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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가톨릭의 교회일치적 마리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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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17

가톨릭의 교회 일치적 마리아론

 

 

1. 제삼천년기 교회 일치적 마리아론의 정립 필요성

 

앞으로 불과 몇 개월 후면 역사적인 2000년 대희년이 시작된다. 본고는 이번 대희년이 교회 일치의 획기적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염원에 상응하여 16세기의 서방 교회 분열 이래 일치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해 온 가톨릭 마리아론의 기본 입장을 교회 일치의 관점에서 대략적으로라도 정립하려고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4년 교서 [제삼천년기]를 통해서 2000년 대희년을 합당하게 기념하기 위하여 마땅히 착수되어야 할 준비 작업 내지 선교 과업에 관한 가르침을 반포하면서 교회의 일치 운동에 투신할 것을 각별히 촉구한 바 있다.1) 그는 새 천년대의 전환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교회 구성원들이 범한 역사적 과오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아울러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면서 하느님 백성의 분열상을 참회와 회개를 필요로 하는 역사적 죄악으로 대한다.2) 그는 현 시점에서 다른 어느 때보다 더 항구하게 성령의 도움을 청하고 교회 일치의 은총을 간청하도록 촉구하면서 최소한 제이천년기의 분열을 극복하는 데 많이 접근한 가운데 2000년 대희년을 기념할 수 있도록, 각자 양심 성찰을 하면서 교회 일치를 위한 기도에도 적극적으로 투신할 것을 요청한다. 

 

1) 그런데 마리아론과 마리아 공경이 그분의 아들 나자렛 예수를 인류의 구세주 그리스도로 공통적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계를 분열시키는 대표적 쟁점 사안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3) 성모 마리아는 교회 일치의 표지가 아니라 분열의 한 원인으로까지 간주될 수 있다. 

 

16세기에 서방 교회가 양분된 이래 수세기 동안 가톨릭과 개신교는 피조물이자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 앞에서 의화되어 구원될 수 있는가 하는 의화론(義化論)을 둘러싸고 신학적으로 팽팽히 맞서 왔다.4) 이러한 교파 신학적 논쟁 안에서 마리아론은 한 축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동안 개신교측은 가톨릭 교회의 마리아 교리와 공경을 성서적 전거에 근거를 두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내용에 따라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 그리스도의 위치를 약화시키는 이단적 처신으로 격렬하게 비판해 왔다. "교황권 다음으로 마리아론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신학적으로 가장 크게 분열된 영역이다. 그 문제는 최근에 교황이 선포한 두 개의 교의, 곧 마리아가 원죄의 더러움에서 해방되었다는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와, 동정녀가 죽은 후에 즉시 하늘로 불려 올라갔다는 성모 승천 교의에 중심을 두고 있다."5) 가톨릭은 마리아에 대한 개신교의 침묵이나 거부 행위에 대해서 반프로테스탄트적 입장에서 마리아론적 진술로 대응하여 왔다. "마리아의 특전이 항상 새롭게 파악되었고, 또 마리아의 명예 칭호가 새로 생겨났으며 새로운 교의적 정식(敎義的 定式)이 교회 교도권으로부터 요청되곤 하였다. 간혹 교회 일치 문제가 대두될 때에는 소위 진리 문제를 앞세워 진리를 삭제하지 않고 선포하는 것이 교회 재일치에 가장 훌륭하게 기여하는 것이라고 대응했다."6) 그래서 금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마리아에 대한 개신교의 입장은 가톨릭과의 쟁론이 지속되면서 반마리아적 성향을 지니게 되었으며, 가톨릭은 이에 대한 반동으로 반프로테스탄트적 마리아 신심을 장려하고 강화해 왔다. 

 

2)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마리아론을 위해서도 유익한 전환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전환으로 지난 30여년 동안 교회 분열의 본거지인 구미의 그리스도교계 안에서는 이 공의회 이전과는 대조적으로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일치를 도모하고자 하는 화해의 분위기가 국외자에게까지 역력하게 감지되고 있다. 

