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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아우구스티노를 만나다: 신국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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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7-01 ㅣ No.111

[아우구스티노를 만나다] 하느님 나라의 초석 : 사회적 사랑


「신국론(De civitate Dei)」

 

 

'영원한 로마'의 붕괴

 

고대세계의 가장 위대한 역사적 경이에 해당하는 로마 제국이 5세기에 들어와 급격한 쇠퇴와 붕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서기 410년 8월 24일 서고트족의 알라리크가 로마를 함락시키고 입성한 다음 대학살과 방화와 약탈을 저지르고 퇴각하는 미증유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영원한 로마(Roma aeterna)’에 대한 제국 신민 전체의 사상적 붕괴가 만연하자 아우구스티노의 지인들은 이 사건을 이념적으로 감당할 만한 저서를 집필해 달라는 부탁을 히포의 주교에게 해온다.

 

본인도 일찍이 인간 역사의 두 축으로서 ‘하느님 나라’와 ‘지상의 나라’라는 주제를 한 번 다루어보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던 터였으므로, 이 대재앙에 뒤따른 정신적 혼돈을 두고 철학자로서 신학자로서 신비가로서 성찰을 모색한다. 그리하여 15년의 기나긴 세월에 걸쳐 인류지성사의 대작이라 할 「신국론」(성염 역주, 분도출판사, 2004년)을 집필한다. 412년에 집필에 착수하여 427년 조금 전에 마친 것으로 추정된다.

 

제3천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국이 이른바 ‘9·11 테러’를 당한 후유증으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를 상대로 벌이는 무차별한 군사행동, UN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제정치와 세계윤리를 완전히 붕괴시켜 버린 그 포학성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인류 지성계의 심각한 번뇌를 염두에 두면, 「신국론」은 현대에도 읽힐 만한 명분이 되고 남는다. 세계문학전집에 이 책이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

 

‘하느님의 도성(civitas Dei)’을 다룬 「신국론」은 다섯 단원, 22권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1-10권)는 로마 몰락이 그리스도교 탓이라던 로마 지성인들에게 건네는 호교론으로, 그들의 종교와 역사가 정치사회에도, 도덕적 문화에도 불완전했음을 밝혀 보인다.

 

후반부는 인류 역사를 구세사로 관조하면서 하느님의 도성의 역사적 기원(11-14권 : 우주의 창조와 천사의 기원, 천사들의 범죄와 타락, 인간의 창조와 인류의 단일성, 죽음이 죄벌로 의식되는 근거, 인간 의지의 퇴락), 하느님 도성의 역사적 전개(15-18권 : 성경을 역사 문헌으로 간주하여 인류사를 인간 아벨부터 노아 홍수까지, 대홍수부터 아브라함까지, 열왕기 이후로 예언자 시대까지, 그리고 지상 도성의 그리스도 시대로 구분), 하느님 도성의 종말(19-22권: 최고선 문제, 평화의 개념, 최후심판, 그리스도교의 직선적 시간관, 천년왕국설, 총괄갱신과 영원회귀설, 육신 부활과 영원한 지복)을 다룬다.

 

 

“두 사랑이 두 도성을 이룬다”

 

독자는 “국가란 법정의(法正義)에 관한 공통된 인식과 공동의 이해관계로 연합된 결사체”라는 키케로의 정의가 교부 아우구스티노에 의해서 “국민이란 사랑할 대상에 대해서 서로 합의함으로써 한데 뭉친 이성적 존재들”(「신국론」, 19.24)로 발전하는 점에 유념하게 된다.

 

교부는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4.4)라고 성토하면서 정치의 궁극목표인 “평화는 정의의 열매”라는 신념을 주창한다. 그러면서도 “참다운 정의는 그리스도께서 창건자요 통치자가 되는 그 공화국에서뿐”(2.21)임을 절감하고서 정의 대신 ‘사랑’이 국민을 구성하고 “두 사랑이 있어 두 도성을 이룬다.”는 교부의 명제에 우리는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인간 실존의 중력인 사랑(11.28)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심원한 본능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인류의 역사에서도 사랑이 이기적 사랑과 위타적 사랑 또는 ‘자기 사랑’과 ‘하느님 사랑’으로 갈라지며 그런 사랑이 인류사의 두 축을 구성한다는 교부의 혜안이 이 책을 관통한다.

 

“두 가지 사랑이 두 도성을 건설했다. 하느님을 멸시하기까지 이르는 자기 사랑이 지상 도성을 만들었고, 자기를 멸시하면서까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천상 도성을 만들었다”(14.28). 다른 저작에서 아우구스티노는 이 두 사랑을 구체화하여 ‘사사로운 사랑(amor privatus)’과 ‘사회적인 사랑(amor socialis)’이라고 명명한다.

