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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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64: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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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05 ㅣ No.836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4)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의 생애 ④


‘삼위일체 하느님’ 안의 삶 깨달아

 

 

- 디종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기 전의 엘리사벳.

 

 

어머니의 입회 반대로 인한 위기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엘리사벳은 엄마가 바랐듯이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로 커갔습니다. 비록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의 사랑을 흠뻑 받았고 좋은 친척들, 다양한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엘리사벳의 마음속에는 일생을 가르멜 수녀로 살면서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하고 싶은 원의가 깊이 자리 잡아 갔습니다. 반면, 남편을 잃고 두 딸만 바라보며 살았던 엄마는 그런 큰딸의 생각을 알게 되자 크게 반대했습니다. 엄마는 엘리사벳이 피아니스트로 대성하고 또 좋은 남편을 만나서 평범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길 바랐습니다. 

 

그러던 차에 엘리사벳은 1899년, 1주일간 루이 쉐스네라는 예수회 신부님이 지도한 피정에 참석하고 이어서 한 달간 구속주회 신부님들이 지도한 디종 본당의 선교 대회에 참석하게 됐는데, 뜻밖에도 그 기간에 어머니는 엘리사벳이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는 걸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어머니는 다시 결정을 뒤집고선 혼처가 났으니 결혼하라고 엘리사벳을 어르고 달랬다고 합니다. 엘리사벳을 많이 아끼고 사랑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엘리사벳의 어머니는 신심이 깊은 분이었고 또 가르멜 수녀원을 제집 드나들 듯이 다니며 늘 미사에 참여하며 기도하고 수녀님들과 좋은 영적 친분을 나누던 분입니다. 하지만 자기 딸이 봉쇄 가르멜 수녀원에 가겠다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르멜 수녀가 되고자 했던 엘리사벳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은 복녀로 하여금 예수님을 자신의 정배로 받아들이고 더욱더 자신을 그분께 속한 여인으로 자각하게 했습니다.

 

 

주님의 구원 신비에 동참

 

그 시절 엘리사벳의 마음에는 특히 예수님의 구원 신비에 더 깊이 동참하고 싶은 원의가 커 갔습니다. 그래서 복녀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자신을 하느님께 희생 제물로 봉헌하고자 했습니다. 예컨대 엘리사벳 가족은 당시 세를 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의 주인은 ‘샤퓌’라는 중년 신사였는데, 복녀의 편지들을 살펴보면, 샤퓌씨는 꽤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지만 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그 주인아저씨가 회개해서 신앙을 받아들이고 신자가 되기를 바라는 지향을 갖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결국 이분은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고 임종했다고 합니다.

 

또한 엘리사벳은 이웃집 여자아이들을 돌봐주면서 그 아이들이 첫 영성체를 잘하도록 준비해 줬습니다. 특히 복녀는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지냈던 친구들이나 입회 전에 돌봐준 어린아이들을 삶으로, 그리고 편지로 동반하면서 영적으로 조언해 줬습니다. 이런 인연들은 훗날 가르멜에 입회한 후에도 이어져 엘리사벳은 편지 왕래를 통해 계속 이들을 영적으로 인도해 주게 됩니다. 이러한 편지들은 복녀의 영성의 핵심을 보여 주는 백미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예를 들어, 「우리 성소의 위대함」이란 작품은 7살 아래의 프랑부아즈라는 소녀에게 보낸 편지로 복녀는 영적인 엄마처럼 그 소녀를 돌보면서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여러 가지 영적 조언을 해줬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주(內住)에 대한 자각

 

1899년 여름, 엘리사벳은 스위스의 유라, 보스쥐 같은 곳에서 지내며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과 성녀 데레사의 「완덕의 길」을 탐독하며 가르멜 영성에 점차 심취해 갔습니다. 엘리사벳은 이런 작품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 영혼 깊은 곳에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더 깊이 깨달았으며 이러한 자각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온전히 사랑하고 구원 사업에 동참하기 위해 그분의 고통을 나눠 받기를 간절히 원하도록 이끌었습니다. 

 

1900년 1월, 엘리사벳은 요셉 호프노라는 예수회 신부님이 며칠간 지도하신 피정 강론에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 호프노 신부님이 나눈 피정은 ‘우리 주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신 고독’이란 주제로 진행됐는데, 엘리사벳은 이 피정에 참석한 이후 진심으로 고독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 시절 복녀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특히 하느님께서 인간의 내면에 거하신다는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이었는데, 엘리사벳은 자신의 영성 생활에서 이 점에 대해 좀 더 깊이 지도를 받기 위해 다양한 영성 서적들을 읽고 주위 신부님들께 조언도 청했습니다. 특히 복녀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1900년 도미니코회 발레 신부님과의 만남으로, 이분은 은총을 통해 이뤄지는 영혼 안에서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주(內住)가 무엇인지 복녀에게 올바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만남은 엘리사벳의 영성생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습니다. 그전까지 엘리사벳은 비록 자기 안에 계신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느낌을 갖고 있었지만, 그 하느님이 삼위일체적인 특징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엘리사벳에게 우리 영혼 안에 거하시는 하느님이 단순한 하느님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라는 걸 정확히 알려 준 분이 다름 아닌 발레 신부였습니다. 그 신부님은 엘리사벳으로 하여금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에 깊이 몰두하도록, 그리고 그분의 품 안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기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줬습니다. 사실, 이때부터 복녀 엘리사벳의 영성에 있어 핵심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깊은 흠숭, 그리고 그분에 대한 찬미의 영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9월 4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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