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W 신부님 은경축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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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2-05 ㅣ No.842

[허영엽 신부의 ‘나눔’] W 신부님 은경축 축사

 

 

모든 동창 신부님들을 대신해서 W 신부님의 은경축을 축하드립니다. 신부님을 처음 본 것은 1978년 입학식 피정 때였습니다. 동창들 대부분은 고3 졸업 후 까까머리에서 이제 기껏해야 조금 머리가 긴 스포츠(?) 상태였는데 W 신부님은 장발에 하이칼라였습니다. 게다가 흰 분을 바른 것 같이 하얀 얼굴에 요즘 말로 아이돌 연예인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신부님은 대학을 1년 다닌 상태였고,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신학교에 편입시험을 보고 들어왔던 것입니다. 처음 자기 소개하는 자리에서 ‘지금 갓 들어온 너희가 대학을 뭘 알아!’ 하는 말투와 자세여서 조금 기분은 언짢았으나 농담과 함께 자연스레 넘어갔습니다.

 

어쨌든 제 기억 속 신부님은 마냥 즐겁고 항상 웃으며 신학교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웃음소리는 멀리 100미터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 눈에는 생각 없이 산다고 오해도 받았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꿋꿋하게 웃음과 아주 긍정적 사고로 신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대침묵 시간에 걸려서 혼이 나도 ‘뭐 나만 떠들었나’, 재시험이 걸려도 ‘아무개는 나보다 더 많이 걸렸는데’ 하면서 무한대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서 궁금했었는데 그건 바로 신부님 부모님의 깊은 신앙심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W 신부님의 DNA에는 깊고 깊은 신앙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어머니를 뵙고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부님은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신부님에 관해 말할 때 신학교 시절 축제 때 함께 한 콩트를 잊을 수 없지요.

 

W 신부님 덕분에 즐겁고 재미있는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W 신부님은 정이 많아 외국 유학하는 친구들에게 편지도 잘 보내주었습니다. 저도 아직 몇 장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 시절 아픈 친구들에게는 환자식을 잘 가져다주었던 다정다감하고 친구들을 잘 챙기는 의리 있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W 신부님이 있는 곳에는 항상 웃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심성 착하고 유머감각이 많아 주변을 밝게 비추어주는 신부님이 은경축 이후에도 계속 그 미소와 웃음을 항상 잃지 않고 항상 건강하고 주변에 웃음과 미소를 더 많이 가져오는 신부님이 되기를 바랍니다.

 

- 신학교 감골제 축제. 왼쪽 허영엽 신부, 가운데 박일 신부, 여장하고 앉은 W 신부

 

 

잊지 못할 축제 소동

 

신학교 1학년 때였다. 봄에 열릴 학교 축제 때에 1학년은 가장행렬과 콩트를 준비해야 했다. 회의를 위해 1학년 전체가 모였을 때였다. 누군가 대본을 써야 하는데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나를 지목하며 말했다.

 

“영엽아! 네가 써 봐. 너 학보사 기자잖아?”

“기자는 기사를 쓰는 거지! 대본을 어떻게 써?”

“자, 허영엽이 대본 쓰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은 박수!”

 

친구들은 내 말을 듣지도 않았다. 신학교에서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시킬 때 재빨리 박수를 치면 끝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쉬는 시간마다 노트에 대본을 조금씩 작성했다. 가장행렬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주제로 하여 아담과 하와 같은 주요 인물들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총출동시켰다. 점수가 발표되었는데 다행히 꼴찌는 하지 않았다.

 

문제는 콩트 대본이었다. 당시 청춘 남녀들이 얼굴을 숨긴 채 서로 다른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음에 드는 상대를 선택하는 TV 프로가 유행이었다. 우리는 그 프로를 따라서 콩트를 만들었다. 나와 다른 한 명이 사회자를 맡았고, 다른 두 명은 남녀로 분장했다. 대사는 당시의 웃음 코드에 맞추어 조금은 유치하지만 나름 재미있게 구성해 보았다. 자세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중간에 웃음이 여러 번 터졌던 기억이 난다. 장르가 그만 코미디로 바뀌고 만 것이다. 여자 역할을 맡은 모 신학생은 열정이 넘친 나머지, 누나의 옷까지 빌려와 그럴싸하게 분장했다. 게다가 껌을 짝짝 씹다가 손으로 당기기까지 했는데 머리카락에 엉켜버리고 말았다. 그때 가장 많은 웃음이 터졌다. 관중들도 손뼉을 치며 무척 재밌어했다.

 

축제가 끝나고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대강당에서 공동으로 하는 수업이 있었다. 당시 학생처장이셨던 모 신부님이 강의 전에 축제 때 했던 프로그램 평가를 하셨다. 드디어 우리가 했던 콩트에 대한 평을 시작하셨다.

 

“살면서 그렇게 저질스러운 콩트는 처음 봤어요! 내용도 없고, 그냥 웃기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신학생이라면 무언가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창피스러워요!”

 

콩트에 출연했던 나와 친구들은 차마 얼굴을 들지 못했다. 다행히 신부님은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시는 듯했다. 순진하던 대학교 1학년 때이니 그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해 어쩔 줄 몰랐다. 그래도 축제를 준비하며 친구들과 무척 가까워져서 축제가 끝난 뒤에는 더욱 친해졌다. 그때는 이만해도 큰 성과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심오한 메시지는 없던 가벼운 콩트였지만, 지금 다시 준비한다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재미도 있고, 내용도 고품격인 그런 작품이었다면 그 콩트에 출연했던 우리는 지금쯤 신부가 아니라 일류 작가나 연기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 시절, 잊지 못할 콩트의 주인공이었던 친구들은 지금 모두 점잖고 훌륭한 중년의 사제가 되었다. <허영엽 저, ‘당신을 만나봤으면 합니다’(가톨릭출판사) 일부 발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2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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