 

교회헌장과 일치교령과 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서 가톨릭 교회 당국의 교회 일치를 실현하기 위한 강한 의지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일치교령은 가톨릭 신앙의 표현 방법과 순서가 교회 일치의 정신에 부합하여 이루어져야 함을 분명히 천명하였다. "가톨릭 신앙의 표현(表現) 방법과 순서가 절대로 갈라진 형제들과의 대화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교리 전체가 밝히 제시되는 것은 절대로 필요한 일이다."7) 그리고 교회헌장에서는 마리아론적 진술을 하는 데 여하한 형태의 과장을 하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가 발해진다. "신학자들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성모의 고유한 품위를 존중하는 데 있어서 지나친 마음의 협소함과 마찬가지로 온갖 거짓 과장도 힘써 피하기를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8) 교황 요한 23세가 설립한 그리스도교 일치 사무국(The Secreatariat for Christian Unity)을 중심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교회 일치 노력이 다양하고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음은 사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 교계 안에서는 새 세기이자 새 천년대가 바야흐로 시작되려는 현 시점까지 사회 정의나 민족 통일 등 공동선 실현을 위해 외견상 교단별로 어느 정도의 협력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주요한 쟁점 교리를 둘러싸고 화해와 일치 노력과는 거리가 먼 냉랭한 분위기가 쌍방간에 감돌고 있으며, 그 한가운데 마리아 공경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고까지 볼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단의 교회 생활이나 신심에서 마리아가 철저히 외면되고 있는 데 비해서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마리아 신심은 순교자 신심과 함께 신자들의 신앙을 특징적으로 각인시킬 정도로 두드러진다. 그래서 다른 어떤 경우보다도 마리아를 둘러싸고 한국 개신교와 가톨릭 교회에서 상호 이해의 노력과 의견 일치의 전망을 말할 여지가 아직은 매우 적은 실정이다. 그래서 사회에서도 개신교회는 일반적으로 '예수교' 내지 '기독교'로서 호칭되면서 교리상 예수 또는 그리스도[基督]를 믿고 숭상하는 종교로 각인되어 있는 데 비해, 전통적으로 '천주교'로 호칭되어 온 가톨릭 교회는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마리아교'로까지 부르면서 국외자들에게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중심 교리가 본질적으로 판이한 다른 두 종교처럼 비쳐지는 매우 유감스러운 현상이 이 땅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국 그리스도교계에는 제삼천년기를 맞아 교회 일치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각각 반마리아적이거나 반프로테스탄트적 교파 신학(敎派神學)의 입장을 탈피하여 교회 일치적 성격의 마리아론 정립을 위해 노력해야 할 절박한 과업이 부과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피력된 마리아론이 교회 일치의 관점에서 작성된 사실에 유의하면서 그 정신에 따라 마리아론의 기본 입장을 정립하고 마리아 공경의 의미를 밝히고자 하며, 이에 공의회의 교회 일치적 정신이나 자세를 엄격하게 견지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말이나 행동으로 갈라진 형제나 다른 누구든 교회의 참된 교리에 대하여 오해를 품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회피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공의회의 마리아 교리가 담겨 있는 교회헌장 제8장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천주의 모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제명하에 성서학적이고 교부학적 통찰에 따라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 마리아 개인의 찬미 자체를 목표로 하기보다 초교파적으로 긍정될 수 있는 구세사적 기능을 밝히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2. 가톨릭의 교회 일치적 마리아론의 기점

 

제삼천년기를 맞이하면서 전개되어야 할 교회 일치적 마리아론은 성서에 의해 영감을 받은 마리아의 구세사적 역할과 의미를 밝히는 가운데 기본 입장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 신학 일반은 항상 역사적 인물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대한 성서적 복음을 더욱 분명하게 선포하고 명료하게 서술하는 과제를 지닌다. 마리아론의 과제 역시 마리아에 관한 신학적 진술을 성서적 전거에 의거 정확하고 명료하게 해야 할 일이다. 성서 안에서 발견되는 마리아에 관한 단편적 언급 내용에 따라 마리아의 생애를 묘사하는 것이 마리아론의 정수라고 볼 수 없다. 마리아론의 신학적 의미는 그녀의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관성에서 올바로 드러난다. "마리아에 관해서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무엇인가 알 수 있을 뿐이다."9)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마리아의 규정성으로부터 구세사 안에서 마리아에게 특정한 기능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귀결이 따르게 된다.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긴밀한 연계는 성서에서 마리아가 예수의 삶의 결정적 전환점인 육화와 십자가 사건에 그지없이 가까이 현존하는 사실로 증언되고 있다. 그런데 십자가 곁에서 마리아의 구세사적 기능은 육화의 경우처럼 분명하지는 않다. 그래서 마리아론의 기점은 하느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에서 드러나는 구세사적 기능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학적으로 하느님 아들의 육화는 하느님의 역사인 세계 구원이 궁극적이고 되돌이킬 수 없이 발생하는 결정적이고 중심적 구세 사건이다. 그렇다고 해서 십자가의 구원 의미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육화와 죽음은 시간상의 차이만 있을 뿐 불가분리적 일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육화 안에서 인류의 죄로 표시되고 죽음으로 운명지어진 육신이 하느님에게서 수용되어 있기 때문에 육신 안에 들어섬은 죽음에 들어서는 시작이라고 불 수 있다. 하느님 아들의 육화 사건에 마리아는 어머니로서 참여하였다. 이처럼 마리아의 신학적 위상과 특히 구세사적 기능이 그분의 아들 예수의 신성에서 규정되기 때문에 교회 일치적 마리아론은 초기 공의회에서 확정된 그리스도 교의에 입각하여 전개될 필요가 있다. 

