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바람직한 신앙인의 모습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11 ㅣ No.1810

[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바람직한 신앙인의 모습

 

 

‘복음의 기쁨’은 교회의 사명 수행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문입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있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교회의 정체성은 교회의 존재적 본질을 통해 드러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참다운 정체성은 복음 선포라는 사명을 수행할 때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존재적 본질은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궁전’입니다. 하지만 지상의 교회는 ‘되어가는’ 존재이며, 자신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복음 선포입니다. 교회는 이 복음 선포라는 사명을 수행할 때 더욱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현대의 정체성 이론에 따르면, 정체성은 존재적 본질을 통해 드러나기보다는 수행적 본질을 통해 더 잘 드러납니다.

 

교회의 문헌들과 신학적 문헌들에서 ‘교회’라는 단어가 나오면, 우리는 흔히 우리 신앙인과 잘 관련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막연하게 자기 밖의 어떤 존재로서 교회를 상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어떤 가르침을 신앙인 자기 자신에게 잘 적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주, 교회 개념을 성직자와 동일시하는 차원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교회라는 말은 우리 신앙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의 복음 선포에 관한 교황님의 가르침을 생각할 때에도 그냥 막연히 교회가 해야 하는 복음 선포의 사명에 관한 이야기로 오해할 위험이 있습니다. 즉, 우리 신앙인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할 가르침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문헌에 나오는 ‘교회’라는 말에는 우리 신앙인 모두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복음의 기쁨’에도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하여 주교와 신부, 부제, 봉헌 생활자와 평신도에게 보내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교황 권고”라는 부가적 설명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문헌들을 읽을 때, ‘교회’라는 용어가 나오면 ‘신앙인’이라는 단어로 바꿔 이해해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출발하는 신앙인

 

모든 신앙인은 예수님께로부터 선교 명령을 받았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신앙인은 “선교를 향한 이 새로운 출발”의 소명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안위를 떠나 용기를 갖고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변방’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따르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20항).

 

신앙인은 복음 선포(복음화, 선교, 전교)라는 사명을 수행할 때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갑니다. 세상 안에서 복음화 사명을 수행하는 일은 하나의 도전이기도 하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복음화 사명 수행은 때때로 힘듦과 어려움을 낳습니다. 하지만 신앙적 관점에서 보면 복음화 사명 수행은 그 본질상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복음이 선포되고 열매를 맺고 있다는 표징입니다. 그러나 이 기쁨에는 언제나, 출발하여 복음을 전하고 자기 자신을 떠나 좋은 씨앗을 뿌리며 끊임없이 나아가는 힘이 있습니다”(21항).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신앙인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 노력과 능력은 복음 선포에서 언제나 부차적인 것입니다. 복음 선포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선포되는 복음 말씀 안에 하느님이 힘이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는 헤아릴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습니다. 복음서는 씨앗이 뿌려지면 농부가 잠을 잘 때에도 저절로 자라난다고 말합니다(마르 4,26-29 참조)”(22항). 신앙인은 그저 용기를 갖고 출발하면 됩니다. “세상에 나아가 모든 이에게, 모든 장소에서, 온갖 기회에,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23항). 우리 신앙인은 “주님께서 먼저 이 일을 시작하셨고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음을 압니다(요한 4,19 참조). 그러기에 두려움 없이 첫걸음을 내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고 멀어진 이들을 찾으며 큰길에 나아가 버림받은 이들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24항).

 

복음 선포라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여정에서 발생하는 숱한 사건과 현상들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복음화 사명 수행은 인내를 요청하는 긴 호흡의 과정입니다. “씨를 뿌린 사람은 밀 가운데 가라지가 자라는 것을 보더라도 불평하거나 지나친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말씀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실현되고 새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그러한 열매가 덜 영글고 설익어 보여도 그렇습니다”(24항). 복음화 사명 수행에 최선을 다하는 신앙인의 모습은, 아마도 묵묵히 성령의 힘을 신뢰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복음 선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복음화 사명 수행에 있어서 지치고 힘들 때 우리가 다시 힘을 얻는 곳은 전례입니다. 복음 선포의 사명 수행과 전례 참여는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전례 안에서 주님과의 일치를 깊게 체험하며 주님께서 하신 그 일을 우리의 일로 여기는 마음과 자세를 다시 한 번 다잡을 수 있습니다. “전례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교회는 복음화하고 복음화됩니다. 전례는 또한 복음화 활동을 경축하는 것이며 자신을 내어 주는 새로운 힘의 원천입니다”(24항).

 

 

쇄신하는 신앙인

 

신앙은 단순히 유지되고 관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끊임없이 쇄신되고 변화되고 성숙되어야 합니다. 복음화 사명 수행을 통해 신앙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쇄신시킬 수 있습니다. 신앙의 현실적이고 실제적 모습과 신앙의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신앙인은 언제나 이상적 모습을 지향해야 합니다. 신앙 그 자체는 영원하고 불변하지만 우리들의 신앙 모습은 언제나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복음화 사명 수행을 통해 더욱 정련되고 성숙되어 갑니다. 신앙은 복음 선포라는 사명 수행을 통해 더욱 깊어지고 빛을 발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신앙 관습과 행동 양식, 우리 신앙인들의 시간과 일정, 우리 신앙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생활 구조가 복음화를 향한 적절한 경로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27항 참조와 변주). 우리 신앙인들의 생활 방식 자체가 항상 복음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본당의 구성원으로 살아갑니다. 본당은 우리의 신앙이 자라는 핵심 공간입니다. “본당 사목구는 사람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살아 있는 친교와 참여의 장소가 되고 온전히 선교를 지향해야 합니다”(28항). 본당은 “그 지역의 변두리나 새로운 사회 문화적 환경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는 출발”(29항) 지점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본당의 구조와 조직은 복음화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늘 쇄신되어야 합니다.

 

본당 안에서 늘 해왔던 관성적이고 안이한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모든 신앙인은 “저마다 자기 공동체가 지닌 복음화의 목표와 조직, 또 양식과 방법을 과감하게 창의적으로 재고”(33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다운 신앙인은 자신의 생활 방식과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본당의 모든 구조를 복음 선포라는 사명을 수행에 맞춰 변화시키고 쇄신시키는 일에 온 힘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복음화를 향해 출발하는 신앙인, 복음화를 위해 모든 것을 쇄신하는 신앙인이 진정 아름답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5월호,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안동교구)]

 



1,169 2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