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모든 지체들은 서로 다르고(허위 합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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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2-05 ㅣ No.844

[레지오와 마음읽기] 모든 지체들은 서로 다르고(허위 합의 효과)

 

 

“빵 한 조각을 앞에 두고 앉으니 가난했던 시절이 생각나는구료.” 금혼식이 끝난 저녁, 할아버지의 이 말에 할머니는 지난 일을 회상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빵의 제일 끝부분을 잘라 내밀었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얼굴을 붉히며 몹시 화를 냈다.

 

“당신은 오늘 같은 날에도 내게 두꺼운 빵껍질을 주는군요. 난 50년 동안 날마다 당신이 내미는 빵을 먹어 왔어요. 그동안 당신에게 그것이 늘 불만이었지만 섭섭한 마음을 애써 참아왔는데…. 하지만 오늘같이 특별한 날에도 당신이 이럴 줄은 몰랐어요. 당신은 내 기분이 어떨지 조금도 헤아릴 줄 모르는군요.”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할아버지는 몹시 놀란 듯 한동안 머뭇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울음을 그친 뒤에야 할아버지는 더듬더듬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진작 얘기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난 몰랐소. 하지만 여보, 바삭바삭한 빵 끄트머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소.”<이민규의 ‘행복은 선택이다’ 중에서>

 

1970년대 말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리 로스(Lee Ross) 교수 연구진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그것은 피실험자들인 대학생들에게 ‘회개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주변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 와달라는 것이었다. 이 제안에 예상대로 어떤 학생들은 동의했고, 또 어떤 학생들은 거절했다. 그다음 단계로 연구진은 다시 그 학생들에게 본교 학생 중 몇 %가 피켓을 들고 다니겠다고 할지를 미루어 짐작해 보게 했다.

 

재미있게도 그 결과는 회개하라는 문구를 들고 학교를 돌겠다고 응답한 학생들과 이를 거절한 학생들의 남들에 대한 추측이 달랐다. 피켓을 들고 다니겠다고 응답한 학생들은 자기와 같은 선택을 할 학생들이 64%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반면, 이를 거절한 학생들은 23%만이 그 요구에 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것이다.

 

피켓을 들겠다는 학생들은 ‘아는 사람 만나면 그냥 실험일 뿐이라고 말하면 돼. 창피할 이유가 없지.’라거나 ‘실험 과제에 꼭 참여해야 한다면 이런 새로운 게 보람 있지.’라고 생각하여, 그 상황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해석한 것이다. 반면에 동의하지 않았던 학생들은 그 실험의 황당함과 무모함을 생각하며 ‘그런 피켓을 들고 다니다니! 다른 학생들이 날 어떻게 보겠어?’ ‘꼭 그걸 들고 다녀야만 사람들의 반응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생각해보면 결과는 뻔한 것 아니겠어?’ 등으로 해석했다.

 

 

‘허위 합의 효과’는 남들도 내 생각과 같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

 

결국 이 실험의 결론은 양쪽 학생들 모두가 자신들의 생각과 느낌이 ‘정상’이라고 믿어, 다른 학생들도 자신처럼 상황을 해석할 것이라 생각하였다는 것에 있다. 즉 피켓을 드는 것에 동의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도 그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라고 예상했고, 동의하지 않았던 학생들 또한, 다른 학생들도 그 상황을 부적절한 행동으로 받아들여 거절할 것이라고 짐작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자신들과 같은 의견과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을 ‘허위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라고 한다. 간단히 말해 이 효과는 ‘남들도 내 생각과 같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으로, 인식의 오류이다. 이는 우리 안에 있는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인데,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자신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그들을 괴짜라고 단정해 버리고 더 이상 소통하지 않으려는 데 있다.

 

40대 K자매는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두 아들의 육아를 핑계로 냉담하고 있었다. 그러다 큰아들이 사춘기를 맞아 말이 없어지고, 매사를 귀찮아하며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보이자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성당에 나오기 시작하였다. 남들이 자기 가정의 어려움을 아는 것이 싫었던 그녀는 조용히 매일미사와 성체조배를 열심히 하였지만, 일 년이 지나도 아들에게서 변화가 없자 서서히 지쳐갔다. 그때 한 자매의 도움으로 입단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연히 그녀의 어려움을 알게 된 선배 단원들이 아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공감해 주면서 실생활 속에서 개선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단원의 권유로 부모교육을 받고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저와 아들은 타고난 성향뿐만 아니라 취향도 달랐는데 저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매사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성격으로, 계획적이고 논리적으로 일을 하는 편이었지요. 그래서 늘 아이들에게도 미리 알아서 모든 것을 준비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 또한 그렇게 행동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생각과 행동들이 큰아들에게는 과중한 부담이 되었고 아들의 주도권을 빼앗은 것이었음을 알았지요. 아들이 나와 같은 행동을 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러나 노력하니 되긴 하더라구요. 지금은 사소한 것도 아들의 의견을 듣고 서로 조율하여 행동합니다. 그게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큰아들과 대화하는 요즘이야말로 살맛이 납니다.”

 

 

특정 집단에 한정된 단원들만으로 Pr. 설립하려는 유혹 벗어나야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선교의 사명이 주어졌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 즉 각기 다른 처지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들의 선교 대상이니, 선교 방법 또한 다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교의 비결은 사랑과 이해심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 접촉이라고 하니(교본 31쪽 참고) 선교의 첫걸음은 그들의 처지와 생각, 문화 등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레지오에서는 쁘레시디움을 구성할 때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는 단원들로 구성하기를 권하고 있다.(교본 456쪽 참고) 그리하여 활동보고 시간을 통하여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받아들임으로써 활동 대상자에게 맞는 특별한 방법을 찾을 수 있게 한다. 이는 마치 ‘새로운 의견 하나하나가 이미 발표된 다른 모든 의견들과 상호 작용을 일으키면서 서로 영향을 미치고 또 다른 의견들을 생산해’(교본 400쪽)내는 모습과 같다. 그러므로 레지오는 지역의 특정 계층이나 특정 집단에 한정된 단원들만으로 쁘레시디움을 설립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나는 보편적인 사람이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라고 자신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해 성장을 멈춘 상태일 수 있다. 또는 나에게는 나만의 유용한 활동 비법이 있다고 자신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아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는 상태일 수 있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나의 짐작보다 많고, 그만큼 나 혼자만의 방법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기는 힘들다. 레지오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리고 그들의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도록 도와주는 일에 크게 쓰이는 도구’(교본 486쪽)이다. 하지만 그 도구에 속한 내가 성장과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다면 어떻게 도구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신비체를 건설함에 있어서도 모든 지체들은 서로 다르고 그 기능 역시 각기 다른 것이다.”(교본 89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2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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