는 모습은 그분의 자비의 극치를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진정 하늘나라는 그런 어린아이들에게 속하며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들이라고 말합니다. 

 

성녀는 공로란 많이 행하거나 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많이 받고, 많이 사랑하는 데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이 오직 주님께서 가져다주신 승리를 무상으로 받았던 어린아이들이야말로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그 누구보다 많이 받은 자들이며 그 공로 역시 크다고 보았습니다. 성녀는 그들의 완전한 위탁의 자세와 사랑 가득한 천진난만함이야말로 주님께서 자신에게 선사하신 영적 어린이의 길의 예형(例形)이라 여기며 그들과 일치하는 가운데 자신의 작은 길을 확고히 다졌습니다.

 

 

‘작은 길’을 걷는 이의 안내자

 

흔히 하느님이 어린 시절부터 소화 데레사를 섭리로 인도해 주셔서 대죄로부터 보호받은 특별한 성녀라고 여깁니다만, 성녀가 지녔던 이러한 신뢰와 위탁은 그 때문에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년에 거친 신앙의 어두운 밤 속에서 돌아온 탕자를 향한 주님의 자비를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둘째 언니인 아녜스 수녀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비록 사람이 범할 수 있는 모든 죄를 다 지었다 해도, 저는 언제나 주님을 향해 같은 신뢰를 갖겠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라 할지라도, 그것은 주님의 자비 앞에서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진 한 방울의 물과 같기 때문입니다.”

 

1897년 10월 1일 소화 데레사는 주님의 작은 어린아이로 현세의 마지막 여정을 걷다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아생전 평소 성녀가 품었던 소원은 모든 사람을 위해 천상에서 은총의 장미 꽃송이를 흩뿌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녀가 세상을 떠난 지 120여 년, 그러나 그는 여전히 천상에서 은총의 장미 꽃송이를 뿌리며 모든 작은 자들의 대장으로서 현세에서 이 ‘작은 길’을 따르는 모든 이의 든든한 안내자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8월 7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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