 

마리아의 중심 교리는 천주의 성모 교리이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임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만 주장하는 네스토리오를 거슬러 교의로 선포되었다. "임마누엘이 진실로 하느님이라 고백하지 않는 사람과 거룩한 동정녀가 하느님에게서 나온 말씀을 육신으로 출산하였기 때문에 마리아를 하느님의 모친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정죄될 것이다."10) 그런데 이 에페소 공의회의 교의에 담겨진 칭호는 마리아 개인의 사적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자 인간의 아들인 예수의 위격적 단일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된 사실을 늘 유념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 예수가 되셨다는 구세사적 사실을 진지하게 믿으려면 마리아가 하느님 아들의 어머니라는 사실도 아울러 믿어야 한다.11)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육화의 신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시고"와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의 두 신앙 조문으로 표현된다. 하느님이 남자 없이 시녀적인 동정녀를 통해서 사람이 되시는 육화 과정에서 어머니 마리아의 피조물적 수용성과 자기 비움의 협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리아에 대한 신학적 진술은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人性)에 대한 증언이 된다. 마리아가 인간의 육신 안에서 하느님께서 궁극적으로 오시는 문(門)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육화 안에서 세계를 위해 오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수용되는 일이 발생한다. 세계의 구원자이신 하느님을 수용함으로써 마리아는 전체 구세사를 규정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 지점에서 앞서 이루어졌거나 후에 뒤따르는 구세사가 마치 목표이자 원천처럼 수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당신의 하느님 모친성을 통하여 단지 나자렛 예수의 사적 전기(傳記)에만 속할 뿐 아니라 드러난 세계의 구세사 안에서 유일무이한 공적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 아들의 육화는 성령의 현존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주도 행위이다. 그러나 구세사 안에서 하느님의 활동은 인간의 자유를 무시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마리아와 자유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신앙에서 나오는 그녀의 응답을 기다린다. 그러기에 마리아의 신앙적 응답을 통해서 성취되는 하느님 아들의 모친성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만이 아니라 온 인류와 세계를 위한 구세사적 사건이었다. 이로써 마리아론은 진정한 신학적 논고로서 정당성을 지니게 된다. 이제 관건이 되는 것은 마리아가 자신의 구세사적 직무를 어떻게 수행하는가이다. 

 

예수가 육신적으로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은 하나의 기초적인 구원 진리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예수는 인류의 한 지체가 되고 구원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12) 그렇기는 하지만 성서는 마리아의 육신적 잉태보다도 자유로운 신앙의 동의를 한층 더 강조한다. 마리아의 중요성과 의미는 루가복음서에서 그녀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사실에서가 아니라 순종적 신앙으로 '예'라고 응답함으로써 모든 여인들 중에서 지극히 복된 분으로 칭송된다. 그녀의 동의는 마리아가 단지 수동적으로만 하느님의 모친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결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자유로운 처신을 통해서 능동적으로 하느님의 모친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마리아의 신앙적 동의는 아브라함의 신앙이나 시나이 반도에서의 계약 체결보다 한층 더 공식적인 구세사의 사건으로 간주될 수 있다.13) 

 

