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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칼럼: 히든 피겨스 - 편견, 누군가 먼저 깨뜨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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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3-19 ㅣ No.1284

[영화칼럼] 영화 ‘히든 피겨스’ - 2016년 감독 데오도르 멜피


편견, 누군가 먼저 깨뜨려야

 

 

편견은 ‘무지의 자식’입니다.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맹목적 믿음, 혹은 고정관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고집이 세고 끈질깁니다. 아무리 대문으로 쫓아내도 어느새 창문으로 되돌아오곤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편견이란 어리석음의 으뜸’이라고 했습니다.

 

독설로 유명한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로댕의 작품이라면 무턱대고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데생 하나를 보여주면서 ‘로댕의 최근 작품’이라고 말해줍니다. 아니나 다를까 혹평이 쏟아집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허! 작품을 잘못 내놓았군. 로댕의 것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작품일세.”

 

편견은 그 자체로 차별입니다. 비뚤어진 눈, 기울어진 마음으로 세상과 인간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런 눈과 마음을 가지고 편견을 의심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새로운 세상은 열리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최초’가 되어 그것을 깨야 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히든 피겨스>(원제: Hidden Figures)에서 캐서린 존슨(타라지 헨슨 분)은 그렇게 합니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초, 그녀는 ‘백인, 남성’들의 냉대와 무시 속에서 ‘흑인, 여성’ 최초로 미 항공우주국(NASA)의 비행연구소 전산원을 거쳐 정식 연구원이 됩니다. 그냥 운이 좋아서 유색인종과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우주선의 발사와 대기권 재진입에 필요한 수치를 계산해 내는 천재적인 수학 실력, 흑인 여성도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신념과 실천이 그녀에게는 있었습니다.

 

연구소 책임자인 백인 알 해리슨(케빈 코스트너 분)도 그때까지도 당연하게 여기던, 사소한 것 같지만 아주 상징적인 차별의 벽 하나를 부숩니다. 초를 다투는 급한 상황에도 “먼 아프리카(다른 건물)에 있는 유색인종 화장실을 가야 한다.”는 캐서린 존슨의 항의에 망치로 화장실 간판을 모두 떼어냅니다. 그리고는 “이제 나사(NASA)에는 유색인종 화장실도, 백인 화장실도 없다. 변기 있는 화장실만 있다. 이곳 모든 사람의 오줌 색깔은 똑같아.”라고 선언합니다.

 

<히든 피겨스>는 재능에는 인종의 구분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나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비난과 멸시를 이겨내고, 편견과 불합리를 깨는 ‘최초’가 있어야 편견과 차별이 없어지고, 아폴로 11호를 달에 쏘아 올릴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과 문명이 열립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낡은 편견이 깨지기가 무섭게 새로운 편견이 찾아옵니다. 때론 무지해서, 때론 이기심으로, 때론 편해서 우리는 그 안경을 씁니다. 그것이 눈과 마음을 흐리게 해 차별을 평등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집단 이기주의와 갈등을 낳습니다. 과감히 벗겨내거나, 벗어버려야 합니다. 캐서린 존슨이나 알 해리슨처럼.

 

예수님께서 일찍이 야곱의 우물가에서 몸소 실천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요한 4,7)

 

[2022년 3월 20일 사순 제3주일 서울주보 6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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