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함께 성인이 되는 길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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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2-05 ㅣ No.841

[레지오 영성] ‘함께 성인이 되는 길’을 마치며

 

 

‘나의 밤에는 어둠이 없도다’(MEA NOX OBSCURUM NO HABET)

 

포콜라레 운동의 창설자 끼아라 루빅은 초기 교회의 순교자 라우렌시오 성인을 찬양하는 기도문에 나오는 이 구절을 묵상하며 삶의 고통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일치시킴으로써 새롭게 열리는 광명의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고통과 혼돈 속에서 “버림받으신 예수님을 끌어안고 그사이에 그 무엇도 낄 수 없이, 그분을 껴안고 그분이 소모되어 우리와 하나가 되고, 우리가 소모되어 그분과 하나 되어 고통이신 그분과 함께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 곧 사랑이 되는 길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문득, 내가 캄캄한 숲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지만, 단테가 했던 말을 되풀이하곤 합니다. 운명처럼 느껴지는 삶의 어둠은 늘 내 곁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지요. 그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견뎌내야 하는 고통, 치러야 하는 희생을 감당하는 일은 어둠 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숨차고 막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어둠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빛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 빛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된 사람들은 하느님의 빛으로 자신과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함께 사는 사람들을,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을 보게 됩니다.

 

 

빛이 되어라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일에 가담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십시오. 사실 그들이 은밀히 저지르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으로 밝혀집니다. 밝혀진 것은 모두 빛입니다.”(에페소서 5,8-13)

 

신앙은 혼돈의 어둠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빛을 향해 도약하는 전인적 힘입니다. 우리의 좌절을 일으켜 세우는 그 빛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당신의 생명과 맞바꾼 십자가의 사랑으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 사랑은 진정한 것에 눈을 뜨게 하고 우리의 시선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향하게 하고 배려와 관심으로 이웃을 향하도록 합니다. 진실한 것을 선택하고 오롯한 마음으로 선택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흘리는 눈물이야말로 어둠의 터널을 지나 빛이신 주님과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빛 안에 머물면서도 여전히 어둠 속에서 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빛이 들어와도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물 수밖에 없지요. 빛 속에서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신앙을 머리로만 알고 삶으로 실행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사랑을 배우는 가장 좋은 길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수영에 대해서 아는 것과 수영할 줄 아는 것은 다릅니다. 수영에 대하여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물속에서 가라앉으면 수영을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지식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면 빛 속에서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빛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믿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리는 신앙의 축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자식의 행복이듯이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도 우리의 행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하신 말씀을 복된 소식[福音]이라고 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기쁜 소식[Good News]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쁨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은 그분을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솟아오르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뜻을 살필 줄 알고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일을 찾습니다. 사랑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기도는 사랑의 통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기뻐할 줄 알고 사랑하는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은 감사하는 삶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과 사랑의 길을 걸어가는 나 자신에 감사하며 살아갈 때 성령의 빛이 우리의 어둠을 몰아내고 밝은 빛으로 인도합니다.

 

- 치명자산성지 순교자묘지 예수 마리아 바위

 

 

마치며

 

지난 일 년 동안 레지오 마리애 단원 여러분과 ‘함께 성인이 되는 길’을 묵상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성지에서 살면서 느낀 저의 신앙을 나누면서 감사한 마음이 더 크게 자라났습니다. ‘과거 없는 성인이 없고 내일 없는 죄인도 없다.’라는 교회의 격언은 죽음을 넘어 신앙의 길을 걸어간 순교자들에게도, 나약한 인간으로 그분들의 신앙을 본받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희망을 주는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두운 과거가 있었고 그 어둠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갈망하는 죄인으로 살아갑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오신 주님은 당신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오셨고 그분을 만난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게 됩니다. 그 빛이 우리를 어둠에서 건져주는 것이지요.

 

치명자산 성지에는 어둠 속에서 빛을 갈망하는 이들의 순례와 기도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빛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골고타의 십자가 길을 걸으며 빛을 찾았고, 산 정상에 모신 순교자들의 무덤에서 기도하며 그분들이 견디어낸 지난한 삶의 여정을 묵상합니다. 그곳에서 하늘을 향해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십자가를 향해 오롯이 서 계시는 성모님을 만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치명자들이 비추어 주시는 신앙의 빛이 가득한 성지에 오세요. 하느님 사랑의 빛 속에서 순교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2월호, 김영수 헨리코 신부(전주교구 치명자산 성지 평화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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