마리아가 은총으로 가득하게 된 것은 자기 개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인류에게 확산되어 작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테면, 마리아는 인류를 위하여 '예'라고 응답한 것이다. 이처럼 마리아의 구세사적 역할은 무엇보다도 신앙에서 나오는 순종적 참여로 이루어진다. 이 점은 이미 교부 시대에 인지되어 있어서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리아가 신앙으로 충만하여 육신보다 먼저 영신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였다고 진술하였다.1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도 같은 의미의 진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강생의 신비는 마리아가 '피앗'(Fiat)을 발언하였을 때 이루어졌다. ...... 이 '피앗'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마리아에게 달려 있던 아드님의 원의가 실현되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이 피앗을 믿음 안에서 발언하였다. 신앙 안에서 마리아는 자신을 무조건 하느님께 내맡겼으며 '주님의 종으로서 아드님의 인격과 사업에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쳤다.' 그리고 이 아들을 ― 교회의 교부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 마리아는 당신 뱃속에서 잉태하기 전에 이미 마음 안에, 정확히 말해서 믿음 안에 잉태하고 있었을 것이다."15)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신의 신앙적 동의로써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마리아론은 개신교에서도 별 이의 없이 수긍하는 그녀의 신앙적 동의를 통하여 이루어진 육화의 구세사적 사실에 의거하여 전개될 것이다. 이를테면 개신교의 루터나 바르트와 같은 인물들은 동정녀로서 예수를 잉태하고 낳은 어머니 마리아를 단순한 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구세사에서 공적 기능을 수행한 분으로 대하고 있다. 그래서 마리아는 동정녀 탄생 교리로부터 구원의 표징으로 나타난다. 

 

마리아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사실보다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적 신앙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지극히 복된 구세사적 역할을 수행한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철저하게 비우고 당신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마리아를 은총으로 충만케 하여 당신 말씀을 잉태케 하시고 그 어머니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자신의 신앙적 동의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고 어머니가 된 분이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사건의 유일한 원천은 하느님의 역사(役事)이고 마리아는 하느님의 주도적 은총에서 발해지고 성장하는 순수한 수용 안에서 이 엄청난 구세사적 기능을 자유로이 수행하신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이룩하시는 일이 무엇이든 자신에게서 이루어지도록 처신하는 순종적 신앙을 순수하게 구현하였다. 이러한 자세는 단순한 수동적 자세가 아니고 자유 의지와 함께 하느님의 뜻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전인적 처신이어서 하느님의 사업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자유로운 신앙과 순명으로 인류 구원에 협력하였다."16)

 

 

3. 마리아 공경의 교회 일치적 이해

 

마리아가 자신의 자유로운 신앙의 동의를 통해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동정녀로 출산함으로써 하느님 모친으로서 온 인류와 세계를 위한 구세사적 기능을 수행하였다는 사실은 마리아 공경의 타당한 근거가 된다.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가 인류의 구세주이신 하느님의 모친으로서 공경을 받아 마땅하다고 보아 만물의 창조주이자 주님이신 하느님께 바치는 공경으로서 '흠숭지례'(欽崇之禮)보다는 물론 낮으나 일반 성인들에게 바치는 '공경지례'(恭敬之禮)보다 한층 높은 '상경지례'(上敬之禮)로써 각별히 공경한다. 마리아의 모든 것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고 있기에 모든 유형의 마리아 공경은 그녀 자신을 넘어 하느님을 지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마리아 공경은 그리스도 신앙의 전거인 성서에 정당한 근거를 지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동안 개신교회로부터 비판받아 왔으며, 원죄 없으신 잉태나 성모 승천 교리와 같은 가톨릭 교회의 교의 결정은 공의회를 통하지 않고 교황의 특수 교도권에 의해 선포된 결정 사안이라는 이유로 교회 일치에 우호적인 개신교단에서조차 아직 수긍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17) 

 

1) 16세기 종교 개혁 시대에는 마리아 신심이 많이 변질되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18) 당시에도 마리아에 관한 정당하고 우수한 상념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지나친 궤도 이탈과 무절제한 주장들이 만연해 있었으므로 마리아 신심의 정화 운동이 절실하게 요청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종교 개혁자 루터(M. Luther)가 처음부터 반마리아적 입장을 견지한 것은 아니었다.19) 그는 431년에 이루어진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평생 옹호하였다. 아울러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동정녀로서 잉태하시고 평생 동정이라는 사실을 아욱스부르그 신앙 고백문과 슈말칼덴 조항을 통하여 고백하였다. 그리고 당시 토론 중에 있던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문제는 신앙인들이 자신의 관점에 따라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마리아의 사후에 육신도 함께 하늘로 들어올림을 받았는지에 관해서는 성서적 근거가 없기에 알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런데 루터는 육화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홀로 인간 구원의 유일한 중심이기에 이 사실을 약화시키는 과장된 마리아 공경을 비판하였다. 모든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에게 수렴되어야 하는데 당시의 마리아 공경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가 교회를 위해서 전구한다 할지라도 죽음을 물리쳐야 하고, 사탄의 어마어마한 힘과 대항하여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엄청난 일이다. 마리아가 이를 행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마리아는 온갖 최고의 찬미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기는 하나 그리스도와 똑같이 간주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그분의 신앙과 겸손의 모범을 따를 것을 원한다. 그런데 마리아에 대한 과장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서야 할 자리에 마리아가 대신 들어서게 된다."20) 