 

“두 사랑이 있으니 하나는 순수하고 하나는 불순하다. 하나는 사회적 사랑이요 하나는 사사로운 사랑이다. 하나는 상위의 도성을 생각하여 공동의 유익에 봉사하는 데 전념하고, 하나는 오만불손한 지배욕에 사로잡혀 공동선마저도 자기 권력 아래 귀속시키려는 용의가 있다. 하나는 하느님께 복속하고 하나는 하느님께 반역한다. 하나는 이웃을 다스려도 이웃의 이익을 생각하여 다스리지만 하나는 자기 이익을 위하여 다스린다. 천사들로부터 시작해서 한 사랑은 선한 자들에게 깃들고 한 사랑은 악한 자들에게 깃들어서 두 도성을 가른다”(「창세기 축자해석」, 11.15.20).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자기 교황직의 기조문서에 해당하는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2005년)에서 이 ‘사회적 사랑’의 실천을 평신도가 수행할 ‘정치활동’이라고 규정한 것은 참으로 뜻깊은 가르침이다.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위하여 일할 직접적인 의무는 평신도들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국민으로서 평신도들은 ‘경제, 사회, 입법, 행정, 문화 등 수없이 많은 여러 분야에서 조직적으로 제도적으로 공동선을 증진시켜야 하는’ 참여 의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 평신도들의 삶 전체와 ‘사회적 사랑’을 실천하는 그들의 정치활동이 언제나 사랑에 젖어들어야 합니다”(29항).

 

다만 신앙인은 역사적 투신 속에서도 언제나 사회조건 전체에 종말론적 단서를 붙이는 여유를 갖는다. 우주와 인류의 시원에는 창조주 하느님이 계시며, 역사의 도정은 그리스도께서 은총으로 인류와 함께하시며, 역사의 종말에 완성되는 하느님 도성은 “진리를 군주로, 사랑을 법도로, 영원을 척도로 두는 사회”, “진리가 승리자요 거룩함이 품위가 되고 평화가 행복이요 생명은 곧 영원”이리라(2.29.2). 이 원대한 목표를 향해서 신앙인은 ‘지금 여기’에서 역사의 도정을 밟아가고 있다.

 

 

“사랑이란 빠르기도 해라”

 

아우구스티노는 일찍이 자기 철학의 대상을 하느님과 인간으로 규정한 바 있다. 필생의 역작 「신국론」에서도 그는 인간과 세계를 하느님과 연관시켰다. 진정한 지성인은 “하느님에게서 ‘존재의 원인’을 발견하고 ‘인식의 근거’를 찾아내며 ‘삶의 규범’을 얻어내야 마땅하다. 우리 존재가 더 이상 죽음을 모르고 우리의 인식이 더 이상 오류에 떨어지지 않으며 우리의 사랑이 더 이상 좌절하지 않을”(11.28) 실존을 살고 싶은 희망에서였다.

 

“서기 430년 8월 28일. 그날 히포의 들녘에는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날은 반달족들마저 히포를 에워싼 진영 속에 숨을 죽이고 조용히 머물러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바다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방파제 가까운 바위 틈새로 물결이 일렁이면서 사람들이 버려둔 배 두 척만이 가벼이 선체를 부딪치고 있었다. 흡사 입맞춤하는 것처럼…”(C. 크레모나, 「성아우구스티노傳」, 성염 역, 바오로딸, 1992년, 366쪽).

 

반달족이 로마 제국의 북아프리카를 완전히 초토화한 다음 아우구스티노가 주교로 봉직해 온 히포를 포위한 상태에서, 제국 로마가 무너져내리는 굉음을 들으면서 임종을 맞은 교부의 시선은 역사의 종국, 어느 날 온 인류가 맞이할 안식일을 이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의 끝은 저녁이 아닐 것이고 오직 주님의 날, 영원한 이렛날이리라. 그때 우리는 쉬면서 보게 되리라. 보면서 사랑하게 되리라. 사랑하면서 찬미하게 되리라”(22.30.5).

 

* 성염 요한 보스코 - 1986년 교황청 살레시오대학에서 라틴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주교황청 한국대사(2003~2007년)를 역임했다.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 등의 저서와 「아시아인의 심성과 신학」 등 많은 역서, 「신국론」 「자유의지론」 등의 아우구스티노 주해서를 냈으며, 수십 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경향잡지, 2012년 6월호, 성염 요한 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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