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교의신학ㅣ교부학

[교부] 베드로 행전: 모든 죄인의 상징된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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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1 ㅣ No.39

[교부들의 가르침] 베드로 행전


"모든 죄인의 상징"된 베드로

 

 

베드로와 바울로의 행적을 중심으로 교회 탄생 이야기를 전해 주는 성서 정경(正經)은 ’사도행전’이다. 그러나, 비록 성서 정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사도들의 생애, 선교 활동과 순교 등을 담고 있는 책들도 있는데, 이를 ’외경(外經)사도행전’이라 부른다. 예컨대, ’베드로 행전’, ’바울로 행전’, ’토마스 행전’, ’요한 행전’ 등이 여기에 속하며,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것이 바로 ’베드로 행전’이다. 이 작품은 180년~190년경에 소아시아 또는 로마에서 씌어졌으나,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작품은 원작의 2/3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잃어버린 부분에는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 가기 전에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내용이 담겨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베드로 행전’은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서 활동하고 순교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바울로 사도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과 작별하고 스페인으로 떠나자, 마술사 시몬이 로마에 와서 갖가지 현란한 묘기로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한다. 바로 이때 베드로가 로마에 건너와서 마술사 시몬과 서로 여러 가지 기적 시범을 보이면서 한 판 대결을 벌이게 된다.

 

멋지게 하늘을 나는 시범을 보이던 마술사 시몬은 베드로의 기도로 말미암아 떨어져서 다리가 세 군데나 부러지게 되는데, 이 대목은 마치 무협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마침내 기적 대결은 베드로의 승리로 끝나고, 마술사 시몬은 들것에 실려가서 수술을 받았으나 죽고 만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베드로 행전’의 절정은 뭐니뭐니해도 로마를 빠져나가던 베드로 사도가 다시 십자가 형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대목이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쿼바디스 도미네?) 라고 여쭙는 베드로의 유명한 일화가 이 행전에 아름답게 간직되어 있다. ’베드로 행전’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로마에서 금욕생활에 관해서 설교했다. 베드로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은 수많은 부인들은 남편과 헤어지거나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거부했다. 그 결과, 베드로는 로마 집정관이었던 아그리파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죽음의 위협을 느낀 베드로는 혼자서 로마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바로 이때 예수와 베드로의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본문을 직접 읽으면서 그 감동에 젖어들어 보자 :

 

"로마 성문을 벗어나자, 베드로는 로마로 들어가시는 주님을 뵈었다.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여쭈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려고 로마로 가는 길이오’ 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주님, 십자가에 다시 못박히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라고 여쭈었다. 주님께서 ’그렇소, 베드로.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박힐 것이오’ 라고 대답하셨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하늘로 다시 오르시는 주님을 뵈었다. 마침내 베드로는 기쁨에 가득 차서 주님을 찬미하면서 로마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나는 십자가에 못박힐 것이오’ 라는 말씀은 베드로에게 일어나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십자가에 못박힌 베드로

 

이미 예수께서 예고하신 운명대로(요한 21, 18~19참조), 베드로는 집정관에게 잡혀가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사형장에 들어선 베드로는 사형집행자들에게 머리를 아래로 해서 십자가에 못박아 달라고 청한다. 우리는 흔히 베드로가 주님이신 예수와 똑같은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릴 수 없다고 고집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혔다고 알고 있지만, ’베드로 행전’이 전해주는 내용은 조금 다르다. 베드로에 따르면, 죄 많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거꾸로 태어났다. 그 결과 인간의 눈에는 "추한 것이 아름다운 것으로 악한 것이 선한 것으로" 뒤바뀌어 비쳐졌다. 그러니 죽을 때에도 세상을 거꾸로 살아온 죄인답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스스로 모든 죄인의 상징이 되어 십자가에 매달렸고,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들의 회개를 외치고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지금도 로마 변두리 아피아 길에는 베드로와 주님의 만남을 기념하는 ’쿼바디스 성당’이 자그마하게 자리잡고 있다.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길을 걷노라면, 다시 로마로 발길을 돌리던 베드로 사도의 그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베드로가 정말 ’베드로 행전’이 전하는 대로 주님을 다시 만나 뵈었는지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베드로 행전’이 전해주는 베드로의 회심과 순교 이야기는 적어도 성서 정경이 전해주는 베드로 사도의 사람됨과 결코 모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베드로의 참된 면모를 더욱 잘 드러내 준다는 것이다.

 

사실 외경들 가운데는 이단 무리가 자신들의 그릇된 주장이나 신학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억지로 꾸며낸 것들도 있다. 이단자들이 꾸미고 멋대로 고친 외경은 복음의 근본정신과 어긋나는 내용들을 담고 있기에 천박하고 조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지니고 있는 성서가 얼마나 참되고 순수한 것인지 더 잘 드러난다. 이와는 반대로 비록 외경이지만, ’베드로 행전’처럼 성서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성서 외경은 성서 정경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뿐 아니라, 알게 모르게 교회 신심으로 자연스레 자리잡고 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 행전’과 같은 외경이 지닌 매력이다.

 

※ 참조 = ’베드로 행전’의 우리말 번역 :

이상근 엮음, ’신약외경’, 성등사 1998.

이동진 엮음, ’제 2의 성서. 신약시대’, 해누리 2001.

 

[가톨릭신문, 2002년 11월 3일, 최원오 신부(부산가톨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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