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심리: 보이지 않아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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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5-27 ㅣ No.1944

[영성심리] 보이지 않아도 알아

 

 

영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첫 번째 모습으로 하느님과 ‘함께 있는 것’을 말씀드렸다면, 그 두 번째 모습으로 함께 계신 하느님을 ‘알아차리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역시 교회의 전통 표현을 빌리면 ‘의식 성찰’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식 성찰에 대해서도 영성 신학의 많은 가르침을 찾을 수 있는데요, 여기에서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보다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의식’하는 모습에 대해 함께 나눠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부쩍 커버렸지만, 첫 조카아이를 키우던 누나가 해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카아이가 네 살쯤 되었을까요? 하루는 누나가 아이를 데리고 집 앞 놀이터에 나갔더랍니다. 가서 아이와 함께 놀다가 아이를 놀려 줄 요량으로 잠깐 어딘가에 숨었다는 거죠. 사실 아이에게는 생각지 못한 충격을 줄 수도 있는 장난이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다 보면 그렇게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또 부모 마음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모래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를 두고 누나가 근처에 잠시 몸을 숨겼는데, 아이가 별 반응이 없더랍니다. 놀이에 정신이 팔려 엄마 생각을 못 하는 건가 싶었는데, 잠시 후 아이가 고개를 들더니 엄마가 보이지 않자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시 놀이터 바닥 모래를 가지고 계속 놀더라는 거죠. 조금 더 지켜보다 결국 참다못한 누나가 아이에게 다가갔답니다. 그리고는 “엄마 안 보였는데 안 무서웠어? 엄마 안 찾았어?” 하고 물었더니, 아이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엄마 안 보였어도, 난 엄마 있는 거 알았어.”

 

그 어린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엄마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엄마의 현존에 대한 믿음이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아서였을까요? 아니면, 발달심리학에서 말하는 ‘대상 영속성’(대상이 보이지 않을 때도 여전히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 이미 형성된 이후라서 그랬을까요? 조카에게 물어봐도 그 답을 알 수는 없을 겁니다. 아마도 그때 일을 기억 못할 테니까요.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어린 시절 조카의 이야기 속에서 하느님 현존 안에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 의식 성찰을 비롯한 여러 방법을 통해 일상에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흔적을 찾고 그를 통해 하느님 현존에 대한 확신을 얻으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그런 노력조차 넘어서서 현존하십니다. 우리가 알아차려야만 계시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계시지 않는 분이 아니신 것이죠.

 

하느님 계심을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도,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의식 성찰의 출발점이고, 영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사도 17,27)

 

[2023년 5월 28일(가해) 성령 강림 대축일(청소년 주일) 서울주보 7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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