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영신수련: 이냐시오 성인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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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2-10 ㅣ No.308

[기도, 한 걸음 더] 영신수련 - 이냐시오 성인의 기도

 

 

이냐시오 성인(1491-1556년)은 영적 독서와 자아 성찰로 기도를 시작하였고 오랜 기간의 침묵과 고행극기의 생활,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려는 열망으로 기도에 전념하여 마침내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체험을 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우려고 “영신수련”을 남겼다.

 

 

내면 세계의 발견

 

세속의 기사였던 이냐시오 성인은 하느님의 개입으로 하느님의 기사가 되었다. 그는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열심히 기도하여 기사회생하였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하느님과 말문이 트인 그는 기도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한 기도는 영적 독서와 자아 성찰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전”과 “성인전”을 읽었는데 마음을 다하여 “그리스도전”을 읽어가는 동안 복음의 세계가 자기 눈앞에 펼쳐지곤 하였다.

 

또 그는 “성인전”에서 읽은 것을 상상 속에서 전개하였다. 도미니코 성인과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나도 그렇게 살리라, 그들이 했다면 왜 나라고 못하겠는가, 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꿈을 펼쳤다. 그러다가 문득 옛 생각에 이끌려 세속적인 업적을 세우고 명예를 드높이는 일을 상상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런 생각들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세속적인 일을 공상할 때에는 당장에는 재미가 있지만, 나중에는 싫증이 나고 황폐해진 기분을 느끼는데, 상상 속에서 성인들을 본받아 고행극기를 실천할 때에는 당시에도 위안을 느낄 뿐만 아니라 생각을 끝낸 다음에도 흡족하고 행복한 여운을 맛볼 수 있었다. 이 차이점을 깨달으면서 악한 영에서 오는 생각이 있는가 하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생각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영들이 생각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는 원리를 토대로 하여 영들의 식별규칙을 정립하게 된다.

 

 

기도의 완성

 

그는 성인들처럼 예수님을 본받고 싶어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예수님처럼 예루살렘에 살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그들의 손에 넘겨져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나섰다. 자기가 입던 기사복장은 걸인에게 벗어주고 포대기로 만든 순례자 옷으로 갈아입었다. 자기를 지키던 검(劍)은 제대에 봉헌하였다.

 

그의 기도 생활은 만레사 동굴에서 완성되었다. 그때까지의 엄청난 내적 체험을 정리하려고 마을 어귀에 있는 동굴에 잠시 들어간 것인데 결과적으로 그곳에서 10개월을 머물렀다. 그동안 그는 온갖 내적 체험을 하게 된다. 커다란 영적인 위안과 죽음과도 같은 실망의 상태를 겪었으며 무거운 죄책감과 세심증에 시달린 끝에 자살의 유혹까지 느낀다. 혼자서 극도의 동요를 겪다가 마침내 주님이 내리시는 가르침을 통해서 꿈결에서 깨어나듯이 자유로워졌다. 그는 이 시기에 “하느님은 학교 선생님이 학생을 다루듯이” 자신을 다루셨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카르도넬 강의 체험’이라고 하는 신비 체험을 하게 된다. 그 결과 그는 성경이 없더라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인간이 되신 예수님께 대한 신앙 때문에 죽을 각오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을 만난 것이다. 이 체험을 계기로 하여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자기 정화와 완성을 추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남을 위한 사도적인 사람이 된 것이다.

 

 

“영신수련”, 사도적 수련서

 

그는 자신이 한 체험을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영신수련”을 남겼다. 영신수련은 4단계 또는 4주간으로 구성된 대침묵 피정 프로그램이다. 제1주간에는 죄의 위력과 그것을 능가하는 하느님의 자비를 묵상하며, 제2주간에는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생애를 강생부터 시작하여 유년 시절, 출가와 공생활을 차례로 관상 또는 관조 묵상한다. 그리고 제3주간에는 예수님의 수난을, 제4주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묵상한다.

