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레지오ㅣ성모신심

길 위의 사람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랑의 다리, 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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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1-11 ㅣ No.838

[길 위의 사람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랑의 다리, 성모님

 

 

저는 10개월 가까이 수도회 창설 325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책을 우리말로 출판하는 일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이제 다 마무리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우리 수녀회 수녀님들은 세계 40여 개국에 파견되어 있습니다. 책의 내용을 읽어가다가 아프리카 동쪽에 있는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공화국에 이르러 잠깐 멈췄습니다.

 

“2015년 한국인 두 가족의 도움으로 마디우라노에 학교를 열었다. 이는 매춘 관광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그 지역의 어린이들을 교육하여 이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4세기의 여명』)

 

이 대목에서 저는 이 한국인 은인이 과연 누굴까 궁금했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마다가스카르에 선교를 다녀오신 후, 지금은 교회 내 예술가로 활동하시는 안젤라 수녀님을 찾아뵙고 이분들이 먼 오지를 돕게 된 경위를 들려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수녀님께서는 본인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며 저를 원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아프리카에 학교를 봉헌하신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 자매님은 학교에서 은퇴하신 후 지금은 소박하게 살고 계십니다. 마르코는 마리아 자매님의 둘도 없이 귀한 아들입니다. 아들에게 온갖 사랑을 쏟아부으며 오직 그의 성공적 삶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평소 마르코는 좋은 친구를 만나야 한다거나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엄마의 염려에 “엄마, 저는 자연스러운 것이 좋아요.”라고 하며 어머니의 가치관과는 반대의 것을 선택했습니다.

 

서울에 왔다가 고무주머니를 끼고 구걸하는 사람에게 애긍한 후, 볼일을 보고 돌아가려는데 그 사람이 고무주머니에서 나와 걸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리아 자매님은 화가 나서 자선한 돈을 되돌려 받아오라고 마르코에게 말했습니다. 초등학생인 마르코는 “엄마, 저런 방법으로 살 수밖에 없는 저분이 더 가엾으니까 그냥 가요.”라며 엄마를 만류했습니다. 이 속 깊은 아들은 32년 전, 마르코가 중학교 1학년 되던 해에 패혈증을 앓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죽은 아들을 기리며 아프리카에 학교 지어

 

그 후 마리아 자매님의 삶은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우선 세속적인 삶을 살아온 자신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했습니다. 신자이면서도 하느님은 안중에도 없고 세속적 가치관에 끌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키우려 했던 욕심 많은 모습을 돌아보며 하느님 앞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아들의 장례 후, 묵주기도 중에 마르코를 성모님께 맡겨드리는 기도를 하다가 모습이 까맣게 변해 죽어갔던 아들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그래서 보육원을 운영해 불쌍한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줄 지향으로 알아보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서 죽은 아들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그들을 도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단체를 만나봐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 잘 알고 지내며 마음의 위안을 받았던 안젤라 수녀님이 갑자기 마다가스카르로 선교를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수녀님을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을 열어 놓았습니다. 수녀님은 우선 그곳에 가서 1년간 마리아 자매님이 지향하는 일을 어디서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본 후 연락하겠다고 하고 떠났습니다. 안젤라 수녀님이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선교사로 있는 아녜스 수녀님이 안젤라 수녀님을 반겼습니다. 안젤라 수녀님이 은인 한 분이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줄 지향을 품고 있다는 말을 꺼내자 아녜스 수녀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수녀님은 근 5년간 학교를 짓기 위한 지향으로 기도를 했지만, 본인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안젤라 수녀님이 오면서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에 놀라워했습니다.

 

마디우라노에 있는 학교와 아이들.

 

 

곧바로 마다가스카르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최고 장상을 만나 마리아 자매님의 지향에 대해 나눈 후, 즉시 자매님을 마다가스카르로 초대했습니다. 수녀님들이 마리아 자매님을 모시고 간 곳은 아이들이 매춘 관광에 노출된 ‘마디우라노’라는 동네였습니다. ‘맑은 물’이라는 뜻을 지닌 이 마을은 아름답기 짝이 없고 물은 청명해 물고기가 투명하게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학교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건축을 위해 돌 깨는 작업이 선행되었는데, 이 일은 아이들이 와서 하고 품삯을 받아 갔습니다. 학교는 바닷가가 내려다보이게 2층으로 지었습니다. 장상 수녀님은 마르코의 이름으로 학교의 이름을 짓고 하늘나라로 돌아간 연민이 많았던 어린 영혼을 기렸습니다.

 

마리아 자매님은 평소 어떻게 살면 아들이 하늘나라에서 기뻐할지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며 살다가 평소 마르코가 세속적인 것과는 반대되는 가치를 추구했던 것을 기억하고 이런 큰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아프리카 아이들과 흡사했는데 이곳 마다가스카르 아이들은 마치 마르코가 되살아난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마리아 자매님은 소박하게 살면서 기도로 하루를 채우다가 마다가스카르를 방문하곤 합니다. 마치 그곳에 부활해 있는 것 같은 아들 마르코를 만나러 가는 듯한 기쁨을 안고서 말입니다.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통공 이뤄야

 

11월은 귀천하신 분들을 기억하면서 더 긴밀히 기도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세상을 떠난 저희 레지오 단원들과 세상을 떠난 모든 신자의 영혼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레지오 마리애 회합을 마무리하면서 바치는 이 기도는 살아 있는 사람들과 이미 여정을 마치고 귀천한 분들을 이어줍니다.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은 우리가 성모님을 ‘연옥의 모후’라는 믿음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직접 기도드리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구원의 은총이 사랑하는 영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십니다(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영성생활”).

 

제가 있는 명동성당 내 성모 동산에서는 레지오 마리애 연례행사가 치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레지오 마리애 깃발을 든 많은 무리를 보면서 강한 영적인 힘을 느꼈습니다. 더욱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의 장례미사 때 성당은 레지오 마리애 깃발을 든 단원으로 가득 차 흡사 아름다운 하늘나라를 미리 보는 듯했습니다.

 

교본 17장에 의하면, 세상을 떠난 레지오 단원은 하늘나라에서도 레지오 단원입니다. 이분들과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라는 ‘구원경’을 바치며 통공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또한 식사 후에 바치는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라는 기도도 우리가 영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일상의 작은 기도 안에서도 우리보다 먼저 하늘에 오른 영혼들과 공을 나누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하느님의 섭리와 맞닿게 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1월호, 이은주 마리 헬렌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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