 

개신교는 오늘날까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 교리 내지 신심 행위는 성서를 통해서 정당성을 지닌다고 보고 마리아론과 마리아 공경도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에 따라 판단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또한 가톨릭의 마리아론이 마리아를 자립적으로 위대한 존재로 부각시키고 있음을 오류로 규정하면서, '하늘의 여왕'(Regina coeli), '공동 구속자'(Coredemtrix), '은총의 중재자'(Mediatrix gratiarum)와 같은 칭호들이 유일한 구속자요 중재자이신 그리스도의 존재와 역할을 약화시킨다고 보아 거부한다. 요컨대 가톨릭의 마리아론이 성서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보아 공경 내용과 양식이 거부되고 있는 것이다.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가톨릭 교회 당국은 마리아 공경이 성서적, 전례적, 교회적, 인간학적 통찰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교황 바오로 6세도 1974년 3월에 반포한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에서 4대 방향 제시로서 성서적, 전례적, 교회적, 인간학적 요소를 명시적으로 열거한 바 있다.21) 이제 교회 일치 문제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원죄 없으신 잉태와 성모 승천과 같은 마리아 교의의 의미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는 마리아가 잉태되는 첫 순간부터 원죄와 그 과실에 오염되지 않았다는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교의로 선포하였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전되었다."22) 이 교리가 교회 안에서 하나의 명백한 계시 진리로 인정되기까지는 오랜 시기가 필요했다. 

 

하느님의 모친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완전히 참여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참여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인격적 사랑으로서 은총 안으로 들어서고 하느님과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뜻한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존재에 완전히 참여한다는 것은 은총으로 충만해짐을 뜻한다(루가 1,28 참조). '은총을 가득히 입는다'는 것은 구체적 역사 안에서 '구원되었음'을 뜻한다. 마리아는 인간으로서 원죄의 과실에 연루되어 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다. 이 속박에서의 해방은 오로지 구원 은총에 힘입어 이루어진다. 

 

마리아를 하느님의 모친으로 간택한 것은 은총이 자유롭게, 인격적으로 그리고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온전히 받아들여졌음을 전제로 한다. 은총의 수용자가 하느님의 원의와 일치하려는 온전한 자세를 갖춤으로써 은총의 수용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고도의 자유는 현실적 역사 상황에서 인간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여 하느님의 은총이 불가결하게 요청된다. 마리아가 원죄에 물들지 않고 깨끗하게 보전되어 있다는 것은 하느님 아들의 동정녀 출산에 의한 모친성의 내적 귀결이라고 간주될 수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을 그지없이 닮은 순수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였으며, 결국 육화하신 하느님 말씀의 어머니가 되었다. 아담과 하와가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상실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마리아는 순수함을 간직하였다. 이것이 '원죄 없이 모태에 잉태된 분'이라고 일컬어질 때의 처지로 이해될 것이다. 그래서 이 교리는 칼 라너(K. Rahner)가 표현하듯이 '한 분이고 유일한 중개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론의 핵심에서부터 나온 한 신앙 조항'이기도 하다.23)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였다.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었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가 지상의 생애를 마친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계시된 신앙의 진리이다."24) 이 교리는 예수 승천과는 달리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서가 아니라 은총에 힘입어 구세사적 목표에 이르렀음을 말하고자 한다. 4세기 말경부터 마리아의 임종에 관한 사유가 전개되기 시작하고 6세기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8월 15일을 '하느님 모친의 귀향일'로 부르면서 서서히 서방 교회에서도 일반적으로 마리아가 임종 후에 하늘에 올림을 받았노라는 견해가 피력되었다.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사실에 의거 마리아는 은총으로 충만한 가운데 완전히 거룩한 인간이 되었다. 마리아는 자신의 삶과 존재 안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룩한 분이다. 하느님과의 일치는 지상에서 은총 가운데 이루어지고 지상 생애가 끝난 다음에는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친교 안에서 이루어진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모친이라는 사실로부터 종말론적 충만으로서 그녀의 천상적 현양이 결정되는 것은 내적 논리에 부응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모 승천 교리는 신약성서의 증언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3) 마리아는 인간으로서 구세사 안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은총으로 구속된 분이면서, 동시에 구원된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마리아를 채운 은총은 인간 존재의 모든 층을 통하여 작용하며, 그녀가 아들 성자를 잉태할 수 있도록 그녀의 존재를 꿰뚫은 사랑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에게서 제공되는 구원을 자유로운 신앙적 수용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구원의 객관적 질서 안에서 수용함으로써 원형적으로 실현한 분이다. 이처럼 은총으로 제공된 구원 역사가 마리아에게서 지순한 형태로 실현되고 있기 때문에 마리아께서 구원되는 모든 인간의 전형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고 구원을 실현시키는 성서적 신앙의 전형적 성격을 지닌다.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에게 구원을 실현시키는 신앙에 의거 모든 신앙인들과 교회의 합당한 공경이 요청되며, 이러한 마리아 공경은 교회 일치를 위해서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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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제삼천년기], 졸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19.34. 37.41.46.55항 참조. 