 

영신수련 피정자는 그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뜻을 알아서 자신의 삶을 그분 뜻에 맞게 정리하고 선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신수련은 우리의 창조주이며 벗인(요한 15,15) 예수님을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으로 모시게 하는 사도적 수련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영신수련은 오직 “창조주이신 주님이 몸소 그 열심한 영혼과 통교하시어 당신 사랑으로 그를 껴안아 당신을 경배케 하고 앞으로 당신을 더 잘 섬길 수 있는 길로 준비시키도록”(“영신수련”, 15번)한다.

 

영신수련은 오직 피정자가 자신의 주님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하는 데에 목적을 둘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신수련이 제시하는 기도들 중에서 다음 세 가지가 특별히 중요하다.

 

 

양심성찰과 식별

 

첫째,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삶을 성찰하는 데에서 기도를 시작할 수 있다. 양심성찰의 기도가 그것이다. 양심성찰의 기도는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자신의 삶을 예수님과 함께 되돌아보는 기도다(“영신수련”, 43번). 하루 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나는 하느님을 섬겼는가, 아니면 나를 섬겼는가?’ ‘하느님의 영을 따라 살았는가, 아니면 이기심의 영, 어둠의 영을 따라 살았는가?’를 성찰하고 식별하는 것이다. 내 삶을 단순한 육안이 아니라 심안과 영안으로 돌아보는 이 기도를 통하여 영적 감수성이 발달하고 마침내 이냐시오 성인처럼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보게(Finding God in all things)”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애 관상

 

둘째, 영신수련은 복음서의 관상을 통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돕는다. 우리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한 14,6) 예수님을 만나고 또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닌가?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삶이 변화된다. 열두 제자가 그랬고 성인 성녀들의 삶이 그러하였다.

 

영신수련은 복음서를 따라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만나게 해준다.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기교나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열망하느냐의 문제다. 몇 시간 동안 기도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거룩한 독서에 맛들이고 예수님을 “더 잘 알고 더 깊이 사랑하고 더 가까이 따르려는”(“영신수련”, 104번) 마음으로 복음서를 거듭거듭 읽고 묵상하자.

 

예수님을 만나고 싶고 예수님과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데에는 이냐시오 성인이 애독한 “준주성범”이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려는 큰 뜻을 품자. 그리고 그분이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시는지를 여쭤보고 일생 그것을 행하도록 하자. 오직 거기에 우리의 구원과 행복이 있다.

 


손쉬운 기도들

 

셋째, 누구나 처음부터 관상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도의 초보자들이 기도 생활에 맛 들일 수 있는 방법들이 필요하다. 각자 눈높이에 맞는 기도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영신수련”에는 손쉬운 기도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238-260번).

 

가장 먼저 ‘십계명에 따라 하는 기도’가 나오는데 이는 첫째 계명부터 차례로 떠올리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방법이다. 진복팔단(마태 5,3-12)이나 사랑의 송가(1코린 13,4-7),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와 같은 신앙의 덕목들을 담은 목록을 가지고 똑같이 기도할 수 있다.

 

다음에는 우리가 흔히 바치는 기도문으로 묵상하는 기도방법이 소개된다. 예를 들면 ‘주님의 기도’의 각 단어와 구절을 음미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문을 들숨과 날숨에 따라 각 구절을 되풀이하는 기도 방법도 있다. 이런 손쉬운 기도들에 맛 들이다 보면 누구나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는 모두 가난하고 겸손한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따르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것이 인류 창조의 목적이며 인간 행복의 완성이다. 기도 생활은 이 부르심과 응답의 여정을 계속해 갈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다.

 

기도에 맛 들이고 자분자족하며 예수님을 날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인 성녀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정제천 요한 - 예수회 소속 신부. 2000년부터 2009년까지 광주 가톨릭 대학교에서 영성신학 교수로 신학생 영적지도를 하였으며, 2010년부터 예수회 한국관구 부관구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0년 11월호, 정제천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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