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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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기도 배움터: 죄가 아닌, 선물을 생각하는 양심성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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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19 ㅣ No.800

[기도 배움터] 죄가 아닌, 선물을 생각하는 ‘양심성찰기도’

 

 

고해소의 문이 열려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조심스럽게 ‘시작하세요’ 또는 ‘시작하셔도 됩니다’하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어렵사리 입을 떼는데, 무슨 죄를 고백해야 하는지 죄를 찾아내지 못해서 시작을 못하시는 경우도 만나게 됩니다. 성찰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이러면 참 난감하지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요? 저에게도 특별한 효과가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제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안내해 드리는 것 밖에 없지요.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성찰을 시작하면서 바로 죄가 막 떠오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좋은 일을 떠올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내가 잘못한 일, 부끄러운 일, 감추고 싶은 일을 기억해 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요.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성당에 조용히 앉아서 성호경을 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청해 보세요. ‘저보다도 저를 더 잘 아시는 성령님, 그동안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볼 수 있도록 저를 비추어 주세요. 제가 저지른 잘못,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던 일을 돌아보고 제가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침묵 가운데 머물러 보세요.”

 

어떤 경우에는 죄를 짓지 않아서 고백할 것이 없는데 고해성사를 본 지는 시간이 좀 돼서, 그야말로 찜찜해서 사죄경을 해달라고 오시는 분들도 만나게 됩니다. 정말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영웅적인 절제의 생활을 하면서 지내셨던 거지요. 이런 분들은 성찰을 어떻게 하지요?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가 하느님의 사랑에 어떻게 응답했는가?’하는 것을 돌아보고 그것을 고백하는 것이지요. 예전에 통회에 대해서 가르칠 때 상등통회와 하등통회가 있다고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하등통회는 내가 지은 죄를 뉘우치지 않으면 하느님께 벌을 받을까봐 통회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상등통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내가 그 사랑에 얼마나 합당하게 응답했는가를 돌아보고 뉘우치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성찰이 하등통회와 같은 형식으로, 너무도 소극적인 방식으로 치우쳐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성찰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길게 한 이유는 양심성찰기도 또는 의식성찰기도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의 제목 중에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발견하기』라는 책이 있는데, 정말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이 양심성찰기도가 바로 우리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해 낼 수 있도록 하느님에 대한 감각을 키워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심성찰기도는 아주 중요한 기도인 것이지요. 예수회 신부님들께 들어보니 예수회원들은 이 양심성찰기도를 하루에 한 번 내지 두 번에 나누어서, 한 번에 15분 정도씩 시간을 내서 꼭 한다고 합니다. 이 좋은 것을 우리도 하면서 지내면 더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기도를 꼭 자리에 앉아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네요. 산책을 하면서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식사 후에 가벼운 산책을 하면서 하는 습관을 들이면 영육 간에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양심성찰기도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볼까요? 양심성찰기도라고 하면 처음에 떠오르는 생각이 죄나 잘못을 살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에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오전을, 오후를, 하루를 지내면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은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것이 양심성찰기도입니다.

 

모든 기도에서도 그렇듯이 먼저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모아야 하겠지요. 주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성령께 도우심을 청하는 겁니다. 성령께 ‘지금 이 시간까지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지, 나에게 주신 선물은 무엇인지’ 볼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그리고 나서 나의 삶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나의 생각과 마음을 이끄는 것들이 있다면 조금 더 머물러 보십시오. 그러면서 나는 하느님의 이끄심에 어떻게 응답을 드렸는지 또는 응답을 드리지 못했다면 왜 그랬는지 하는 것을 돌아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이런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이 일을 통해서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지, 무엇을 알려주고 싶어 하시는지, 나에게 어떤 은총을 주고 싶어 하시는지 주님께 여쭈어보고 또 주님의 응답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기다려보십시오.

 

이 시간을 통해서 받은 은총을 감사한 마음으로 자신의 안에 되새기고 그것을 삶에서 살아갈 결심을 하십시오. 그리고 이것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은총을 청하면서 마무리 기도를 합니다. 마무리 기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해도 좋고, 주님의 기도나 영광송도 좋습니다.

 

양심성찰기도에 대해 대략적으로 말씀을 드렸는데, 꼭 이런 순서대로 절차를 밟아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이런 흐름은 대략적으로 기억하고,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감사드리면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 양심성찰기도를 꾸준히 해나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느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겠지요. 하느님께서 지금 나를 위해 애써 일하시고, 나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겠지요. 이것을 의식하면서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에 합당한 무언가를,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무언가를 해 나가려고 애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정말 기쁘지 않겠습니까?

 

* 최규화(요한 세례자) 신부는 2000년 사제 수품 후, 2009년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교의 신학)를 취득 하였다. 현재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외침, 2016년 5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최규화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교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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