2) [제삼천년기], 34항; 일치 교령, 1.3항 참조. 

3) 이에 관해 방대한 분량의 마리아 연구 작업으로서 이정운, [로마 가톨릭 교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도 지침에 따른 전례적 마리아 공경과 성인 공경 연구] I-II, 수원가톨릭 대학교 출판부 1998, 특히 II, 541-637면; 趙正憲, "敎會再一致運動의 觀點에서 본 마리아", [神學展望] 35호(1976 겨울), 43-57면; D. 플라나간, "敎會一致와 마리아론", 앞의 잡지, 58-86면; R. Laurentin, "마리아", [하나인 믿음], 서강대 신학연구소/한국신학연구소 공역, 분도출판사, 1979, 585-595면; 볼프강 바이너르트, [마리아-오늘을 위한 마리아론 입문], 졸역, 성바오로출판사, 1980, 21-32면; K. Riesenhuber, Maria im theologischen Verstandnis von Karl Barth und Karl Rahner, Freiburg, 1973, 7-12면; H. Petri, "Reformatorische Frommigkeit und Maria", in: W.Beinert(Hrsg.), Maria heute ehren, Freiburg, 1977, 64-81면 참조. 

4) 기스벨트 그레사케, [은총 - 선사된 자유], 졸역, 성바오로출판사, 1979, 95-104면; D. 플라나간, 앞의 책, 59-63. 67-84면 참조. 

5) R. M. Brown, The Ecumenical Revolution, London(Burns Oates) 1968, 298면; D. 플라나간, 앞의 글, 59면에서 재인용. 

6)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24면. 

7) 일치교령, 11항. 

8) 교회헌장, 67항. 

9) K. Rahner, "Mariologie", in:Lexikon fur Theologie und Kirche VII, Freiburg, 1962, 85면. 

10) Denzinger-Schonmetzer, Enchiridion Symbolorum Definitionum et Declarationum de Rebus et Fidei et Morum, Barcelona, 1963, 252(= 이하 DS로 인용). 

11) K. Barth, Kirchliche Dogmatik I,2, Zollikon-Zurich, 41948, 151면 참조. 

12) K. Rahner, Maria, 5면 참조. 

13) 위와 같음. 

14) St. Augustinus, Sermo 215,4, in: PL 38, 1074: "Illa(Maria) fide plena et Christum priusmente quam ventre concipiens."; 이정운, 앞의 책, 제2권, 148.513면 참조. 

15)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 정영한 옮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7, 13항. 

16) 교회헌장, 56항. 

17) 이정운, 앞의 책, II, 543-551면 참조. 

18) R. Laurentin, Kurzer Traktat der Marianischen Theologie, Regensburg, 1959, 101면 참조. 

19)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75-78면; H. Petri, 앞의 책, 68-72면 참조. 

20) M. Luther, "Apologie der Konfession XXI", in:Die Bekenntnisschrif-ten der evangelisch-lutherischen Kirche, Gottingen, 41959, 322면; 볼프강 바이너르트, 위의 책. 77면에서 재인용. 

21) 바오로 6세,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 임원지 옮김, 성바오로출판사, 1981, 29-34항 참조. 

22) DS 2803. 

23) K. Rahner, "Die Unbefleckte Empfangnis", in: Schriften zur Theologie I, Einsiedeln, 1955, 237면 참조. 

24) DS 3903.

 

[사목, 1999년 5월호, 심상태(한국 그리스도 사상 연구소 소장, 신부, 교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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